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40 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어떤 사람은 이 사람이 참으로 그 선지자라 하며
41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42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이 살던 마을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
43 예수로 말미암아 무리 중에서 쟁론이 되니
44 그 중에는 그를 잡고자 하는 자들도 있으나 손을 대는 자가 없었더라
45 아랫사람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그들이 묻되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
46 아랫사람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47 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48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자가 있느냐
49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50 그 중의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말하되
51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
52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찾아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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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장막절 마지막 날에 목마른 자는 내게 오라 그렇게 하면 속에서 샘물이 흐르듯이 아주 상쾌한 맛을 얻게 된다 말씀하셨다.
다시 말하면 인생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본문에 보면 성경에 이름과 같이 뱃속에서 샘물이 흐른다고 했는데 여기서 성경이라 함은 원어로 ‘그라패(γραφή)' 로 ‘기록물, 법령, 구약 성경’을 가리킨다.
그런데 구약성경에는 38절에 있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에 관련된 구절이 없다.
성경이란 히브리말로 ‘세펠’ 이며 위의 뜻과 같다.
그러면 대개는 구약을 가리키는 줄 알지만 구약성경에는 이런 말이 없다.
예수께서 기록이다. 문서다. 책이다 했는데 옛날 이스라엘 사람이나 오늘날 예수교인들은 그것을 구약으로만 알았지만 구약에는 이 말이 없으므로 이 말은 다른 문서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혹은 다른 사람이 쓴 보통 이스라엘 종교에서 인정하지 않은 그런 문서에 기록된 말인 것 으로도 추정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경의 문서로 인정하지 않은 책을 인용한 것으로 생각할 수가 있다.
그런고로 예수께서는 특별히 구약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은 것 같다.
잘 알아야 된다.
오늘 예수께서 어떤 사람이 썼는지 모르지만 그런 문서 가운데 어떤 시인이 기록했거나 어떤 철학자가 기록했거나 했던말을 인용한 것으로 추정할 수가 있다.
이 가운데도 지금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예수께서 마태 23:37절에 예루살렘을 향해서 저주를 하면서 하시는 말씀이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네게 보낸 예언자들을 죽이고….’ 다시 말하면 예루살렘이라는 유대나라의 수도에서 많은 선지자가 피살당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구약에 보면 이스라엘의 선지자가 예루살렘에서 한 사람도 죽은 일이 없다.
즉 어용 선지자라 하면 다 이스라엘 백성들한테 대접을 받은 사람들이지 혹 핍박이나 거기서 살해된 사람은 없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을 책망하시기를 많은 선지자를 죽인 곳이 아니냐 그래서 너는 벌을 면치 못하리라 했다.
여기서도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르는 많은 선지자를 죽였다고 예수가 말하고 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종교라 하는 것이 사람을 잘 죽이는 버릇이 있다.
다시 말하면 자기의 교리에 맞지 않으면 그 사람을 원수같이 생각하거나 이단으로 본다.
그런고로 예수께서도 참선지자들이 예루살렘이라 하는 곳에서 많이 죽어갔다 말한 것이다.
즉 오늘 이 성경책에도 없는 많은 선지자가 있었다 하는 것을 예수께서 암시해 준다.
오늘 예수께서 목마른 자는 내게 오라 했는데 그것은 목이 마르지 않는 자는 필요 없다는 말씀인 것을 알아야 한다.
예수께 오는 자는 목마른 자가 와야 된다.
자기 목이 타는듯한 목마름을 느끼지 못하는 자 내게 올 필요가 없다. 와도 소용없다. 그런 이야기이다.
또 같은 목이 마르더라도 목마른 원인과 종류가 다르다.
예수께 와서 해소되고 해결되는 목마름이 다르다 그것이다.
모든 목마름에 대해 예수께서 와서 해결해 주는 것도 아니다.
첫째는 목마름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 그런 사람은 예수님 앞에 올 필요가 없다.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목마른 것을 못 느낀다.
가령 이 세상에서 좋은 위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목마른 것을 못 느낀다.
또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거나 미술이나 음악등 예술에 특별히 정신을 빼앗긴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작품 하나에 모든 생애를 바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목마른 것을 못 느낀다.
또 이 세상 사람들이 만들어낸 모든 사회적 여건이나 살아가는 방법에 따른 소위 학문이라 하는 것에 정신이 빠져 있는 사람은 예수께 올 필요가 없다.
세상지식을 남보다 더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이 내 인생의 전부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으면 그 사람은 예수께 올 필요가 없다.
이 세상의 물질, 돈을 많이 가지고 있거나 그 외에 여러 가지 재화(mammon)를 가지고 있어서 이것으로 유일의 만족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예수께 올 필요가 없다.
세상의 예술, 학문, 권력, 금력등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일들로부터 만족이나 즐거움을 궁극적인 목표로 하는 사람들은 예수께 올 필요가 없다.
그 사람들은 예수 앞에 와 보았자 예수께서 그런 것을 해결해 주지 못한다.
돈 없는 사람이 돈 없다고 해서 예수 앞에 나간다. 그러면 돈이 생기는가? 아니다.
또한 학문하기 싫으니까 예수께 나가면 모든 지식이 저절로 얻어지는가 하면 그것도 그렇게 되지 않는다.
내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아무 지위나 권력이 없다 해서 예수님 앞에 나가면 권력이 생기거나 지위가 얻어지는 것 아니다.
그런고로 이제 이런 사람은 예수님 앞에 올 필요가 없다.
오늘날 교회가 십일조를 내면 영생도 보장되고 덤으로 세상의 부도 창출되는 것으로 가르치는데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또한 누구든지 내게 오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
이것도 얼빠진 거짓말이다.
예수께 올 수 있는 사람은 특수한 사람들이다.
무엇이 특별한가? 목마른 사람들이다.
다시 말하면 심령의 고갈을 느끼는 사람만이 예수께 올 필요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늘 생각한다.
어떤 사람에게 예수님을 믿으라 그렇게 권면하지 않는다.
또한 성경 말씀을 설명해 주려고도 하지 않는다.
목마르지 않은 사람에게 무슨 성경 말씀을 설명해 주느냐 그런 이야기이다.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누구든지 주의 말씀을 가르쳐서 사람들로 하여금 주 앞에 나오게 했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그것이 그렇게 되지 않았다.
예수께 나올 수 있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종류가 다른 것이다.
이제 가령 목마르다. 어떤 사람이 목마른가?
또 목마른 사람이 뱃속에서 샘물이 흘러나오듯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는 어떤 것인가?
예를 들면, 독일의 ‘펠렉스 클라인’이라는 유명한 수학자가 말하기를 이 세상에 천재는 세 사람인데 하나는 아르키메데스 그리고 가우스와 뉴턴이라고 했다.
이 세 사람이 천재고 다른 사람들은 다 범인이라 했다.
이 아르키메데스에게 그때 희랍의 왕이 금관을 주면서 이것이 순금이가 아닌가를 알리라 했다. 임금의 명령이니까 절대적이다.
그런데 지금부터 2500년 전에 그 오래전 시대에 금을 분석하는 장치가 없었고 순금인가 아니면 무엇이 섞여 있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아르키메데스는 마음속에 대단히 곤욕을 치른다.
그것 때문에 고심하다가 끼니도 거른다. 자나 깨나 그 생각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어떻게 하면 이것을 알아낼 수 있는가 하는 목마른 생활을 계속했다.
그는 우연히 목욕탕 속에서 목욕을 할 때 자기 몸이 물에 뜨는 것을 알았다.
그 순간에 그는 금의 순수성을 알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그 사실을 발견하고 그는 목욕탕 속에서 뛰쳐나와 벗은 줄도 모르고 알몸으로 춤을 춘다.
너무 기뻐서 마음속에 쾌락을 느껴서 남이 웃는 줄도 모르고 벌거벗고 춤을 춘 것이다.
우리는 하나의 원리를, 진리를 발견하고 찾아 냈을 때 모든 문제가 그로 말미암아 해결될 때 뱃속에서 샘물이 강물처럼 흘러내린 것과 같은 느낌을 갖는다는 그런 이야기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목마름을 느껴야 예수님 앞에 갈 수 있는가?
첫째로 우선 나는 무엇인가? 나를 알고 싶다.
나는 어디서 나서 어디로 가는가?
나는 어떤 길을 걸어가야 되느냐 내 생애를 어떻게 끝마쳐야 되는가?
내가 취할 태도 내가 걸어가야 될 길은 어떤 길이냐 이것으로 고민하고 이것 때문에 목마름을 가져야 된다.
이제 말한 대로 이 세상에서 배운 예술, 스포츠, 학문 이런것을 가지고 그날그날 만족하며 속아 사는 이런 사람들은 안 된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무엇 때문에 세상에 나왔으며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느냐 내가 갈 길은 무엇인가?
여기에 대해서 고민하고 목마름을 느끼는 사람만이 예수께 올 수 있다.
또한 장차 이 세상에 근본원리는 무엇인가?
이 말을 뒤집어 말하면 진리이다.
진리는 무엇인가?
또 이 우주는 어떻게 생겼으며 이 세상은 어떻게 되어갈 것인가?
우리는 그날그날 내 눈앞에 나타나는 현상만 보고 이러니 저러니 하는 것 보다 이 원리, 원칙이 어디에 있느냐 ‘나’라고 하는 적은 생명도 그 출발은 30억년 이전부터 시작했다하는 긴 세월을 걸어온 것인데 따라서 이 생명의 종말은 무엇이며 어디로 귀결되는가?
이것을 알려고 깨달으려고 이것을 모르면 살고 싶지 않다 하는 이런 식의 목마름을 느껴야 된다.
나의 갈길 나의 생명의 길이 무엇인가 이것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자들이 예수께 와야 된다 그런 이야기이다.
우리는 ‘예수님은 누구인가?’ 하는데 있어서 종종 예수님을 인격으로, 인간으로서만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나 예수님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예수님을 인격으로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근본 문제는 경우에 따라서는 인격으로 볼 수 있지마는 예수님은 원리이시며 진리이시다.
그러므로 모든 문제는 예수님에게로 옴으로 말미암아 해결된다.
예수님을 앎으로써 내가 걸어가야 될 길을 알게 될 것이고 나는 어디서 왔으며 나 또한 어디로 가야 되는가? 또한 내 종말은 어딘가? 스스로 알게 되고 해결된다 그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을 아는 것이 급선무이다.
그런데 어떻게 예수님을 알 수 있는가?
내가 가진 모든 수단, 방법, 능력을 총동원하는 길이다.
힘이 있는 데까지 예수님을 알 수 있는 방법을 간구해야 한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말해 준 중요한 말은 무엇인가 하면 인간은 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알겠는가? 사람은 진화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무의미하게 끝난다 하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찰스 다윈이 말해준 진화론은 형태론이기 때문에 지금은 조금 문제가 있는 것도 있지만 그러나 모든 생물은 진화하게 되어 있다.
30억년 훨씬 이전부터 생겨난 생명체가 오랜 시간을 걸쳐서 발전하고 진화해 왔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한 인간의 진화(personality evolution)는 그 당대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셨는가 하면 사람이 물과 영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갈 수 없다.
이 말이 예수님 당시에는 진화란 말이 없어서이지 이것은 바로 인간의 진화를 말한다.
또한 예수께서 이 진화를 한 사람은 바람이 불어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불어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는 느끼지 못한다 그것이다.
자기 자신은 느끼지 못하는 동안에도 자기는 진화를 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이 땅에서 난 사람이 천국으로 가는 방향으로 진화를 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못 간다.
인간은 두 가지이다. 진화를 하던가 아니면 그대로 진화하지 못하고 퇴보를 하던가이다.
생물은 그대로는 못 있다. 생물의 원칙은 진화를 하거나 (진화를) 멈추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우리가 진화를 못하게 되면 그 결과는 흙이 되고 만다. 흙이 되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그런고로 인간이 진화하는 방법, 이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예수님뿐이다.
예수님을 깨닫게 될 때 예수님을 알게 될 때 내 앞에 복이 내리지 않아도 성령이 내 몸을 감싸지 않더라도 나는 진화하게 되고 영생의 길을 걷게 된다.
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 예수님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다.
미술, 음악, 사상을 만들고 맘몬(mammon)을 만들어 그것을 가지고 떠들고 만족하고 종교로 만족을 얻지만 그런 사람들에게는 진화가 없다.
이제 인간의 근본문제 인간이 걸어가야 될 길을 찾는 데는 예수님 외에는 예수님 앞에 나오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말한 진리의 일단이 무엇인가 하면 내 자체가 진화를 해야 된다 그것이다.
달라져야 한다. 달라지기 전상태로 그대로 놔두면 인간은 퇴보한다.
그런고로 오늘날 예수님을 제대로 설명하는 종교나 기관이나 종교 단체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가르침을 깨닫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는 예수님을 적당히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을 알거나 파악하거나 예수를 이해하거나 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적당히 자기 목적에 맞게 이용하고 있는 까닭에 인간의 진화는 조금도 진행이 되지 못하고 있다.
예수님이라 하는 원리를 발견할 때 인간은 진화하면서 영적으로 성장하게 되고 또 한 번 태어나서 도약하게 되고 비약하게 된다.
그래서 예수께서 세상 것을 가지고 만족을 느끼는 사람, 세상의 종교로 만족을 얻는 사람, 지위나 권력이나 맘몬을 가지고 만족을 느끼는 사람은 예수께 올 필요가 없다 했다.
단지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을 찾고 내가 없으면 세상도 하나님도 소용없다 는 생각을 항상 심각하게 지니고 나의 문제를 해결하여야 된다.
이와 같은 고민에 목마름을 간절히 느끼는 사람은 예수님 앞에 갈 수 있다.
백천(白泉) 김준식
(P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