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1~2)
0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0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
(창2:3)
03 이렛날에 하나님이 창조하시던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으므로, 하나님은 그 날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다.
(출31:15~17)
15 엿새 동안은 일을 하고, 이렛날은 나 주에게 바친 거룩한 날이므로, 완전히 쉬어야 한다. 안식일에 일하는 사람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
16 이스라엘 자손은 이 안식일을 영원한 언약으로 삼아, 그들 대대로 지켜야 한다.
17 이것은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세워진 영원한 표징이니, 이는, 나 주가 엿새 동안 하늘과 땅을 만들고 이렛날에는 쉬면서 숨을 돌렸기 때문이다."
(민15:32~36)
32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 있을 때였다. 한 사람이 안식일에 나무를 하다 들켰다.
33 나무하는 이를 본 사람들은, 그를 모세와 아론과 온 회중에게로 데리고 갔다.
34 그에게 어떻게 하여야 한다는 명확한 설명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를 그냥 가두어 두었다.
35 그 때에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그 사람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 온 회중은 진 밖에서 그를 돌로 쳐야 한다."
36 그래서 온 회중은,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그를 진 밖으로 끌어내어, 돌로 쳐죽였다.
------------------------------------------------------------------------------------------------------------------------
지금 세계의 성경학자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룰 수 있다.
18세기의 프랑스 출신 의사이자 목사였던 장 아스투뤽(Jean Astruc:1684~1766)이 창세기에 대한 비판적 글을 쓴 이후로 독일의 율리우스 벨하우젠(Julius Wellhausen:1844~1918) 등 여러 성경학자들이 구약을 분해해서 비평해 본 것이다.
그 결과 구약이 복수의 저자들의 저작이며, 여호와의 영감으로 기록된 정확무오(正確無誤)한 문서라는 가르침이 잘못된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한 비교적 소수의 그룹이 하나 있고, 나머지 하나는 성경은 정확무오한 여호와의 영감으로 된 기록이므로 일점일획도 변경할 것이 없다는 비교적 다수를 차지하는 그룹이다.
그래서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성경의 모든 말씀이 정확무오함을 밝히기 위해 여러 궤변을 늘어 놓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성경의 기록들을 모두 거짓된 문서로 알아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해서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고 무조건 믿어서도 안된다.
그런 태도는 대단히 위험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오래전 대단히 심취해서 공부했고 심지어 신학교에서도 가르친 분야가 하나 있는데 바로 성서고고학이었다.
성서고고학(Bible archaeology)은 성서의 시대적 배경과 성서에 등장하는 지리적 배경을 근거로 성경의 기록들을 정확하게 분석하여 확인하는 학문 분야였다.
그 결과 소위 고등비판론자들이 주장하는 것들의 오류에 대해서도 많이 발견하고 알려주었고, 뿐만 아니라 성경의 모든 기록을 비판적 관점 없이 무조건 믿으려 애쓰는 사람들의 어리석음도 깨우쳐 준 적이 있다.
그러나 성서고고학 자체는 비유로 말하자면,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의 문 앞까지는 오게 할 수 있지만 진리의 집 안으로 들어가게 할 수는 없는 학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한 20년 전에 그 방면의 공부를 그만 두었다.
지금은 가끔 새로운 논문이 나오면 읽어 볼 정도이다.
이 성경은, 특별히 구약은 여호와의 명령을 기록한 것이다. 따라서 어떤 것은 대단히 정확히 기록돼 있다.
저자의 마음대로 기록한 책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 그 신(神)을 잘 믿는 사람들 가운데서 어떤 부분은 보충해서 설명한 부분도 있다.
그런데 요즘 소위 정통신학을 한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성경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대단히 위험하다는 인식을 떨칠 수 없다.
나는 한 가지 확실히 말해 둘 것이 있다.
성경을 볼 때 우리는 언제나 냉철한 사고방식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냉철한 사고의 기반 위에서 성경의 기록이 진리로 명확히 입증이 될 때 그때는 안 믿으려고 해도 믿어진다.
진리로 파악되면 자연히 믿어지게 된다는 말이다.
옛날에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1564~1642) 가 지구는 돈다고 말했다.
그래서 종교재판에 회부되었고, 결국 재판관들이 원하는 대로 지구는 돌지 않는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종교재판장을 나오면서 그가 했던 말은 “그래도 지구는 돈다”였다.
비록 종교재판에서 갈릴레오는 자신의 학설을 취소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지구가 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사실은 과학적으로 확실히 증명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마의 교황청 사람들이 갈릴레오가 지구가 돈다 라는 말을 했을 때 그 말을 성경에 대한 모독으로 여겼던 것은 당연했다.
왜냐하면 창세기에서는 지구가 평편하며 궁창(하늘)에는 해와 달을 박아 두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저 하늘의 해와 달이 도는 것이지 지구가 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성경을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었던 그들은 갈릴레오를 죽이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일은 오늘날도 비일비재하다.
지금도 우리가 진리 아닌 것을 진리로 확고히 믿고 있다면 이런 사태가 생기게 마련이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창세기 1장 1절을 살펴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 번역된 이 말의 히브리 원어는 엘로힘이다.
엘은 신이란 뜻이고 엘로힘은 복수명사로서 신들이란 의미이다.
이 엘로힘 즉, "신들"을 하나님(God)이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번역이다.
그렇다면 왜 엘로힘을 하나님으로 번역했을까?
그것은 그 말을 받는 동사가 단수이기 때문이다.
즉 주어는 복수명사인 엘로힘이지만 뒤에 단수동사를 썼음으로 주어 역시 단수로 신 가운데 제일 큰 신(神)을 말할 때 엘로힘이란 복수형을 썼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연구해보니 고대어에서는 히브리어뿐만 아니라 헬라어에서도 복수 명사에 종종 단수 동사를 사용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하면, 복수 명사라 할지라도 그 복수 명사가 뜻과 행동이 서로 일치(一致)적일 때는 단수 동사를 사용한 사례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엘로힘은 신들이란 복수로 번역되어야 한다.
엘로힘이 복수로 번역되어야 함은 창세기1:26, 3:22절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그런데 복수의 신들(엘로힘)이 천지를 창조했다면 그 가운데 주관하는 신이 있게 마련이다.
창세기2장부터,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 말은 여호와 엘로힘을 번역한 말이다.
창세기1:26(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그리고 그가,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 사는 온갖 들짐승과 땅 위를 기어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세기3:22(주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보아라, 이 사람이 우리 가운데 하나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되었다. 이제 그가 손을 내밀어서, 생명나무의 열매까지 따서 먹고, 끝없이 살게 하여서는 안 된다.")
나는 여호와 엘로힘이란 말을 오랫동안 검토해보았는데 결론은 ’신들 중의 여호와‘였다.
다시 말하면, 신(神)들 중의 여호와(Jehovah of Gods) 즉, 여러 신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으뜸가는 신이 여호와이다 그런 의미인 것이다.
이 구절이 갖는 의미를 분명히 밝혀놓고 창세기를 읽어보면 모든 것이 명확해진다.
지금 기독교에서는 창세기 1장의 내용을 여호와의 창조에 관한 기사로 가르치고 있으나 분명히 말하지만 창세기는 창조에 관한 기사가 아니다.
그것은 안식일에 대한 유래를 설명하기 위한 설화(說話)이다.
다시 말하면, 창세기는 여호와가 천지를 창조한 내력을 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왜 생겼는가 하는 것을 말하기 위한 기록인 것이다.
참고로 창세기는 몇 가지 내용을 제외하고는 바빌론이나 앗시리아 지방의 창조설화와 대단히 유사한 면이 있는 것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창세기가 안식일의 내력을 말하기 위한 기록이라 하는 근거는 무엇인가라는 것을 설명하겠다.
창세기 1장에 보면, 첫째 날에 빛을 만들고(3절) 넷째 날에 해와 달을 만들었다(16절)고 기록 되어 있다.
그렇다면 앞뒤가 안 맞는 이 이야기가 왜 1장에 들어 있을까 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더 말하면 1:1절의 창조라 번역된 이 말은 히브리어로 “바라(בָּרָ֥א )”이며 이 말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의미이고, 창세기1:16절에 나오는 “두 큰 광명체(해와 달)를 만드사” 에서 ‘만들다’ 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아사(עָשָׂה )”이다.
이 말은 만들다 라는 의미도 있지만 생산하다, 정리하다, 조정하다, 선택하다의 의미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말은 마치 집을 짓는데 무(無)에서 한 것이 아니고 기존의 나무나 돌 같은 재목을 가져다가 지었다는 의미의 말이다.
따라서 하나님(신들)이 두 광명체를 창조했다는 말은 무에서 천지를 만들었다는 말이 아니라 있던 것들을 정리하고 조정하여 만들었다는 말인 것이다.
여호와가 수고한 가운데 그렇게 정리하는 시간이 엿새가 걸렸고, 그리고 일곱째 날에는 쉬었다는 말인 것이다.
그래서 제7일은 여호와에게 있어 쉬는 거룩한 날이다
그러므로 여호와가 쉬는 이날은 거룩한 날이므로 그가 선택한 백성인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 역시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쉬어야 한다는 의미가 담긴 기록인 것이다.
오늘 본문에는 안식일과 관련된 주요 부분을 따로 발췌해보았다.
우리가 확실히 인식해야 하는 것은 이 구약 전체는 모두 직간접적으로 안식일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다.
여호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죽인다 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오늘 읽은 민수기에 보면, 안식일에 나무하러 간 사람을 성 밖에서 군중 가운데 세워 놓고 돌로 쳐 죽였다.
안식일에 쉬지 않고 필요한 땔감을 하러 갔다는 이유로 해서 그를 죽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을 누가 명령했는가?
바로 여호와 자신이 직접 했다.
그러므로 이 안식일 준수는 율법 중 가장 핵심이 되는 사항이었다.
그리고 십계명에서도 여호와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안식일 준수에 관한 엄격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 엄격성을 제대로 이해해야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수밖에 없었던 까닭을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민15:32~36에서 보았듯이, 여호와가 안식일을 범한 한 사람을 성 밖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돌로 쳐 죽이라고 모세에게 직접 명령을 내려서 라도 안식일을 지킬 것을 요구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여호와가 장차 안식일을 지키지 않을 한 사람이 올 것을 예측했기 때문이다.
안식일을 안 지킨 그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안식일을 안 지켰다.
예수님은 안식일을 의도적으로 안 지켰다.
피치 못할 어떤 사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고의로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다
요한복음5장에 보면, 베데스다 못가에 누워있던 38년 된 병자를 고쳐준 날도 안식일이었다.
그래서 문제가 되었지만, 한편으로 보면 예수께서 굳이 안식일에 찾아가서 그의 병을 고쳐주어야 할 아무런 이유는 없었다.
다른 날에 얼마든지 고쳐줄 수 있었지만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셨다.
그것은 여호와의 치밀한 계획에 대한 예수님의 일종의 도발이었던 것이다.
여호와가 안식일에 관한 법을 만들었을 때 장차 이 법을 고의적으로 훼손시킬 한 사람이 올 것을 예측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때 그 한 사람 곧, 예수님을 죽일 근거를 마련할 속셈이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개 나무꾼을 단지 안식일에 나무를 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온 회중을 모아 그들이 보는 앞에서 돌로 쳐 죽이라고 직접 명령함으로써 그 법의 엄격성을 확보했던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창조설에서 안식일에 관한 기사는 여호와의 치밀한 계획의 실행을 위한 확고한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창조설을 과학적으로나 논리적으로 볼 때 터무니없는 글로 치부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여호와가 안식일에 관한 법을 낼 때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었다 그런 말이다.
마태복음12:8절에 보면, 예수께서는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안식일의 주인이 여호와가 아니고 바로 나라는 말씀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여호와의 안식일을 부정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여호와가 제정한 안식일의 근본을 배척해버린 이면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면 바로 여호와의 창조설을 부인한 것이다.
즉 여호와는 창조주가 아니라는 말씀이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우리는 그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마태복음12:8(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다.")
그리고 또 생각해야 할 중요한 사실 하나는, 예수께서 38년 된 병자를 안식일에 고쳐준 것을 유대인들이 이를 트집 잡아 예수를 박해했을 때, 내 아버지는 지금(안식일)도 일하신다 하신 것이다.
그래서 나도 일하다는 말씀인 것이다.
여호와는 분명히 안식일에 쉬었는데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알하시니 나도 안식일에 일한다 하신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의 아버지와 여호와는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요한복음5:17(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한다.")
기독교 교리는 예수님이 여호와의 아들이라는 것을 전제로 해서 확립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교리와 충돌되어 삽입하거나 고친 구절들을 제거하거나 바로 해서 보면 모두 내 아버지와 너희 신은 다르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을 여호와의 아들로 만들고 기독교의 모든 핵심적 가설을 확립한 장본인을 꼽으라면 그는 사도 바울이다.
기독교의 교리는 그가 세운 잘못된 가설에 기반해서 전개된 것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예수님과 그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모든 존재의 근본이시기 때문에 철학적으로 볼 때도 휴식이란 있을 수 없다.
이 우주나 모든 존재는 살아있다.
살아있다는 것은 보충과 소모가 계속되어야만 살아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살아있는 존재는 소비와 공급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우리 인간도 그렇고 땅 위의 모든 생물도 그렇다.
생명에는 공급과 소모가 끊임없이 일어나야 한다.
이것이 생명이 존재하는 원칙이다.
그런고로 공급과 소모를 항상 유지해주는 창조주에겐 휴식이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은 이 우주의 모든 생체를 주관하기 때문에 그에게는 언제나 공급 소비를 유지해야 할 활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내 아버지는 지금도 일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따라서 당연히 예수님도 안식이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바로 파악하고 믿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언제나 냉철함을 가지고 성경말씀을 정확히 규명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구약성경의 근본목적도 뚜렷이 드러나고 또한 예수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백천(白泉) 김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