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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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말세에 인류에게 심판이 있다 믿고 있고 오늘날 교회에서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마가복음 16장 16절이하에 보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은 사람은 구원을 얻고 믿지 않고 세례를 안받은 사람은 구원을 못 얻는다 라고 기록되어있다.
마가16:16~20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이것은 지난번에 이야기한 것과 마찬가지로 마가복음 16장 8절이후는 그때 초대교회에서 만들어 넣은 기록으로서 후에 삽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예수님의 말씀과는 다른 소위 바울의 사상을 따라서 기록한 것이다.
오늘 본문의 말씀과 마태복음 25장 31-46절의 말도 같이 참고로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마태25:31~46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본문에서 보면 마지막 날에 내게 와서 주여 주여하는 자들이 다 구원 얻을 줄로 생각치 말라는 것이다.
예수님 앞에 나와서 이야기한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말했는가 하면 나는 당신의 이름으로 예언도 했다는 것이다.
오늘날 말하면 설교를 했다 그 말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당신의 이름으로 설교도 했고 또 귀신도 쫓아냈고 당신의 이름으로 많은 일을 했다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와 같다.
지금 교회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가?
요즈음의 기독교인 그대로인 것이다.
예수께서는 오늘날 교회가 이런 상태로 되어있을 것을 알고 계셨다.
그래서 여기에서 간단명료하게 예를 들어 말한 것이다.
우리가 당신의 이름으로 예언도 했고, 설교도 했고, 또 능력 있는 일을 했다. 또 많은 사업도 했고 훌륭한 일을 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두말없이 오늘날 기독교를 말하고 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했는가?
나는 너를 모른다 한 것이다.
그런고로 나를 떠나라 했고 보기 싫다 했으며 그 다음에는 악한자들이다 말씀한 것이다.
악을 행하는 자들이다라고 소리친 것이다.
예수님 앞에 나와서 당신의 이름으로 예언도 했고 사귀도 쫓아내고 능력 있는 일을 했다.
그러면 예수께서 착하다, 장하다, 무슨 상을 줄 것인가 해야 할 텐데 오히려 예수님은 분명히 말하기를 나는 너희를 모른다.
나쁜 일을 한 자들, 악한 일을 한 자들이라고 말하며 내 곁을 떠나라, 보기 싫다, 떠나라, 말한 것이다.
여러분 단적으로 말 할 수 있는 것은 심판이라하는 것은 기독교에 대한 심판이다.
이세상 사람에게는 심판이 없다.
마가복음에 있는 말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안 믿고 세례를 안받으면 심판을 받는다라는 그런 우매한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여러분 분명히 말하지만 심판대에 안 서려거든 교회에 직분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
목사나 장로 직분있는 자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여러분 자기 혼자 예수님을 안다고 해 보아야 무슨 소용이 있는가?
예수님이 나를 모른다면 내가 예수님을 아는 것이 무슨 가치가 있는가 말이다.
안다 하는 것은 서로 아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 앞에 나온 사람들이 예수님 당신의 이름으로 설교도 했고 예언도 했다 귀신도 쫓아 냈다 많은 일을 했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예수님은 도무지 모른다고 말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모르는 행위인 것이다.
예수님이 알면서 그렇게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 앞에 선 사람들이 지금까지 해온 일이 당신의 이름을 빌어서 했고 또 그 모든 일들은 당신을, 예수님을 위해서 그런 일을 했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위해서 일한 오늘날 기독교인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나는 너희를 모른다.
나는 이 성경을 볼 때마다 어떻게 이렇게 적절하게 말했는지 놀랜다.
이 성경을 보는 가운데서 솔직히 말하면 사도바울도 예수님을 다 몰랐다.
이 세상 기독교는 바울의 종교이다.
예수님을 믿는 종교는 아니다.
내가 늘 하는 말이지만 바울이 많은 교회에 글을 써 보내면서도 예수님의 말은 한마디도 인용하지 않았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렇게 말씀하셨다 그런 이야기는 쓰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이 이상한 것이다.
아마 기독교가 생겨서 내려온 이천년 동안 바울의 예수님의 말을 인용 안한 것에 대한 것을 지적한 사람은 극소수의 사람일 것으로 추정된다.
바울이 쓴 서신을 보면 맨 처음에 한결같이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러나 실제로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한마디도 쓰지 않았다.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만 그러나 이상하지 않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 아무도 모르고 있을 뿐이다.
바울은 예수가 부활한 것을 보고 아라비아에서 3년 동안이나 연구를 했다.
묵상하고 명상을 한 것이다.
그 사람의 결론은 예수님과 이스라엘 민족神 사이에는 대단히 격차가 있고 모순 되는데 어떻게 예수님이 살아났을까?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랫동안 명상하고 기도하고 연구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름대로의 확고한 결론을 얻었다.
그 결론은 오늘 내가 말하지 않겠다.
말해도 여러분이 잘 못 알아 듣는다.
그 결론을 바울이 깨달은 다음에 자기는 이것을 자기의 복음이라 했다.
내 복음이라 말한 것이다.
로마서 2장 16절 에 보면 말세에 예수님이 심판을 하는데 내 복음에 따라서 할 것이다 말한 것이다.
대단히 무서운 말이다.
로마서2:16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예수님이 심판하는 말세에도 내 복음에 따라서 심판한다는 것이다.
심판하는데 적용되는 기본이 내 복음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고로 사도바울이 깨달았다고 하는 복음은 절대적이다.
또 무슨 말이 있는가 하면 내 복음을 어긴 자는 하늘에 있는 천사까지도 저주를 받을 것이다 말한 것이다.
그런고로 바울이 자기복음에서 예수님이라 하는 것, 예수님은 누구이며 그가 이 세상에 오신 것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 부활한 것 여기에 대해 확고히 철학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오늘날까지 기독교인들은 그것을 잘 모르고 있다.
그런고로 바울은 절대적으로 자기 복음에 대해 자신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마지막 날에 심판할 때도 내 복음에 따라, 내 복음을 가지고 심판한다 말한 것이다.
그만큼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그 결론으로 바울은 자기복음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철학적 근거를 가지고 말해 온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아니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할 필요를 느끼지 않은 것이다.
자기의 복음이 그렇게 확실한데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은 단 일점도 인용 안한 것이다.
그런고로 로마서를 읽어보면 자기의 말과 거기에 붙여 가끔 구약의 말을 인용하고 해석하고 있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다.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가지고는 자기 복음의 내용의 근거를 설명할 수가 없다는 그런 깊은 뜻 이 있다.
뿐만 아니라 신약성경에서는 가끔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되겠으니까 바울의 복음에 맞추어 변조하거나 새롭게 추가해서 집어넣거나 하게 된 것이다.
요한복음 3장 16절도 그렇게 되어 삽입된 것이다.
요한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또한 마가복음 16장 8절 이후에도 후에 바울의 교회에서 첨가된 것이다.
누가도 바울의 제자이고 마가도 바울의 선교여행 때 따라다녔던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만 그냥 두어서는 안되겠다 생각해서 복음서에 바울의 이야기를 삽입해 넣었던 것이다.
옛날 성경에서는 삽입하기가 쉬웠다.
초기 성경은 파트먼트(partment)라 해서 널판처럼 한 장씩 되어있었다.
따라서 한 장 두 장 쌓아두었기 때문에 바울의 말을 널빤지에 새겨 한 장 끼워 넣으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다른데서 복사해 갈 때는 끼워 넣은 것까지 복사해 원본이 되는 것이다.
요한복음 3장 16절도 그렇게 되어 끼워 넣어진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의 말을 그대로 두면 바울의 철학에 모순이 생기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님 믿는다 하면 예수님이 나를 알아야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나를 모르는 그런 예수님을 믿어서 무엇 하겠는가?
그런고로 여러분 심판이라 하는 것은 기독교에 한해서 심판이란 것이 있다.
이 세상의 심판은 아니다.
소위 예수님을 믿는다 한 사람들 그들이 예수님을 제대로 모르고 떠드는 그런 사람들의 심판인 것이다.
이 세상 사람이 악하고 착하고 그런 것을 심판하는 예수님은 아니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할 적에 모든 생물이 살 수 있는 법을 주셨다.
인간들도 마찬가지로 살 수 있는 법을 마련해 주신 것이다.
따라서 인간들은 그 법칙대로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구태여 심판이란 것이 필요 없다.
다시 말하면 이 세상 인간이란 조금 착했건 조금 나빴건 그런 것이 문제(가) 안된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물처럼 예를 들면 개가 조금 사나운 개가 있고 그렇지 않은 개가 있듯이 동물로서 난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자연 법칙대로 처리되는 것이다.
여기서 왜 심판이 있는가?
예수님 앞에 나온 사람은 다른 사람과는 달라서 다음에 저 천국이란 세계로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고로 천국에 갈 수 있느냐 없느냐 그것을 선별하는 것이 심판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께서 말씀하신 심판이란 예수교인에 한해서 적용되는 것이다.
오늘날 바울종교, 바울이 만들어 논 복음은 절대성이다.
예수님도 장차 심판할 때 내 복음에 따라서 심판한다는 것이다.
자신만만하게 쓰고 있다.
바울의 서신을 어떻게 보면 이상한 것 같지만 그의 복음의 원칙을 보면 이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의 복음의 결론으로 얻은 것이 무엇인가 하면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말했듯이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언제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했다.
또 로마서에 보면 내가 내 몸을 불사를 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여 사랑이 절대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그 까닭이 어디에 있는가 하면 바울이 마련한 복음의 핵심적인 기초이론에서 나온 것이다.
바울의 이론으로 보면 결과적으로 그런 말들을 주창하게 되어있다.
이것도 예수님의 말씀과는 다르다.
다시 말하면 예수께서는 나는 빛이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했다.
그런고로 이 바울은 근본적으로 예수님을 철저히 모른 것이다.
자기 나름대로 복음의 원리를 마련한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대해 너무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많은 교회에 편지로 보내고 심지어는 하늘에 있는 천사까지도 내 복음을 무시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다 말한 것이다.
그가 그 많은 박해를 받아가면서도 전도한 것이 그가 만든 복음의 원리가 틀림없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이 그렇게 고생도 많이 하고 노력도 많이 했지만 그의 이치를 보면 천지시대 즉 이 세상이 하늘과 땅 밖에 없다고 생각되던 그 시대에는 그렇게 만들어도 별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이 세상은 우주시대이다.
바울의 이론이 맞아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거기에다 바울은 이스라엘 종교에 매여있어 더욱 옹졸해져서 그와 같은 되지 않은 이론을 내어 놓게 된 것이다.
이제 여러분께 분명히 말하지만 심판대에 서지 않을려면 예수님을 철저히 알아야 된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도 나를 알아볼 것이다.
내가 잘 믿고 못 믿고가 아니라 예수님이 나를 알도록 되어야 하는 것이다.
종교단체에 속하면 자연적으로 예수님에 속한다는 생각을 갖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헐벗었을때 나를 입혔고 내가 감옥에 있을 때 돌보았고 내가 배가 고팠을때 먹여주었다고 하니까 오른편에 있던 사람들은 우리가 언제 주님이 주릴때 먹여주고 헐벗을때 입혀주었고 감옥에 있을때 돌봐주었느냐고 오히려 반문한 것이다.
구원얻은자, 선택받은 자들은 자기들의 한 일이 예수께 한 일이라고 생각지 못한 것이다.
그렇지만 예수께서는 너희들이 그런 일을 내게 하였다 다시 말하면 어린 형제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이 말씀은 무슨 말씀인가?
내가 기독교에 속해있지 않더라도 예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은 구원 얻을 수 있다 그런 이야기이다.
종교에 속해서 종교의 교리에 매달려 예수님을 모르는 어리석음을 범치 말아야 한다.
왼편 사람들은 예수님 앞에 나아가 예언도 했고 능력도 행했고 귀신도 쫓아내고 자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는 너희를 모른다 이 악한자들아 예수님을 모르면서 예수님을 팔고 다니는 악한자들이다 한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을 빌어서 허황된 짓을 저질렀고 자기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인 것처럼 예수님에게 속한 사람처럼 행세하고 돌아다닌 사람들에게 저주가 있을 것이다.
백천(白泉) 김준식
(P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