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산교회
 
작성일 : 15-12-27 14:02
설교제목 : 관용과 착각
 설교일자 : 1987.12.20
 KEY WORD : @ 베드로 죄 용서 일곱번 일흔번
 성경구절 : 마18:21~22
 관련구절 :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253  


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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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사람들의 말에 일곱은 매우 중요한 숫자로서 완전하다는 뜻이다.

베드로가 예수께 질문하기를 형제가 내게 죄를 지으면 7번 용서하리이까 하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7번씩 70번씩 용서하라 하신것이다.

일곱 번을 일흔번씩 용서하면 490번이 되는데 이것은 무한히 용서하란 뜻이다.

오늘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제자들과의 대화이다.

말이란 종종 앞뒤가 안 맞는 말이 나오기 쉽다.

또 제자들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기록했는가 하는 것도 사실은 의문이다.

물론 가급적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옮기려고 노력했겠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그 당시 배경과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관념이나 신념에 따라 같은 말이라도 듣기 좋게 쓰이거나 또 교회가 성경을 기록하기 전에 생겼으므로 교회의 가르침에 반하지 않게 기록하려던 노력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형제가 죄를 지으면 7번씩 70번이라도 용서를 하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러면 예수께서 이 전에 하신 말씀 중에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는 말과 연계하면 어떻게 되는가?

너희가 땅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 받아들이면 너희가 원하는 대로 누군가를를 용서하면 하늘에서도 용서를 할 것이고 용서를 안 하면 하늘에서도 용서를 안 한다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너희가 나의 가르침을 받아들여서 진리를 깨닫게 되면 하늘에서도 받아들여 하나님과 동등하게 된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성경 전체를 통해서 그 이치를 깨달아야 되지만 임의대로 해석한 후 첨가해서 자기들의 목적에 맞게 변조를 하면 또 거기에 넘어가면 무지한 백성이 되고 따라서 구원의 희망은 없게 되는 것이다.



오늘 이 말씀은 세상에서 사람들이 죄를 용서할 권리가 있다는 말이 아니다.

세상 사람은 죄를 용서할 권리가 없다.

죄가 있던 없던 그것을 용서할 사항은 그것은 하나님의 소관이다.

사람이 누구의 죄를 용서하느니 안하느니 그것은 불가능 하다.

그런데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한 것은 죄를 용서하란 뜻이 아니다.

형제나 친구가 네게 허물이 있거든, 네게 잘못을 하거든 7번씩 70번이라도 그것을 가지고 벌을 내리거나 좋지 않게 생각한다든가 그렇게 하지 말고 한정 없이, 무한히 관용하라 그런 말이다.

이 말씀은 무슨 말씀과 통하는가 하면 마태복음 5장에서 오른편 뺨을 때리거든 왼편도 돌려 대고 겉옷을 달라거든 속옷까지 주며 오리를 가자거든 십리까지 가라는 그런 말씀과 같은 말이다.



다시 말하면 형제가 내게 좋지 않은 일을 했다면 여기서 죄란 말은 영혼에 대한 근본적인 죄란 말은 아니다.

이것은 내게 대한 허물, 내가 생각하는 잘못인 것이다.

이런 잘못을 행 했을때 너그럽게 크게 관용하라 그런 말이다.

다시 말하면 어떤 자가 나를 억지로 오리를 가자거든 십리까지 가주어라. 또 오른편 뺨을 때리거든 왼편도 돌려대라 그렇게 너그럽게 하라 그런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방이 나에게 뺨을 때린다 해도 내가 무감각하고 무능한 삶이 되란 말은 아니라 관용하란 뜻이다. 커지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천국에 갈 사람은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매사에 작지 말고 커지라는 것이다.

오른편 뺨을 때리면 왼편 까지도 돌려댈 수 있는 너그럽고 형제가 네게 좋지 않은 일을 했더라도 일곱 번씩 일흔번 관용을 베풀라 그런 말이다.

왜냐하면  조금전에 말한대로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그 말과 연계해서는 안된다.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

이 말씀은 너희가 하나님과 일치하라 그런 말이다. 같다는 뜻이다.

그런고로 비록 땅 위에 있는 인간이지만 진리나 모든 정의면에서 주의 말씀을 지킬 때 하나님과 동등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 당연하다는 의미이다.

내가 하나님과 동등하다 (equal) 그러므로 하나님이 하늘에서 풀 수 있는 것이고 따라서 그 밑에 단계인 내가 땅에서도 풀 수가 있는 것이다. 

여러분 이세상에서 신자는 무엇인가 하면 이 땅 위에서는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의 자격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대신해서 이 땅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는 하나님과 본질이 같을 수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외국에 사절을 보낼 때 사절 단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것이다.

그런고로 그 사람의 말은 그 나라를 대표하는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신자란 하나님 대신 이 땅에 있는 것이다.

그런고로 누구든지 신자를 보면 그 배후에는 하나님이 있다는 것이 깨달아져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는 이렇게 본질에서 같아야 된다.

그러므로 너희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나도 풀 수 있다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하나님과 나와 같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하나님이 나와 같아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하나님과 같아져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저 형편없는 인간들과 같은 존재로 같아지는 것이 아닌 것이다.

인간이 달라져서 하나님과 같은 사람이 되라 그런 말이다.

하나님과 같은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있을 진대 내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동등하게 진리 안에서 일치가 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세상에 있는 인간들이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가?

내 보기에는 동물만도 못하다.

땅에 기어다니는 개미의 사회보다 못한 것 같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 인간들을 볼 때 그 허물과 거짓과 모든 것을 보면 기가 막히고 당장에 벼락을 내리고 해야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오래 참으신다.

마찬가지로 너희도 나와 같으니까 이세상 주변에 있는 형제들에게 관용하라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가 이 세상 인간들에게 관용을 베푸는 것과 마찬가지로 너희도 나와 같으니까 관용하라는 것이다.

 


왜 관용하라 했는가?

첫째는 상대방이 내게 잘못 했을 때 실제로 잘못했는가를 인간들은 잘 모른다.

다시 말하면 착각하여 자기 생각대로 상대방의 일을 잘못했다고 규정 하는 경우들이 많다.

인간자체는 그렇다.

그런고로 함부로 간단히 상대방에 대해 범죄의 규정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예수께서 왜 이 말씀을 했는가 하면 내가 잘못되어 있으면 상대방의 일에 대해 잘못 규정할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착각을 일으킬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고로 예수께서 함부로 상대방에 대해서 죄라 하는 규정을 하면 안된다 한 것이다.

가능하면 너희는 상대방에 대해 죄로 규정하지 말아라 참을 때까지 참아보라는 것이다.

다음에 한가지는 설혹 내 판정이 잘못되지 않았다 하면 상대방이 내게 지은 죄는 분명히 죄다. 허물인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지금은 잘못되었지만 그 사람이 앞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할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그런고로 시간을 두고 관용할 때 관용하면 그 사람이 달라 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지금은 그 사람이 네게 죄를 지었지만 후에 그 사람이 예수님을 깨닫고 구원 얻을 수 있는 영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하면 네 자신이 그 사람에게 범죄자로 규정했다 하는 것은 네 자신이 죄를 범한 것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관용하라는 것이다.



또한 네가 가진 지식에는 한도가 있다.

네 자신이 잘 알아야 되지 않느냐 그래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7번씩 70번이라도 관용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근본적인 죄의 문제와는 상관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하나의 진리로서 원리로서 알고 깨달아야지 그 근본 원리는 생각치 않고 그때그때의 말만 가지고 해석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고로 예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은 너희는 커지라는 것이다.

크기에 있어서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과 세상사이에 서있다.

한쪽에는 하나님이 있고 다른 쪽에는 세상이 있다.

나는 세상과 하나님의 중간정도에 서 있는 것이다.

또한 예수께서 하신 말씀 가운데는 세상에 대한 말씀, 하늘에 있는 하나님께 속한 말씀 두가지가 분명히 갈라져 있다.

그것은 같은 예수님의 말씀이지만 같게 취급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주께서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이 세상 처세에 관해서 말해준 것이고 또 오른편으로는 하나님께 대한, 천국에 관한, 구원에 대한 말씀을 해 주신 것이다.



예를 들면 이혼이야기를 보면 간음한 이외는 이혼은 절대 안 된다 하신 것이다.

이것은 천국의 이야기는 아니다.

세상에 있는 동안 너희들이 그렇게 해야 된다 하신 것이다.

또 어떤 부자가 예수께 질문하는데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겠습니까?" 했는데 이때 히브리말의 영생이란 만수무강이란 뜻이다.

어떻게 하면 병들지 않고 오래 살겠는가 그런 뜻인 것이다.

구약에는 영생이란 말이 없다.

영생의 개념이 없다.

예수께서 거기에 대해서는 너는 율법을 잘 지키면 된다.

따라서 부모를 공경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도적질하지 말고 살인하지 말라 등등 구약의 십계명 후반부를 잘 지키면 된다 한 것이다.

그것은 세상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사람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것은 다 지켰는데 보다 완전할 수 없습니까 했을 때 그 다음에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오른쪽 하늘에 속한 말이다.

네가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한 것이다.

이제 이 두마디의 말이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가?

만일 이 사람이 어떻게 하면 완전 하겠습니까라고 질문을 안 했더라면 예수께서 영생을 얻는데 부모를 공경하고 살인하지 말고 도적질하지 말고 이와 같이 십계명을 지키는 것이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으로 오늘날 기독교가 착각했을 것이고 그것이 교리가 되었을 것이다.

여러분 그 말이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가?

네게 가지고 있는 것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너는 나를 따르라 다시 말하면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 되지 말라는 뜻이다.

그런고로 예수께서 하신 말씀 가운데는 이 세상 쪽에 있는 말 또 하늘나라 쪽에 관계되는 말 두가지가 확실히 분간되어 있다.

그런고로 이 세상 쪽에 있는 말은 영생의 구원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말이다.

그런고로 우리들은 이 양쪽에서 처음에는 세상 쪽에 관한 것이 있어야 되겠지만 그러나 차차 시간이 갈수록 오른편으로 가야 한다.

예수께서 분명히 하신 말씀은 너희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처럼 완전 하라 그것이다.

네 오른 눈이 범죄하거든 빼어버리라 오른팔이 범죄하거든 찍어내어 버리라 단호히 우리에게 말했다.

그 말씀과 오늘 여기의 말씀과 같이 형제가 범죄하거든 7번씩 70번 용서하라 이 두 말씀이 얼마나 다른가?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씀이 아닌가?



예수께서 무지한 제자들에게 이야기할 때 이렇게 말씀했고 오늘날 같으면 수학적으로 이야기를 해 주었을 것이다.

여기서 수학공식을 하나 보자. A×10±n=Y 이 수식이 오늘 예수께서 말씀한 것과 같은 것이다.

이 식에서 보면 n이 +일때는 가령 n=1일때 10이되고 n=2는 100, n=3이면 1000이 된다.

다시 말하면 우리 신자는 세상에 대해서는 +쪽이다.

남을 용서하는데 얼마나 큰가 하면 즉 네가 얼마나 관용을 가진 큰 사람이어야 하느냐 하면 십만, 백만 정도로 커져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무한히 커지라는 것이다.

다음에는 같은 수식이라도 -쪽은 어떤가? 

n=1이면 1/10이고 n=2면 1/100, n=3이면 1/1000이 된다. 

즉 자기 속에 죄라 하는 것은 -값으로 무한정 되어야 한다.

즉 죄가 없어야 한다.

네 허물은 네 죄는 백만분의 일, 천만분의 일 이렇게 적어져야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께서 한 말씀은 이 공식의 + 쪽의 이야기도 했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쪽으로도 이야기를 한 것이다.

원리와 형태는 하나인데 이렇게 다르게 말한 것이다.

그런고로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에는 그 말씀을 통해서 원리를, 진리를 파악해야 된다.



인간의 목적은 영생을 얻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

내 영생문제가 해결되면 하루 빨리 이 세상을 빨리 떠나는 것이 낫다.

이 세상의 더러운 공기 더러운 환경 빨리 떠나야 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되려면 내가 하나님과 같아져야 한다.

그래야 내가 이 땅에서 매는 것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내가 이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지 않겠는가?



백천(白泉) 김준식

(P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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