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03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0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05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06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07 그들이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08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09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기 위함이었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니라
10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네 앞에 준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13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
14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15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16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17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18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19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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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요한이란 사람은 이스라엘나라에 메시아(messiah)가 올 것을 선포하고 그를 안내하고 인도하는 사명을 갖고 예수님을 만나본 이후로 예수님은 틀림없이 이스라엘나라에 온 메시아 인 것으로 확신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로 새로운 메시아의 성격이라던가 능력이라던가 미래의 업적이라든가 하는 것을 선포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메시아란 이스라엘의 왕이란 말이다.
새로운 창시자 혹은 영도자 또 대변자 특별히 여호와의 대변자로서 이스라엘 백성을 영도하는 그런 역할의 책임자가 메시아인 것이다.
그래서 메시아가 오랜 동안 예언자를 통해서 이스라엘나라에 올 것을 말했는데 예수님이 바로 이스라엘이 오랫동안 기대하던 메시아요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왕이요, 지도자요 또한 이스라엘의 영도자인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예수님은 처음에 기대하던 바와는 달리 바닷가에서 고기잡이나 하던 어부들을 제자들이라고 모아서 데리고 다니고 그때 당시 이스라엘 나라에서 가장 하층계급이고 서민이며 천민 층이던 사람들과 같이 먹기도 하고 자기도 하고 그 사람들과 대화도 하며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의 최고의 영도자로 이스라엘을 인도할 왕으로 기대했던 예수님이 의외에도 그 기대와는 정반대의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세례요한은 극히 못마땅하게 생각했고 실망스러워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속단은 할 수 없고 한번 재확인 해 보기 위해서 예수께 사람을 보내서 “우리가 오랫동안 기다리던 메시아가 당신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또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질문했던 것이다.
세례요한이 만사를 경솔하게 생각하지 않고 확실하게 사건을 확인 하려는 태도를 취한 점은 대단히 바람직한 일 이었다.
그는 쉽게 판단하지 않고 사람을 보내어 확인작업을 거친 것이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몰랐다.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에는 지금까지의 많은 예언자가 예언해온 메시아가 틀림없다고 확실히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는 처음과 다르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그는 예수님 자신의 본질을 몰랐던 것이다.
우리는 기독교의 큰 인물 중 대표적으로 예수님을 몰랐던 두 사람이 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세례요한이다.
나머지 한 사람은 사도 바울이다.
이두사람은 예수님을 아는 것처럼 많은 사람에게 전하기도 하고 확신을 가지고 말하기도 했지만 사실은 예수님의 본질은 몰랐던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늘 하는 말이지만 사도바울은 많은 사람에게 편지도 쓰고 기독교를 창설했다고 볼 수 있는 인물이지만 그의 사상이나 그의 편지 가운데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단 한번도 인용한 적이 없는 것이다.
구약의 말은 잘도 인용하면서도 예수님의 말씀은 인용하지 않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는 예수님을 몰랐던 것이다.
세례요한도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영도자로 생각했는데 가만히 보니 정반대였다고 생각되었고 그래서 다시 한번 예수께 확인 작업을 거친 것이다.
예수님은 내가 메시아다 아니다 그런 말을 하지 않고 다시 한번 자기를 알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것이다.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을 준 것이다.
그래서 찾아온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소경이 보고 문둥병자가 깨끗해지며 가난한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이러한 여러 가지 사건을, 예수가 한일을 세례요한 에게 알려준 것이다.
예수님은 직접 나는 메시아다 아니다 말하지 않은 것은 예수님의 한일을 보고 깨달아 알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연구하고 예수님을 노력해서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료를 제공해준 것이다.
이것은 세례요한 에게만 한일이 아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구세주다 메시아다. 그렇게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문제는 예수님을 오늘 세례요한과 마찬가지로 모든 사건을 종합해서 예수님이 누구인가 인식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고로 예수께서 세례요한에게 기회를 준 것이다.
요즈음 말로 말하면 예수님은 누구인가?
연구해서 알 수 있도록 그 기회를 준 것이다.
간단히 보면 나는 메시아다 아니다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그 말만 믿는다면 완전한 인식에 들어갈 수가 없다.
모든 상황을 종합해서 판단해야 올바른 인식 위에 설 수 있고 그것이 참다운 예수님을 아는 접근방법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도 이런 점을 잘 알아야 한다.
그저 교단에서 전하는 교리나 그대로 믿고 있다가는 안 된다.
시대는 급박하고 세상은 악하다.
인간들로 하여금 멸망의 길로 들어가게 하는 그런 세대인 것이다.
마태복음 5장 8절에 예수께서 ‘외식하는 자들아’란 구절이 나온다 .
헬라어 원어로 ‘휘포크리테스, ὑποκριτής ‘로 그 뜻은 위선자, 배우('무대 연기자, 외식하는 자’의 뜻이 있다)
다시 말하면 종교 지도자들이 거짓 종교를 만들어 놓고 단상에서 배우 역할을 하는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적인 행동을 지적하신 것이다 .
인생은 짧다.
나도 모르게 시간이 가면 그 때는 다시 회복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지게 된다.
오늘 본문에도 예수께서 그 재료를 갖고 연구하고 생각하면 알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세례요한에게 자기를 알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재료를 주었지만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깨닫지 못했다.
그는 여인이 낳은 자 중 가장 훌륭한 사람이라는 칭찬도 받았다.
예수께서 이스라엘 사람 중에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씀 하신 것은 그의 인격이라든지 생활을 보고 판정해 인증해 준 것이다.
그의 생활이나 그의국가관과 민족관등 그런 것들은 대단히 훌륭하다는 것을 예수께서 인정해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아는 것이다. 예수님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결국 예수님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의심이 들고 기대했던 것과 다르다고 판정이 되어 감옥에서 자기 제자를 예수께 보내 확인 작업을 했으나 그는 예수님을 알지 못했다.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확실히 볼 수 있다.
예수께서는 세례요한에 대해서 평하기를 세상의 여인이 나은자 중 그 보다 훌륭한 사람이 없을 정도이지만 그러나 천국에는 못 간다 하신 것이다.
천국에는 그보다 작은 사람이 없다고 하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세례요한은 영생의 세계는 못 간다 하신 것이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인격이 훌륭하고 학식이 풍부하고 지위가 높거나 돈이 많다 이런 것과 천국 가는 것과는 무관하다는 의미이다.
천국일원의 자격은 세상잣대로 안 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영생의 세계에 들어가고 못 가고는 예수님을 아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
예수님은 천국가는 길목인 것이다.
천국이라는 것이 누구의 손에서 이루어지는가 하면 오직 예수님의 손에 의해서 예수님의 힘에 의해서 예수님의 의지에 의해서 성립되는 나라인 것이다.
천국의 주인은 예수님이므로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예수님을 정확하게 인식 해야 한다.
교회에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아무리 떠들어도 그것으로 예수님을 아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세례요한도 예수님을 몰랐고 기독교의 창시자라고 보아도 될 사도바울도 예수님을 몰랐다.
따라서 예수님을 깨닫기 힘든 것이다.
지금 교회에서는 예수님을 여호와의 독생자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온 사람이다. 이렇게 간단히 떠들고 있다.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충분히 생각하지 못한 결론 일뿐이다.
이것은 사도바울이 오랫동안 생각해서 내놓은 가설인 것이다.
이 세례요한의 사명이라고 하는 것은 이스라엘에 메시아를 전달하는 안내하는 인도하는 사명을 가지고 온 사람 이었지만 예수그리스도는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인이 기다리던 메시아는 아니었던 것이다.
예수께서 그 다음에 해주시는 말씀이 “세례요한은 예언자로서 종지부를 내는 사람이다.” 라고 말하신것이다.
다시 말하면 세례요한은 이스라엘 백성의 선지자였고 예언자 였는데 그는 또한 끝마무리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해주신 말씀이 “모든 율법과 예언은 세례요한 때까지이다”라고 말씀 하신 것이다.
모든 율법과 예언을 세례요한에서 끝난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이 율법, 예언 필요 없고 소용없다는 것이다.
이제 세례요한 이후로는 율법과 예언이 필요없다 무용지물이라 그랬는데 그러면 율법은 무엇이고 예언은 무엇인가?
율법이라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법령이다.
여호와의 명령인 것이다.
또한 규칙(rule)인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사회제도 윤리 모든 것이 그 안에 들어 있다.
심지어는 결혼이라든가 이런 절차도 그 속에 들어 있다.
이것은 또 하나의 조직체이다.
이 율법 안에 이스라엘 국가, 사회가 들어 있는 것이다.
요즈음 말로 말하면 하나의 시스템(system)인 것이다.
그러면 예언은 무엇인가?
예언은 하나의 통지서이다.
위에서부터 예언자를 통해서 내려오는 하나의 소식인 것이다.
이 예언은 하나의 기대(expectation)이다.
희망의 소리인 것이다.
이와 같이 율법과 예언은 이스라엘의 체제요 메시아를 기다리는 희망의 소리였다.
그러면 여러분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율법의 성격, 예언의 성격이 무엇인지 그것은 제한적인 것이다. 이스라엘에 국한된 것이다.
따라서 이 율법과 예언은 진리는 아니다. 이것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 율법과 예언은 시간의 제한, 범위의 제한을 받고 있다.
이 율법은 이스라엘 밖에서는 통용될 수 없는 무용지물이다.
이 예언은 이스라엘에서만 성취 되어야 할 장소의 제한을 받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이 율법과 예언이 세례요한 때까지다.”말씀 하신 것이다.
세례요한 이후로는 필요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율법과 예언은 진리는 아닌 것이다.
우리는 어떤 명령이라던가 제도는 그 지역에 따라 다르고 또한 시간에 따라 법을 개정도 하고 폐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는 아니다.
진리라 하는 것은 시간의 제한이나 혹은 범위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1+2=3이 된다는 것이 1980년대까지 옳았지만 그 후로는 틀리다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 우주가 없어질 때까지 1+2=3은 언제나 원칙이다. 그래야만 진리인 것이다.
진리는 시간의 제한이 없다.
영원성을 갖는 것이다.
조정 범위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율법과 예언은 시간적 제한과 적용범위가 한정된 것이다.
그것이 어떻게 진리인가?
그런고로 이 율법과 예언은 오늘날 좋게 평가하면 골동품이요 그냥 보면 폐물인 것이다. 퇴물이다.
오늘날 이 폐물 때문에 예수님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오늘 세례요한의 사명을 말씀해준 동시에 거기에 덧붙여 새로운 세계를 우리에게 천명해준 것이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법이나 윤리를 개선하거나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말씀하신분은 아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천국의 세계를 천명해 주신 것이다.
천국의 길을 우리에게 준비해준 분이시다.
이제 예수님이 오늘 여기에서 말하기를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은 가난해야 된다. 5절에 나와있다.
영생의 세계에 들어갈 사람은 가난해야 된다.
가난한 사람에게 복음이 전해진다는 것이다. 복음은 기쁜 소식이다.
그 다음에 12절에 보면 천국은 힘으로 빼앗는 다는 것이다.
천국은 누가 공짜로 주는 것이 아니라 힘으로 빼앗는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힘으로 쟁취한다는 것이다.
여러분 가난한 사람과 힘과는 정반대의 관계에 있다.
이 세상 보통의 생각으로 보면 가난한자가 무슨 힘이 있는가?
돈이 많고 권세가 많아야 힘이 있는 것 아닌가?
그러나 천국 가는 조건은 첫째는 가난이고 둘째가 힘이다.
마태복음 5장3절에서도 심령이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소유다 말한 것이다.
그 의미는 천국은 누가 준 것이 아니다.
은혜로 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쟁취를 해야 한다 그런 이야기이다.
이 구절은 기독교 2천년 역사에서 처음 밝혀진 것이라 본다.
이 말의 내용을 아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천국은 힘으로 빼앗는다 무슨 힘인가? 무슨 가난인가?
천국을 소유하기 위한 심려의 가난함과 천국을 빼앗을 수 있는 힘은 일치되는 것이다.
이 세상 상식으로는 반대되는 것 같지만 일치되는 이야기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이 세상 생활을 떠나서 새로운 심령의 빈곤의 세계에 들어가야 되는 것이다.
그때에 천국을 쟁취하게 되는 것이다.
천국은 내 힘으로 열어야 한다.
우리 인생은 짧은 것도 하나의 가난이다.
시간적 결함을 가지고 있으니 가난할 수 밖에 없다.
그런고로 우리는 있는 힘을 다해 천국을 내 손으로 열어야 한다.
백천(白泉) 김준식
(P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