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어찌하여 너희는 옷 걱정을 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아라.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온갖 영화로 차려 입은 솔로몬도 이 꽃 하나와 같이 잘 입지는 못하였다.
08 빌립이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좋겠습니다."
09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보았다. 그런데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네가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자기의 일을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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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찾는 길이 무엇인가?
첫째로 과학이다.
그런데 과학은 이상하게도 늦게 발전했다.
다른 학문에 비해 늦게 과학은 지금부터 약 3,4백 년 전부터 발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과학의 발전이 왜 늦어졌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내 생각에 그 이유가 옳지 못한 신(神)의 작용이라고 보여진다.
왜냐하면 이 과학이 참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백 년 전 까지만 해도 가톨릭에서는 과학자를 종교재판에 회부해서 파문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했고, 개신교 역시 과학적 사고는 마귀가 주입해주는 것이라 치부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찾는 그 첫 길이 과학임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과학에는 거짓이 없다.
과학은 가설에 대한 실험과 입증을 통하여 그 속의 허위와 거짓을 배척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이 눈부시게 발전한 시대를 사는 오늘날의 인간 역시 여전히 구약의 불합리한 기록과 혹은 미신적인 많은 기록들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오인하고 있는 것은 대단히 부끄러운 일인 것이다.
그 예를 들면, 열왕기하20:8~11, 이사야서 38:4~8의 기록이 그것이다.
히스기야 왕이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얼굴을 벽에 대고 통곡을 하니 여호와가 이사야를 통하여 말하기를 그에게 15년을 더 살게 해주겠으며 그 증거로 해시계의 그림자를 뒤로 10도 물러나리라 했다는 것이다.
열왕기하20:8~11(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나를 고치셔서, 사흘 뒤에는 내가 주님의 성전에 올라갈 수 있게 된다고 하셨는데,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이사야가 대답하였다. "주님께서 그 약속하신 바를 그대로 이루실 것을 보여 주는 증거가 여기에 있습니다. 해 그림자를 십 도 앞으로 나아가게 할지, 십 도 뒤로 물러나게 할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말씀해 주십시오." 히스기야가 대답하였다. "해 그림자를 십 도 더 나아가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림자가 십 도 뒤로 물러나게 해주십시오." 이사야 예언자가 주님께 기도를 드린 뒤에, 아하스의 해시계 위로 드리운 그 그림자를 뒤로 십 도 물러나게 하였다.)
이사야38:4~8(그 때에 주님께서 이사야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되돌아가서, 히스기야에게 일러라. '너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이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기도하는 소리를 내가 들었고, 네가 흘리는 눈물도 내가 보았다. 내가 너의 목숨을 열다섯 해 더 연장시키고, 너와 이 도성을 앗시리아 왕의 손에서 구하고, 이 도성을 보호하겠다. 나 주는 약속한 것을 그대로 이룬다. 그 증거를 나 주가 너에게 보여 주겠다. 아하스의 해시계에 비친 그림자가 십 도 뒤로 물러갈 것이니, 해도 내려갔던 데서 십 도 올라갈 것이다.'")
열왕기하18:9~16(히스기야 왕 제 사년 곧 이스라엘의 엘라의 아들 호세아 왕 제 칠년에, 앗시리아의 살만에셀 왕이 사마리아를 포위하여, 세 해 만에 그 도성을 함락시켰다. 곧 히스기야 제 육년과, 이스라엘의 호세아 왕 제 구년에 그들이 사마리아를 함락시킨 것이다. 앗시리아 왕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앗시리아로 사로잡아 가서, 그들을 할라와 고산 강 가의 하볼과 메대의 여러 성읍에 이주시켰다. 이렇게 된 것은, 그들이 자기들의 하나님이신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그의 언약을 깨뜨렸으며, 주님의 종 모세가 명령한 모든 것을, 순종하지도 않고 실천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히스기야 왕 제 십사년에 앗시리아의 산헤립 왕이 올라와서, 요새화된 유다의 모든 성읍을 공격하여 점령하였다. 그래서 유다의 히스기야 왕은 라기스에 와 있는 앗시리아 왕에게 전령을 보내어 말하였다. "우리가 잘못하였습니다. 철수만 해주시면,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앗시리아 왕은 유다의 히스기야 왕에게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요구하였다. 그리하여 히스기야는 주님의 성전과 왕궁의 보물 창고에 있는 은을 있는 대로 다 내주었다. 그 때에 유다의 히스기야 왕은, 주님의 성전 문과 기둥에 자신이 직접 입힌 금을 모두 벗겨서, 앗시리아 왕에게 주었다.)
그러나 그 기록은 오늘날 과학적 지식을 가진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그 말은 터무니없는 거짓말인 것이다.
해시계의 그림자가 뒤로 물러났다는 말은 지구가 어느 시점에 자전을 멈추고 돌던 방향으로 되돌렸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당연히 없다.
지구가 만약 움직임을 중지하면 그 순간 태양에 붙어버리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예로, 여호수아 10:12~14절의 기록이 그것이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 아모리 족속을 치던 날, 여호수아의 부탁을 받고 여호와가 태양과 달을 기브온과 아얄론 골짜기 위에 거의 종일 동안 머무르게 했다는 것이다.
이것도 한마디로 말하면 지구가 거의 종일 동안 자전을 멈추었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있을 수 없는 거짓된 말인 것이다.
여호수아10:12~14(주님께서 아모리 사람들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넘겨주신 날에, 여호수아가 주님께 아뢰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보는 앞에서 그가 외쳤다. "태양아, 기브온 위에 머물러라! 달아, 아얄론 골짜기에 머물러라!" 백성이 그 원수를 정복할 때까지 태양이 멈추고, 달이 멈추어 섰다. '야살의 책'에 해가 중천에 머물러 종일토록 지지 않았다고 한 말이,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주님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이 날처럼 이렇게 들어주신 일은, 전에도 없었고 뒤에도 없었다. 주님께서는 이처럼 이스라엘을 편들어 싸우셨다.)
그런데 그런 불합리한 기록들이 우리 신앙에 믿음의 이름으로 강요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렇지만 과학은 허위를 드러나게 하고 진실을 밝혀준다.
거짓이 거짓인 것으로 드러나게 하고 진실이 진실로 나타나도록 해 준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모든 미신은 물론이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까지도 과학적인 사고방식에 의거하여 비춰보아야 되는 것이다.
그것은 과학이 허위와 거짓을 밝혀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과학이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받는 까닭은 미신과 거짓이 배제된 오직 사실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과학은 우리의 시야와 인식을 온전케 해준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야 하고, 보아야 하고, 인식해야 하는 존재들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도와주는 것이 과학이다.
즉 우리들의 관찰력, 인식력 이런 것들을 보다 완전케 해주는 것이 과학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우리 인류는 이 과학을 통해 인식력과 사고력이 진보해 왔고 더욱 더 완전함을 추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이 과학은 우리들에게 참된 것과 진리로 향하게 만들어 준다.
과학은 거짓말 혹은 허튼 논리를 허용하지 않는다.
과학은 어디까지나 인간을 참된 진리의 세계로 이끌어 가고, 그 수준을 향상시켜준다.
왜냐하면 과학은 진리와 진실을 규명(糾明)하는 것을 그 사명으로 하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까지 과학은 그 길이와 넓이 그리고 높이가 많이 부족하지만 장차 우리 인류를 진리의 그 탑 위로 끌어 올려줄 것임은 자명하다.
하나님은 진리이시다.
따라서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찾는 데 있어 필수적인 요소는 바로 과학적인 사색인 것이다.
다음에 이 과학은 우리를 통일된 우주관(unified cosmology) 즉, 우주의 기원과 구성 그리고 법칙에 관한 바른 인식을 갖게 해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를 보다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게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다음에 과학은 인간들의 차원(dimension)을 넓혀준다.
오늘날 과학의 세계는 인간을 보다 높은 차원, 즉 이전보다 한 차원 높은 4차원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예수님을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5차원은 넘어서야 한다고 본다.
과학의 세계가 그것을 위한 역할을 해 주리라 기대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찾는 길, 하나님을 아는 길의 전제가 되며 도움을 줄 수 있는 영역이 과학의 세계라는 것을 말해 두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리의 세계가 무한(無限)하듯, 또한 이 과학의 세계 역시 우리를 수학적으로 표현해서 0에서 ∞(무한대)의 세계로 인도해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 과학은 인간을 가장 우아한(elegant) 세계로 인도한다.
신비로운 세계를 맛보게 해 주는 것이다.
우리 눈에 뵈는 저 우주는 심히 우아한 세계이다.
다시 말하면, 이전에는 예수를 믿지 않았던 우주선 승무원들 가운데 우주를 여행하고 돌아온 이후에는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 땅을 떠나 저 우주에서 이 세계를 바라볼 때 이 지구가 말할 수 없는 우아하고 경이로운 세계로 보이더라 그런 이야기다.
즉 이정도로 우아하고 경이로운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것이 과학이라는 것이다.
과학의 세계가 아니었다면 그것은 불가능했다.
우리가 잘 아는 아인슈타인은 유대인이지만 그는 유대인의 신(神)을 부인했다.
그렇지만 그는 이 우주에는 영지(靈智)가 있다 했다.
즉 영적 지혜가 존재한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는 행복한 시대에 살고 있다.
왜냐하면 과학이 우리를 하나님의 세계로 이끌어 주는 그런 단계가 되어 주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도 이 땅에 계실 때 제자들에게 하는 말씀이 들에 있는 백합화를 보라고 하셨다.
그런데 저 백합화는 우리가 보는 것처럼 크고 아름다운 것은 아니었다.
이스라엘에는 두 종류의 백합화가 있었으나 그것이 그렇게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크고 화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솔로몬이 누린 영화의 극치보다 저 들의 백합화 하나가 영광스럽다 하신 것이다.
그것은 무엇을 말씀하신 것인가?
바로 자연의 신비 즉, 하나님의 창조의 영역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며 깨달으라고 하신 것이다.
오랫동안 우리는 이 신비의 세계를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과학을 통해 점차 그 신비의 세계가 밝혀지고 있는 시대가 되었다.
또한 예수가 빌립에게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보았다고 하신 말씀은 무슨 뜻인가?
나와 아버지는 일치한다 그런 말씀이다.
이제 우리들의 하나님을 찾는 유일한 인간적인 방법의 첫 번째 길이 과학이라고 할 수 있고 또한 진실로 하나님의 길을 그대로 우리에게 가르쳐준 분은 예수이시다.
따라서 우리 인간에게 하나님을 찾는 길은 둘이다.
하나는 과학이요 다른 하나는 예수님이다.
예수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했다.
생명이나 진리는 같은 것이다. 물론 길도 같다.
이 예수님의 길이 하나님께 바로 가는 직통 길이다.
수학적으로 볼 때 과학은 하나의 함수이다.
또한 예수님도 함수이다.
예수님도 진리를 추구하게 하는 함수요 과학도 우리 인간에게 진리에 인도하는 하나의 함수이다.
이 둘의 함수는 그 결과에 있어 일치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빌라도에 하는 말도 그런 말이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내 말을 듣는다고 하셨는데 바로 그것이다.
나를 이해할 수 있다는 말씀이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다 나와 일치된다는 말씀인 것이다.
이 세상에서 진리를 규명해준 과학은 장차 예수님과 일치하는 길에 들어선다 그런 뜻이다.
우리 앞에는 대단히 행복한 길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 앞에 과학의 세계가 점점 발전되어 가고 있으며 과학의 세계가 우리를 진리의 세계로 끌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를 허위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있는 것이다.
과학은 우리로 하여금 더욱 완전한 그리스도의 세계로 인도한다.
예수님의 말씀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보면 과학성을 띄지 않은 말이 한마디도 없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는 물론 기적까지도 과학적으로 규명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하나님과 예수님은 과학자이다.
그들은 창조주이다.
그들이 창조한 세상은 모든 것이 신비롭다. 신비롭지 않은 것이 없다.
알면 알수록 더욱 신비로움을 느끼는 것이 바로 과학의 세계요 창조주의 세계인 것이다.
백천(白泉) 김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