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새벽에 성 안으로 들어오시는데, 예수께서는 시장하셨다.
19 마침 길 가에 있는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보시고, 그 나무로 가셨으나, 잎사귀 밖에는 아무것도 없으므로, 그 나무에게 말씀하셨다. "이제부터 너는 영원히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그러자 무화과나무가 곧 말라 버렸다.
20 제자들은 이것을 보고 놀라서 말하였다. "무화과나무가 어떻게 그렇게 당장 말라버렸을까?"
21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믿고 의심하지 않으면, 이 무화과나무에 한 일을 너희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서 바다에 빠져라' 하고 말해도, 그렇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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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말씀은 마태 복음에서는 무화과 나무가 즉석에서 말랐다고 기록 되어 있지만 마가복음 11장에서는 그 이튿날 아침에 그곳을 다시 지나다 보니까 어제 예수께서 저주했던 그 무화과나무가 말라있는 것을 보았다고 했는데 마가복음의 말이 맞다.
그러니까 마태복음에서는 예수께서 저주하기 시작했던 그때부터 마르기 시작 했다고 말했으니까 그 말도 틀리지 않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무화과나무를 질책하고 그 자리에서 기다린 것은 아니다.
곧 다른 일을 하기 위해 거기를 떠났던 것이다.
그러나 그 이튿날 아침에 다시 그곳을 지나다가 무화과나무가 완전히 마른 것을 본 것이다.
오늘 여기에서 예수께서 무화과나무에 무슨 원한 맺힌 것이 있어서 말라 죽게 저주를 한 것이 아니다.
무화과나무는 두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봄철에 열매를 맺는 것과 다른 하나는 가을철에 열매를 맺는 것이 있다.
그런데 이 나무는 가을철에 열매 맺는 나무였던 것으로 생각 된다.
그런데 봄에 열매를 맺는 것처럼 잎이 너무 무성하고 그래서 예수께서는 거기에 가면 무화과 있을 것이다 해서 그곳에 간 것이다.
가서 보니까 열매는 하나도 없고 잎사귀만 무성하게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을 속이기 꼭 적당하게 되어 있었다는 그런 이야기이다.
길가는 사람을 속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열매가 없으면서도 열매가 있는 것처럼 보인 것이다.
예수께서는 무화과나무가 미워서 그런 것이 아니고 거기 옆에 있는 제자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서 보여준 것이다.
이 세상 인간 중에는 멀쩡하게 잎이 무성한 것처럼 다른 사람보기에 유익을 줄 것처럼 보이는 말과 입술의 행동이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 속이는 경우가 많다.
오늘 여기 길가의 무화가 나무가 잎이 무성한 것이 꼭 열매가 많을 것으로 길가는 사람들이 생각하게 되어 속이는 것이다.
그런고로 예수께서는 그날 그 시각에 저주를 해서 그 나무는 말라 죽게 되었다.
오늘날 이 세상사는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외면상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국가 사회나 그 지역에 많은 사람들을 속이거나 그들에게 좌절을 주는 사람이 많다.
왜 이세상이 이렇게 되어 가는가?
예수께서는 그와 같은 상황에 가만히 두어서는 안되겠다 해서 비록 하나의 나무에 불과 하지만 그렇게 당장에 저주의 명령을 내린 것이다.
이제 이세상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열매를 맺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속임을 주는 사람들이라고 하면 시간이 오면 반듯이 하나님의 질책을 받을 것은 마땅하다는 사건을 보여 주셨다.
세상은 점점 그런 심판 날이 가까워 온다.
오늘까지 이제 그 무화과나무가 예수님이 지나가기 전까지는 잎이 무성해서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제 주님께서 도달함으로 그의 운명은 끝났다는 그런 이야기이다.
운명이 끝났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저주를 받는 나무라는 것을 보여 주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 개인이나 사회나 겉모양만 반듯하고 실제로는 그 사회에 그 이웃에 자기 자신에 하등의 이익을 주지 못하는 인간은 하루속히 이 땅 위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라면 겉치장만 화려한 사람이나 사회조직에 속지 말고 또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넘어가지 않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여기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너희도 내가 한 것과 마찬가지로 열매를 맺지 않은 나무가 여기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 있다면 그 나무로 인해 사람들이 속지 않도록 조치하라는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들이 진실로 예수님의 제자라 할 것 같으면 겉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와 같은 사람이나 사회 조직에 대해서는 즉석에서 책망을 내려주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이 하루속히 이 땅 위에서 사라지도록 해야 한다는 예수님의 의지를 알 수 있어야 한다.
요사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잘못 알고 무슨 사랑이니 뭐니 해서 덮으라 하고 있다. 용서 하라 하고 있다.
예수께서도 병든 자의 병은 고쳐주어야 된다 한 것이다. 그것이 우리들의 의무이다.
그러나 병도 들지 않고 마치 다른 사람한테는 열매가 있는 것처럼 위장하고 가장하고 많은 사람을 속이는 인간들 그것은 즉석에서 책망하고 조처를 취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반드시 그런 것을 식별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옳고 그른 것을 가릴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갖추는 것이 예수님의 제자 된 사명이요 의무인 것이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를 보고도 몇 번이나 거기에 속아 넘어가는, 그냥 지나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오늘 여기서 제자들에게 보여준 교훈은 대단히 중대한 것임을 깨달아 알아야 한다.
그런고로 우리들은 첫째는 아무리 적은 일이라도 이 세상에 잘못 된 것을 보여주는 인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모양은 반듯하지만 남을 속이는 것은 안되고 또한 뿐만 아니라 그런 존재에 대해서는 옳고 그름을 따지고 지적할 수 있는 위엄의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이제 마지막에 여기서 예수께서 해주시는 말씀은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너희들에게 이런 일뿐만 아니라 이산을 명령해서 저 바다에 던져지라 해도 던져질 것이다 한 것이다.
본문에서 “믿다”의 동사는 영어의 ‘believe’란 의미가 아니고 원어의 ‘피스튜오’( πιστεύω)로서 “확신하다”,”인식하다”의 뜻을 지닌다.
따라서 예수님의 올바른 말씀을 확신하고 인식한다면 ‘이 산을 들어서 바다로 던질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가 될 수 있다는 말씀이다.
자기 자신이 이 세상에서 남을 속이거나 아무것도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보여서도 안되거니와 상대방의 그런 존재를 판별할 수 있는 기능자도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참된 예수인이라면 세가지 능력이 꼭 필요한 것이다.
첫째는 남에게 해를 주는 위장의 존재가 되어서는 안되고 다음에는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많은 위장해 있는 자를 적출해 내는 능력을 갖출 뿐 아니라 다음에는 그런 자에게 당장에 책망을 내리는 능력의 소유자도 되어야 하는 것이다.
여러분 성경을 그저 읽어서는 안된다.
예수님이니까 나무에 저주를 해서 말라 죽게 했겠지 또 예수께서 빈말로 저 산을 바다에 던질 수 있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으로만 생각한다면 진정한 예수인이 아니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예수께서는 분명하게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보다 더 큰일을 할 수도 있다 하신 것이다.
여러분 이 성경의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가만히 보면 예수님은 진리라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참 진리라 하는 것은 다른 데는 없다.
예수님은 기적을 행하시는 분은 아니시다.
오 천명을 먹였다던지 죽은 나사로를 불러 일으켜 세웠다든지 그것은 기적이 아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예수님은 참 진리, 참 이치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참 이치를 사용할 수 있고 조작할 수 있는 분이 예수님이시다.
그런고로 예수님은 이 대우주의 원리를 포착하고 있는 까닭에 그것을 활용할 때는 기적 같은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이다.
당장에 무화과 나무를 말라 죽게 한 것은 우주의 대 원리인 이치를 활용한 것이다.
또 물위를 걸어가고 오 천명에게 떡을 먹이고 무덤속에서 나사로를 불러낸 것도 이 우주의 대 원리 즉 참 진리를 예수께서 활용했을 뿐이다.
이제 예수께서 가르쳐준 이 복음서를 자세히 읽어보면 예수님은 나는 진리이다 말을 했고 그 진리에 들어갈 수 있는 그 진리를 배울 수 있는 그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방법과 길만 우리에게 말해준 것이다.
그것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이 진리를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아니다.
진리에 가는 길을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다.
비유를 들어 이야기해보면 예를 들어 물리학을 배우려면 고등학교에 입학해야 한다.
그렇게 말했다고 하자 그것은 물리를 배우는 길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물리를 알려면 고등학교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고 그 말 자체로 물리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성경책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살펴보면 예수는 전부가 우리가 물리를 배울 수 있는 길을 말해준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진리를 알 수 있는 길을 제공해 준 나는 진리이다 나를 따르라. 내가 길이다 나를 따르라 내가 생명이니 나를 따르라 그러나 예수님은 진리 그 자체는 영생 그 자체를 이야기해 주지는 않았다.
왜 그런가 하면 그때 미련한 제자들에게 진리를 직접 이야기해 주어도 깨달을 수 없다 또한 기억도 안 된다.
이제 우리가 그 길을 찾아서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물리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길에 들어가면 우리는 자연적으로 그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알아지는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의 사는 목적은 그 진리를 배우도록 그 길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 길로 들어가야만 배울 수 있다.
그런데 그 길에 들어서는 문은 열려 있다.
그 문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예수께서 말씀한대로 이 산을 옮겨 저 바다에 던지는 것도 가능해 진다.
원리라 하는 것 이것은 어느 누구의 개인소유가 아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물체를 떨어뜨리면 땅으로 떨어지나 그러나 그것을 뜨게 하는 것도 자연 법칙의 하나의 이치를 이용하므로 가능해 진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말씀한 그 진리를 체득하면 예수님뿐만 아니라 우리들도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원칙적으로 당연한 이치요 결과인 것이다.
이제 예수께서는 그 길을 가르쳐 주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조금 전에 말씀 하신 것처럼 또 물리를 알기 위해 고등학교에 들어가야 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진리에 들어가는 길을 제시해 주신 것이다.
그 길을 찾아 들어가면 예수님이 보여준 떡 다섯덩이로 오 천명을 먹인 그와 같은 이치를 우리도 체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고로 세상에서 예수님을 믿는 존재는 어떤 존재인가 하면 이치를 깨달은 이치를 체득한 사람들인 것이다.
예수께서 너희들에게 보혜사를 주어 모든 것을 알게 하리라 한 것이 무슨 말인가 하면 바로 이 소식을 말해주는 것이다.
백천(白泉) 김준식
(P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