3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32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
33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3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3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
37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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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 말하기를 유대인의 장노들과 학자, 그리고 제사장들로부터 학대를 받고 십자가에 달려 죽을 것이다.
그런 다음 사흘 후 다시 일어난다 했다.
그때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마태복음에 보면 神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했다.
마가복음에 보면 神이란 말이 빠져 있다.
그때 예수께서 돌이켜 베드로에게 네가 사람의 생각만하고 神의 생각을 모르고 있구나 하면서 베드로를 향해 사탄이라 했다.
사탄이라는 말은 유대나라에서 가장 나쁜 욕에 해당한다.
예수께서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심한 말을 베드로에게 했다.
사탄아 물러가라.
여기서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너는 神의 생각을 모르는구나 했는데 이 神은 하나님이 아니고 여호와를 말한다.
여호와의 생각을 너는 모르고 있다 그런 이야기이다.
이와 같이 베드로는 그 神의 생각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고 오히려 그 神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지 않게 할 것으로 알았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그런 미련하고 우매한 말을 듣고 격분했다.
우리도 그 神을 분별 못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지금 교회는 이 神을 구분 못하고 있다.
그래서 여호와를 하나님이라 부르며 여호와 神에게 기도를 한다.
그렇게 여호와에게 이것 저것 구하고 중얼거려놓고 마지막에 예수의 이름으로 빕니다 하고 있다.
그런데 예수님과 여호와는 원수지간이다.
그런고로 여호와를 하나님이라 부르며 잔뜩 구해놓고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하면 원수에게 예수님 이름으로 빈다는 꼴이다.
그런 기도가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베드로가 예수님으로부터 책망을 들은 것은 그의 어리석은 생각 때문이다.
여호와는 그런 일을 할 분이 아니다.
즉 여호와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거나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베드로는 말했지만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 너는 여호와의 생각을 전혀 모르고 있다고 말씀 하셨다.
그러면서 생각이 없는 제자를 보고 극도로 안타까워 하셨다.
이것은 당연한 이야기이다.
저도 그렇다.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을 보면 너무나 안타깝다.
여러분도 예수께서 베드로를 향해 사탄이라 말한 의미를 알고 명심해야 한다.
다음에 예수께서 무슨 말을 했는가?
누구든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말씀 하셨는데
그렇게 되면 나중에 자기의 생명을 얻는다 했다.
그러면서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이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의 목숨을 잃어버리면 무슨 소용인가?
자기의 생명을 잃는다 하는 것은 없어진다는 말이다.
온 천하를 얻어도 자기가 없으면 무슨 소용인가?
여러분, 이 세상에 훌륭한 사람이 많았지만 이런 말을 한 사람이 있었는가?
예수님 외에는 이런 말을 한 사람이 없다.
또 이 말의 진의를 깨닫는 사람도 거의 없다.
온 천하를 얻을지라도 자기가 없어진다면, 죽는다면 무슨 소용인가?
말을 들어도 보통으로 생각하고 느끼지 못하면 안된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자기를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그래야만 존재할 수 있다. 자기가 있을 수 있다 했다.
즉 자기를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만 자기를 보존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한 것은 죽을 각오를 하라 그런 소리다.
그런데 여기서 보면 예수님의 이 말씀이 좀 이상하다.
예수께서 먼저 말씀하시기를 자기가 없으면 이 세상이 내것이라 한들 무슨 소용인가 하면서 자기라 한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으로 이야기 했는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자기를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하셨다. 그런데 자기를 버린다 하면 자기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앞뒤가 안 맞는 말씀 같다.
어떻게 된 것인가? 여러분, 이 말도 깨달아야 한다.
여기서 예수께서 자기(自己)에 대해 말했는데 이 자기는 두 가지임을 알아야 한다.
앞선 자기, 즉 전(前) 자기(自己)와 뒷 자기, 즉 후(後)자기(自己)이다.
그런데 전자기(前自己)는 영원성이 없다.
시간이 오면 이 전자기(前自己) 는 자연히 소멸된다.
그러나 다음에 오는 후자기(後自己)는 영원성이 있다.
따라서 전자기의 것으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면서 희생하면 후자기는 자연히 네 소유가 된다 그런 말씀이다.
그런데 전자기를 아끼다가 시간이 와서 전자기를 잃은 날이 오는데 그러면 그때 가서는 너는 후자기를 소유할 수 없게 된다는 뜻이다.
그런고로 자기가 앞에 온 자기와 뒤에 온 자기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은 사실을 이 세상 철학자, 신학자들이 많지만 모르고 있다.
이 앞에 오는 전자기는 생물학적 자기이다.
한 100년 정도 이 땅에서 존재 할 수 있다.
이것을 잘못 사용하면 후자기를 획득할 수 없다.
그런고로 예수께서 너희들이 전자기를 버리고 즉 십자가를 지는 고통을 가지고 나를 따르면 후자기를 얻게 된다는 말을 해준 것이다.
그러면 예수께서 나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라 했는데 내가 누구인가? 예수님이시다. 그런고로 예수님을 잘 알아야 한다.
왜 나를 버리고 예수님을 위해서 내 평생을 살라고 했는가?
이유가 있어야 한다. 까닭이 있어야 한다.
덮어놓고 예수님을 위해 살라고 하면 이해할 수 있는가?
여기서 나를 버리라고 한 것은 내 전 생애 즉 전자기를 말한다.
그러면 내가 예수님을 위해서 내 전 생애를 버릴 만한 이유가 무엇인가?
예수님은 원리이다.
우주의 근본원리가 예수님으로부터 나왔다.
예수님이 가지고 있다.
그리고 예수님은 존재이다. 있다고 하는 존재의 원천이 예수님이시다.
또한 예수님은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이 능력이다. 힘이다.
사람도 능력이 없으면 싸움에서 진다.
지는 것은 의미 없다. 왜냐하면 지게 되면 결국은 없어진다.
능력이 있어야 승리할 수 있다.
예수님은 능력의 소유자이면서도 그 능력에 한계가 없다.
무한하다.
자기를 버리고 나를 따르라 말한 것은 예수님이 능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능력이 없는 존재가 그런 말을 했다면 그것은 허공을 가르는 소리일 뿐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능력이 있을 뿐 아니라 생명의 원천이시다.
생명의 원천이란 말은 존재의 원천이란 뜻이다.
즉 있어야 된다. 없으면 아무 소용도 없다.
그런고로 너희들이 후자아(後自我)가 있으려고 하면 나를 알아야 되느니라 나를 이해해야 된다는 그런 말씀이다.
전자아(前自我)를 나를 위해 버리기로 각오하고 나를 위해 전자아를 쓰면 후자아가 생명을 갖게 된다는 그런 뜻이다.
그런고로 인간은 존재의 목적달성을 위해서 전자아를 예수님을 위해 버리고 후자아를 쟁취해야 한다.
예수님이 이 세상을 만든 것은 천국 백성을 얻기 위해서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 내 전자아를 버리고 후자아의 생명을 얻게 되면 그것이 예수님이 천국의 나라를 건설하는 하나의 주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고로 인생의 최후의 목적은 무엇인가? 존재이다.
내가 있어야 된다.
이 세상은 없어지더라도 나는 있어야 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은 없다.
오직 예수님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그를 따르는 길 밖에 다른 길은 없다.
십자가를 진다는 말도 꼭 죽으라는 말은 아니다.
죽을 각오를 하라 그런 의미다.
죽을 각오를 하고 예수님을 따르면 우리에게 후자아의 존재가 주어지고 그것이 우리 인생의 최종목적이다.
백천(白泉) 김준식
(P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