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심판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빛이 세상에 들어왔지만, 사람들이 자기들의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좋아하였다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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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은 우리에게 인식을 주는 하나의 수단이다.
세상에 빛이 없다고 하면 아무것도 인식할 수 없다.
인식의 수단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듣는 것과 보는 것이다.
귀와 눈 이 두 가지가 가장 큰 인식의 바탕이다.
물론 오감이라 해서 시각과 청각 외에 미각 후각 촉각 등이 있지만 이들은 시각과 청각보다 큰 효과를 주지는 못한다.
따라서 보통의 인식은 보고 듣고 하며 형성된다.
청각, 즉 듣는 것은 음파를 통한다.
그리고 그 매개물이 공기이다.
공기가 없으면 귀는 있어도 소용없다.
예를 들면 피아노를 아무리 두드려도 공기가 없는 곳에는 들을 수 없다.
공기가 존재하는 세계에서 음파가 발생하고 그것을 귀가 감지한다.
다음에 눈은 빛을 감지한다.
빛은 무엇인가?
이것은 광파이다.
이것도 하나의 파동이다.
아인슈타인 태어나기 전에는 빛은 에테르(ether)작용이라 했지만 실제로는 에테르 작용은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고 상대성 이론이 만들어지는데 기여를 했다.
또 빛은 하나의 전자파이다.
전기의 전장과 자장이 겹쳐져 일어나는 파동이다.
이것이 ‘빛’이다.
이 두 가지 파동이 우리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것인데 그 중에 음파는 종파(縱波, longitudinal wave) 이다.
종파란 쉽게 예를 들면 돌을 웅덩이에 던졌을 때 물결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빛은 그와는 달리 전파의 일종으로 이 전파는 횡파(橫波, transverse wave)이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 말씀하기를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다.
또 예수께서 우리에게 명하기를 너희도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모름지기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 암흑세계를 밝혀주지 못한다든가 자기 스스로가 빛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암흑세계에서 헤메인다고 하면 이와 같은 부류의 사람은 예수님을 신뢰하는 사람으로 볼 수 없다.
여기서 예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하신 말씀은 그 전에는 빛이 없었다는 말을 암시하기도 한다.
분명히 알아야 한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많은 빛이 이 세상에 있었더라면 구태여 나는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도 안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말씀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기 전에는 빛이 없었고 또한 예수님이 오신 이후에도 오늘날까지 세상은 여전히 암흑 속에 있다.
일부 어떤 분야에서는 즉 과학 분야 같은 데서는 약간의 빛이 비추어지고 있지만 인간사회의 근본문제에 있어서는 여전히 암흑 속에 있다.
예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했지만 그 표현과는 다르게 적당하게 표현할 말이 없어서 빛이란 말씀을 썼다.
이것의 원 뜻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작용해 주는 능력을 말하는 것인데 이 말이 세상 언어로는
적절히 표현할 말이 없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가장 가까운 비유로 말할 때 ‘빛’이라 말씀한 것이다.
‘빛’이라 하는 것을 수학적으로 쓰면 ℎν로 이 둘이 서로 활동할 때 빛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빛은 주파수에 따라 다르다.
빛은 이 전파가 무한정으로 있어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좁은 범위 밖에 안 된다.
이 범위를 넘어서면 보지 못한다.
제일 잘 보이는 것이 푸른색 파장으로 550Å이다.
이것을 주파수로 계산하면 5억 5천 메가 싸이클로서 그런 전자파가 소위 우리 눈에 들어오는 빛이다.
이 주파수를 중심으로 1/10에서 10배 이 범위를 넘어서면 우리의 눈으로 감각을 못한다.
소리도 또한 비슷하다.
600사이클 정도가 전화 같은 것을 받을 때 아주 편하게 들을 수 있어서 좋다.
그러나 천 사이클을 조금 넘어서면 그 소리는 편히 들을 수가 없다.
이와 같이 이 세상은 파동으로 가득 차 있는데 이 파동을 자각해야 한다.
파동은 무엇인가?
운동이다.
여기서 왜 내가 이런 과학적인 수식과 어려운 말로 여러분께 설명하는가 하면 이유가 있어서이다.
예수께서 자신이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했을 때 그냥 그 빛은 어두움을 물리친다는 그런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더 심각한 뜻이 담겨 있다.
수식에서 전기만 있으면 ν(뮤)라고 하는 장(field)이 생긴다.
다시 말하면 존재가 있으면 장(field)가 생긴다.
그리고 그 있는 존재가 움직이면 저 식에서 h와 같은 장이 생긴다.
따라서 두 가지이다.
존재와 움직임, 즉 운동 이것이 있으면 저 빛이 생기게 마련이다.
하나님이 존재하고,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운동이 있으면 거기에서 하나님의 파장이 생긴다 그런 뜻이다.
그래서 요한 복음5:17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란 말은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신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계시고 그러면 ‘ν’라는 장이 생기고 하나님이 운동하시면 ‘h’라는 장이 생긴다 그런 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계시기만하고 운동을 안 하면 일을 하지 않으면 빛은 생기지 않는다.
그런데 예수께서 자신이 세상의 빛이라 하는 것은 “내가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일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이 세상에 왔기 때문에 나는 세상의 빛이라 했다” 그런 의미이다.
요한복음5:17(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한다.")
여러분, 이전에도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6일 동안 일하고 7일째 되는 날 쉬었다고 하는 신(神)은 하나님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쉴 수가 없다.
피조물이라면 몰라도 하나님은 쉴 수도 없고 또 쉬었다 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아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는 지금도 일하신다고 말씀하신 것이고 어느 시간 어느 공간에서도 그가 움직이지 않으면 또 그의 운동이 없으면 빛이 생기지 않는다 그런 의미이다.
이제 우리들도 알아야 될 것은 하나님의 성도인 신자가 빛을 내려면 나란 존재가 있어야 된다.
물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몸은 참된 존재는 못 된다.
왜냐하면 이것은 시간의 제한을 받는 존재로서 육신의 삶을 마치면 육신은 없어지고 땅 속으로 들어가 흙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관건은 "나"라 하는 영원한 존재를 확보하여야 한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영생이라는 것이다.
영생이 보장되지 않으면 내 존재의 의미가 없다.
따라서 내 존재의 중요성을 알아야 된다.
내가 있어야 된다.
그래서 예수께서 온 천지를 얻고도 네가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자기가 없으면 하나님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나"란 존재가 확고히 성립된 다음에는 내 활동이 있어야 된다.
"나"라는 성도로서의 일(work)이 있어야 된다.
일을 하지 않으면서 세상에 빛이 되겠다는 생각은 말아야 된다.
이제 "나"란 존재가 확보되면 나는 죽는 날까지 움직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진리에 입각한 성도로서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로부터 빛의 전파가 발사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오늘 예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요 너희도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라는 말을 올바로 이해해야 된다.
지금까지 세상은 암흑세상인데 이제부터 “너희가 이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예수의 가르침이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나라는 어떤가?
교회는 많고 예수님 믿는 사람은 수백만인데 이 나라와 이 민족에게 빛을 비추고 있는가?
반성을 해야 된다.
이제 우리는 이 빛이 있어야 참된 존재를 인식할 수 있고 진리를 알 수가 있으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할 수가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참 빛을 받기 전에는 옳고 그름도 간단히 판단해서는 안 된다.
빛의 속도는 물리학자들이 말하기를 일초당 3억m로 가고 있다 말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물리학자들이 3억m를 측정한 일은 없다.
측정데이터로도 3억m가 나온 적이 없다.
대개 3억m 미만이다.
그런데 왜 학자들이 빛의 속도를 3억m로 정했는가 하면 정밀하게 측정할수록 3억m가까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옳고 그름을 가르는 것도 시대와 환경이 달라서 변천하는 것처럼 느낀다.
그러나 원래 진리와 원리는 변경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의 인식이 환경에 따라서 늘 달라지듯이 ‘진리’와 ‘정의’의 변동의 차가 점차적으로 감소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이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예수께서 약속해주신 유일한 이 빛을 받기 위하여 결정할 것은 먼저 "나"란 존재를 확보해야 하고 다음에는 활동해야 한다.
에수께서는 지금도 일을 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의 그 길을 걸어가려면 활동하지 않는 상태가 되서는 안 되고 우리도 빛을 비추는 능력을 지니고 예수를 인식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일을 해야 한다.
백천(白泉) 김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