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9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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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날에 한 말씀이다.
유월절 명절에 식사를 같이 하면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 주시면서 이것은 내 살이다 하며 주셨고 또 포도주를 술잔에 부어 주시면서 이것은 내 피라고 말씀하시면서 마시라고 한 것이다.
오늘날 교회는 예수님의 이 말씀에 근거를 해서 성찬식을 하고 있는데 초대 교회에서는 떡과 술을 많이 갖다 놓고 먹는 버릇이 있어서 어떤 사람들은 단순히 먹기 위해서 교회에 올 정도였다 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것을 경계해서 집에서 먹고 교회에 와서는 음식을 탐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오늘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예수께서 친히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이것은 내 살이므로 받아먹으라고 하셨고 또 포도주를 주시면서 이것은 내피라 하면서 받아 마시라 한 것은 이 떡과 포도주가 내 살과 피의 대신이라는 그런 의미이다.
마틴 루터는 이 말씀을 그대로 절실히 믿어서 성찬식때 마시는 포도주는 피로 되고 떡은 살이 되어서 우리 몸에 들어와 변화되어 예수님의 피와 살이 된다고 주장해왔다.
오늘날도 루터 교회는 이 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다.
여기서 예수께서 왜 떡과 포도주를 주면서 이것이 내 몸이고 내 피이므로 받아먹고 마시라 했는가 하신 말씀의 핵심의 그 뜻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요한복음 6:52~57절에 보면 내 살과 내 피를 먹지 않으면 생명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다시 말하면 자기가 하늘로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기 때문에 자기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생명이 없다는 말씀을 했다.
대단히 힘든 말씀이라 해서 이 말씀을 들은 후로 예수를 따르던 많은 자들이 예수 곁을 떠났다.
또 예수께서 내가 너희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있다 그리고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양식이니 이것을 먹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씀하신 것을 종합해 보면 우리는 예수의 살과 예수님의 피를 먹고 살아야 한다 그런 의미이다.
여기서 살과 피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이 세상의 육신을 말한다.
즉 살과 피는 생명체를 말하는데 이 생명은 무슨 생명인가?
세상에 있는 동안의 생명을 말한다.
천국에는 살과 피가 필요 없다.
다만 우리의 생명이 이 세상에 있는 동안 살과 피로 살게 된다.
그런고로 예수께서 내 살과 내 피를 먹어야 한다고 하신 그 말씀은 무슨 말씀인가 하면 그대들의 살과 피가 내 살과 피와 같아야 된다 그 말씀이다.
예수님의 살과 피와 같은 살과 피를 가져야 한다 그런 말씀이다.
즉 내가 너희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있다 하는 말씀은 예수님과 내가 동질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 예수의 생명과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의 생명이 같아야 된다. 그것이 원칙이다 그런 뜻이다.
예수께서 왜 이 말씀을 하셨을까?
이제 예수는 몇 시간 후면 이 세상을 떠난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의 살과 피는 없다.
그는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지만 이 세상에는 아직 많은 인간들이 남아있다.
이 세상이 심판되기 전에는 이 땅 위에 육신을 갖고 사람들이 살게 된다.
그러면 그 사람들을 향해서 영적 존재만 가지고는 이야기가 안 된다.
그 사람들은 영의 세계를 모른다.
세상 사람들은 영의 세계를 모른다.
그런데 주께서는 이제 오늘이 지나고 내일 아침에는 십자가 위에 달리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 대신 주변에 앉아있는 제자들에게 내 살과 내 피를 가지고 있으라 그런 말이다.
그것은 그대들의 존재가 내가 이 세상에 없는 동안에 나와 같은 존재로서 세상을 향해 있으라 그런 뜻이다.
그러므로 대단히 중요한 이야기이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이 중대한 이치를 모르고 있다.
차라리 믿지 않는다면 몰라도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 내가 예수님을 대신하여 이 땅에 있다는 생각으로 살아야 한다.
예수께서 이 땅 위에 있는 동안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의 말씀을 전한 것과 꼭 같은 의무와 임무를 우리가 이 땅 위에 있는 동안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내가 가지고 있음으로 내가 예수님을 대신하는 것이다.
오늘날 예수님 믿는 사람들이 이것을 망각하고 있으면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자기 임무의 망각이다.
자기 존재의 위치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요사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교회에 다니는 것을 하나의 종교 의식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기도하면 복받고, 사업하는 자는 사업이 잘 되고, 나쁜 짓을 해도 용서를 받을 것이라는 자기 중심적인 신앙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그것이 아니다.
너희는 내 살과 내 피로 이 세상에 있으라는 그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우리의 피와 살이 이 세상에서 존재하는 다른 동물과 같은 피와 살과 같았는지는 모르지만 이제 내가 예수님을 알았다고 하면 이 세상에서의 내 살과 피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있었던 것과 같이 거룩한 존재라는 뜻이다.
또 거룩한 존재일 뿐만 아니라 대단히 중대한 임무를 갖고 있다.
즉 주님이 이 세상을 떠나 가셨기 때문에 내가 예수님 대신으로 이 세상에 있다는 그런 의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예수님의 살과 피가 내 살과 내피로 될 수 있는가?
오늘 포도주와 떡을 받아먹었던 예수님의 제자들과 그 복음을 깨달은 사람들에게는 성령이 통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예수께서 우리를 떠나시면서 내가 너희를 혼자 두지 않고 보혜사, 즉 성령을 보낸다고 약속하셨다.
그런고로 우리의 영은 매일 같이 하나님께서 보내주는 성령과 상통하는 관계, 연결되는 관계에 있기 때문에 우리의 살과 피는 예수님의 살과 피와 동질의 존재로 된다.
그런고로 우리가 전도할 때 무슨 힘든 말로 전도할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여주며 예수님의 진리를 전도해야 하는 것이다.
바울도 대단히 힘이 있게 세계 각 교회에 대해 나를 본받으라 한 것처럼 오늘날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도 자신을 본받으라고 할 정도로 예수님의 모습을 세상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여기서 예수께서 너희는 내살, 내피 즉 내 몸을 가진 존재라고 했다.
그리고 세상에 이런 존재가 필요하다.
세상 사람은 하늘에서 오는 성령을 받을 수도 없고 또 볼 수도 없다.
그런고로 그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몸을 가진 신자는 역시 육체적인 존재 물리적인 존재로서 그 사람들을 대해 주어야 한다.
말도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세상 말로 해주어야 하고 모든 행동도 그들이 하는 생활을 같이 해주어야 한다.
즉 예수께서 이 땅 위에 계실 때 세상 사람들과 같이 떡을 떼고 물을 마시고 그들과 함께 생활하신 것과 마찬가지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께서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천국의 소식을 전하는데 있어서도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그 깊은 뜻을 알아듣기 힘들었다.
그래서 천국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그 사람들이 깨달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의 말씀으로 해 주셨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보고 들으면서 아는 지식이 넓어졌다.
또한 인식하는 정도도 옛날과 달라졌다.
그런고로 오늘날 우리들이 예수 대신으로 천국의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서도 현대인에 맞도록 전해야 될 것이다.
옛날에 하던 방식으로 전도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독교는 여전히 이 천년 전 바울이 전하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떠들고 있다.
그 당시 바울이 교회에 한 말은 그 당시로서는 듣는 사람들에게는 고결하고 수준 높은 말이었 을지 모르지만 오늘날에는 그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다.
오늘 이 시대에 맞게 주님의 말씀에 대한 인식과 해석, 해명이 달라져야 한다는 뜻이다.
이제 여기서 예수께서 한 말씀가운데 이런 말씀이 있다.
이 피는 죄를 사하는 피다.
이와 같은 말로 번역되어 있는 데 본문에서의 뜻을 보면 "이 피는 죄를 버리기 위해서 주는 피"로 해석된다.
이 피는 죄를 사해주기 위해서 흘려주는 피다 그런 뜻이 아니다.
이 말씀도 왜 이 렇게 번역되었는가?
원어에 “아페시스(ἄφεσις)”란 말이 있다. 이 단어는 “아피에미(ἀφίημι)”라는 동사에서 유래했는데 “보내다”,”탕감하다”,”버리다”,”포기하다”,”용서하다”,”사하다”의 뜻을 지니고 있으며 본문에서 이 “아페시스”란 명사는 갇힌 데서 풀어주거나 책임을 면제 시키는 이미지가 확장되어 “해방”혹은 “버림”(release),”사면 “,”탕감”,”면제”의 의미가 있다.
그런고로 죄의 버림(release ) ,포기를 위해서 우리에게 부어주는 피라는 그런 상징적인 뜻이 있다.
이것을 죄 사함을 위해 주는 피라고 번역되었는데 그것도 까닭이 있다.
옛날 유대인 사상에 백성이 죄를 지으면 양의 피를 대신 제단에 뿌리는 관습이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피를 양의 피로 간주한 것이다.
이것은 처음에 사도 바울이나 초대 교회가 대중에게 전도하기 위해서 한 방편의 말이지만 그렇다고 오늘날도 여전히 이와 같은 말을 적용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다)
이 말씀을 다시 한번 분석해 보자.
내속에 있는 죄악의 뿌리는 뽑아서 내버린다(release)는 상징적인 의미이다.
버리기 위해서는 내 스스로의 힘으로는 할 수 없다는 그런 뜻이다.
다시 말하면 내 살과 피가 옛날 그대로 동물과 같은 살과 피로는 내속에 있는 죄악을 능히 내버릴 힘이 없다는 의미이다.
예수님의 살과 피로 내 몸을 바꿔가지고 있을 때 나는 능히 내 죄를 내버릴 수 가 있다 그런 말이다.
즉 이전 사람의 피와 살을 갖고 있던 나는 음란과 도적질과 강도 짓과 살인하는 죄를 범할 수밖에 없지만 지금은 예수님의 살과 피로 대체한 나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것들을 잘라서 내속에서 뿌리채로 뽑아 내어 던질 수 있다는 그런 뜻이다.
죄를 사한다 거나 용서만 하면 된다는 교리를 관련된 예수님 말씀에 전부 연결지어 아직까지 적용하고 있는 것이 현대 기독교의 큰 결점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하신 말을 왜곡해서 과거에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교리에 맞추려고 한 것 때문에 이렇게 잘못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기독교는 이런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새 출발을 해야 한다.
예수께서 병자 혹은 죄인을 보고 “네 죄가 사함을 받았다 “에서 “아피에미는 “사하다, 면제 받았다의 뜻으로 쓰였다.
그러나 마태복음6:14에 보면 너희들이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이 있다.
죄란 말은 빚이란 말과 같은데 내가 내친구에게 받아야 될 돈이 10만원인데 그것을 내가 포기해 버린다던지 내버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도 내게 대한 빚을 포기하거나 내버리지 않는다는 상징적의 뜻이 포함되어 있다.
마태 6:14(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또 예수께서 이런 말씀을 한적이 있다.
“네 오른눈이 죄를 범하거든 그 눈을 빼 버리라. 오른팔이 범죄하거든 그 손을 찍어내 버리라.”
이 말씀이 오늘 여기의 말씀과 같다.
우리는 범죄한 손을 이세상 칼로는 찍어내 버릴 수 없다.
또한 범죄한 눈을 이세상 기구로 빼 버릴 수 없다.
어떻게 하면 이 눈을 빼 버릴 수 있는 가?
어떻게 하면 이 팔을 찍어낼 수 있는가?
예수님의 눈이 되기 전에는 그 눈이 빠지지 않는다.
예수님의 손 되기 전에는 그 손을 찍어 낼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살과 피로 교체되어야만 이 눈을 뺄 수 있고 이 팔을 찍어낼 수 있다는 그런 의미이다.
과거에 있던 그 살과 피를 가지고는 아무리 가도 우리의 음란과 도적질과, 명예욕과 살인 이 정죄를 척결할 수 없다.
따라서 오늘 예수께서 떡과 포도주를 나누어 주시며 말씀해 주신 것에는 대단히 중요한 내용이 있음을 명심하자.
백천(白泉) 김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