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그 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02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03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04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거늘
05 너희는 이르되 누구든지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06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07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0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09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10 무리를 불러 이르시되 듣고 깨달으라
11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12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심은 것마다 내 하늘 아버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14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시니
15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옵소서
1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
17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버려지는 줄 알지 못하느냐
18 입에서 나오는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20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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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유대인들은 식사 전에 손을 씻는 풍습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좋은 풍습이다.
그런데 음식을 먹기 전에 반드시 손을 씻고 먹는다는 전통은 성경에 나온 이야기는 아니다.
이것은 장로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의 조상들로부터 내려온 풍습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일을 잘 지키지 않았던 모양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런 장로들의 유전을 잘 지키지 않아 문제가 되었던 모양인데 그 문제가 단순하지가 않다.
여기서 보면 예루살렘에서 갈릴리까지 대략 하루반에서 이틀정도 걸리는 거리인데, 그 먼 거리를 바리새교인과 서기관들이 내려와서 예수께 따지는 것이다.
왜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가? 왜 장로들의 교훈을 지키지 않는가? 하며 힐난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아마 이때 그들의 의도를 알았던 모양이다.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이 큰일이어서가 아니라 예수께서 하신 일에 대해 사사건건 문제를 삼으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예수께서 하는 일, 언행 모든 것이 그때 이스라엘 정서상으로, 종교상으로 납득할 수 없는 것이었다.
무식한 대중이나 하층계급사람들은 별 문제가 아니었지만 이스라엘 종교의 지도층이 볼 때는 문제가 되었고 그래서 무슨 일이던지 예수가 한일에 대해서는 시비를 걸었다.
예를 들면 예수께서 떡 다섯 덩이로 오천 명을 먹인 사건도 유대인들에게는 대단히 좋지 않은 충격으로 와 닿았다.
그 일도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을 재촉하는 하나의 계기였다.
즉 바리새교인이나 서기관들이 볼 때에 예수님이 하신 일이나 그의 가르침이나 또 그의 행동이 구약성서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그런고로 사사건건 예수님이 하신 일에 대해서 좋지 않게 보았다.
단지 하층계급의 서민이나 그때 떡 다섯 덩이로 많은 사람을 먹인 장소에 있었던 사람들은 놀라긴 했지만 크게 놀란 것은 아니다.
그저 예수님은 여호와神이 보낸 사람인 모양이다 그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왜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님의 기적을 그렇게까지 대단하게 보지 않았는가?
그것은 이스라엘 역사가운데 그보다 더 큰 기적들이 많이 전해져 내려왔기 때문이다.
여호와神의 능력으로 홍해 바다가 기적적으로 갈라져 육지처럼 건넜고 또한 40년 동안이나 광야에서 하늘에서 내려온 떡, 만나를 먹었고 그 모든 일이 여호와가 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예수가 떡 다섯 덩이로 오천 명을 먹인 것을 그렇게 대단하게 여긴 것이 아니다.
대중들은 그래도 훌륭하다. 괜찮다. 이렇게 생각했지만 바리새교인, 서기관 즉 유대교의 원로들은 대단히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한다든지 혹 자기네 단체에 속한 사람으로 그와 같은 능력을 행했다면 대단히 고맙고 대단한 일로 여겨 선전했겠지만 사사건건이 구약성경을 비난하고 반대로 하면서 이런 일을 행함으로 이 사람은 우리민족神에 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은 예수님의 기적이 동기가 되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그저 가만히 계셨더라면 그렇게 십자가에 달리지 않는다.
또 예수님이 해온 일에 대해서도 이스라엘 윤리나 이스라엘 종교에 좋지 않았지만 간단하게 그를 죽이려는 그런 극단적인 계획은 잘 실천에 옮겨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마침내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일이 벌어졌다.
이것이 충격이 되어 결정적으로 예수님을 그대로 둘 수 없다 해서 그를 죽인 것이다.
왜 예수님을 그대로 둘 수 없었는가?
예수님을 그대로 두면 우리가 섬기는 여호와神의 존재가 위협을 받고 그 권위가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해서 그들의 神의 위엄을 위해서 예수님을 죽여야 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잡아 죽일 계획을 꾸몄고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사실을 다 알았다.
그러나 그의 길은, 그의 행동은 십자가의 길이였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지 않았다면 그 누구도 예수님을 이 세상에서 죽일 사람은 없었다.
이제 여기서 오늘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다 하는 것도 손을 씻는 것이 나쁜 관습이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이스라엘 원로들의 이야기를 배척하는 것이다.
또 제일 중요한 안식일을 예수께서 지키지 않았다.
왜 안 지켰는가?
안식일이란 여호와神이 천지창조를 한 神임을 증명하는 날인데 예수님이 지키지 않았다 하는 것은 여호와神이 천지 창조한 神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오늘 여기서도 손을 씻고 먹어라 하는 이스라엘 원로들의 관습을 우정 지키지 않은 것은 그 원로들은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이다.
그래서 그 사람들의 말을 지키지 않았다.
예수님은 그들의 관습이 나빠서가 아니라 그 관습이 그 종교와 관련 지어 내려왔기 때문에 일부러 무시했다.
그러면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너희는 장로들로부터 내려온 관습은 지키면서 왜 성경은 지키지 않는가? 무시하는가? 하면서 그 예를 든 것이다.
너희 神이 귀중하면 그 神의 말은 왜 안 지키는가? 그것이 무엇인가?
그 당시 이스라엘 장로들로부터 내려온 관습에 이런 것이 있었다.
자기의 부모에게 대접 해야 할 물건도, 이것을 성전에다 바쳤습니다.
즉 "고르반" 이라고 하면 부모에게 가져다 주지 않아도 된다.
말하자면 이 물건은 꼭 부모에게 대접 해야 할 귀중한 것인데 그것을 여호와께 바쳤다고 말하면 부모에게 안 바쳐도 된다 하고 있었다.
그것은 왜 그런가? 부모보다 여호와가 더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출애굽기 20장에 보면 여호와의 명령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했다.
그러므로 장로들의 유전은 지키면서 성경에 나온 율법은 왜 안 지키는가? 예수께서 질문한 것이다.
출애굽20: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그러면서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3대원칙을 말했다.
세 가지 원칙을 말했다.
첫째는 무엇인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심지 않는 것은 다 뽑힐 것이다.
쓸모 없는 나무는 다 찍어내 버리느니라.
이것은 씨에 대한 원칙이다.
둘째는 음식에 대한 원칙 즉 먹는 입에 대한 말이다.
셋째는 입에서 나온 말에 대한 원칙이다.
이 내용을 오늘날까지 교회에서 잘 모르고 있다,
예수께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심지 않은 나무는 다 뽑힌다.
그 말은 뽑혀 죽는다는 말이고 죽는다는 말은 없어진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길을 가다가 길가에 열매 맺지 못한 나무를 보고 책망했을 때 그 자리에서 죽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무에 잎은 무성했지만 당연히 있어야 할 열매가 없었기 때문이다.
열매를 맺는 것이 나무의 의무인데 그 나무에 열매가 없다.
그런고로 있어야 할 열매가 없는 것 이 세상에서 필요 없다는 이야기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나무를 심는 것은 열매를 얻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열매가 없다면 그 나무는 당연히 필요 없다. 필요 없는 것은 없애버린다 그런 말이다.
그리고 여기서 열매는 씨를 말한다.
열매 가운데 씨가 있다.
이 세상에서 열매라 하면 무슨 돈을 벌었다는지, 사업에 성공했다든지, 높은 지위를 얻었다든지, 교회사업을 잘 했다든지 그와 같은 소리를 하지만 여기서 열매는 그런 것들이 아니다.
열매는 무엇을 말하는가?
어디까지나 하나님께서 내려주는 열매이다.
하나님께서 내려주는 열매는 거기에 씨가 들어있다.
이 씨가 없는 자들은 저 세계로 옮겨가지 못한다.
그것은 이 씨가 하늘의 자녀(offspring), 하늘의 후손의 자격을 갖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인간을 둘 때는 무슨 까닭이 있다.
즉 이유가 있어서 두었다.
그것은 씨를 기르기 위해서이고 이 씨는 천국의 자손들이기 때문에 필요하다.
그런고로 인간으로서 의미가 있으려면 하늘의 자손으로서 씨를 포용하고 내게서 이것이 성장하게 되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고 일종의 생물에 불과하다.
즉 하나님께서 요구한 열매를 맺지 못하면 이 세상의 자연적, 생물학적 동물에 불과하다.
이런 생물은 시간이 오면, 때가오면 없어진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저 우주 먼 곳은 아직 잘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태양계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이 태양계는 금후로도 12억년 이상 유지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이 태양계가 몇 십 억년 유지된다고 하나 이 지구상의 생물은 어떤가?
특히 인간의 존속은 태양계의 수명과 같을까?
이 질문에 답은 인간의 운명은 그보다 훨씬 짧을 것이다 내다보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이 지구가 없어지기 전에 인간은 멸망한다.
오늘 여기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냥 내버려두면 시간이 다가 올 때 없어진다.
따라서 이 땅의 생물이 없어지기 전에 열매를 맺는, 씨가 있는 인간은 다른 장소, 영원한 세계로 옮겨져야 된다는 말씀이다.
왜 그런가? 이 지구덩이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 한계가 지나면 스스로 없어진다.
오늘 예수님은 그 원리를 우리에게 가르쳤다.
다음에는 먹는 문제이다.
창조주가 생물을 낼 적에는 아무리 미련한 생물도 자기 먹을 것을 찾아 먹을 수 있게 되어있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도 자연스럽게 무엇을 먹고 살아야 되는데
무엇이 양식이 되는가 다 스스로 알게 되어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아라 했는데 걱정하지 말라는 것은 모든 일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이 세상에서 먹고 사는 일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아라
그것은 다 원칙적으로 창조주가 마련해주었느니라 그런 뜻이다.
그러나 내일 일을 걱정해야 되고 생각해야 되는 다른 큰일은 무엇인가?
내속에 씨가 자라는 문제이다.
어떻게 하면 내속의 씨가 30%, 60% 혹 100% 자라게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런고로 만사에 있어서 내일을 걱정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먹고사는 일 이것은 땅속의 지렁이도, 하루밖에 꽃을 피우지 못하는 들풀도 다 창조주가 먹고 살 수 있도록 마련해 주었다.
그것은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이야기이다.
그러면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입으로 들어가는 것, 즉 음식은 사람을 해하지 않느니라 했다.
설혹 불필요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노폐물로 나가게 되어있다 그런 말이다.
이것이 생물학상 중대한 원칙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마련해 준 음식을 먹는 방법을 따르면 그것이 과하면 과한대로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이용되고 나머지는 배설되게 되어있다.
여기서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사람을 해하지 않는다 했는데 이 사람이란 말이 히브리말로 "아사"이다.
그런데 아사는 "남"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음식을 먹으면 자기 자신에게 좀 좋을 수도 또 좀 좋지 않을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다 배설될 것이고 남에게는 해를 주지 않는다.
즉 내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은 다른 사람에게는 해를 주지 않는다.
세상에는 해를 주지 않는다 그런 말이다.
자기가 많이 먹으면 배가 아플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해를 주지 않는다.
내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나를 유익하게 할 뿐 아니라 설혹 조금 나쁘다 하더라도 그것은 자연현상으로 배설되게 되어있다.
그렇지만 남을 해롭게하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세 번째는 내입에서 나온 것은 사람을 해칠 수 있다 했는데 이것은 남을 해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입에서 나온 말, 이 입을 통해 떠드는 소리는 잘못하면 남을 죽일 수도 있고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예를 들면 어떤 권력을 가진 한 사람이 말을 잘못했다면 그것으로 그 백성도 망하게 할 수도 있고 나라도 망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런 이야기이다.
따라서 말을 함부로 지껄이면 안된다.
말이 사람을 죽이고 살리고 사람에게 해를 줄 수 있다는 말씀이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남을 해롭게 못하지만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남을 해롭게 한다.
말은 남에게 전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그런고로 말은 남을 위해 써야한다.
사람에게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바른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고 다음에는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인간은 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진리에 합당한 바른 것을 추구하는 사람,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 이것은 지식이나 능력이나 이런 것과는 상관없다.
그런데 이익을 촉구하는 사람은 씨가 자라지 않는다.
바른 것을 추구하는 사람만이 예수께서 뿌려준 씨가 자라게 된다.
다시 말하면 이익을 추구하는 자는 저 세계에는 필요 없다.
오늘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시간이 오면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은 없어진다.
소멸된다.
백천(白泉) 김준식
(P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