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제자가 스승보다 높지 않고, 종이 주인보다 높지 않다.
25 제자가 제 스승만큼 되고, 종이 제 주인만큼 되면, 충분하다. 그들이 집주인을 바알세불이라고 불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에게야 얼마나 더 심하겠느냐!"
26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덮어 둔 것이라고 해도 벗겨지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라 해도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
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지붕 위에서 외쳐라.
28 그리고 몸은 죽일지라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이를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도 몸도 둘 다 지옥에 던져서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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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마태복음10:26~27절까지 보면, 예수께서는 감춰졌던 것들과 숨겨졌던 것들이 드러나고 밝혀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마치 등불을 켜서 등잔 위에 두어 방안을 구석구석 밝히는 것과 같이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세상이 어둡지 않았다면 이 말씀을 새삼스럽게 할 필요가 없는 말인 것이다.
따라서 이 말씀의 이면은 지금까지 이 세상이 어두웠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에는 이 세상은 어두웠고 사람들이 암흑 가운데 살았다 하는 그런 말씀인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온 세계 기독교는 어떠한가?
그때 당시 이스라엘의 모습과 다른 점이 있는가?
다른 점은 없다.
지금 기독교는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믿고 있던 종교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이 세상은 암흑 속에 있게 된 것이다.
예수님이 비추시는 빛을 받아 이 세상이 밝아졌더라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못했기에 오늘날까지도 세상은 여전히 암흑 속에 있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흔히 하는 착각이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종교적인 관점의 말씀이 아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종교는 사람에게 광명을 주는 일이 많지 않다.
그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은 종교조직을 만들거나 그런 종류의 말씀을 하지도 않으셨다.
예수님의 말씀은 오직 진리의 천명이었을 뿐이다.
그 진리의 천명을 통해 모든 우리 인간의 근본 문제에 관한 과학적 사유의 틀을 함께 마련해 주신 것이다.
그러면 지금까지 세상은 암흑 가운데 있다고 하신 말씀은 누구에게 한 말씀인가?
바로 열두제자를 전도 보내면서 하신 말씀인 것이다.
그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대단히 중요한 명령 중 하나는 이스라엘 집 외 다른 곳으로는 가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즉 유대인들에게만 가서 전하라고 하신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신 까닭은 이스라엘 민족 신 여호와를 섬기며 따르던 이스라엘이 가장 어두운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그 신을 떠받드는 바리새인들이 나도 바알세불이라 비난하여 박해하였는데 하물며 너희들이야 오죽 하겠느냐고 하신 것이다.
그러나 너희들의 영혼을 죽이지 못하는 그 자들을 두려워 말라 하신 것이다.
어두움 가운데 있는 사람은 언제나 착각 속에서 살게 마련이다.
또 인간은 스스로 빛을 찾을 자주적인 능력도 없다.
그리고 이 세상의 신들은 그런 인간들을 자신들의 목적에 이용하기 위해 암흑 속에 인도했다.
인간을 빛의 세계에 가까이 두면 인간들을 쉽게 유혹하거나 이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인간들을 창조하실 때 그들 스스로의 노력이 없이는 밝은 빛을 얻지 못하게 하는 원칙을 두셨다.
그런데 인간들은 매사에 쉽고 간단한 것에 이끌리는 속성이 있다.
어떻게 하면 쉽게 돈을 벌까, 지위를 얻을까 하는 종류의 생각들도 그런 속성과 비슷한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우리를 암흑 속으로 인도하는 생각들이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좁은 길을 걸어라 말씀하신 까닭은 걸어가기 쉬운 넓은 길에는 빛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길은 우리를 멸망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이치를 분간하기 쉽지 않다.
또 한가지 우리들을 암흑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바로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기 전 이 땅의 인간들을 주관하던 신들이다.
지금도 중동지방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분쟁과 전쟁의 원인은 무엇인가?
바로 종교와 신들 때문이다.
일차와 이차 세계대전은 종교와 신들이 원인이었다.
그리고 그 근본 원인이 된 것은 모두 기독교였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 우리에게 하신 부탁은 모든 것을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 말하고 있지만, 단언컨대 인간은 불쌍하기 짝이 없는 존재이다.
온 우주 중에 있는 먼지 하나에 불과한 존재인 것이다.
과학자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태양계가 속한 은하의 지름이 약 10만 광년 이라 하고 있다.
1광년이 빛의 속도로 1년간 간 거리이므로 10만 광년이라 하면 상상이 되는가?
은하계 밖에는 또 다른 은하계가 수도 없이 존재하므로 우주는 우리가 상상 할 수조차 없이 크기 때문에 심지어는 무한대라 말해도 과장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주 전체에서 이 지구는 하나의 작은 모래알 정도에 불과하고, 그 속에 사는 우리 인간은 먼지에도 비할 바 못 되는 지극히 작은 존재일 뿐인 것이다.
이 먼지가 바람에 날려 떠다닌다 해도 우리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다.
인생은 이렇게 정처 없이 바람에 이리저리 떠도는 먼지와 같은 것이다.
그러면 이 먼지와 같은 인생이라고 하면 장차 이런 우리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하는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비록 먼지와 같은 존재도 못 되지만, 만약 어떤 큰 것에 붙어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면 우리는 그 큰 것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비록 우리가 먼지도 안 되는 그런 존재라 할지라도 만약 더 큰 것에 붙어 있을 수 있다면 우리의 위치나 나아갈 길이 변경되지 않는가 하는 말이다.
먼지도 안 되는 존재인 우리에게 있어 붙어 있을 만한 더 큰 존재는 누구인가?
바로 예수님인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 하는 것은 우리가 그에게 붙어 있는 것 즉, 연결되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이 우주에 떠도는 먼지와 같은 존재로 계속 있어 보라.
그런 사람은 자기 존재의 종말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께 연결될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예수께서 우리에게 보내준 보혜사에 의해 가능하다.
보혜사는 먼지와 같은 나를 예수님과 연결하는 작용을 하는 것이다.
이 연결의 문제에 대해 예를 들어 설명해보겠다.
‘나’ 라는 존재가 이 지구의 땅 위에서 발을 붙이고 살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이 지구의 중심과 나 라는 질량 사이에 인력(引力)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스스로 평지에 서 있는 것이 아니고 이 땅에 매여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땅 위에 제 발로 스스로 서서 하늘을 본다 그렇게 느끼고 있다.
우리가 둥그런 지구에 매달려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항시 나는 평지에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것이 인간이 근본적으로 착각 속에 사는 증거이다.
착각 속에 산다는 것은 떠돌이 먼지와 같다는 것을 말한다.
이 중력이란 힘을 우리가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다.
그렇지만 지구와 나라고 하는 질량의 소유물 사이에 인력이 작용하는 까닭에 우리는 지구에서 떨어질 수가 없다.
예수께서 보낸 보혜사란 비유컨대 이 인력과 같다.
보혜사가 오면 나와 예수님은 따로 움직일 수 없게 되어 하나로 연결되어 버린다.
더 이상 공중에 떠돌아 다니는 먼지와 같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인력과는 다르게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보내주시는 보혜사는 아무에게나 작용하지 않는다.
‘나’라는 존재가 땅 위에서 인력의 작용을 받기 위해서는 내가 갖고 있는 질량(mass)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예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시는 그 보혜사를 받기 위해서도 나 라는 존재의 영적 질량은 필수적인 것이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생명이 없다 하셨다.
그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는 사람은 영적 질량이 생길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예수께 붙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땅속에서 난 영양분만으로는 내가 예수와 붙어있을 수 있는 영적 질량을 키우지는 못한다.
예수님이 보내주는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비로소 내 영적 질량이 커지고 따라서 예수님과 연결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은 모두 원리이다. 즉, 진리이다.
내 살과 피를 먹고 마셔라 하는 예수님의 말씀은 진리의 표명이지 문학적 표현이 아닌 것이다.
사실 그대로의 표현인 것이다.
예수님의 살을 먹고 예수님의 피를 마셔야 예수께서 보내주는 인력을 받을 수 있는 질량을 갖는 존재가 된다 그런 말씀인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흔히 말하는 그런 류의 믿음은 아무리 가져 보아야 내 속에 영적 질량이 생기질 않는다.
그런 믿음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예수와 연결될 수 있는, 하나님과 연결될 수 있는 질량을 가져야 하겠다.
그리고 보혜사의 도움 없이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 역시 확실히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백천(白泉) 김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