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산교회
 
작성일 : 16-02-04 09:37
설교제목 : 신의 뜻
 설교일자 : 1987.11.15
 KEY WORD : @ 고난 죽임 삼일 베드로 사탄
 성경구절 : 마16:21~23
 관련구절 : 막08:31~09:01, 눅09:22~27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020  


21 그 때부터 예수께서는, 자기가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야 하며,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해야 하며,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나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

22 이에 베드로가 예수를 따로 붙들고 "주님, 안됩니다. 절대로 이런 일이 주님께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하고 말하면서 예수께 대들었다.

23 그러나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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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이제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장노들과 서기관, 제사장들에게 고난을 당하고 죽을 것이다.

그런 다음 삼일후에 다시 살아난다."라는 것을 말해준 것이다.

그때 베드로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말한 것이다.

그러자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를 향해 "사탄아 물러가라!"한 것이다.



사탄이란 말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나쁜 말이다.

원 의미는 거역하는 자를 가리킨다. 욕가운데 심한 욕이다.

세상에서는 베드로가 예수님의 수제자인줄 알고 있지만 예수님은 그렇지 않았다.

사탄이라고 심한 말을 했고 예수님은 다른 제자들에게 그렇게 심한 말로 욕한 적이 없다.

너는 사람의 뜻만 생각하고 神의 뜻은 모른다.

다시 말하면 神의 목적을 모른다고 하신 것이다.



베드로가 그 神이라고 한 말은 조금 전까지도 살아계신 神의 아들이라고 말한 것처럼 베드로는 그 神밖에 모른다.

그런고로 그 神이란 베드로가 아는 神이다.

베드로가 아는 神이란 여호와神을 말한다.

神의 뜻을 모른다. 여기서 뜻이란 계획이다.

神의 계획을 모른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계획은 전혀 모르고 있지 않은가 그런 말이다.



오늘날 기독교에서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정 반대의 이야기이다.

전부가 근본적인 것은 모른다.

이제 구약성경을 자세히 검토를 해보면 여호와는 치밀한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첫째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임할 것이다라는 사실을 안 것이 BC 약 2천년 전이다.

이때 여호와가 그 사실을 알고 계획을 세운 것이다.

그 계획가운데 하나는 예수님을 자기 부하로 만들자는 계획이었고 다음에 그렇게 안되면 그를 죽일 계획을 세운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 가서 산 것, 모세를 통해서 끄집어 낸 것도 그 목적이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이제 그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많이 성장한 것이다.

약 70여가족이 가서 꽤 많은 숫자가 되었는데 그것을 끌어낸 것이다.

예수님이 팔레스타인 땅에 올 것이 미리 예측된 것 같다.

그래서 그 이스라엘백성을 미리 끌어낸 것이다.

그런고로 처음부터 그 목적이 치밀하게 계획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마태복음에는 예수님이 사탄에게 시험 받았다고 하지만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할 수가 없다.

어떤 神이 예수님을 시험 할 수 있겠는가?

대부분의 神들이 예수님을 보기만해도 벌벌 떨면서 달아나는데 어떻게 예수님을 시험한단 말인가?

그리고 또 시험 받았다는 이야기도 어디서 나왔는가?

예수님의 입에서 밖에 나올 수 없다.

다른 사람이 예수님의 시험 받았다는 장소에 가 볼 수 있었겠는가?

이것은 여호와가 예수님을 시험한 것이다.

예수께서 자기가 시험 받을 것을 제자들에게 간단히 언급한 모양인데 그것을 제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사탄이 한 것으로 변조를 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세상의 다른 神은 예수님을 시험할 수가 없다.

시험할 수 없거니와 또한 그럴 목적도 없다.

성경에 보면 다른 잡神들은 예수님을 보기만해도 무서워 달아났는데 어떻게 예수님을 시험할 수 있겠는가?

이제 이 시험은 왜 했는가 하면 예수님을 자기 앞에 복종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시험의 마지막에 보면 자기 앞에 복종 시키려는 질문인 것이다.

자기 앞에 복종하면 이스라엘의 통치권 즉 이스라엘 나라를 네게 맡긴다 한 것이다.

맡기면 예수님은 여호와神 앞에서 왕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왕이 된다 해서 메시아라 한 것이다.

구약의 예언서에 잘 나와있다.

만일 예수님이 요단강 가에서 시험 받았을 때 시험하는 자에게 복종했더라면 예수님은 메시아로서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등장할 수 있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안되면 예언서에 기록 되기를 어린양이 죽을 장소에 나가도 아무 소리도 못하고 담담하게 죽어 가더라 하는 식으로 또한 죽어가는 장면에 대한 예언을 한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마지막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는 예언을 한 것이다.

하나는 메시아를 보낸다는 것이고 하나는 두 가지로 나뉘어 있다.

하나도 통일되어 있지 않다.

그런고로 이 예언을 연구해보면 죽음에 대한 예언이다.

희생을 강요하는 예언인 것이다.

그래서 그런 계획이 치밀하게 되어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예수께서 베드로를 책망한 것이다.

너는 그것을 왜 모르는가 하는 것이다.

네가 나를 살아계신 神의 아들이라 하면서 왜 그 神의 계획은 왜 모르는가?

그래서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책망의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본대로 근본적인 예수님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님을 모른다 하면 다른 것을 아무리 알아도 소용이 없다.

오늘날 온 세계가 이름은 기독교라 하고 있지만 실제로 예수님은 어떤 존재인가 또 어떻게 된 분이고 그가 이 세상에 어떻게 왔고 어떻게 돌아가셨는가? 전혀 모르고 있다.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 예수님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

이제 여기서 문제는 제일 중요한 것이 족보부터이다.

무엇이 예수님의 족보인가?

예수님은 분명히 하늘에서 온 사람이다.

세상사람의 혈통으로 난 분이 아니시다.

다윗의 자손이 아닌 것이다. 그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또 예수님이 이스라엘 백성인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예수님은 애굽에서 출생하셔서  4~5세 되었을 때에 이스라엘 땅으로 온 것으로 추정이 된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이스라엘 땅에서 자랐고 이스라엘 백성으로 여겼지만 사실은 이스라엘 혈통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오신 분이다.

또 한가지는 예수님 자신이 자기가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한번도 표명한 적이 없다.

다시 말하면 그 이름을 예수라고 지었는데 한번도 쓴 일이 없다.

언제나 제자들에게나 다른 사람 앞에서 자기를 표현할 때는 인자라 하셨다.

요한복음 17장에 예수께서 세상에 있을 때 마지막에 기도할 때 자기가 예수그리스도라고 말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의 이름이 아니다.

“그리스도”로 번역된 헬라어는 “크리스토스”, Χριστός  “로서 히브리어 “메시야” ,즉 기름부은 자”로 “사명을 받은 구원자”의  뜻이 있으며 헬라어 “예수스, Ἰησοῦς”는 히브리어 “여호수아”의 축약형”에수아,Jesuha를 코이네 그리스어로 옮긴 말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란 예수님의 이름을 말한 것이 아니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왔을 때 세상 이름을 갖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온 천하를 돌아보는 예수님이 이스라엘 이름을 갖거나 이스라엘 민족의 성을 갖는다든지 그것이 말이 안된다.

그런고로 예수님은 이 땅에서 자기 이름을 갖지 않았고 언제나 인자로 자기를 표현했고 따라서 그는 하늘에서 오신 분이지 보통 우리처럼 자연인은 아니셨다. 

그것을 알아야 한다.



다음에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신 것이 일년 반에서 2년 정도이다.

햇수로 3년이라 하지만 그렇게 오래 계시지 않았다.

예수님이 이 세상인간이라면 적어도 30~40년은 있으면서 공중생활을 했어야 한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땅에 2년도 못있었다 하는 자체는 그는 자기 목적을 달성하면 곧 자기 본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런고로 그가 죽지 않으려면 얼마든지 죽지 않을 수 있었다.

누가 그를 죽일 수 있겠는가?

그때 이스라엘은 로마통치하에 있었고 이스라엘 자체는 무정부상태였다.

예수님이 애굽으로 피신하거나 다른 곳으로 갔더라면 죽지 않는다.



또 인간으로서는 예수님을 죽일 만한 이유가 없다.

그가 이 세상에서 물질을 탐하지도 않았고 명예를 탐하지도 않았으며 정치를 하려고 하신 것도 아니다.

죽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제 예수님을 죽이는데 앞장섰던 제사장이나 장노들, 서기관 이런 사람들은 神들린 사람들이다.

그들만의 손으로 부족해서 예수님의 제자인 가롯유다가 관계했다.



이것도 보통상식으로는 이해가 안간다.

다시 말하면 가롯유다 같은 사람도 미련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예수님을 죽이는데 협조한 것은 神들려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님을 어차피 자기본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까닭에 이 길을 피하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살렘으로 향해 가셨던 것이다.



이제 예수님은 죄가 가득차 있는 죄의 창고 속에서 이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다.

떠나게 된 다음에는 제자들에게 확실하게 말하기를 3일만에 다시 사신다 하신 것이다.

이 사흘이란 말도 히브리말로 보면 "곧"이란 말이다.

잠깐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부활한 것도 3일이나 걸리지 않았다 약 하루반이 채 못 걸린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을 잡아죽인 神은 예수님이 부활할 것을 몰랐다.

부활이란 원칙은 그 전의 창조의 원칙에는 없었다.

만일에 부활하는 것을 알았다 하면 여호와도 예수님을 죽이지 않았겠지만 그 神은 인간을 죽이면 그것으로 끝나는 줄 안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죽인 것이다.

그러나 부활이란 이치는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게 됨으로써 새로 제정된 창조의 원리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진리대로 원칙대로 산 사람에게는 죽음이란 있을 수 없다 하는 새로운 창조가 제정된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인간으로 오지 않았다.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오기 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원리가 제정된 것이다.



더불어 한 가지 더 알아야 될 것은 구원과 영생은 다르다. 분명히 알아야 한다.

구원이란 약자가 내 힘으로 할 수 없을 때 다른 사람이 나를 건져주는 것을 구원이라 한다.

다시 말하면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아브라함 때문에 롯이 구원받았다.

또한 노아홍수때 노아의 가족이 살아난 것등은 구원이다.

내가 병석에서 일어 못 나는 것을 일으켜 세워주면 구원이다.



그러나 영생은 다르다.

영생은 특권이다.

누구의 도움에 의해서 영생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고로 예수께서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나는 내 생명을 버릴 수도 있고 다시 찾을 수도 있다고 하신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새로 창조한 원리를 그대로 수행했다 하면 죽었더라도 그 원리에 의해 다시 새로운 생명체로 소생하는 것이다. 아니 죽지 않는 것이다.

그런고로 우리들이 부활한다 또는 영생의 세계에 들어간다 하는 것도 하나의 특권이다.

예수님이 준비하신 그 길을 걸어가면 예수님이 그 길을 걸어가서 부활했듯이 우리도 그 길을 걸어가면 영생할 특권이 있다 그런 말이다.

그런고로 영생은 누구에게 구제를 받는다 특혜를 받는다는 것이 아니고 내가 그런 자격을 마련해 놓으면 그 법칙을 따랐으면 내가 부활하고 영생하는 특권을 스스로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온 세계기독교가 아직까지 전혀 모르고 있다.

영생이 누구의 덕에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을 분명히 알면 이런 근본문제가 분명히 달라진다.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사건이 가장 중요하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기독교는 생기지 않았다. 생길 까닭도 없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 한 10여명이 모여서 죽은 예수님을 갖고 어떻게 할 수 있었겠는가?

예수님이 다시 사셨기 때문에 제자들이 용기를 갖고 오늘날 기독교의 모태인 초대교회가 만들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 그 제자들에게 능력을 주었다.

그래서 그들이 말을 하던지 행동하는 것에 권위가 섰던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기틀이 잡히게 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무식한 제자들에 의해 어떻게 기독교가 자리를 잡을 수 있었겠는가? 

이와 같이 우리는 예수님을 정확히 알아야 되는 것이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예수님의 족보에 있다.

이제 예수는 예수님을 죽인 원수의 아들로 만들어 놓고 있는 것이 현 기독교이다.

누가 이런 조작을 했는가? 

이런 역할을 주도한 사람이 사도 바울이다.

내보기에는 바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한 3년간 아라비아에 가 있었는데 무엇 때문에 갔으며 또 거기서 무엇을 했는가?

그는 아라비아에 가서 수도를 하며 여호와 앞에 감동을 받고 지시를 받았던 것 같다.

그래서 연구한 결과 예수님을 여호와의 아들로 만든 것이다.



나는 늘 생각한다. 여호와의 이름을 지금까지 아는 사람이 없다.

출애굽기 3장 13-14절을 보면 ‘나는 스스로 있는자다’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원문대로 보면 "내가 있다 그리고 내가있다."라는 말인데 여호와가 자기를 강조하기 위해서 그렇다라고 기독교학자들은 보고 있지만 문맥상으로 따져보면 말이 되지 않는 구절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 한자를 바꿔보면 "그가 있어 내가 있다."라고 번역이 된다.

아마 여호와의 이름은 그가 있어 내가 있다라는 의미인 것으로 생각 될 수도 있다.


출애굽기3:13~14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었다. "제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너희 조상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고 말하면, 그들이 저에게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을 터인데, 제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대답하셨다. "나는 곧 나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나'라고 하는 분이 너를 그들에게 보냈다고 하여라.")



이렇게 오늘날까지 여호와의 이름의 뜻이나 발음도 여호와인지 야훼인지 예외인지 누구도 모른다.

주전 4세기 경부터 여호와의 이름을 발음하지 못하게 했고 그래서 여호와란 글이 나오면 모두 주라고 번역해서 발음하게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 뒤 여호와 神의 본래 발음은 아무도 모르게 된 것이다.



또한 출애굽기에 보면 여호와가 가시덤불에서 모세에게 나타나 여러 가지 지시를 내려주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출애굽기 3장 2절에 보면 갑자기 여호와의 사자가 가시덤불에서 이야기 한 것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실제로 원문은 사자 여호와이다.

가시덤불에 여호와 외에 다른 사람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여호와 혼자였고 그는 자기를 표현하는데 사자라 한 것이다.



구약의 기록을 살펴보면 여호와는 천사격의 神이였던 것으로 추정 될 수도 있다.

다시 말하면 여호와는 하나님 밑에 천사격인 神으로 있다가 잘못되어 추방된 神이라 추정이 가능하다.

그것을 예수께서 증명해 준 말이 마태 21장 33~46절, 마가복음 12:1~12절, 누가복음20:9~19절까지 보면 나와있다.



마태21:33~46 ("다른 비유를 하나 들어보아라. 어떤 집주인이 있었다. 그는 포도원을 일구고,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포도즙을 짜는 확을 파고, 망대를 세웠다. 그리고 그것을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멀리 떠났다. 열매를 거두어들일 철이 가까이 왔을 때에, 그는 그 소출을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냈다. 그런데, 농부들은 그 종들을 붙잡아서, 하나는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또 하나는 돌로 쳤다. 주인은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더 많이 보냈다. 그랬더니, 농부들은 그들에게도 똑같이 하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기 아들을 보내며 말하기를 '그들이 내 아들이야 존중하겠지' 하였다. 그러나 농부들은 그 아들을 보고 그들끼리 말하였다. '이 사람은 상속자다. 그를 죽이고, 그의 유산을 우리가 차지하자.' 그러면서 그들은 그를 잡아서, 포도원 밖으로 내쫓아 죽였다. 그러니 포도원 주인이 돌아올 때에,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그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그 악한 자들을 가차없이 죽이고, 제 때에 소출을 바칠 다른 농부들에게 포도원을 맡길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에서 이런 말씀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집 짓는 사람이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이것은 주님께서 하신 일이요, 우리 눈에는 놀라운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아서, 그 나라의 열매를 맺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사람은 부스러질 것이요, 이 돌이 어떤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놓을 것이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의 비유를 듣고서, 자기들을 가리켜 하시는 말씀임을 알아채고, 그를 잡으려고 하였으나, 무리들이 무서워서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무리가 예수를 예언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포도원 주인이 멀리가면서 소작인 들에게 포도원을 맡기고 추수때 그 소작료를 받기 위해 종을 보내는데 보내는 종마다 소작인들이 죽이거나 쫓아버리거나 한 것이다.

그러자 포도원 주인이 자기의 아들을 보내는데 소작인들은 그가 상속받을 자니까 죽여버리자 해서 죽인 것이다. 비유로 말했지만 그 소작인은 여호와로 추정이 가능하다.



다음에 더더욱 확실한 것은 여호와는 자기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한 적이 없다.

"나는 이스라엘의 아버지다.",  "이스라엘 사람의 조상이다." 한 것이다.

이것이 신명기 32:6, 이사야 63:16 분명히 나와있다.

여호와 자신은 다른 민족의 神은 아니라고 했는데 왜 세계 각국 민족들이 여호와를 자신들의 神이라 외치는가?



신명기32:6 (어리석은 백성아, 이 미련한 민족아, 너희는 어찌하여 주님께 이처럼 갚느냐? 그는 너희를 지으신 아버지가 아니시냐? 너희를 만드시고 일으키신 분이 아니시냐?)



이사야63:16 (주님께서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하여도, 오직 주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옛적부터 주님의 이름은 '우리의 속량자'이십니다.)



그리고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왕이다."

이것이 사무엘 상 12:12, 시편 10:16, 이사야 43:15, 예레미아 27:4에보면 나는 이스라엘 왕이다 다른 나라의 왕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무엘상12:12 (그런데도 암몬 왕 나하스가 우리를 치러 오자, 주 하나님이 우리의 왕인데도, 그것을 보았을 때에 당신들은, '안 되겠습니다. 우리를 다스릴 왕이 꼭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고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시편10:16 (주님은 영원무궁토록 왕이십니다. 이방 나라들은 주님의 땅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예레미아27:4 (너는 또 그들에게 이렇게 명령하여, 각자 상전에게 전하게 하여라. '나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너희는 각자 상전에게 전하여라.)



특별히 "나는 이스라엘에 산다. 다른데 있지 않다." 이것이 에스겔 37:26~28, 아모스 3:2에 보면 나와있다.



에스겔37:26~28 (내가 그들과 평화의 언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다. 내가 그들을 튼튼히 세우며, 번성하게 하며, 내 성소를 그들 한가운데 세워서 영원히 이어지게 하겠다. 내가 살 집이 그들 가운데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내 성소가 영원히 그들 한가운데 있을 그 때에야 비로소 세계 만민이, 내가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는 주인 줄 알 것이다.'")



아모스3:2 (나는 이 땅의 모든 족속들 가운데서 오직 너희만을 선택하였으나, 너희가 이 모든 악을 저질렀으니 내가 너희를 처벌하겠다.")



또한 "여호와 내 집은 시온에 있다. 예루살렘에 내 집이 있다." 이것이 요엘 3:17~21, 스가랴 2:10. 레위기 26:11절에 나와있다.



요엘3:17~21("이스라엘아, 그 때에 너희는, 내가 주 너희의 하나님임을 알아야 한다. 나는 거룩한 산 시온에서 산다. 예루살렘은 거룩한 곳이 되고, 다시는 이방 사람이 그 도성을 침범하지 못할 것이다. 그 날이 오면, 산마다 새 포도주가 넘쳐 흐를 것이다. 언덕마다 젖이 흐를 것이다. 유다 개울마다 물이 가득 차고 주의 성전에서 샘물이 흘러 나와, 싯딤 골짜기에 물을 대어 줄 것이다. 그러나 이집트는 황무지가 되고, 에돔은 황량한 사막으로 바뀐다. 그들이 유다 땅에 들어와서 백성을 폭행하고, 죄 없는 사람을 죽였기 때문이다. 유다 땅은 영원히 있겠고, 예루살렘도 대대로 그러할 것이다. 사람들이 학살을 당하여도 내가 그 원수를 갚아 주지 않았으나, 이제는 원수를 갚아 주겠다. 나 주는 시온에서 산다.")


스가랴2:10 ("도성 시온아, 기뻐하며 노래를 불러라. 내가 간다. 내가 네 안에 머무르면서 살겠다. 나 주의 말이다.")



레위기26:11 (나는 너희 사이에서 거닐겠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이렇게 여호와는 나는 이스라엘의 아버지요 이스라엘의 왕이요 이스라엘의 神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요한복음에서 말하기를 유대인들 보고 너희 아버지는 살인자요 거짓말쟁이이다라고 하셨는데 무엇을 말하는가?

바로 여호와를 보고 말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왜 이렇게 되어 있는가?

여호와는 예수님을 죽인 다음에 예수님을 못 믿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따라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정확한 판단을 못하도록 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고로 지금 우리가 예수님의 길을 정확하게 찾지 못하는 것은 인간의 머리 속에 예수님을 죽인 神이 들어있어 명철한 판단을 못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온 세계가 이런 혼돈 속에 있는 것이다.

이제 예수님이 베드로를 보고 사탄이다 하는 이 말이 이해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도 답답해서 화를 내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다소간 무지한 면이 있다 하더라도 예수님은 자기의 제자에게 사탄이란 말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예수님이 베드로를 보고 사탄이라 말한 것을 제대로 이해 못하고 있다.

이제 예수님이 자기의 사랑했던 제자에게 사탄이라 말한 것은 그 내용이 그렇게 복잡하고 크게 되어 있는 것이다.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민족 신이었는데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고 아름답게 보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용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그래서 그 목적이 이스라엘 백성을 이용해 오신 예수님을 조처하는데 사용했던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이스라엘 백성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 자기 神의 조작에 빠져서 예수님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누가 이런 혼돈 속에 가두어 버렸는가 하면 사도바울인 것이다.

사도 바울은 神이 들렸는데 그 신이 여호와인 것이다. 그것을 사도바울이 인증하고 있다.

그래서 로마서 마지막에 보면 여호와 神을 섬기려면 이스라엘 백성이 되어야 한다. 이스라엘에 접붙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스라엘인은 혈통문제이지 믿는다 해서 혹은 접 붙혀 진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터무니 없는 논리인 것이다.



그런고로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없는 상태에 있다.神을 섬기는데 어떤 神을 섬기든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예수님을 정확히 아는 것이다.

예수님을 모르면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백천(白泉) 김준식

(P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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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 예수님이 멜수 있는 멍에 1985.03.03 마11:28~30 관리자 2201
314 예수님 자아표현의 일단 1988.02.28 마22:41~45 관리자 1982
313 예수님이 오신것 1987.05.24 요01:01~13 관리자 2382
312 영생이란 1986.09.07 요12:44~50 관리자 2829
311 영생은 자연적 현상 1989.10.01 요06:41~44 관리자 1964
310 엘리야 1994.02.06 막09:02~13 관리자 2046
309 어린아이와 같은자 1987.11.08 마18:01~09 관리자 2452
308 알수없는 일 1987.07.19 요05:01~18 관리자 2042
307 심판과 기독교 1987.05.10 마07:21~23 관리자 1975
306 신자의 태도 1988.09.25 마25:14~30 관리자 1873
305 신자의 노력(2) 1987.06.21 마21:18~21 관리자 2340
304 신자의 권위 1989.07.09 마18:15~20 관리자 1891
303 신자의 거처 1989.12.10 요10:01~18 관리자 1768
302 신의 심판 1986.09.28 롬02:12~16 관리자 2000
301 신의 뜻 1987.11.15 마16:21~23 관리자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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