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02 내 아버지의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고 너희에게 말했겠느냐? 나는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
03 내가 가서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나에게로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게 하겠다.
04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05 도마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우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겠습니까?"
06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사람이 없다.
07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 이제 너희는 내 아버지를 알고 있으며, 그분을 이미 보았다."
08 빌립이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좋겠습니다."
09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보았다. 그런데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네가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자기의 일을 하신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12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다.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내가 무엇이든지 다 이루어 주겠다. 이것은 아들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는 것이다.
14 너희가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다. 그리하면 아버지께서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셔서, 영원히 너희와 함께 계시게 하실 것이다.
17 그는 진리의 영이시다. 세상은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므로, 그를 맞아들일 수가 없다.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안다. 그것은, 그가 너희와 함께 계시고, 또 너희 안에 계실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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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에는 보혜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오늘 본문 14:16,26절, 15:26절, 16:8, 13,14절이 그것이다.
요한14:26(그러나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며, 또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
요한15:26(내가 아버지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로부터 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 영이 나를 위하여 증언하실 것이다.)
요한16:8(그가 오시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의 잘못을 깨우치실 것이다.)
요한16:13~14(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는 자기 마음대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듣는 것만 일러주실 것이요,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또 그는 나를 영광되게 하실 것이다. 그가 나의 것을 받아서,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 보혜사는 성령을 말한다.
그의 역할은 예수님을 대신한다.
보혜사는 예수께서 이제 더 이상 육신으로 이 세상 가운데 있지 못하는 자신을 대신해서 이후로도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한다는 약속의 보증으로 아버지가 나의 이름으로 보내시는 성령인 것이다.
그러므로 보혜사는 우리가 볼 수 없는 예수님을 대신을 해주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을 대신해 주는 것이다.
보혜사는 우리에게 진리에 대해 증거하고 깨닫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친히 세상말로 진리를 가르쳐 주었듯이 이 성령이 우리의 심령에 작용해서 우리의 두뇌를 명석하게 하고 진리를 깨닫고 인생으로 걸어갈 길잡이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신자는 이제 혼자가 아니고 보혜사와 함께 있게 됨으로서 세상이 모르는 가운데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희망의 인간이 되게 하는 것이다. 영원한 인생이 되게 하는 것이다.
다음에 보혜사는 예수님에 대해 증거한다.
보통으로 이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모른다.
그러나 보혜사가 우리 가운데 오심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정확하게 깨닫게 하고,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대변자로서 일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 기독교의 지난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볼 때 나는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교회의 모습만 하고 있지 세상 사람들도 하지 않는 일을 예사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은산교회 역시 창립된 동기가 이전 몸담았던 교회에서 벌어진 부당한 일에 대한 항거 때문이었다.
나는 분파 혹은 분리주의자는 아니다.
웬만하면 좀 부족해도 협력해서 받들려는 사람이지 사소한 문제 때문에 분란을 조장하는 그런 성격의 소유자는 아니다.
또 종교를 직업으로 가진 사람도 아니다.
나는 순수 과학인이다.
그런데도 왜 내가 이 은산교회를 시작하게 되었는가?
나는 당시 서울 후암교회의 장로로 시무했다.
그런데 마침 전쟁이 나서 부산으로 피난을 떠가게 되었다.
그 와중에 새 담임목사가 청빙(請聘)되었고 그 목사의 주도로 지금은 고인이 된 김면오 장로님의 재신임을 부결시켰던 것이다.
명분은 김면오 장로님이 신 신학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교회 안에 파벌이 생기고 분란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그 일로 나는 격분했고 김면오 장로님과 몇몇 분들이 모여 이 은산교회를 창립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한국 교회뿐만 아니라 온 세계가 별 다르지 않다.
나는 미국과 유럽을 지난 70년에 이어 이번에 다시 14년 만에 다녀왔다.
그때는 잘못 느꼈지만 이번에 확실히 느낀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비록 사도바울의 13편의 서신이 신약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만 과거 기독교 문화 일색이었던 유럽에서는 정작 사도바울의 존재감은 베드로의 그것에 비해 대단히 미미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기독교에서 예수님의 존재는 바울보다 더 미미하다는 것이다.
그 사실에서 나는 분노하는 것이다.
현대의 교회에는 예수님이 없다.
기독교라는 종교단체는 엄연히 존재하는데 그 속에 예수님은 없다. 분명히 알아야 한다.
기독교가 과거부터 현재까지 존재했고, 심지어 전 세계의 역사를 주도해왔지만 그러나 그 가운데 예수님은 없다는 그런 뜻이다.
과거에도 없었지만 지금도 없고 앞으로 그럴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한국에서도 무수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크고 화려한 교회는 많지만 그 가운데 예수님은 없다.
왜 예수님이 없는가?
오늘날 교회가 보혜사를 받아 본 일이 없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없다. 대단히 중대한 문제이다.
이 보혜사는 예수님을 증거하는 성령이다.
나는 지난 이천 년 동안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이 있었던 사도시대 때를 제외하고는 이 보혜사가 임한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사도 시대에 이 보혜사가 나타난 흔적이 기록되어 있지만 그러나 그 이후로 기독교가 세계 정치와 문화의 핵심에 자리 잡은 이후 보혜사는 강림한 일이 없다. 지금까지 없다.
그것을 지금 교회가 모르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라도 우리에게 오시는 그 보혜사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 세상에 구원 얻을 사람이 한사람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동안 기독교가 엄연히 있었고 역사를 움직였고 모든 문화에 영향을 끼쳤지만 그러나 예수님은 없었다 그런 말이다.
교회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세상의 옳고 그름을 판정해 주는 것이다.
지금 세상 사람들은 모두 자기 나름의 기준을 갖고 이것이 옳다 저것은 그르다 하고 있다.
사람도 나라도 민족도 모두 자신들의 기준이며 바른 기준이 없어 분별을 잃은 것이다.
종교에서도 신앙문제에서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정을 하지 못한다.
왜 교파가 생기는가? 모두 제 나름대로 기준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기준만이 옳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죄와 죄가 아닌 것을 구분해야 하고 또한 죄에는 반드시 그 결과가 있게 마련임을 알아야 한다.
죄는 죄로서 끝나지 않는다. 반드시 그 결과가 있다.
마찬가지로 정의도 정의로 끝나지 않고 결과를 가져온다.
즉 하나는 멸망이 오며 다른 하나는 열매가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옳고 그름이 정확히 판단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 옳고 그름을 정확히 판단해 주는 것이 바로 보혜사인 것이다.
사람은 제한된 존재이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능력이 한계가 있는 것이다.
어느 한도를 넘으면 인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내 속에, 내 심령 가운데 보혜사가 있기 전에는 내 앞에 일어나는 모든 것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가 없다.
그때 이 성령이 진리에 대해 입증하고, 정의와 죄에 대해서 분간을 해주고, 예수 그리스도를 입증해 주는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는데,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 (요16:7절)고 말씀하신 것이다.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은 사람들의 얼굴을 맞대어 진리를 증거하고 교훈 하는데 있어 그 범위가 한정될 수밖에 없었지만, 보혜사가 오시면 그 제한은 없는 것이다. 무한대이다.
그래서 보혜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대신해서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것이다.
요한16:7(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는데,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 내가 떠나가지 않으면, 보혜사가 너희에게 오시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가면,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주겠다.)
이 보혜사는 천지창조 이래로 없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왔다 가신 이후로 비로소 이 보혜사가 올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이전에는 없었다.
따라서 이 보혜사의 강림은 제2의 창조인 것이다.
구약에도 보혜사라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 말로는 모사(謀士)라 번역돼 있다.
그러나 원뜻은 마찬가지이다.
이것이 이사야3:3, 9:6, 40:13절에 그리고 예레미아나 다른 예언서에도 나와 있다.
이사야3:3(오십부장과 귀족과 군 고문관, 능숙한 마술사와 능란한 요술쟁이를 없애실 것이다.)
(개정개역성경에서는 “모사”로 번역했습니다.)
이사야9:6(한 아기가 우리를 위해 태어났다. 우리가 한 아들을 모셨다. 그는 우리의 통치자가 될 것이다. 그의 이름은 '놀라우신 조언자',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화의 왕'이라고 불릴 것이다.)
이사야40:13(누가 주님의 영을 헤아릴 수 있겠으며, 주님의 조언자가 되어 그를 가르칠 수 있겠느냐?)
그런데 이 보혜사란 원어는 “파라클레토스(παράκλητος)”로 원 뜻은 “돕기위해 부름을 받은 자”의 의미로 돕는자, 위로자, 중재자 및 )변호인, 변증, 성령의 뜻을 지닌다.
영어로는 NIV가 카운슬러(counselor) (NASB는 Helper, .KJV는 Comforter)로 번역이 되있다.
그렇지만 구약사상에는 이런 보혜사란 성격이 있을 수 없다.
모든 것을 여호와가 직접 관장하기 때문이다.
대언자를 세우거나 대언자에게 할 말을 주는 것은 여호와 자신인 것이다.
따라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그런 보혜사의 역할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구약에 있는 이 모사(謀士)로 번역된 보혜사는 바로 메시아를 가리켜서 한 이야기이다.
다시 말하면 나 여호와가 장차 너희에게 보낼 메시아는 이스라엘에 대해서 하나의 모사가 될 것이라는 말이다.
이것이 이사야9:6절에는 명확하게 언급돼 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우리에게 보내겠다고 한 보혜사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또 이스라엘 신(神) 여호와가 말한 메시아는 이 세상에 오지 않았다.
따라서 그 예언은 오늘날까지 성취된 적이 없는 것이다.
우리가 착각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예수님은 여호와가 보낸 메시아가 아니라는 것이다. 분명히 알아야 한다.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말은 어불성설인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대망했던 메시아 도래에 관한 여호와의 약속이 성취되지 않은 것은 그 까닭이 분명히 있다.
여호와의 원래 계획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자신이 예언한 메시아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었고, 만약 그것이 여의치 않게 된다면 예수님을 죽이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게 관한 구약성경의 기록은 모두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마태5:18(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은 일점 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오늘날 교회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
보혜사가 우리에게 오지 않았기 때문이며 교회가 보혜사를 받을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지 않게 된 그 까닭은 무엇인가?
첫번째는 사람들이 신에 대한 잘못된 관념에 붙잡혀 있기 때문이고,
다음은 사람들이 세상일에 정신이 팔려 보혜사의 음성을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주방에서 한 주부가 설거지를 하고 있다.
한쪽에는 T.V를 켜 놓았고 다른 쪽으로는 물을 틀어 놓고 밥그릇이나 숟가락을 요란한 소리를 내며 씻고 있다.
그때 안방에 있는 전화벨이 울렸다.
그러나 그 주부는 그 전화벨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것이다.
그 주부가 전화를 받지 못하는 것과 세상일에 정신이 팔린 사람들이 보혜사를 받지 못하는 것은 같은 이치인 것이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종교나 정치, 철학, 예술, 사업 등 온갖 세상일에 정신이 팔려 있는 까닭에 보혜사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이다. 보혜사의 음성을 들을 귀가 없기 때문인 것이다.
보혜사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하는 세상 일에는 이 세상의 정치나 경제, 문학, 철학 심지어 신학까지도 포함된다.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앞으로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
보혜사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그런 심령에만 찾아오신다.
그리고 한가지 알아야 할 것은 보혜사의 음성을 하나님과 예수님의 음성이 아닌 여호와의 음성으로 알고 받아드린다면 보혜사는 그 걸음을 되돌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받았다는 성령 혹은 영감은 하나님의 영감도 예수님의 영감도 아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보혜사가 강력한 영감을 우리에게 불어넣었을 때 그 결과로 예수님과 예수님의 진리를 깨달았다면 보혜사가 작용한 증거가 되지만, 그렇지 못하였다 하면 그것은 이스라엘 신인 여호와의 영이 작용한 결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스라엘 신을 하나님으로, 예수님의 아버지로 알고 있는 한 보혜사는 결코 그 사람들의 심령속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보혜사가 작용하는 원칙을 알게 되었으니 신자는 모두 보혜사를 받기 위해
예수님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데 있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 보혜사가 우리의 모든 나아갈 길과 걸어갈 길을 명시해 주면 우리에게 세상의 힘이 크게 미치건 적게 미치건 그런 것은 문제가 안되는 것이다.
여호와는 그의 수족 역할을 한 종교인들을 동원해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보냈지만 예수님은 죽지 않았다.
그는 분명히 오늘날까지 보혜사를 통해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시는 것이다.
백천(白泉) 김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