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산교회
 
작성일 : 16-02-04 10:20
설교제목 : 신자의 권위
 설교일자 : 1989.07.09
 KEY WORD : @ 형제 죄 권고 증인 땅 하늘
 성경구절 : 마18:15~20
 관련구절 : 눅17:03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334  


15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16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17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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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께서 베드로나 특별한 사람에게 말한 것이 아니고 실제로도 베드로에게 특권을 준 일은 없다.

베드로에게 특별히 권위가 있는 것처럼 기록된 것은 초창기 교회의 의도적인 기록인 것이다.



본문에 보면 "땅위에서 기도하면 하늘에서도 무엇이든지 다 그대로 이루어진다.

"또 "한 두사람이 모여서 구하면 그것이 성취된다."

그리고 "신자(信者)는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여지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어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참된 신자는 땅에서 하나님과 같은 것이다. 

예수님과 같다는 말인 것이다.

그만큼 큰 권위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한두사람이 하나님께 기도를 하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고 어떤 일에 대하여 성도가 판정을 내리면 그 판정대로 된다는 것이다.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어지고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여진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천국 문은 참된 성도가 땅에서 열면 하늘나라에서도 그 천국 문이 열려지고 닫으면 하늘나라에서도 닫혀진다는 것이다.

간단히 예를 들어 말하면 참된 성도라 할 때에는 누구를 보고 너는 절대로 구원을 못 얻는다 하면 그 사람은 구원은 못 얻게 되고 또 너는 장차 하늘에 올라갈 수 있는 영생의 자녀가 될 것이다 말하면 그는 장차 천국의 자녀가 그대로 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소설도 아니고 시도 아니고 노래도 아니다.

사실 그대로 예수께서 우리에게 말해준 약속인 것이다.

실제로 내가 이런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천국의 열쇠를 내가 쥐고 있다 그 의미인 것이다.

참된 성도들 자신이 각자가 천국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김서방과 박서방이 갖고 있는 열쇠 모두 천국의 문을 여닫을수 있다는 의미이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열쇠는 한가지란 뜻이다.



이 말은 무슨 말인가? 

열고 닫는 것이 또 구하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이다 그런 말인 것이다.

어떻게 하나가 되는가? 무엇으로 하나가 되는가?

박서방의 천국에 대한 행동이나 김서방이 하는 행동이다 하나이다 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다 같은 예수님을 체득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너희는 내 말을 듣고 내 이치를 깨닫고 나를 아는 너희들은 나와 같다라는 것이다.

예수가 이 세상에 온 것은 그는 하나님의 역할을 세상에서 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이 떠난 이후에 모든 책무를 맡은 것이 이 땅 위에 있는 성도들인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성도는 하늘에서 내려온 씨를 지닌 참된 신자를 가리키며 이 성도는 예수님의 대리인으로서 이 세상에서 예수님과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그러므로 참된 성도로서 절대의 권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 땅에 살아있을 동안에는 우리의 보는 눈으로 그가 분명히 천국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을 본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가 참된 성도가 된다면 가질 수 있는 자격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성도는 예수님의 권리, 권한 다시 말하면 권위를 갖는 것이다.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대리자인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 저 사람이 내게 대해서 천국문을 닫으면 나는 못갈 것이고 저 사람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 너는 망할 것이다하면 나는 망해진다는 것이다.



여러분 이 말씀이 간단한 말인가?

예수께서 분명히 이와 같은 말씀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에 해당하는 자격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내가 하는 일 그대로 천국에서 이루어질 것이고 풀면 풀려야 하고 매면 매여야 하고 또 필요하다면 이루어질 것이고 필요치 않다면 열렸던 하늘 문도 닫혀진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의미 있는 것 아닌가?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는 수많은 신자가 떠들고 기도하고 해도 아무런 효능이 없고 아무 소용이 없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무런 능력도 아무런 힘도 없는 상태인 것이다.



우리의 힘은 하늘에 저장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나의 한마디 말이면 저 천국문도 닫힐 수 있고 열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이 세상에 있는 성도는 누구나 천국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말씀과 일치 되는 것이다.

참된 성도들은 누구든지 다 하나님의 대리자인 것이다.

시간은 수천년 흘러도 생각은 하나이고 사람은 수백 수천만이라도 하나이다 하는 것이다.

내 하는 말 한마디 손 하나 흔드는 것 예수님의 동작과 꼭 같은 것이다.

모양이 같은 것이 아니라 그 능력이, 그 권위가 같다는 것이다.

이 세상 기독교는 지금껏 얼마나 많은 말을 하여왔고 얼마나 많은 기도가 터져 나왔는가?

그러나 그 기도대로 이루어졌는가?



내가 확실히 말하지만 예수께서 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 기독교내에 예수님이 나타난 일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예수님이 사람의 모양으로던지 천사의 모양이나 무슨 모양으로 나타날 뿐만 아니라 기독교사에서 예수님의 말씀이나 지시나 예수님의 생각이나 그 어떠한 모양으로든지 예수님이 나타난 일이 있었던가?

그러면 이 세상의 기독교란 종교단체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땅위에서 참되게 예수님을 추구하고 연구하고 예수님을 사모하는데 예수님이 우리 앞에 한번도 나타나지 않았다면 예수님에게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닐까? 그와 같은 생각도 나는 오랫동안 해보았다.

그러나 결론은 예수님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 예수님다운 예수님이다 그렇게 생각된다.

당연히 나타내지 않았어야 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 기독교는 예수님을 사모하거나 예수님을 연구하거나 예수님과 같은 생활을 하여야 한다 하는 개인은 물론이며 단체도 있었는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기독교에 지금까지 수많은 학자들이 있었는데 내가 보기에는 예수님을 알려고 노력한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가 없다.

아직까지 발견을 못한 것이다.

그런고로 지금 이 상태가 당연한 것이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주고 가신 말씀, 너희가 땅에서 매면 매어지고 풀면 풀어지는 너희가 원하는 대로, 명령하면 명령대로 천국에서 이루어진다 한 약속은 그대로 되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말이 진리이기 떄문이다.

진리, 참다운 이치라 하는 것은 하나님이 행하는 것이나 예수님이 행하는 것이나 내가 행하는 것이나 같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고로 여기서 예수님께서 하여 준 이 말씀은 이 세상 인간으로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말인 것이다.

너희가 하늘에서 매면 매일 것이고 풀면 풀릴 것이다라는 말씀은 다시 말하면 크기는 다를지 모르지만 그러나 본질적으로 너희는 하나님과 같다. 그런 이야기인 것이다.

너희가 창조주와 같다. 질은 같다. 대소의 차이는 있고, 고저의 차이는 있으나 본질적인 질은 우리하고 하나님하고 같아야 하고 예수님과도 같아야 되는 것이다.

나는 이 땅 위에서 예수님 믿은 신자다 하는 생각보다는 나는 하나님의 대신으로 있다하는 자부심도 가져야 하겠고 그런 권위도 가져야 하고 그와 같은 행동도 해야 되겠고 그런 인식도 가져야 된다.

그래야 그리스도인인 것이다.

교회나 종교단체의 이름만 걸어놓고 있어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2천년의 기독교 역사 가운데 이렇게 된 일이 표면적으로 나타난 적이 없는 것이다.

많은 교회에서 오히려 허탄한 교리만 난무하는 것이다.



이런 일이 이루어 지려면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첫째로는 예수님을 아는 일인 것이다.

수 많은 기독교학자들이 있었지마는 예수님을 제대로 연구한 사람은 나로서는 찾을 수가 없었다.

이스라엘 시대의 사적이나 이스라엘의 종교에 대해서는 많은 학자들이 연구하고 또한 여러가지 발견을 하였으나 예수님을 깊이 연구한 학자는 나는 발견을 못했다.

이 성경내에 다수의 인위적인 기록의 삽입이 있지만 이것을 발견한 학자는 일부 소수일 것으로 추정된다. 

아마도 이 작은 은산교회가 밝혀낸 자들 중에 하나라고 생각 된다.

그런고로 예수님이 기독교 역사상 2천년동안 한번도 모습을 보여준 일이 없었다 할지라도 이상하지 않다.

모습이라 하는 것은 얼굴이나 손발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 실적이나 그 상징적인 일에 나타나 보여준 일이 없는 것이다.



현 일부 기독교 단체는 저들이 가지고 있는 거짓말을 빼면 속살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거짓말이라 하는 것은  때로는 상당히 효과가 있다.

내가 늘 하는 말이지만 예수님을 알기 위해서는 공부를 하고 연구를 해야 한다.

공부나 연구나 이 세상학문으로만 예수님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 지식을 모두 통틀어 한 사람이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만 가지고는 예수님을 모른다.

그러나 한가지 도움이 된 것은 있다. 그것은 거짓말에 속지 않는 것이다.

이 세상 지식은 예수님을 아는데 도움이 안된다. 그러나 속지 않는데는 도움이 된다.

그런고로 경우에 따라서는 이 세상 지식도 필요한 것이다.



예수님과 같은 존재로 이 땅위에 살아 있으려면 예수님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을 어떻게 아는가? 예수님은 그냥 알아지지 않는다.

예수님이 "나는 진리요 빛이요 생명이다."라고 했다.

그러면 예수님은 진리요, 빛이요, 생명이다라는 말만 외웠다고 해서 알 수 있는가?

예수님이 나는 진리다 그러면 그 진리를 탐색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예수님이 진리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 말을 쉽게 예를 들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이 나는 대수요 기하요 삼각함수이다 그렇게 말했다고 보자.

그렇다면 예수님이 대수요 기하요 삼각함수이다 그와 같은 문구만 외웠다고 예수님을 알 수 있겠는가?

당연히 대수를 공부하고 기하학을 연구하고 삼각함수을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비로서 예수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문장만 외웠다고 해도 아무 의미 없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예수님이 왜 이 세상에 왔을까?

진리요 참인 예수님이 왜 왔을까 그 까닭이 있을 것 아닌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는 데 있어서 사람으로 오셨다.

그런데 神은 사람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神이 사람으로 될 수 있다면 神이 개도 되고 소도 될 수 있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이 사람으로 나타날 수 없는 것이다.

옛날 이스라엘神이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구약에 적혀있지만 하나님은 사람으로 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어떻게 사람으로 이 세상에 왔는가 이 원리도 대단히 심오하고 힘든 것이다. 

이것을 깨달아야 한다.



다음에는 왜 이스라엘에 왔는가?

중국이나 유럽이나 넓은 땅에 나타나지 않고 작은 이스라엘 땅에 왔는가? 

그 이유도 대단히 중대한 것이다.

또 이 세상에 왔더라면 오랜 기간을 살아야 하지 않는가? 

하나님을 대신해서 가르치러 온 사람이라고 하면 무지한 인간 사회에 오래동안 있어야 제대로 가르칠 수 있지 않는가? 

왜 일년반 내지 2년 정도의 짧은 시간만 이 세상에서 보내고 갔는가? 아주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이 예수님을 깨닫는데 있어서 주요관건인 것이다.

이것이 다 이치 속에서 진리 속에서 되어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간단히 납득되지 않은 것이다.

그런고로 베드로같은 사람은 끝까지 예수님을 몰랐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짧은 동안 계시면서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왜 손수 기록을 하지 않았을까? 제자들이 나중에 예수께 들은 말을 써놓았으나 예수님의 말 그대로 썼다고 볼 수 있는가?

예수님은 그와 같은 예견을 할 수 없었던가? 

그런데도 왜 자기 손수 글을 써 세상에 남기지 않았을까? 그것도 다 까닭이 있는 것이다.

또 예수님이 죽어서 저 세상에 갔다고 한다.

그러면 지금 예수님이 계신 곳은 어디인가?

그저 저 하늘이라 하지만 지금 시대에 하늘이란 세계가 어디 있는가?

옛날 사람들이 하나님이다 천부(天父)다 하는 의미로 땅이 있고 그 위에 하늘같은 층이 있고 거기에 어떤 보좌가 있을 것으로 상상한 것인데 지금 이 넓은 우주에 예수님은 과연 어디 계시는가?

계신 곳을 알아야 내가 예수님을 아는 것이 되는 것이다.



또한 예수께서 이 땅위에서 한 일 가운데서도 그렇다.

예수님이 떡 다섯덩이로 오 천명을 먹였다 하는 것도 사람들은 예수님이 큰 기적을 행하였다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때 왜 예수꼐서 떡 다섯덩이를 가져오라 했는가?

오 천명을 먹이는데 그것이 왜 필요했을까 그 가운데 심오한 뜻이 담겨있는 것이다.

또 예수님이 부활했다라고 말하고 있으며 보통교회에서는 아직도 애굽 종교 사상에서 나온 부활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이스라엘 바리새파사람이 가지고 있는 부활사상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도 기독교학자들 가운데 제대로 연구한 사람이 없는 것이다.



다음에는 예수님은 나사로를 죽은 가운데 살리셨다.

죽은지 나흘이 지나 냄새가 난다고 했다.

썩은 냄새가 난다는 것은 없어진 것이다. 몸이 썩어서 냄새 난다 하는 것은 살이 없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없어진 가운데 예수님이 나사로를 불러냈다 하면 그것은 나사로를 살린 것이 아니고 새로운 창조인 것이다.

나사로란 사람은 이미 죽어서 냄새나는 데 어떻게 다시 나사로를 불러내었겠는가?

그러나 나사로가 아닌 새 사람을 만들어 이 사람이 나사로다 하고 예수님이 그런 헛된말씀을 했을 리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썩어서 냄새가 난 그가 다시 예수님의 목소리로 나올 수 있었겠는가?

이것이 다 예수님의 진리의 적용(application)인 것이다.



이 씨라 하는 원리(principle)를 지금까지 기독교 역사 속에서 어느 한 사람도 거기에 대한 힌트나 암시를 받은 일이 없다.

성경에 분명히 예수께서 언급했는데도 불구하고 어느 학자도 생각을 못하고 있다.

이 씨의 원리를 확실히 체득하지 못한다면 예수님의 원리를 영원히 모르게 되는 것이다.

오늘 몇 가지 간단히 이야기하였지만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그냥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가만히 앉아있어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인생은 너무나도 짧다 이 짧은 시간을 잘 이용해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과 질이 같아질 수 있도록 되어야겠다.




백천(白泉) 김준식

(P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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