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18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19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21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23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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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 하는 말이 아버지께서는 지금도 일하신다 했다.
옛날에 엿새 동안 천지를 창조하고 이레 되는 날 쉬고 지금도 계속해서 쉬고 있는 神이 있는데 반해서 아버지께서는 지금도 일하신다 그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아무리 간단해도 그 내용에는 깊은 진리가 내포되어 있다.
여러분 그저 성경을 읽으면 아무런 느낌이 없지만 다시 한 번 천천히 숙고하면서 보라.
내 아버지께서는 지금도 일하신다고 말씀하신 것은 6일 동안 천지 창조를 끝내고 그 다음부터 내내 매주 하루씩 일하지 않는 神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 것을 말한다.
예수님의 말씀을 전부 검토를 해보면 예수님의 아버지와 이스라엘 민족 神과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음을 알려준다.
아버지께서는 항시 쉬지 않고 지금도 일하신다. 따라서 나도 일한다 그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본받아서 하시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아버지께서는 모든 역사를 하시면서 감춰두는 것이 없이 다 예수님께 보여준다.
그래서 예수님으로 하여금 모든 역사를 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그런고로 오늘 이 말씀, 아버지께서는 지금도 항시 일하고 있다.
이 한마디로도 우리의 문제는 스스로 다 해결된 것이다.
다른 여러 말이 필요 없이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그래도 세상 사람들은 아무런 생각, 아무런 느낌, 아무런 비판 없이 이 말씀에 대하여 지나치고 있다.
인생에 있어서 일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육체적인 일이고 다른 하나는 영적인 일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육체적인 일을 안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필요한 것은 영적인 일이다.
영적인 일은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일과 유사하다.
그런고로 보통으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영적인 일을 거의 할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적인 일을 하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난다.
그러나 우리가 이 영적일이, 영적 역사가 전혀 없이는 갈 곳이 없다.
우리의 이 세상에서 육체적인 일이란 어디까지나 영적일의 준비에 불과하다.
그런고로 이 세상에 있는 동안 육체의 일만 하면 즉 영적인 일이 없이는 저 세계에 들어 갈 수 없다.
왜냐하면 육체적인 일은 인생의 근본 목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떤 진리, 어떤 학문을 탐구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고결하고 얼마나 순수한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열심히 지식을 쌓았다 하더라도 어느 시간이 오면 없어진다.
얼마나 큰 모순인가?
이 문제가 해결되는 방법이 없다고 하면 인간들처럼 불쌍한 동물도 또 없을 것이다.
이렇게 내가 죽으면 다 없어질 것을 위해서 평생을 일한다고 하면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래서 예수께서 아버지께서 일하고 나도 일한다 했는데 그 일은 무슨 일인가?
세상일이 아니고 영적일이다.
없어질 일이 아니고 영원히 남을 일이다 그런 이야기이다.
이 영적일은 예수께서 하신 일, 하나님께서 하신 일과 비슷하다. 꼭 같지는 않다.
그 크기에 있어서 다르다.
그러나 질적으로는 같아야 한다.
이 영적일에 대한 우리의 업적이 없다고 한다면 우리의 인생은 어느 시기가 오면 없어진다.
그런고로 어리석은 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
인생이 가져야 할 중요한 점은 이와 같은 것 때문에 필요하다.
사람이 인식을 바로 해야 한다.
그러면 인식하는 첫째 순서는 무엇인가? 인생이란 어떤 것인가? 사람이란 무엇인가를 알아야 된다.
옛날부터 사람이 무엇인가를 생각한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공자는 인생이란 만물 중에 가장 귀하다 했다.
왜 귀한가에 대해서는 인간이 다른 생물과는 다르게 윤리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귀하다 했다.
그런가 하면 석가는 인생을 무(無)로 보았다.
인생은 허무다.
이렇게 인생이 무엇인가?
생각해 본 자가 많았다.
그러나 어리석은 것이 인생이다.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을 가치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다음에는 또 무엇을 인식해야 하는가?
예수님을 인식해야 한다.
예수님을 인식함과 동시에 하나님도 인식해야 한다.
그러면 인간이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옮겨질 것이다.
또 인간이 이 세상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이 세상일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힘이다. 힘이 있어야 된다.
힘이 있으면 이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겨야 된다. 지면 죄다.
예수님도 승리자다.
그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 실패한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그는 이겼다.
진 것은 결국 죄로 판정된다.
예수께서도 전쟁을 하려거든 이길 것을 확신하고 전쟁을 하라.
만약 그렇지 않으면 아예 싸움을 하지 말고 화해를 해라 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인식을 해야 한다.
인생을 인식함과 동시에 예수님을 인식하고 예수님을 인식함과 동시에 하나님을 인식해야 한다.
그렇게 되어야 우리가 걸어가는 길은 모두 승리적으로 확보되고 획득된다
그리고 인식의 목표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참이다.
무엇이 참인가 어떤 것이 참인가? 알아야 된다.
세상에서 보면 눈에 좋아 보이고, 입에 맞고, 귀에 잘 들리고 이런 것에 정신을 팔리다 보면 참을 놓칠 수 있다.
우리가 인생의 길을 걷는데 무엇이 참이고 누가 참인가? 인식해야 한다.
6일 동안 일하고 7일째에 항시 쉬고 있는 神이 참神이 되는가 아니면 지금까지 일한다고 한 아버지가 참인가?
아무리 보기 좋고, 입에 맞고, 느낌이 좋아도 참이 아니면 그것을 택하면 안된다.
다음에는 영원성이다.
영원성이 없는 것 다시 말하면 순간적인 것은 의미(가) 없다.
우리 인생도 영원성이 문제이다.
무엇이 영원성을 가졌는가? 그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임시적이고, 순간적으로 있다가 없어지는 것을 위해서 우리가 노력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음에는 크고 적은 것을 인식해야 한다.
대소를 인식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가치의 유무이다.
이것이 가치 있는가 없는가?
즉 이 가치도 영원적인 가치를 인식하고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참을 인식하고, 영원성이 있는가 없는가, 즉 영원성을 인식해야 하고 다음에는 크고 적음을 분간할 수 있어야 한다.
영원성의 근본은 예수님이시다.
그런고로 우리가 자신을 먼저 알고 다음에 예수님을 인식해야 되는데 예수님부터는 영원성을 갖는다.
우리가 먼저 예수님을 인식하면 그 다음에 아버지를 인식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예수께서 보여준 성경의 몇 가지 기적을 전부 증명해야 한다.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저 믿기만 해서는 소용없다.
떡 다섯 덩이로 오천 명을 먹였다는 것을 어떻게 그저 믿고만 있을 수 있는가?
증명할 수 있어야 된다.
38년 동안 누워있는 사람을 일으켰다는 것을 믿기만 하고 있어서는 안된다.
이런 예수님의 모든 일이 증명되어야 한다.
저는 항시 성경을 두고 기도하는 것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증거이다.
내가 예수께로부터 받은 증거 이것이 중요하다.
어리석게도 기독교인들은 믿음, 믿음 소리만 하고 있는데 그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그런고로 예수께서 이 세상에 와서 했던 일의 증거를 잡아야 한다.
그래야 예수께 의존하게 되고 또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 의존하게 된다.
순서가 그렇게 되어야 한다. 먼저 이 어리석은 인생을 확실히 인식하고 다음에는 예수님을 붙잡아 인식해야 되고 예수님을 인식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이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식인데, 똑바른 인식이 기점이 되어 우리의 인생문제가 해결된다.
즉 예수님이 참인 것을 인식해야 하고 예수님이 큰 것을 인식해야 하고 예수님이 영원성을 가진 것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생명도 원천을 찾아가야 한다.
우리의 본래의 존재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씨”이여야 한다.
사실 이 땅에서 난 “나”라는 존재는 근본적인 존재는 못된다.
나의 근본적인 존재는 예수님으로부터 뿌려준 씨로 자라난 나다. 그런 이야기이다.
그런고로 그 씨가 자라면 그 씨의 본향, 저 세계로 가는 것이다.
백천(白泉) 김준식
(P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