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다른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거기에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34 열매 거둘 때가 가까우매 그 열매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35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거늘
36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내니 그들에게도 그렇게 하였는지라
37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이르되 그들이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38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자 하고
39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40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41 그들이 말하되 그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4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44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
45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46 잡고자 하나 무리를 무서워하니 이는 그들이 예수를 선지자로 앎이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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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은 마가복음 12:1~12까지 그리고 누가복음 20: 9~19 사이에서도 볼 수 있다.
첫째, 여기서 집주인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둘째, 포도원이라는 과수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셋째, 소작인(농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넷째, 다른 나라에 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다른 곳에 갔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인데도 모르기 때문에 무시해 버린 것이다.
여기에서 사랑하는 아들이나 열매에 대해서는 우리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비유에서 농원을 만들었다는 주인은 창조주로 쉽게 짐작할 수 있고 다음에 사랑하는 아들은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여기서 농원 즉 포도원을 만든 창조주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것은 이스라엘 神, 여호와를 가리키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하면 그가 다른 나라에 갔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구약기록에 보면 여호와는 일시도 이스라엘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예루살렘에 거처를 마련하고 순간도 떠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과수원을 만든 주인은 만든 다음에 일하는 사람을 채용해서 맡겨놓고, 일하도록 해놓고 그 주인은 다른 곳으로 갔다는 것이다.
그러면 농원을 만든 창조주는 여호와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여호와는 단 한시도 이스라엘, 시온을 떠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농원주인은 포도원을 만든 후에 타 곳으로 갔다는 것이다.
이 포도원은 또 무엇이겠는가.
포도원을 만든 주인은 창조주이고 그 사랑하는 아들이 예수님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포도원 자체는 온 우주를 가르키는가? 그렇지 않다.
여기에서 한 농원이라 했으므로 이 주인은 농원이 하나뿐이 아니고 여러 곳에 다른 농원이 있었다고 본다.
그런고로 여기서 한 농원이 온 우주를 가르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스라엘 나라를 말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것은 적어도 한계를 가진 장소, 하나의 과수원으로서의 단위를 가진 처소를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크게 보면 태양계를 말하는 것이다.
태양계는 온 우주에서 보면 조그만 점 밖에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을 주님께서는 하나의 포도원이라 표시한 것이다.
포도원의 적은 의미는 태양계 내에서도 지구를 말한다.
이 지구를 포도원으로 상징해서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주요하게 알 수 있는 것은 포도원을 만든 창조주는 태양계라는 조직체, 저 농원을 준비한 다음에 멀리 떠나 다른 곳으로 갔다.
다시 말하면 이 지구를 하나님이 관리하지 않은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은 지구를 준비한 다음에 삯군 들에게 관리를 맡기고 다른 곳으로 간 것이다.
그러면 삯군들은 무슨 존재인가?
그들은 처음에는 천사들이다.
다시 말하면 일하는 일꾼들은 하나님 앞에서 삯군처럼 일하는 존재들, 천사들인 것이다.
그런고로 이 땅덩어리는 여러 神들이 와서 관할하고 있었다. 그런 이야기인 것이다.
인간은 예수님이 오기 전까지는 하나님을 몰랐다.
접촉할 수도 없었고 볼 수도 없었고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러면 그때까지 이 땅에 사는 많은 인간들이 접촉한 것은 여러 神들 이었던 것이다.
그 중에 한 神이 여호와이다.
성경에서도 보면 神을 엘(EL)로 표현했는데 이 말은 능력이 많은 초능력자를 가르켜서 엘이라 했던 것이다.
이것이 나중에 神이라는 말로 된 것이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또 여기에 복수로 엘로힘(Elohim)이란 말이 나온다.
神을 말할 때 EL과 Elohim이 두 가지로 사용되어 왔는데 기독교 신학자들은 엘로힘은 복수이지만 아주 힘이 있는 신을 말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렇게 본 것은 여호와를 절대의 하나님으로 보기 때문에 나온 말인데 EL/Elohim은 신들이라는 복수명사이다.
그런데 신들이라고 하면 곤란하니까 이것을 단수로 해석해서 가장 힘이 있는 神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렇게 주장한 것도 까닭은 물론 있다.
엘로힘이란 복수에 쓴 동사나 엘이라는 단수에 쓴 동사가 분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게 보는 것이다. 즉 단수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엘로힘은 가장 힘이 있는 神(almighty)으로 가르치고 있다.
따라서 신들이란 말을 위대한 神 이렇게만 번역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번역이다.
그러면 왜 神들이란 말로 되어 있는가 하면 오늘 예수께서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농원을 만들어서 여러 다른 神들 다시 말하면 여러 농부들에게 이 농원을 맡겼다는 것이다.
그런고로 이 지구는 창조주가 준비한 다음에 직접 관리하지 않고 관리하는 천사격인 神들에게 맡긴 것을 볼 수 있다.
이 땅덩어리는 여러 神들이 관리하고 있었고 특히 여호와는 중동지방을 관리해 왔고 나중에는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이스라엘 민족 神으로 부각되었던 것이다.
이스라엘 神으로 특수화(specify)된 것은 내가 늘 하는 이야기이지만 그것은 특수한 목적 때문이었다.
그런고로 이 구약 성경을 보면 엘로힘이다. 엘이다. 확실히 분간되어 있다.
예를 들면 출애굽기 3:2에 보면 모세가 미디안 광야의 호렙산에서 나무 덤불에 불이 붙어 있어서 가까이 가 보았더니 거기에 여호와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3:2에서는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났다 그렇게 쓰고 있는 것이다.
출애굽3: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말라크 제호바(malk Jehovah)라고 되어있는데 이때 말라크라는 말을 사자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글자 그대로 보면 사자 여호와인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여호와의 사자라 번역하고 있다.
말라크와 여호와 사이에 ‘의’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는 없다.
그런고로 사자 여호와라 번역해야 옳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가시떨기 나무에서 나타난 것은 여호와이다.
그런데 이 여호와가 사자라는 것이다.
자기의 직분이 사자, 즉 누가 보내서 온 것이라는 의미이다.
사자의 직분을 가진 여호와다 그런 말인 것이다.
여호와의 사자라고 보면 가시떨기에서 나타난 사람이 여호와 외에 또 여호와의 사자도 나타나고 그러므로 의미상으로 통하지 않는다.
성경에서는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만들려 보니까 “사자 여호와”를 “여호와의 사자”로 변조한 것이다.
가시덤불에서 여호와가 일관되게 이야기한 것이지 여호와가 말을 했다가 조금 지나서 여호와의 사자가 말을 하고 그것이 말이 되지 않는대도 기독교에서는 무조건 하나님의 말씀이라 해서 덮어놓고 믿는 것 때문에 이런 오류도 쉽게 인식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자 여호와란 말은 여호와 자신이 나는 하나의 사자이다 그렇게 말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오늘 여기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소작인들 그들이 하나의 사자로서 천사의 직분으로 있었다.
그런고로 여호와의 神이란 본래는 하나의 천사의 직분으로 있었다.
그는 땅덩어리를 관리하는 하나의 사자로서 온 것이다.
그런고로 여호와는 자기의 신분을 확실히 밝혔는데도 불구하고 종교인들이 조작해서 여호와라는 이름을 가진 이스라엘 神을 창조주로 조작하기 위해 이런 번역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고로 오늘 성경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 우주를 창조할 때 거기에는 여러 가지 순서가 있었겠지만 나중에 이 태양계를 만들었고 특별히 지구를 여러 가지 생물이 살 수 있는 특별한 장소로 만들면서 이것을 여러 천사들에게 삯군의 지위로 관리시킨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덩어리를 관리하지 않으신 것이다. 대신에 관리자를 보낸 것이다.
또 그 관리자들로부터 업적을 거두려고 나중에 많은 사자들을 보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을 처음에 관리를 맡았던 자들이 때리거나 가두거나 쫓아내거나 죽이거나 이렇게 여러번 창조주가 보낸 사자들을 그렇게 했고 나중에는 창조주의 사랑하는 아들을 보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저들이 그 창조주의 사랑하는 아들을 저 우주를 유산으로 받을 수 있는 자인고로 저를 죽이고 그들이 관리해온 농원을 자기들의 소유로 하려 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그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묻기를 너희라 하면 이 창조주가 나중에 어떻게 하겠느냐 질문한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 옆에 앉은 자들이 대답 하기들 물론 저 삯군들을 내쫓고 다른 사람에게 줄 것이 아닙니까 대답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다른 사람에게 준다는 말씀을 하지 않았다.
그러면 예수님이 온 이후로 이런 神들 다시 말하면 처음에 이 사명을 받았던 神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다 쫓기고 쫓겨날 뿐만 아니라 저들은 적당한 시기에 소멸해 버리도록 계획이 되어있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 이후로는 온 우주는 물론 이 태양계 역시 예수님이 관리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예수께서 이 땅에 온 이후로 우리 인류에게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알린 것이다.
이제 결론적으로 말하면 예수님이 오기 전에는 인간들이 하나님을 알려 해도 알 수가 없었고 보려고 해도 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이 농원을 만들어 놓고 다른 곳으로 갔으니까 당연한 이치였다.
이제 예수께서 이 땅에 온 이후로 인간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과 접촉할 수도 있고 하나님 말씀을 들을 수도 있고 볼 수도 있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온 이후로 조그만 땅덩어리이지만 하나님의 소유로 예수님을 통해서 관찰하고 살펴보는 세계로 된 것이다.
그런데 이 땅덩어리는 오랫동안 여러 神들의 하나의 장난감처럼 되어 있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모양으로 부패되어 버렸고 옳지 못한 방향으로 전락되어 간 것이다.
따라서 이 태양계 자체는 이 지구를 새로이 건설되던지 그렇지 않으면 폐물로 처분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들어보면 이 태양계는 어느 시기가 오면 어떤 모양으로 개조 될런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개조보다는 이것이 폐물처리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이야기이다.
이 땅덩어리가 폐물로 처리될 때에는 그 중에서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는 우리들은 다른곳으로 옮겨진다. 새로운 세계로 옮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의 생활의 의무란 바로 무엇인가?
이 지구가 폐물처리 될 때 우리도 그 속에 쓰레기와 같이 섞여 들어가지 않고 새로운 영생의 세계로, 다른 세계로 옮겨진다는 것이다.
다른 세계로 옮겨지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살아간 길, 예수님이 하신 말씀, 예수님이 가르친 원리, 예수님이 하는 모든 방법을 따라가는 것이 이것이 하나의 우리들의 의무요 또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권리인 것이다.
그런고로 예수님이 오기 전 인간들은 많은 잡신들을 섬겨왔고 하나님을 몰랐다.
왜냐하면 그는 다른곳에 가 있었고 이곳에 없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온 이후로 인간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과 비로소 접촉할 수가 있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이 세계를 다시 살펴보도록 된 것이다.
이제 땅덩어리는 여러 신들이 자기들의 물건으로 생각되어 장난감으로 취급되어 왔기 때문에 하나님이 처음 만들어 논 근본적인 포도원의 목적이 상실된 것이다.
그런고로 이 포도원은 주인이 폐기처분 할 것이라 본 것이다.
우리는 이 태양계가 과학적으로 수명이 오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듯이 이 태양계는 폐물처리 된다.
동시에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는 이 폐물과 함께 처리되고 싶지 않다면 우리의 사명은 바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밝혀줄 뿐만 아니라 내 마음속에서도 밝혀져야 한다.
우리의 의무가 예수님을 증명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온 세계가 하나님을 알았던 것처럼 보아 왔지만 그들이 아는 것은 잡神들 이었다.
이제 예수님이 온 이후 잡신들이 모여서 그 아들을 죽여 버린 까닭에 저들을 하나님께서는 깨끗이 소탕해 버릴 것이다.
그런데 이제 마태복음 12장 43절~46절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어떤 집안에 많은 잡신들이 있는데 그 잡신들을 쫓아내어 아주 깨끗하게 되었다.
그 잡신들이 쫓겨나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갈 데가 없으니까 깨끗해진 집에 다시 돌아왔고 또 전보다 많은 잡神들을 들여와 상태가 나중에 더 어려워 졌다는 말이 있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 예수님 이후 이 땅덩어리는 한때 깨끗하게 되었지만 저 쫓겨난 神들이 갈 데가 없으므로 다시 들어온 것이다.
그래서 이 세계는 점점 더 더러워져 가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이다.
마태12:43~46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 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이런 간단한 비유도 지금까지 그 이유를 몰랐으나 다 여기에는 중대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제 예수님이 오시기전 이 세상을 관할하던 神들은 이제 인간에 대하여 직접적인 영향력은 없지만 언제든지 인간의 약점을 파고들어 예수의 길로 가는 것을 방해 할 것이지만 종국에는 그들이 지은 죄상 때문에 심판을 받아 소멸 될 것이다.
백천(白泉) 김준식
(P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