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산교회
 
작성일 : 15-10-30 13:53
설교제목 : 아브라함이 예수님의 날을 보았다는 사실
 설교일자 : 1986.02.02
 KEY WORD : @ 진리 아브라함 영광
 성경구절 : 요08:48~59
 관련구절 :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755  


48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
4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는 귀신 들린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를 공경함이거늘 너희가 나를 무시하는도다
50 나는 내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나 구하고 판단하시는 이가 계시니라
51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52 유대인들이 이르되 지금 네가 귀신 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
53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또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
5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 것도 아니거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
55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 같이 거짓말쟁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57 유대인들이 이르되 네가 아직 오십 세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59 그들이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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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을 때 어떤 때는 점 하나라도 아주 중요할 때가 있다.
긴 문장을 보면 별로 틀림이 없지만 가끔 가다가 이상한 구절이 나오면 그것이 우리들의 신앙을 좌우하는 그런 문제가 된다.
오늘 여기 54절에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것도 아니려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의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 이시다 했다.
이와 같은 구절을 이대로 보면 무슨 말인가?
내 아버지는 너희들이 너희 神이라고 하는 그 분이다.
여기서 유대인들의 神이라 하면 여호와를 가리킨다.
그런고로 여호와가 내 아버지다 그런 말이 된다.



오늘날 교회가 예수님을 여호와의 아들로 보는 것이 바로 이런 구절들 때문이다.
이 말이 무슨 뜻이고 어떻게 된 것인가?
바로 다음 구절을 보면 예수께서 계속해서 하신 말씀이 나는 그이를 알고 너희는 그이를 모른다 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神이란 하나 밖에 없다.
다른 神은 모른다. 즉 여호와神 밖에 모른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부르고 있는 神이나 저들이 神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나 다같이 神(하나님)이다.
그때 유대인들은 신의 개념이 하나 밖에 모르기 때문에 예수님이 부르는 神이나 우리가 부르고 있는 神이나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부르고 있는 아버지를 너희들도 너희 神이라 부르고 있지 않은가? 그렇지만 ‘너희는 내 아버지를 모른다’ 란 말이다



다음에  요한 8장 56절에  보면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리라” 구절이 있다.  그러나 원문에는 “나의 그것 그 날을 보기 위하여 기뻐하셨고 그리고 보았고 그리고 기뻐하였다” 라고 기록 되어 있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예수님과 직접 관계가 있는 것처럼 즉 예수님의 영광을 본 것처럼 된다.
여기서 예수께서 내 날을 보기 위해서 아브라함이 기뻐했다 하는 것을 쉽게 말하면 내 빛을 보기 위해서 기뻐했고 또 보고 기뻐했다.
다시 말하면 아브라함이 내 은덕을 입기 위해서 기뻐했고 내 은덕을 입고 기뻐했다 그런 말이다.



이것이 무슨 까닭인가?
두 가지 의미로 알아야 한다.
첫째는 광범위한 (廣義)로 보면 다음과 같다.
요한복음 1장 1-3절에 보면 태초에 말씀이 있었으니 이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리고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리라”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말씀은 이 자연계의 모든 창조가 예수님 없이 이루어진 것이 하나도 없다 란 뜻이다.
그런데 이 세상에 사람을 낼 적에 이 땅위에서 하나의 생명체로서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
그 길을 따라가면 사람이 평안히 살 수 있게 되어있다 그런 소리다.



또한 마태 6장 28절-30절에 예수께서 무엇이라고 말했는가?
뜰에 있는 백합화를 보라 잠시 꽃이 피고 말라질 야생화이지만 너희 아버지가 그렇게 자라도록 마련해주었고 공중의 나는 새도 다 제각각 자연적으로 먹고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하물며 너희는 그보다 더 크지 않은가?
이 말은 창조할 때 아무리 적은 생물이라도 다 살 길이 마련되어 있다 그 말이다.
그것이 따지고 보면 내 은덕이다. 예수께서 그렇게 마련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그렇게 악한 사람이 아니고 보통사람이며 더군다나 옛 사람인 까닭에 이 세상에서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길을 따라가면 그는 평안히 이 땅위에서 잘 살아갈 수 있다.
그것이 누구의 덕인가? 내 은덕이다 란 뜻이다.



그런고로 아브라함 뿐 아니라 누구든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예수님의 혜택을 받지 않고 인간으로서는 살아갈 수가 없다 그런 이야기이다.
그 이치를 모르는 것이 문제이지 그 이치를 알고보면 누구든지 예수님의 덕이 없이, 예수님의 빛이 없이는 인간이 이 땅위에서도 하루도 살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단지 인간들이 죄를 범하고 그 길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사람은 다 이 땅위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이것이 누구의 덕인가? 내 은덕이다 그런 말이다.
아브라함에게 말해주는 광범위한 의미이다.



그러나 좁은 의미 (狹義)의 뜻은 더 주요하며 잘 알아야 한다.
아브라함이 내 날을 보고 기뻐했다. 내 은덕을 입고 기뻐했다 하는 말이 무엇인가?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올 것이 주전 2천년경에 발표된 일이다.
그러나 인간들은 아무도 그것을 몰랐다.
예수님이 장차 이 땅 위에 오는 것은 인간에게는 비밀이다.
그러나 神가운데는 이 사실을 눈치챈 神이 있었다.
다시 말하면 여호와가 장차 2천년 후에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사람으로 온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보통의 神들은 그것을 몰랐지만 여호와는 그 사실을 알았다. 어떻게 알았는가?
그것은 다른 문제로 심각하며 또한 오늘 이 시간 이야기할 수 없다.



지금부터 4천년 전 여호와는 장차 2천년 후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올 것을 알았다.
그리고 다른 神들과는 달리 이 일은 여호와와 직접 관계가 있는 문제였다.
무슨 관계였는가 하는 것을 예수께서 마태복음에서 언급을 한 것처럼 큰 관계가 있었다.
그래서 여호와의 대책이 무엇이었는가?
자기의 충직한 백성을 택하는 일이었다.
따라서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 될 사람을 모색하는 가운데 아브라함이 선택된 것이고 아브라함을 통해서 여호와의 백성을 만들기로 하며 그 백성의 조상으로 삼았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의 백성이 되기는 아브라함 때부터이다.
아브라함 이전의 그 조상에 대한 역사는 만들어 넣은 이야기이고 주요한 것은 아브라함 때부터이다.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너는 내 백성의 조상이 될 것이고 또 너로 말미암아 네 자손들이 축복을 받고 네 자손들을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이 퍼지게 하며 온갖 복을 준다고 아브라함에게 축복했다.
이것이 여호와가 아브라함을 자기 백성의 조상으로 선택하면서 약속이다.
창세기 12장 1절부터 자세히 기록돼 있다.
여호와가 큰 축복을 약속하면서 아브라함에게 그가 살고 있는 곳,우르을 떠나 하란을 거쳐 여호와가 지정해주는 땅으로 이주하도록 했다.
그곳이 어디인가? 바로 지금의 팔레스타인 땅이다. 즉 가나안 땅이다.
그 땅을 네 자손들에게 내가 물려주는 땅이다 하면서 그곳으로 갈 것을 명령했고 따라서 아브라함은 자기의 조카 롯을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왔다.
그 과정에서 아브라함은 큰 거부가 되었다.
재산이 늘고 양떼들도 너무 많아서 조카와 살림을 나눌 정도로 큰 부자가 되었다.
또한 여자로서는 임신이 불가능한 시기에 여호와의 축복으로 아들 이삭도 갖게 되었고 아브라함과 여호와는 같이 친구처럼 돌아도 다녔다.
이것이 무엇인가?
아브라함이 덕을 본 것이다.
이 덕을 왜 보았는가?
예수께서 하신 말씀 가운데 대단히 주요한 의미가 있다.
이 덕은 여호와가 아브라함을 선택한 그 때부터 2천년 후에 내가 이 땅에 온다고 하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런 이야기이다.



그런고로 여호와가 특별히 아브라함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온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조처하는 수단으로 자기의 수하를 필요로 했고 그 수단으로 아브라함을 이용한 것이다.
아브라함은 당장에 거기에서 갖은 축복을 받고 또한 부자가 되고 따라서 대단히 만족하고 기뻐했더라.
그것을 예수께서 오늘 여기서 암시해준다. 아브라함이 내 덕을 보기위해 기뻐했고 내 덕을 보고 기뻐했다.
다시 말하면 아브라함은 대단히 만족스럽게 이 세상의 인간으로 충분한 가장 복을 받았다 하는 생각을 만끽했다.
그것이 무엇 때문인가?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내가 이 땅 위에 온다 하는 그 예고가 여호와께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런 이야기이다.
그런고로 결국은 아브라함이 내 덕을 보고 기뻐했느니라 이 말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저히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서 예수님을 돌을 들어 쳐 죽이려고 했다.



그런데 인간이라고 하면 神이 복을 준다고 하면 누구를 물론하고 다 기뻐할 것이다.
인도의 힌두교는 다신교이며 민족 종교인데 수 없이 많은 신들을 다 섬긴다.
그것은 각 神마다 주는 복이 다르다 그것이다.
복을 준다고 하면 좋은 神이고 나쁜 神이고 가릴 것이 있는가?
그러나 한 神을 섬기거나 두 神을 섬기거나 神을 섬겨 복을 받는다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우상을 섬기는 것이나 아무런 차이가 없다.
오늘날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 가운데 복 받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 그 옛날 아브라함이나 힌두교를 믿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복 받는다는 이유는 없다. 분명히 알아야한다.
예수님의 우리 신자에 대한 조건이 무엇인가?
너희는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했다. 십자가는 복이 아니다.
그것은 고난을 의미한다. 또한 가난한 자나 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자가 천국의 소유자가 된다는 말도 이 세상에서 복받는 길이 예수님의 길은 아니다 란 뜻이다.
천국에 가는 것을 복받는 것으로 보면 모르지만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복받는다 하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자의 그 목적과는 관계가 없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진리를 아는 사람이었다면, 진리에 속한 사람이었다면 이런 복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늘날 온 세계가 아브라함을 부러워하고 아브라함을 훌륭하게 생각하고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생각하는 기독교가 왜 잘못되었는가? 바로 이런데 있다.
만일에 아브라함이 진리에 속한 사람이었다고 하면 오늘 여기서 여호와로부터 받는 복을 기뻐하고, 좋아하고, 만족하고 그렇게 생각했을 리 없다.
그는 진리에 속한 사람이 아닌 까닭에 무슨 복이든 간에 자기에게 복이 돌아오니까, 즉 저 넓은 가나안 땅이 내 땅이 되고 내 자손의 땅이 되고 천하 백성이 나로 말미암아 축복을 받고 여러 가지 모양으로 여호와가 자기를 친구처럼 데리고 돌아다니므로 대단히 기뻐하고 만족했다.
다시 말하면 여호와는 예수님을 잡아 죽이기 위한 수단과 방법으로 아브라함을 택했고 예수님을 죽일 때 그 자손들은 도구로 사용했다 그런 이야기이다.
그런고로 오늘날 아브라함을 우리들이 신앙의 대표적 존재로 생각하는 자체가 미신이요 또한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아브라함이 내 덕에 축복을 받았지만 그것이 그렇게 올바른 길은 아니었다 하는 것을 오늘 여기서 말해주고 있다.



구약 성경에서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두 사람이 있다.
아브라함과 다윗이다. 이 두 사람이 기독교인들의 신앙의 목표요 중심인물들이다.
아브라함은 그렇게 악한 자는 아니었지만 오늘 여기서 본대로 예수님을 잡아 죽이는 수단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용하는데 처음 여호와가 선택한 인물이고 다윗은 누구인가?
거짓말쟁이요 또한 살인자요 간음죄를 범한 대표적 인물이었다. 그렇지만 오늘날 다윗을 그렇게 높이 쳐다보고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이 기독교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음을 알아야한다.



요한복음 8장은 요한복음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장이다.
그런데도 교회가 잘 모르고 있다.
아브라함이 내 덕을 입었고 즉, 내 덕 때문에, 나 때문에 기뻐하고 좋아했느니라 예수께서 말한 것이 무슨 뜻인가? 유대인들은 몰랐다.
그것은 예수가 이 땅에 온다 하는 그것 때문이다.
오늘 여기서 예수님이 와 있는데 내가 이 땅에 온다 하는 그 소식 때문에 아브라함이 이런 복을 받고 저런 복도 받고 또 많은 사람에게 축복을 받는 존재로 부각되었다 그런 이야기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도 아브라함, 아브라함 하니까 오늘날 교회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죽든지 살든지 간에 아브라함 소리만 하니까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그 아브라함이 나 때문에, 나를 죽이기 위한 수단방법의 하나로써 아브라함이 매수된 것이다 그런 이야기이다.
나를 죽이기 위해서, 나를 해하기 위해서, 나를 조처하기 위해 아브라함이 매수되었다 그런 이야기이다. 



백천(白泉) 김준식
(P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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