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산교회
 
작성일 : 15-10-15 16:18
설교제목 : 손해 없어야 할 사명
 설교일자 : 1984.06.03
 KEY WORD : @ 달란트 주인 종 충성
 성경구절 : 마25:14~29
 관련구절 : 눅19:11~27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236  


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17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1)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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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의 진리는 최대공약수 라야 한다.
최대공약수가 나오지 않으면 그것은 진리라고 볼 수 없다.
여러 말들이 있는 가운데서도 진리라면 최대공약수가 반드시 발견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있는 한 가지 사실은 바울의 말이나 구약성경이나 예수님의 말씀을 한데 묶어서는 최대 공약수가 안 나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최대공약수적 종교가 아니라 최소공배수적 종교인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기독교는 바울의 말, 구약문서, 예수님 말씀을 한데 묶어 최소공배수를 만들어 보려고 애쓰고 있다.



최소공배수란 무제한으로 많이 있다. 공배수는 한정이 없다.
최대공약수란 하나이지만 최소공배수란 수가 한정이 없다.
그러므로 오늘날 세계 기독교의 교파가 한정 없이 퍼지고 있는 이유 또한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바울의 말과 구약과 예수님의 말씀을 합쳤을 때는 최대공약수가 구해지지를 않는다.
오직 예수께서 하신 말씀만 두고 볼 때 최대공약수가 뚜렷이 드러난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 속에 들어있는 최대공약수를 찾아내어 확실히 파악하고
내 믿음이나 생활에 그것을 적용해야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3가지 종류의 종을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누가복음의 내용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그 정신은 같다.
한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주고 다른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었다.
모두 같은 종인데 왜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주고 다른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었을까?



본문에서 보면 다섯 달란트를 받은 자는 다섯 달란트의 이익을 내었다.
또한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두 달란트의 이익을 가져왔다.
두 배로 키운 것이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한 달란트를 그대로 가져왔다.
여기서 주인이 한사람에게 다섯 달란트 주었는지 그 이유가 드러난다.
금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의 이익을 낼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달란트를 맡긴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여기서 깨달아야 하는 것이 하나 있다.



하나님이 사명 혹은 은혜를 주시는 것은 그냥 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즉 반드시 그 사람의 자격(資格)에 따라 주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조건(條件)이다.
다섯 달란트를 주신 것은 받은 그 사람이 다섯달란트의 이익을 낼 만한 사람이기에 주신 것이다.
두 달란트 혹은 한 달란트 역시 마찬가지이다.



또 한 가지 오늘 본문의 비유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하나님의 종이라 해서 모두 구원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세 사람은 모두 다 같은 주인의 종이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 역시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왔지만, 마지막에 가서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하나님의 최종적 판단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사람도 인간적 관점으로 보면 그렇게 비난받을 사람은 아닌 것이다.
잘 간직하고 있다가 그대로 바친 것이다. 손해를 끼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생명을 얻지 못한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생명을 얻을 수 없는 조건이다. 어떤 사람들인가?
바로 진리에 대해 무지몰각(無知沒覺)한 사람들이다.
다음에는 게으른 사람이다.
일하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은 천국에 필요 없다.
천국은 어떤 나라인가?
그곳은 역사(役事)하는 사회이다.
그 사회는 일하는 사회다.
천국은 하나님이 맡겨주시는 일을 각자가 해나가는 곳이다
그러므로 게으른 사람은 그 사회에 갈 수도 없고 가서도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인을 잘못 알고 게으름을 핀 종에게 하나님께서는 어떤 결정을 하시는지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명이 어떤 사람에게는 크고 어떤 사람에게는 적은 원인이 모두 그 사람의 자격이다 그런 말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독생자가 된 것도 자격이었다.
하나님의 독생자라 해서 하나님이 예수님만 낳았다는 것은 아니다.
독생자란 하나님의 유산을 혼자 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말이다.
하나님이 온 우주를 창조한 다음 그 모든 통치권을 주관하는 자격을 예수님에게 넘긴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그저 내 외아들이라고 해서 특권을 준다가 아니라 그것은 예수님 자신이 획득한 자격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지음 받은 많은 神들이 있었지만
예수님만이 그 모든 유산을 받아 감당할 수 있는 자격을 가졌다 그런 말인 것이다.
이 자격은 예수님 스스로가 마련한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神은 도저히 예수님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여호와가 “나는 질투하는 신이다” 말했던 것이다.
질투는 자기보다 나은 사람한테 느끼는 감정이다.
질투는 게으른 사람에게서 생긴다.
가만히 앉아서 게으름을 피우다 보면 노력해서 앞으로 전진하는 사람에게 질투심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독생자의 자격을 받은 것도 하나님이 그냥 준 것이 아닌 것이다. 예수께서 하신 일 때문에 부여받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수께서 하신 모든 일들 그와 같은 것이, 같은 여건이 오늘 우리에게도 부여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이 내게 온다면 그것을 완수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생명 획득의 여부가 갈리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우리들에게 너희는 나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길은 오늘 우리 앞에 열려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리는 세상이나 사람들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오직 성령께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이미 체험한 바요,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사실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보았듯이, 모두 하나님의 일꾼으로 사명을 받았지만 한 사람은 끝내 탈락되고 말았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로마서9장 19-23절에서 바울이 한 말을 생각해 봐야 한다.
거기에 보면, 여호와가 진흙을 가지고 자기 뜻대로 귀한 그릇도 만들고 천한 그릇도 만들었으니. 누구도 그 일에 대해 항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과는 정반대의 말이다.
즉 예수님의 말씀을 훼방하는 말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원칙 없이 아무에게나 다섯 달란트를 주시거나 두 달란트 혹은 한 달란트를 주지 않으신다.
누가 보아도 이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남길 수 있는 자격이 있기 때문에 주셨고, 두 달란트나 한 달란트 역시 마찬가지 마찬가지이다.
즉 나름대로 자격을 따라 주신 것이고 자기 마음대로 같은 흙으로 귀한 그릇을 만들고 싶으면 그렇게 만들고 천한 그릇을 만들고 싶으면 천한 그릇 만들고 그렇게 한 것이 아닌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은 모든 것을 불문하고 복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하나님이 능력의 소유자이니까 그런 요구는 당연한 것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부터 마련되어 있던 이치 속에서 당연히 이루어진 일을 가지고 무슨 특별한 은혜 가운데 응답 받았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속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다시 말하지만 모든 것이 원칙 가운데서 일하신다.
이 사실을 오늘날 기독교는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때문에 그런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이다.



또한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하나도 손실을 보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여기서 한 달란트 가진 자의 돈을 빼앗아서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었다 그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다.
이것은 진주보다 더 귀한 진리이다.
이것이 개나 돼지 같은 부류 다시 말하면 예수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없거나 혹은 알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전달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명, 하나님의 진리는 대단히 귀중해서 하나도 손실이 없어야 한다.
특별한, 부득이한 경우 외에는 조금도 손실이 있어서는 안 된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 하면 나는 그 은혜를 조금도 손실시켜서는 안 된다 그 은혜가 자라야 한다.
자라서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리고 맺은 그 열매를 하나님께 다시 내어 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특정인은 없다.
오늘날 기독교는 바울의 종교이다.
그 안에서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고백만 하면 그들은 모두 기독교인이며 구원받을 특정인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닌 것이다.
한 달란트 받은 자처럼 무지하고 게으르다면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의 말씀처럼 그는 자격을 잃게 되는 것이다.
복음서에는 여호와를 따르는 사람은 멸망 받는다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 소경과 귀머거리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소경으로는 천국에 못 간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내 눈이 밝아지고 귀가 열려야 한다.
그렇지 않고 그대로라면 천국의 자녀가 될 자격이 없는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게 해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귀머거리와 소경의 눈을 뜨게 해 주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복음서에서 아주 특별한 경우 예수께서는 자신의 작은 손실을 감수하신 경우를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세 번 올라갔는데 세 번 모두 다 올라간 길이 다르다.
한 번은 요단강 동쪽을 택했고, 다른 한 번은 사마리아를, 또 한 번은 해안 쪽을 통해 올라갔던 것이다.
그런데 다 그 목적이 다르다.
예수께서 사마리아를 택한 것은 오직 사마리아 여인 한 사람 때문이었다.
다른 볼 일이 거기에 없었다.
그 여자는 남편을 다섯이나 바꾼 세상적으로 보면 형편없는 여자였지만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는 존재였기에 그 여자 때문에 의도적으로 그 사마리아를 향한 길을 택하신 것이다.
또 한 번은 두로 시돈 지방으로 간 일이 있다.
그것은 그 사람들에게 전도를 하려고 간 것이 아니다.
그곳에 살던 헬라인 여자에게 복음을 전해주기 위해 갔다.
다시 말하면 오직 그 두 여인을 위해서 제자들을 데리고 그 먼 길, 괴로운 길을 택했다 그것이다.
즉 하나를 살리기 위해서 간혹 손실을 감수 할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처럼 내가 하나님의 은총을 혹은 사명을 받을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만일 없다면, 오늘 예수님의 말씀처럼 나는 내가 가졌던 것조차 빼앗겨 그것을 받을 만한 사람에게 다시 주어져 버리고 만다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명심해야 하는 것이다.



백천(白泉) 김준식
(P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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