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산교회
 
작성일 : 15-11-03 20:54
설교제목 : 떡 먹는 사천명
 설교일자 : 1990.03.25
 KEY WORD : 떡 생선 일곱 광주리 사천명
 성경구절 : 마15:32~38
 관련구절 : 막08:01~10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300  


32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33 제자들이 이르되 광야에 있어 우리가 어디서 이런 무리가 배부를 만큼 떡을 얻으리이까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나이다 하거늘

35 예수께서 무리에게 명하사 땅에 앉게 하시고

36 떡 일곱 개와 그 생선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매

37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으며

38 먹은 자는 여자와 어린이 외에 사천 명이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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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 일곱 개를 가지고 4천명을 먹였다는 기록이나 떡 다섯덩이를 가지고 5천명을 먹였다는 사건은 유명하다.

성경의 기적 가운데 가장 큰 것이 떡 다섯덩이를 가지고 5천명을 먹였다는 기록이다.

그런데 이런 기적을 그냥 믿어서는 안된다.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요즈음 기독교인들이 떡 다섯덩이로 오 천명을 먹였다는 기록을 그대로 사실이라고 심리적으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즉 이와 같은 기적이 사실이라고 확고히 인식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라는 말이다. 

그저 하나님께서는 못 하시는 일이나 불가능이란 것이 없으므로 막연히 이런 일이 있었겠지 하면서 적당히 믿고 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행했다는 일, 사건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된다.

맞는 것은 맞는 것으로 또 틀린 것이 있다고 하면 그 틀린 것도 확고히 알아야 한다.

즉 잘못된것도 알아야 한다.

오늘 여기서는 떡 7개로 4천명을 먹였다는 것보다 떡 5덩이로 5천명을 먹였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고 본다.

그것은 떡 7개로 4천명을 먹였다는 기록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만 있고 떡 다섯덩이로 5천명 먹인 사건은 4복음서에 다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 본문의 떡 7개로 4천명 먹인 사건의 기록은 그때 그 상황이나 배경에 관한 기록이 전혀 없다.

그러므로 하나의 작품인가 그런 느낌을 가질 수도 있다.

떡 다섯덩이로 5천명을 먹인 사건의 기록은 요한복음에 그 환경이 비교적 잘 정리되어 있다.



이상한 것은 예수님이 그의 짧은 공생애를 주로 갈릴리 주변에서 보냈다.

오늘 떡 7덩이로 4천명 먹인 사건도 갈릴리 지방에서 된 일이다.

그런데 이 갈릴리 주변 상황을 예수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 기록한 역사적 가치가 있는 책은 극히 드물다. 안타까운 일이다.

떡 다섯덩이로 5천명을 먹인 사건의 요한복음의 기록을 보면 떡 먹은 사람들이 놀랐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예루살렘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시기를 했지만 갈릴리 사람들은 그렇지 않고 예수님을 붙들고 왕으로 모시려 했을 때 예수님은 피해버렸다.

그래도 그 사람들이 그날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거기에서 밤은 새웠던 모양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돌아오지 않자 제자들은 밤늦게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갈 때 예수님이 가까이 물 위로 걸어 제자들에게 갔다.

그리고 그 이튿날 여기에 있던 사람들이 가지 못하고 있을 때 디베리아에서 배 몇 척이 왔고 떡을 먹은 사람들은 그 배 몇 척을 타고 가버나움에 가서 예수님을 만나 당신이 언제 이곳에 왔습니까 물었다 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이것이 떡 다섯덩이를 가지고 5천명을 먹였을 때 상황이다.



그러면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디베리아에서 조그만 배 몇 척이 왔는데 그 몇 척을 가지고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이 탈 수 있었는가 그런 이야기이다.

여기서 5천명이라 했지만 이 숫자는 남자 장정의 숫자이다.

그러면 여자와 어린아이를 합치면 그 숫자는 두 배 이상 증가한다.

그곳에서 절반의 사람이 갔다고 쳐도 2천명 이상이다.

이 사람들이 배 몇 척으로 어떻게 이 많은 무리들이 가버나움에 갈 수 있었는가?

그런고로 문자적으로 이 사건을 해석해서 이해하려고 하면 사실이 아닌 것으로 결론을 내리게 된다.

영어성경에 보면 배를 보오트(boat)로 썼는데 그러면 거기에 과연 몇 십명 정도 이상이 탈 수 있었겠는가?

또 하나는 여기서 남자만 오 천명이므로 이 인근지역에 적어도 그보다 4-5배 정도의 인구가 있어야 한다.

그러면 이 지역인구가 2만 5천명 정도 되어야 하는데 그 주변에 그만한 동네가 없었다.

그러므로 이 자체도 믿을 수 없게 된다. 

그런고로 이 사건이 사실이었는가 의심이 들 정도이다.

따라서 이 사건을 제대로 인식 못하면 다른 예수님의 기적도 제대로 인식할 수 없고, 인식 안된다는 말이 된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와서 이 세상 삶에 대해 좋은 말씀을 한 것은 아무리 외워보아야 소용없다.

그와 같은 좋은 말씀은 이 세상의 많은 훌륭한 사람들도 이야기했다.

중요한 것은 떡 다섯덩이로 오 천명을 먹였다는 이런 기적 같은 사건들이 참인가? 거짓인가?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가? 이와 같은 사실을 올바로 아는 것이다.

또 죽었던 나사로를 예수께서 부르시니 걸어 나왔다 는 기록이 있다. 

죽은지 사흘이 지나 섞은 냄새가 나는 나사로가 살아 나왔다는데 이것이 사실인가? 거짓인가?

이런 일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면 예수님을 믿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없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무슨 철학을 가르쳤는가?

역사를 가르쳤는가? 과학을 가르쳤는가?

그렇지만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 즉, 하나님이 아니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이 일에 대한 증거와 확신을 우리가 가져야 된다.

이것이 없다면 예수님 믿는 일은 허탄한 일이 될 뿐이다.



떡 다섯덩이로 오 천명을 먹였다는 요한복음의 기록을 보자.

성경에 있는 그대로를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떤 문제점이 있다.

그러면 이 이야기가 전적으로 사실이 아닌가? 

그렇게도 인정할 수 없는 내용이 있다.

기록을 자세히 읽어보면 실제 일어난 사건이 아닌 것으로는 이 사건이 성립 안된다.

그리고 된 내용은 각 복음서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4복음서에 다 나와 있다.

그런고로 예수님이 하신 일 가운데 가장 큰 사건의 하나였던 모양이다.

이 사건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하는 것은 그 자체에서 증명이 나온다.

그 외에 다른 기록들은 필요 없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 가운데서 증명이 된다.



오늘 이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여기에서 문제는 4천이다 5천이다하는 그 말 자체에 있다.

히브리 말로 천이라는 말이 “엘레프” 인데 이 말이 천이라는 뜻도 있지만 둘째로는 집단(company), 무리, 마당 또 씨족(clan)이라는 의미도 있다.

즉 유대족, 가나안족 등 종족을 가리키는 말도 된다.

따라서 이 “엘레프” 를 천이라는 숫자로 볼 것이 아니다.

식사를 할 때 어떤 무리로, 마당으로 한 마당 두 마당 이렇게 무리 지어 앉았다 볼 수 있다.

그러므로 4천은 4마당, 4무리로 볼 수 있고 오천 명은 다섯 무리로 나누어 앉았다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때 한 집단은 이스라엘이나 로마나라 법에서 보면 최고 50명까지 앉힌다. 이것이 군대 조직에서 그렇다.

적은 경우는 2~30명이 될 수 도 있고 50명 단위로 나누다 보면 끝에 3~4명이 남아도 한 엘레프로 보았다. 

마가복음 6:40에 보면 “그들은 백 명씩 또는 쉰 명씩 떼를 지어 앉았다”라고 기록 되어 있다 . 

원어로 “프랐시아이 프랐시아이”는 배열에 맞추어 (arrangement in row)로 그룹 혹은 열로 앉았다이다.

따라서 직역하면 “그들은 약 백 명씩 혹은 쉰 명씩 배열에 맞추어 앉았다”가 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여기에서 사람들을 식사 시 4~5 그룹으로 나누어 앉혔던 것으로 해석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5천이다 4천이다 이렇게 되었는가?

초대 교회에서 성경은 만들 때 엘레프가 천이라는 뜻도 있고 혹은 무리, 집단이란 의미도 있지만 이들이 보기에 천이라는 숫자로 되어야 큰 기적으로 자랑할 수 있을 것 같아 천이라고 번역했다 보여진다.

구약에서의 히브리말로 된 것을 보면 종종 숫자의 표현이 잘못된 것이 있다.

가령 10 미만의 숫자 표시 다음에 ‘엘레프’ 라는 말이 나오고 다음에 백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와 같은 것은 번역하는 사람들이 억지로 조작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왜냐하면 마지막 숫자가 백 단위이면 그 앞에는 십 단위가 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천이라는 숫자가 왔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볼 수 있다.

이렇게 히브리 원어를 읽어보면 이렇게 거꾸로 된 곳이 종종 발견된다.

그런고로 이 구약성경의 숫자가 번역대로 보면 엉터리가 많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예를 들어보자.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장정의 숫자만 해도 60만 명이라고 나온다.

그러면 그때 애굽을 빠져나온 이스라엘의 총 백성의 숫자, 즉 어린이 여자 노인들까지 합치면 60만의 4~5배인 250만에서 300만 명 정도 나왔다 추산된다.

그렇다면 이런 대인구의 이동이 그 당시 가능했겠는가?

따라서 문자적으로 이해하면 그 수치가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령 3줄로 나왔다고 하더라도 60만이라도 족히 100km의 긴 행렬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어린이, 가축들과 함께 나왔는데 어떻게 빠져나왔고 같이 이동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이 숫자의 잘못 계산 때문에 실제가 아닌 것으로 되어버린다.

이 사건에 대하여 고고학자 알브라이트의 책 속에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인은 5천 명 정도로 추산했다.



그런고로 예수께서 본문에서 본대로 4천명을 먹였다면 4집단이 먹었다는 이야기이고 오천 명이면 5집단으로 둘러 앉아 떡을 먹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면 한 집단의 수를 가장 크게 50명으로 보더라도 200명에서 250명 정도가 된다.

그래서 디베리아에서 배 몇 척이 왔다면 이 200여명의 숫자 중 일부가 그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고로 이 사건 자체는 틀림없는 사건이다.

예수께서 떡을 가지고 많은 사람을 먹였다는 그 사실에 ‘엘레프’ 를 천이라고 번역한 잘못 때문에 이 사건 자체가 거짓말로 밖에 인식이 안 되게 되었느니라 그런 이야기이다.

따라서 여기서 떡 7개로 4천명을 먹였다는 것은 그 수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그곳에서 먹기 위해 앉혀 논 사람들이 4무리였다 볼 수 있고 역시 5천명도 5무리, 5마당정도의 사람들이었다고 재해석해야 한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이런 일을 했을까?

예수님이 하신 행적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와서 무엇을 가르치려고 한 것이 아니다.

공생애의 짧은 기간에는 제대로 가르칠 수 없고 또 예수님이 가르친 그 심원한 원리가 간단히 깨달아지지 않는다.

또 이 세상의 훌륭한 사람들이 한 말과 비슷한 말을 하기위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떡 다섯 덩이로 오천 명을 먹였다느니 떡 7덩이로 4천명을 먹였다는 사건을 보여준 것을 보면서) 예수님은이 세상에 속한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할 수밖에 없다. 

사람의 몸으로 이 세상에 왔지만 예수님은 이 세상에 속한사람이 아닌 것이다. 

나는 이런 존재다 자기 자신을 증명 하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세상 미련한 인간들에게 백번 나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로만 했다면 누가 그것을 믿겠는가?

그들에게 자신이 이세상에 속한인간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주기 위해서 그와 같은 기적을 보여준 것이다.



다음에 또 한 가지는 대단히 주요하다.

이 사람들이 적어도 날짜로는 사흘정도 예수를 따라 다녔다.

예수님을 왜 따라 다녔는가? 예수에게 돈이 있었는가? 권세가 있었는가? 무엇 때문일까?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이 세상에서는 보지 못하는 무엇을 찾으려고 따라 다녔다. 

예수님은 이 세상 유명한 서기관이나 바리새인과는 달랐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무엇을 또 알려주었는가?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 즉 예수님을 찾으려고 한 사람한테는 먹을 걱정이 없다는 그것을 보여주었다.

물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으로 호화스런 생활, 멋진 생활은 못할지언정 굶어 죽는 법은 없다 그런 말이다.

따라서 예수께서 너희는 내일 먹을 걱정을 하지 말아라. 뜰에 있는 백합화도 공중에 나는 새도 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먹여 살린다 했다.



오늘 갈릴리지방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닌 것은 먹을 것을 위하여 따라 다니거나, 명예를 얻기 위하여 따른 것이나 듣기 좋은 소리를 쫓아간 것은 아니다.

그 사람들의 심령 속에 무엇인가? 구하는 것이 있었고 바라는 것이 있어서 간 것이 아닌가?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저들이 배고파서 허기진 것을 그대로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조그만 떡 다섯 덩이를 가지고 저들을 편히 나누어 앉게 한 다음에 호사스러운 음식은 아니었지만 가지고 있던 떡을 배불리 먹게 했다.

성경에 보면 남은 부스러기도 12 광주리나 되었다.

그 말은 그들이 배불리 먹었다는 그런 뜻이다.



백천(白泉) 김준식

(P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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