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바로 그 때에 몇몇 바리새파 사람들이 다가와서 예수께 말하였다. "여기에서 떠나가십시오. 헤롯 왕이 당신을 죽이고자 합니다."
32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그 여우에게 전하기를 '보아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내쫓고 병을 고칠 것이요,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끝낸다' 하여라.
33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 날도, 나는 내 길을 가야 하겠다. 예언자가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
3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사람들을 돌로 치는구나!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품듯이, 내가 몇 번이나 네 자녀를 모아 품으려 하였더냐! 그러나 너희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35 보아라, 너희의 집은 버림을 받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말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다' 할 그 때가 오기까지, 너희는 나를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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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인들이 예수에게 와서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려 하니 예루살렘을 떠나라고 말했다.
이것은 예수님이 미워서 하루 속히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을 쫓아내기 위한 모략 (謀略)이었다.
그 당시 헤롯(분봉왕 안티파스)은 갈릴리및 베레아 지방의 통치자였으며 예루살렘은 빌라도의 권한아래 있었다.
따라서 이 지역에서 헤롯이 예수님을 강제 조치 할 수 있는 권한은 없었다.
이것은 예수님을 십자가로 보낼 적에도 유대인들이 제 마음대로 결정할 수가 없어서 빌라도에게 허락을 요청한 것과 같은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이곳을 떠나라 한 것은 예수님을 생각해서가 아니고 예수님을 예루살렘에서 쫓아내기 위해서 떠나라 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오늘 내일 모래까지 내 일과 의무를 완성하고 그 다음에 가겠다고 하셨다.
여기서 오늘 내일 모레라 하는 말은 그 지방의 상징적인 속어로서 ‘잠시동안’이라는 뜻이다.
즉 너희들이 떠나라고 해서 떠나는 것이 아니고 잠시 동안 내 의무를 완수한 다음에 가겠다는 말씀이다.
그 다음에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하는 말씀은 시편에 있는 말이다.
마태복음21:9절에 보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오실 때에 군중들이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온갖 복이 있도다.” 하는 말을 외쳤는데 이것은 시편에 있는 기록을 외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여기서 잠시 동안 내 임무를 완수한 후 다시 이곳에 올 터인데 그때에는 비밀리에 오는 것이 아니고 온 세계가 다 알도록, 누구든지 나를 볼 수 있도록 온다는 말씀이다.
실제로 예수께서는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오실 때는 군중들의 대환영을 받으며 예루살렘에 입성하였던 것이다.
마태21:9(그리고 앞에 서서 가는 무리와 뒤따라오는 무리가 외쳤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께! 복되시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더없이 높은 곳에서 호산나!")
오늘 구절은 예루살렘이 선지자들을 죽였고 하나님이 파견한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너희는 남아있지 못하고 황폐화되고 망하리라는 말씀이다.
이 예루살렘이라는 곳에 특별히 나쁜 사람이 있거나 그 장소가 특별히 나쁜 것은 아니다.
예루살렘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있기 때문이며 여호와 신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즉 종교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바로 그날 예루살렘 지성소의 휘장이, 장막이 뜯겨졌다 하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하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게 하는 범죄자 장본인이 저 휘장 속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있는 동안 지성소의 휘장이 찢어질 이유도 없고 까닭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지성소의 휘장이 찢어졌다고 하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모든 과정들이 이스라엘 종교의 요구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인식시키기 위한 것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날 두 가지 현상이 일어났다.
하나는 천지가 어둠이 덮여서 암흑상태가 된 것이다.
천지가 어두워지고 있다 하는 것은 빛이 없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빛이라 하였으니 그를 십자가에 못 박는다는 것은 세상의 빛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제 예수께서 이 세상 종말의 심판을 가져올 때에는 이 땅위에서 빛을 거둘 것이다.
다음으로는 성전의 휘장이 찢어졌다 하는 것은 바로 지성소를 가리키는 바 많은 사람이 저것으로 말미암아서 고난을 당할 것이고 눈이 어두워질 것이고 어둠때문에 진리를 바로 볼 수 없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찾아볼 수가 없게 된다 하는 것을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전 세계의 기독교인들이 지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것이 마치 하나님의 위엄이 우리에게 내려진 것처럼 엉터리 해석을 하고 있다.
예수님을 죽인 것은 사람의 힘만으로 된 것은 아니다.
그 배후에는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죽이도록 조종한 신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전 세계 기독교인들이 이 신을 믿고 있는 것에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사람의 힘으로 또는 사람의 상식으로 죽일만한 이유도 까닭도 없다.
그는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먹여 주었고 소경에게 눈을 뜨게 해 주었을 뿐 사회의 권익을 취하거나 제사장의 권리를 빼앗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죄인 가운데 가장 큰 죄인으로 십자가에 달리게 하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그 배후의 조정자는 신이다.
이제 예수님을 잡아 죽인 표면적인 죄목은 안식일을 범한 죄이다.
그 당시 바리새교인이나 서기관들은 어떻게 하면 안식일을 잘 지킬 수 있는가를 연구하고 안식일 지키는 법을 만들어 발표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대중이 안식일을 규정대로 지켰냐 하면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또한 지킬 수 없었던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 소나 나귀를 안식일이라고 해서 물을 안 먹이거나 너희 양 떼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안식일이라고 해서 건져주지 아니하겠느냐' 한 것은 안식일에도 소나 나귀에 물을 먹였다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이 주장한 안식일이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것도 또한 양떼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건져 내왔으니 그것 또한 안식일일지라도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다음에는 안식일에 아이를 낳는 일이다.
안식일이라 할지라도 아이를 낳는 것은 산모에게는 일중에서 가장 큰일이다.
뿐만 아니라 옆에서 도와주는 산파 일을 하는 사람도 큰일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안식일은 대중생활에 있어서 제대로 꼭 지켜진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줬다 하는 것은 대중에게는 대단히 환영 받는 일일수밖에 없다.
따라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예수께서 안식일을 범했다고 표면상 죄를 내세웠지마는 실은 이스라엘 대중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일만한 이유는 없는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종교의 본산 즉, 유대나라 종교에 눈이 먼 사람과 그 배후에 있는 신의 작품이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아 죽인 이 신은 기독교라고 하는 단체를 움직여 가지고는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못 깨닫게 하는 것이다.
초대교회의 제자들이나 바울도 예수님을 죽인 이유를 알지 못하였다.
예수님을 죽일만한 까닭이 없기에 사람의 죄를 양의 피나 소의 피를 가지고는 도저히 속죄할 수 없기에 예수님의 피만이 이 죄를 속죄할 수 있다는 궤변 즉, 구원론을 만들어 낸 것이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바울이다.
이런 식으로 오늘날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조직신학에서 제일 강력히 주장하는 말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죄를 대신하는 것이며 예수님은 스스로 십자가 앞에 걸어가 죽은 것이라고 주장 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요한은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에 요한은 이 문제에 대해 정확히 깨닫고 있었지마는 당시 교회 정세가 이렇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복음서에만 그걸 비췄지 교회 조직상으로는 나타내지 못했던 것이다.
바울은 오직 예수님이 자진해서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피를 흘렸다는 신학사상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그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다음에 아라비아에 가서 3년 이상 연구하여 이러한 학설을 만들어 낸 것이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지가 이천 여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예수님을 똑바로 보아야 하며 바울의 사상에서 하루속히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전 세계의 신학자와 교회가 예수님을 잡아 죽인 신에게 여전히 농락당하고 있으며 눈을 뜨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세상은 장차 예수님을 정확히 깨닫는 사람이 예수님이 선택한 사람이외에는 한사람도 없는 시대가 올 것이다.
그때야 말로 바로 예수께서는 이 땅에 불을 던질 것이라 하는 것을 우리가 아는 것이다.
세계의 신학자와 교회는 아직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던 교리를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어리석은 인간들로 하여금 점점 더 예수님을 모르도록 만들고 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대해서 저주를 하셨지만 그것은 예루살렘의 산과 들과 사람 때문이 아니라 그 예루살렘에 거주하고 있는 신 바로 여호와 때문인데 세상은 예수님이 저주한 신을 하나님이라고 섬기고 있으니 하늘에 계신 예수님의 심정은 이루 말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백천(白泉) 김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