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0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0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0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0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0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0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0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0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1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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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여기서 계명이란 말은 명령이란 말이다.
명령이라 하는 것은 절대성을 갖는다.
지켜도 좋고 안 지켜도 괜찮은 것은 명령에 속하지 않는다. 명령이란 절대적이다.
그런고로 이 명령이라 하는 것이 무엇인가 정확하게 알아야 될 것이다.
본문의 10절에 보면 내가 아버지의 사랑 안에 있는 것은 내가 그의 계명을 지켰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 명령이라 하는 것이 오늘 제자들에게 주는 명령과 같은 것이다.
내가 아버지 사랑 안에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하면 내가 아버지의 명령을 지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1절에도 중요한 말이 나와 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계명을 지키는 것이 그의 사랑 안에 있기 때문이 아니고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그 자체가 그의 사랑 안에 있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그 다음에 12절의 말씀도 대단히 중요하다.
한글 성경에는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라”로 번역 되어 있다.
이 구절의 상징적인 원 뜻은 “나의 계명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의 뜻보다는 10절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만일 나의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있어서 너희도 서로 사랑하게 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계명(명령을) 지키지 않으면 사랑하게 되지 않는 다는 뜻이다.
순서적으로 말하면 내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킴으로 내가 너희에게 말도 했고 세상에 와서 전파도 했다.
그래서 내가 너희를 사랑했다는 그런 말씀이다.
너희를 사랑하거나 혹은 돌보기 위해서 명령을 지킨 것이 아니고 명령을 지킨 결과로 그 결과가 여러 가지 있지마는 그 중 하나는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명령이란 말은 요한복음에만 있다. 다른 공관복음에는 없는 말들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명령이란 것이 대단히 중요한데도 불구하고 세복음서에는 전혀 기록이 없고 요한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명령이라는 말은 재래로 내려오는 유대식 명령과는 그 의미가 전혀 다르다.
그래서 마태복음이나 다른 복음서에서는 전혀 언급도 하지 않았다.
본문의 말처럼 예수께서 명령을 가지고 있는데 그 명령은 아버지께로부터 받았고 또 너희에게 전한다는 것이다.
그런고로 이 명령은 너희가 지킬 때 서로 사랑하게 되는 절대적의 필수조건이다 .
내게 있는 내 소유로 있는 명령을 지키는 것은 서로 사랑하기 위함이다 그런 말이다.
여기에서 사랑이란 말이 또한 중대한 말이다.
예수께서 하신 사랑이란 말은 오늘날 우리들이 말하는 사랑이란 말과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원어의 사랑이란 의미는 영어나 독일어에도 없다.
그 말이 없기 때문에 영어로 사랑(love)이라고 변역 해서 너희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 가장 큰 계명이다. 이렇게 변조해 버린 것이다.
여기서 예수께서 말씀한 사랑이란 전혀 의미가 다르다.
실질적으로 그 뜻을 우리 말로 그 뜻을 정확히 표현하기 쉽지 않다.
희랍말로 사랑이란 의미가 네 가지 있다.
남녀가 서로 사랑한다는 말로 에로스가 있고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는 의미는 스톨게(stolge)
음악이나 미술을 좋아한다처럼 예술을 좋아한다. 혹은 “친구 사이의 우정과 사랑”의 의미로 “필레오” 라고 쓰고 있다.
“사람과 사람에 대해 느끼는 사랑” ,” 신의 사랑”과 같이 큰의미의 뜻의 “아가페”가 있다 .
그런데 오늘 예수께서 말씀한 사랑이란 말은 “아가페”, ἀγάπη” 이다.
이 아가페라는 말은 중국말로 인(仁)이라는 말과 그 뜻이 가장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을 어질 인이란 말로만 보고 있는데 오늘이 아가페란 무슨 말인가 하면 예수께서 하신 말씀으로 내가 이제부터 너희를 종으로 여기지 않고 친구로 여긴다는 것과 같이 예수님이 우리를 친구로 여김으로서의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한 사랑이 바로 “아가페”이다)
예수님이 우리를 친구로 여긴다면 예수님은 또한 우리의 친구가 된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이 아가페란 말은 친구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 것이다 한 것이다.
여기서 목숨도 희랍어로 "푸시케"란 말로 그 단어의 의미는 “영혼”, “목숨”,생명”의 뜻이며 “자아”의 상징적인 뜻도 포함된다.
다시 말하면 친구를 위해서 자기자아를 내어 놓는다 이 내어놓는다는 말도 저당으로 내어놓는다는 말이다.
친구를 위해서 자기자신을 담보로 내어 놓는다는 그런 뜻인데 다시 한번 이 아가페란 말이 무슨 뜻인지 명확하게 예를 들어 알아보자.
예수님은 세상에 오셨다. 그런데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으면 그는 인간이다.
이제 인간으로서 최종단계의 자기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완수했던 것이다.
이것을 가리켜서 아버지를 사랑하는 아가페라 말한 것이다.
남녀간의 사랑이나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 그리고 예술을 사랑하는 것 이것들은 자기의 본능에 속한 것이다.
그러나 아가페라 하는 것은 자기가 싫건 말건 이것이 옳으면 또 해야 될 것이면, 마땅히 성취되어야 할 것이면 한다는 것이다.
무엇을 한다고 하는 데는 자기 자신을 담보로 하고 한다는 것이다.
만일에 성취 못하면 자기는 망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와서 아버지의 사명을 완수했다.
즉 아가페를 완수했다는 말은 인간으로 있으면서 사명을 완수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늘 나라에, 천국에 있으면서 사명을 완수하는 것은 비교적 쉬웠을지 모르지만 인간으로서 사명을 완수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만일에 완수를 못하면 망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자기의 사명을 완수 못했다면 부활이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천국에 못 간다.
그런고로 자기를 내어놓고 자기를 담보로 하고 성취하는 것이 아가페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가 인간으로 와서 하나님의 사명을 완수 한 것 같이 이것이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사명을 완수했기 때문에 인간을 아가페 하는 것이 된다 그런 말이다.
왜냐하면 그것으로 말미암아 인간에게 생명의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들도 예수와 마찬가지의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 완수 해야 한다. 그것이 아가페이다.
이것이 무슨 말인지 다시 한 번 정리하면 예수가 인간으로 와서 사명 완수를 하는 것은 인간자체를 위한 것이고 또 우리가 예수가 하신 일을 마찬가지의 길을 걸어서 성취하는 것은 예수자체를 위한 것이 된다 그런 말이다.
여기 원어의 “알렐론, ἀλλήλων “은 서로 상호간의 ‘서로의”뜻이다.
이것은 남녀간의 사랑,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 그런 말이 아니고 예수와 우리 사이의, 우리와 예수 사이의 사랑이란 말을 표현하기 위한 “서로 상호간의”의 뜻이다.
따라서 예수께서 강조한 것은 인간과 인간사이의 사랑이 아니고 내가 인간을 위해 아가페한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예수를 위해 아가페 해야 하고 또 아가페한 인간끼리의 상호 아가페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어떻게 해서 이루어지는가 하면 계명을 지킴으로 그 결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명이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가 우리에게 가리킨 것은 첫째는 길이다.
그 다음에는 법이다.
다음에는 오늘 여기서 이야기한대로 아가페이다.
그 다음에 믿음과 신앙이다.
그런데 이 순서를 어기면 안 된다.
처음에는 길이고 법이며 다음에 아가페 그 다음에 믿음이다.
바울이 고린도 전서 13장에서 아가페라 해서 예를 든 것이 있다.
거기에 보면 사람이 친구를 위해 몸을 불살라도 아가페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했는데 보통 우리가 생각하기로는 친구를 위해 몸을 던졌다면 그것이 사랑 일텐데 그것이 아니다는 것이다.
자기를 내어주어도 아가페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한 것이다.
바울이 희랍어를 잘 알기 때문에 예를 들어 논 것이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인간으로 와서 인간으로서 자기본분을 다하는 것 이것이 인간을 위한 것이다.
첫째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 되지만 다음에는 인간을 위한 것이 되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사명을 완수한 것이 무엇인가 하면 인간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이 예수께서 인간을 아가페한 것이다 그런 이야기이다.
따라서 인간도 예수께서 이 땅에서 사명을 완수한 것 같이 우리도 사명을 완수 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정리성취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것을 오늘 여기서 사랑이란 말로 모두 번역해 버렸다.
그런데 아가페를 하기 위해 먼저 필요한 것이 명령이다. 다음에는 법이다. 법의 실천을 명령이라 한다. 그러므로 이 명령은 절대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14절과 15절에 보면 이 명령을 지키는 것은 서로, 상호 사랑을 갖기 위함이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17절에 보면 이것이 오늘 설교의 제목을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내가 너희들에게 명령하는 것은 서로 아가페하기 위함이다.
내가 명령을 내리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면 서로 아가페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를 친구라 했음으로 우리가 예수님을 아가페하고 예수님이 우리를 아가페 한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예수님을 아가페하고 또 예수님을 아가페한 인간끼리 서로 아가페하는 삼각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이 세상 사회를 두고 그것을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다.
이 명령이란 말이 요한 복음에만 적혀있다.
요한복음 12장 49-50절에 보면 이 명령이란 무엇인가? 영생이란 것이다.
이 명령이란 영생의 소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13장 34절에 보면 이 계명, 명령은 새로운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명령, 계명을 주는 것은 너희들이 서로 아가페하기 위함이라 했다.
새로운 명령이 나오면 과거의 명령은 없어져야 한다.
그런고로 오늘날 교회가 예수가 오시기전 과거의 명령은 참고는 될지언정 그것을 지켜서는 안되는데 오히려 구약을 강조하는 한심한 집단으로 되어버렸다.
요한12:49~50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
요한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 14장 15절이 한글 성경에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로 번역되어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이 계명(명령)은 무엇인지 그것에 대한 언급이 없다.
다시 말하면 성경에 진리라는 말이 여러번 언급되어있는데 그러면 무엇이 진리인가? 거기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는 것이다.
또 법이라는 말도 많이 나오는데 그 법이 무엇인가? 거기에 대해서도 언급이 없다.
또 믿음이란 말도 구체적으로 언급이 없다.
우리는 여기서 믿음이다. 그렇게 쉽게 말하지만 예수께서는 구체적으로 언급을 하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이것이 다 천국에 관한 일들이다.
이 세상말로는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런고로 예수께서 이 세상 말로 구체적으로 언급을 하고 있다면 그것이 잘못이다.
요한14:15~16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오늘 여기서 말씀 하신 대로 내 명령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라고 쓰고 있는데 이와 같이 변조가 있어서는 안된다.
그러면 14장 16절에 보면 이 명령은 누가 하는가?
여기서 보면 이 계명을 지키면 너희에게 보혜사를 보낼 것이다.
그러면 진리라는 것, 법이라는 것, 계명과 믿음 이런 것을 구체적으로 예수께서 우리에게 명령한 그 정체를 그대로 알려(고)하면 조건이 보혜사를 받아야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보통사람은 예수님의 명령이 무엇인지 모른다.
또 예수께서 말한 진리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또 믿음이란 것도 모른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모르고 믿는 결과가 된다.
예수님을 정말로 믿는다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보혜사를 받아야 한다.
이 계명을 지키면 너희에게 보혜사를 보내준다 그것이다.
역으로 말하자면 예수께서 무엇이 진리이고 법이고 믿음이고 명령이고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그러나 사람이 예수님 앞에 어느 정도 나가면 말로는 표현할 수 없지만 그 스스로 느껴서 알게 된다는것이다.
다시 말하면 보혜사를 받은 사람은 이 명령을 지킨 것이 된다 그런 말이다.
보혜사를 받은 사람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지만 심령 속에는 법이나 명령을 스스로 깨달아 알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이다.
천국의 이치는 이 세상말로는 표현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고로 우리들의 심령이 천국의 언어를 모르고 있지만 보혜사의 감응을 받은 사람은 천국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컨대 우리는 서로 각자가 말로는 표현 안하지만 심령적으로 천국의 이치를 깨닫는 존재가 되어야 되는 것이다.
백천(白泉) 김준식
(P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