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그 나라를 오게 하여 주시며, 그 뜻을 하늘에서 이루심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주십시오.
11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내려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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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기독교인들은 기도를 신앙생활의 중요한 요소로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생활화하고 있지만 문제는 그 내용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 기도가 잘못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예수께서는 당시 유대인들의 기도의 방법이나 내용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고 당신께서 직접 이상적인 기도를 가르쳐 주셨다.
그 기도는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기도문은 비교적 짧다.
그러나 길지 않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전해져 오는 기록이 몇 가지가 심각하게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오늘 본문 구절 중에서 “나라가 임하소서” 하는 말과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하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현재 기독교가 바른길로 가지 못하고 있는 이유중 하나는 바로 이 주기도문을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해 보는 것이다.
먼저 사람들은 우리말 성경에 번역된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라는 말을 흔히 세상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먹을 것을 달라는 말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한때 내일의 양식 혹은 풍성한 양식 등으로 번역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일용할 양식”으로 번역된 이 말의 헬라어 원어의 의미는 아직까지 신학자들도 정확히 그 뜻을 모르고 있다.
“일용할”에 해당하는 단어는 헬라어 원어로 “에피우시오스(ἐπιούσιος)” 인데, 성경 가운데 본문에서와 병행 구절인 누가11:3절에만 사용된 단어이다.
그리고 그 뜻은 우리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영어나 한글성경에서는 일용할 양식으로 번역하고 있는 것이다.
원어 “에피우시오스(ἐπιούσιος)”를 파자(破字)해보면, 에피와 우시아의 합성어에서 유래된 단어로서 에피는 ‘~위에’, ‘앞에’, ‘위한’의 뜻이 있고 “우시아”는 고대철학에서 ‘진수(眞髓,essence)’, ‘실체(substance)’, ‘실제적 존재’(existence), 본질의 의미로 사용되었고 눅15:12절에서는 “재산”,”소유”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이 두 말을 합하면 그 뜻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우리말로 진수(眞隨) 즉, 사물과 현상 등의 본질이라는 의미가 들어있는 말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수의 그 떡’이라는 의미에 가깝고 ’존재하기 위한 진수의 떡‘으로 해석함이 적절하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많은 떡이 있겠지만 존재하기 위한 특별한 진수의 그 떡이라는 뜻이다.
그러면 존재하기 위한 진수의 그 떡은 무슨 떡인가?
사람들이 제각기 먹은 그런 떡이 아니라 오직 하나의 떡인 것이다.
하나의 떡인데 존재하기 위한 진수의 떡이다 그것이다.
그 떡에 해당하는 희랍어 원어는 “호 알토스(ὁ ἄρτος)”이다
그러면 예수께서 우리에게 달라고 기도하라 하신 진수의 그 떡은 무슨 떡인가?
그 떡은 세상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먹는 그런 떡은 아닌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먹어야 하는 진수의 그 떡이라 함은 하나의 떡 덩어리 곧 예수님 자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봐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기를 너희가 내 살과 내 피를 먹지 않으면 생명이 없다고 했고 자신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셨다.
그러므로 진수의 그 떡은 온 우주에 오직 하나뿐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우리의 영적 양식을 말함이 틀림없는 것이다.
이것을 가지고 오늘날 우리에게 세상에 필요한 일용할 양식을 달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분명히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여 구하지 말라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세상에 필요한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6:31(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다음에 살펴볼 것은 ‘그 나라’이다.
본문 10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라고 기도하라 하셨다.
그 말의 뜻은, 10절의 그 나라 즉, 하나님의 나라, 예수께서 만든 아버지의 나라가 이 땅에 내려와 달라고 기도하라는 말로 해석되어 알고 있지만 이런 뜻이 아니다.
여기서 ‘임하옵소서’의 말이 원어로 "엘데토"로 되어 있는데 이 말의 원형은 "엘코마이"이고 이 말의 부정 과거로 표시 되어있다.
‘임하옵소서’ 라는 말은 원어로 “엘데토(Ἐλθέτω)”인데 이 말은 “엘코마이(ἔρχομαι)”의 부정과거 능동 명령형이다.
이 말은 헬라의 서사시인 호머의 시에도 종종 언급되는데 뜻은 ‘오다(come)’와 ‘가다(go)’이다.
희랍 고전시에 나오는 이 말을 조사해보면 대단히 재미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말이다.
'엘코마이'라는 이 말은 ‘여행을 떠난다’. ‘출발한다(start)’ 혹은 ‘된다’ 라는 뜻이 있다.
그 다음에는 ‘발설한다’, ‘발표한다’ 라는 뜻이 있다.
다음에 무슨 운동이 ‘일어난다’는 뜻과 ‘착수하다’,’시작하다(set out)’의 의미도 있다.
그러므로 이 땅 위에 당신의 나라가 내려 와달라는 뜻으로 번역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 땅 위에 당신의 나라 즉 천국이 내려와달라는 것은 말이 안되는 것이다.
올 수가 없다.
천국이 이 땅 위에 내려온다고 하면 그것은 천국이 아니다.
이 세상은 천국을 받을만한 위치도 없고 여건도 아닌 것이다.
이 땅의 피조물도 수명이 있다.
이 지구도 수명이 있어서 시간이 되면 없어지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 무슨 천국이 임한다는 소리인가?
예수께서도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 땅에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고 하셨다.
검을 준다는 말은 어느 시점에 가면 멸망시키다는 뜻인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곳에 천국이 올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10절의 상징적 뜻은 당신의 나라가 생겨나소서 혹은 시작되소서 라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말은 그 나라는 지금까지는 없었다 그런 뜻이다.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은 그전에는 없었다.
그러면 이 나라는 어느 때부터 생기는가?
예수께서 이 땅에 온 이후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가 부활하신 다음부터이다.
이 땅 위에 온다는 말이 아니다.
그 나라는 새로운 창조에 속한다.
전에는 없었다.
예수께서 이 땅 위에 오셔서 자신의 모든 일을 완수한 다음 저 세계로 간 후부터 비로소 그 나라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나라는 우리들이 들어갈 수 있는 나라인 것이다.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이 장차 들어갈 수 있는 나라이다.
그러므로 새 나라이다.
예수께서 당시 제자들에게 이 기도를 가르치실 때에는 그 나라가 아직 시작되지 않은 때였다.
그러므로 너희들이 기도할 때 당신의 나라가 시작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라고 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이 성경에서 하신 말씀은 아주 확고하다.
그리고 모든 말씀은 다른 말씀과 긴밀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천국은 무엇과 같은가?
예수님은 천국을 마치 겨자씨와 같다고 하셨다,
겨자씨가 그때 당시에는 가장 작은 것이다.
당시에는 원자 혹은 전자의 개념이 없었다.
만약 있었다면 천국은 전자와 같다고 하셨을 것이다.
또는 전자보다 더 적은 입자(particle)와 같다고 그렇게 말씀하셨을 것이다.
천국이 마치 겨자씨와 같다는 말은 무엇인가 하면 천국은 아주 작은 데서 즉, 거의 없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서 자란다 라는 말씀인 것이다.
그러니까 천국은 예수님이 오기 전에는 없었는데 예수님이 온 이후로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미미한 존재와 사건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요한복음14:3절에 보면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가서 나희 있을 곳을 준비하면 와서 데려가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만약 천국이 이 땅 위에 임하는 것이라면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를 데려간다는 말이 성립될 수 있는가?
요한복음14:3(내가 가서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나에게로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게 하겠다.)
다시 말하지만 이 땅덩어리는 예수께서 와서 우리를 데려간 다음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이 땅과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 눈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지금 예수님은 세상의 분리작업을 진행 중인 것이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이 세상에 그대로 있다면 그 운명은 어떻게 되겠는가?
결국 강제로 소멸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주기도문의 ‘그 나라가 임하옵소서’ 라고 번역된 말은 ‘당신의 그 나라가 생기소서’ 혹은 ‘시작되소서’ 라는 말인 것이다.
천국이 처음에는 겨자씨 정도로 작다 하신 것도 그 까닭이 있다.
그 나라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면서부터 시작되는데 예수님이 땅에 왔을 때 그의 존재는 어떠했는가?
예수님은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 그 존재감이 작았다.
그는 하늘나라에서는 독생자였지만 이 땅에 왔을 때는 참으로 작은 존재였다.
아무런 존재감이 없는 한 인간으로 태어났다.
하나님의 독생자가 이 세상의 인간으로 태어났다 하는 그 내용 자체로도 이미 그 존재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바리새파나, 레위 지파, 혹은 서기관 그룹과 같이 특별한 집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 기록하고 있지만 그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다.
또 예수님은 이 땅에 왔을 때 부모 형제도 없었다.
그리고 이 세상 사람들에게 배우지도 않았다.
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존경받을만한 어떤 위치에도 있지 않았다.
그러나 천국은 그렇게 작은 존재였던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생겨났던 것이다.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들인가?
자기 스스로 작아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천국에 못 간다. 분명히 알아야 한다.
스스로 작아질 수 없는 존재가 아니라면 커질 수 없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커지기만을 원한다.
그러나 먼저 커지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내 존재를 작게 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예수께서 너희들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라 하셨다. 무슨 말인가?
겸손하란 말이 아니다.
겸손은 잘못하면 위선이 되기 쉽다.
이 말은 작아지라는 말이다.
실질적으로 우리가 천국의 존재가 되려면 내 존재가 작아져야 한다.
작아져야만 커질 수 있다.
작아져야만 진수가 될 수 있다.
내 자아가 작아지기 위해서는 내 의지가 그만큼 강해야 한다.
의지가 약한 사람은 자기 스스로 작아질 수 없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독생자가 이 땅에 내려와 그토록 작아지셨듯이 우리도 예수님의 형제가 되려고 하면 작아지는 경험이 있어야 한다.
작아졌던 경험이 없는 자는 장차 커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너희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하신 말씀 역시 작아지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세상 교회는 이 작아짐의 의미를 깨닫고 각성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세상 교회의 신앙과 기도는 대부분 형식적이다.
내가 보기엔 간절함이 의심스러워 보인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그 많은 기도를 하는 데도 이루어지지 않는 까닭을 생각해 보라.
그것은 잘못 기도하기 때문이다.
오늘 살펴보았듯이 이 기도문 가운데도 두 군데나 심각하게 잘못되어 있다.
그러니까 그 기도가 이루어질 까닭이 있겠는가?
하나님의 법에 부합되지 않는 기도는 우리가 아무리 많이 해도 그것은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의 기도는 반드시 하나님의 진리 그리고 그 진리에서 제정된 법에 부합하는 기도여야 한다.
그래야 그 기도가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을 정리하면, 그 나라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생긴 나라이며 또한 우리가 갈 곳이다.
따라서 우리의 본향은 이 땅이 아닌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가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분명한 소명(召命)은 예수님을 철저히 인식하고 그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가운데 그 분리의 때를 준비하는 것이라 하겠다.
백천(白泉) 김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