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산교회
 
작성일 : 15-11-02 12:41
설교제목 : 신자의 눈
 설교일자 : 1988.11.20
 KEY WORD : 눈 등불 빛
 성경구절 : 마6:22~23
 관련구절 : 눅11:34~35,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031  


22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네 온 몸이 밝을 것이요,

23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네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다.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심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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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눈이 온전해야 온 몸이 밝아진다. 그런 말씀을 하셨다.
언듯 듣기에는 앞뒤가 안맞는 소리같다.
눈이 무슨 등불이 되는가?
눈은 빛을 받아들이는 기관이지 눈이 무슨 등불이 된다는 이야기인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눈은 빛을 받아들여서 그대로 그 빛은 뇌에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수정체가 빛을 받아들인 다음 수정체 뒤에 있는 초자체를 지나면서 그 빛이 각도나 강도가 조정되어 눈 뒤에 있는 황반에 그 빛을 보내준다.
다음에 거기에 있는 신경이 빛에 의해 조정된 것을 받아 뇌신경에 전달되어 인식을 준다.
바깥쪽에서 비추는 빛을 그대로 받아서 뇌가 인식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고로 우리의 눈은 바깥의 빛을 받아서 그 빛을 조정해서 제2의 빛을 형성하고 또 적절한 자리에 즉 눈 뒤에 있는 망막에 상이 맺힐 때 특히 황반에서의 상이 가장 뚜렷하게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눈이 병이 나면 그런 작용이 나올 수 없다.
이와같이 눈은 바깥의 빛을 받아들이는 기관도 되지만 또 하나는 제2의 빛의 발생원이라 볼 수 있다.



그런고로 예수께서 여기서 하신 말씀은 눈은 빛의 목적, 빛의 역할을 해줌과 동시에 제2의 빛을 조성하는 기관이다 한 것이다.
그런고로 눈은 자기의 몸을 밝혀준다 볼 수 있다.
저는 늘 생각한다.
예수께서 2천년 전에 의학공부를 하지도 않은 사람인데 어떻게 이런 말씀을 할 수 있었을까?
다시 말하면 오늘 이 말씀을 보더라도 예수님은 누구인가? 인식하는데 주요한 요소가 된다.



사람의 눈은 그 빛을 받아들이는 면적은 빛이 강할 때는 4제곱밀리미터정도 밖에 안된다.
이런 조그만 곳을 통과하는 빛을 통해서 모든 것을 인식한다.
따라서 모든 인식의 근원이 눈이다.
그런고로 눈이 온전해야 올바로 인식된다.
저는 옛날에는 눈이 아주 좋은 편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눈이 나빠져 종종 사고를 일으킨다.
그것은 글자를 잘못보아 생긴 문제다.
글자 한 자 잘못 본것 때문에 하루 종일 고생을 한 적도 있다.
이렇게 눈이 온전치 않으면 인식을 잘못하게 된다.



이 빛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이 세상의 물리적인 빛과 다른 하나는 영적 빛이다.
우리는 이 두가지 빛을 다 완벽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눈이 온전치 못하다면 우리들의 인식이 잘못될 수가 있다.
올바른 눈을 가져야 바른 인식을 할 수 있다.
개인도 그렇거니와 민족의 눈도 잘못되면 그 민족의 모든 사상이나 생각이나 방법이 잘못되게 마련이다.



이제 문제는 무엇인가?
눈이 나쁘면 빛을 못본다.
또 온전한 빛을 받을 수 없거니와 그 빛을 받아서 내 머릿속에 온전히 전달할 수가 없다.
빛은 무슨 빛인가?
저 먼 곳에서 발산하는 태양빛도 잘 분간을 해야 되겠지만 참빛은 예수님이시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빛이다 했다.
그런고로 이 예수님이라 하는 빛을 받아들일 수가 없으면 그 사람은 영원히 희망이 없는 사람이다.
예수님을 인식하는데 있어서는 내눈이 온전해야 한다.
예수님이라 하는 이 빛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눈, 병든 눈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 예수님이 예수님으로 보이지 않고 거꾸로 보이거나 다르게 보일 것이다.
눈이 온전해야 예수님을 바로 볼 수 있고 예수님을 추측할 수 있다.



예수님은 무슨 빛인가?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간단히 영적 빛으로만 생각하지만 그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영적 빛인 동시에 이 세상의 모든 빛도 예수님 안에 있다.
이 세상의 사물을 인식하는 방법이나 생각도 예수님의 빛을 올바로 받기 전에는 불완전하다.
이 세상의 사물이나 또 저 영생의 세계를 바로 인식할 수 없다.
저 보기에는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못보고 있다.
눈병이 들어도 크게 들었다 보여진다.
예수님을 인간으로만 판단하고 있다.
예수님을 인간이요, 신격을 가졌다고 보는 사람들도 제멋대로 판단하고 있다.
그것이 예수님을 바로 보지 못한 소치이다.



하나 간단한 예를 들어보겠다.
마태복음 27장에 보면 예수께서 십자가 상에서 돌아가시기 전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즉 내 신이여 내 신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말했다고 전해진다.
독일의 의사이고 신학자인 슈바이쳐는 이것이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마지막으로神 을 원망하는 소리로 보고 있다.
여러분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내 신이여 내 신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려둡니까 했다고 하면 그런 예수님을 믿어서 무엇하겠는가?
그와같은 생각이 들지 않은가?
예수께서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을 보고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말한 사람이 자기는 십자가에 달려서 내 신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려둡니까 했다고 하면 神이 도와주지 않아 그냥 죽어갔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렇다면 어떻게 그를 따를 수 있는가? 이렇게 해석하는 학자들 모두가 소경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한 원형을 보면 "내 신이여, 내 신이여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영광스럽게 하십니까?" 라는 소리다.
그런고로 성경에서는 전혀 반대되는 딴 소리를 예수께서 말했다고 번역해 놓았다.
그것은 예수님이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예수님도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의 입장에서 약한 소리를 했다고 지레 생각한 것이다.
여러분 예수님이 하신 말씀 중에 라마 사막다니라는 말에 중대한 의미가 들어있다.
그것은 어찌하여 나를 무엇 때문에 이런 위치에 두십니까?라는 뜻이 있다.
아마 예수님은 십자가에 운명하기 전에 장차 자기의 위치(position)를, 자리를 내다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히브리말로 ‘라마 사박다니’하면 나를 버려둡니까? 그렇게 해석된다.
그러나 사팍다니하면 나를 어찌하여 이렇게 영광스럽게 합니까? 이런 자리에 올립니까? 그렇게 해석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어찌 나를 영광스럽게 하십니까? 올바로 이야기했는데도 불구하고 나를 이렇게 버려둡니까 하는 식으로 번역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어찌하여 나를 버려둡니까 이렇게 알고 있는 지금까지의 종교인들의 눈이 소경이나 다름없다.



그 뿐인가?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며 기도했다.
그래서 하신 말씀이 내 아버지여 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물리쳐 주옵소서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말대로 예수께서 말했다고 하면 예수님은 그야말로 겁쟁이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처음부터 그 자리에 오지 말았어야 한다.
그 자리에 와서 이 잔을 내게서 물리쳐 주옵소서 한 것은 예수님이 비겁한 인간으로 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런 예수님을 믿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허약하고 나약한 그런 예수님을 따라서 무엇하겠는가?
그런데 그것의 원 의미는 "이 잔을 내 옆에 두옵소서"  라고하신 말이다.
"이 잔을 내 옆에 가까이 가져옵소서." 라고하신 말이다.
이 잔을 내리는 神이 있었고 멀리 있었던 모양이다.
이 잔을 가까이 데려다주옵소서 한 이 말은 무슨 뜻인가 하면 나로 하여금 빨리 이 세상을 떠나게 해 주옵소서 한 말이다.
따라서 예수님이 원하는 대로 되었다.
기도한 다음 하루 반 정도 되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갔다.
시간적으로 보면 예수님의 기도대로 된 것이다.
여러분 이렇게 잘못된 곳이 이 성경 가운데 얼마든지 들어있다.
그런고로 그렇게 잘못 기록한 그런 눈은 올바른 눈이 아니고 썩은 눈을 가진 것이다.



예수께서 오늘 아침 우리들에게 간곡히 부탁한 것은 너희 눈이 온전하라, 그렇게 되어야 빛을 볼 수 있다. 그것이다.
눈이 온전치 못하면 태양빛을 못 보는 것보다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런 이야기이다.
예수님은 떡 다섯덩이로 오천 명을 먹여주고 병자들을 고쳐준 그런 예수님만은 아니다.
예수께서 나는 빛이다.
그러므로 나를 받아들이라. 그것은 그 빛을 볼 수 있어야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은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겁쟁이 같은 소리를 한 것을 예사로 믿는 그런 눈을 가진 우리가 되어서는 안된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있으면 곧 神이 와서 내려줄 줄 알았는데 안내려주니까 내 神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려둡니까? 이런 나약한 예수님을 믿을 필요가 있는가?



이제 내 신이여, 내 신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한 말은 시편 22편 1절에 있는 말이다.
예수님이 한 말을 빼버리고 옛날 구약성서에 있는 말을 거기에다 집어넣고 온 세계 기독교가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런고로 지금 기독교인들은 눈이 잘못되었다 썩은 눈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눈이 병들어 있으면 예수님을 모른다.
빛이신 예수님을 볼 수가 없다.
오늘날 교회는 참 빛인 예수님을 못보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모른다.
예수님을 모르는데 예수님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알 수 있는가?
그 하나님도 알 수 없다.
예수님이라 하는 빛을 제대로 못받는 까닭에 소경과 같은 사람들에게는 귀신도 하나님이 될 수 있다.
분명히 알아야 한다.



백천(白泉) 김준식

(P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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