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다가와서 물었다.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02 예수께서 어린이 하나를 곁으로 불러서,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03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돌이켜서 어린이들과 같이 되지 않으면, 절대로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0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큰 사람이다.
0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 하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하는 것이다."
06 "나를 믿는 이 작은 사람 가운데서 하나라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차라리 그 목에 큰 맷돌을 달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편이 낫다.
07 사람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 때문에 세상에는 화가 있다.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을 일으키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
08 "네 손이나 발이 너를 걸려 넘어지게 하거든, 그것을 찍어서 내버려라. 네가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 속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손이나 발 없는 채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09 또 네 눈이 너를 걸려 넘어지게 하거든, 빼어 버려라. 네가 두 눈을 가지고 불 붙는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한 눈으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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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역사가 이천년이 되었는데 이천년 동안에 종교를 가르치는 신학교도 많았고 학자도 많았는데 그러나 아직까지도 기독교는 바로 서있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왜 세상이 이렇게 되었는지 나는 이상하게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천년이라면 상당히 긴 세월이었고 그것도 옛날에 유럽에서는 학문이라면 기독교뿐이었다.
기독교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른바 학자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오늘날까지 이 상태인가?
내 생각에는 이 세상 사람들이 약간의 수준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악신에게 붙들려 있다고 보여 진다.
다시 말하면 일종의 정신이상 상태이다.
인간들 본인인 스스로 그것을 잘 모른다.
그러나 이 세상인간들이 태어나면 대개는 귀신들리기 쉽다고 보여진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 뿐만 아니라 불교, 유교, 샤머니즘 이 전부를 보면 인간은 귀신들리기 쉽게 되어 있다 보는 것이다.
이것을 이렇게 짐작만 하는 것이 아니고 역사적으로 학문적으로 검토할 때도 같은 결과가 나타난다.
옛날에 이스라엘 백성들 그 중에서도 선지자라 하면 여호와 신(神)에게 신들린 사람들이다.
신(神)이 들려 그 신(神)과 이야기한 것을 남겨 오늘날 성경에 예언서를 이루고 있다.
이와 같이 귀신들린 사람들이 예언자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신(神)들린 자가 백성의 지도자가 되어 왔지만 그 외 지역도 그런 종교가 없는 곳에서도 다소간의 차이는 있지만 그렇게 귀신들린 자들이 지배해온 것이다.
이렇게 귀신들린 자들은 스스로 정당한 판단을 할 수가 없다.
귀신이 들면 올바른 길을 찾을 수가 없기 떄문이다.
오늘 여기서 예수께서 마지막에 하신 말씀이 마지막 날에 이 세상에 사람들로 하여금 실족케 하는 소재를 가진 사람이 반드시 나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옛날에 이스라엘 민족은 신(神)이 전면에 나타나 민족의 정신을 좌우하고 있었지만 말세에는 과학이 발달해서 사람들이 모두 정상적인 생각을 갖는 것처럼 보여도 그 신(神)들이 모두 배후에서 조정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게 잠재해서 사람들의 정신 상태를 흐려 놓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사람들은 모르고 있을 뿐이다.
여러분, 예수님이 어떻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는가?
예수님이 도적질을 했는가? 아니면 정치운동을 했는가? 그가 무엇을 했는가?
그는 세상에 와서 병든 사람을 고쳐주었고 불쌍한 사람을 위로해 주었고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었다.
그런데 왜 그 사람을 죽였는가? 어떻게 죽일 수 있는가?
예수님은 정상적인 사람으로서는 죽일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신(神)이나 그런 존재들의 작용이 아니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고로 기독교 안에서도 그것을 인정한다.
사람으로서는 예수님을 죽일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신(神)이 죽였는데 어느 신(神)이 죽였는가? 물론 이스라엘 신(神)이 죽였다는 것도 바울도 알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을 죽인 것에 무슨 구실을 만들었는가 하면 그가 하나의 제물이라는 것이다.
짐승 같은 제물로 대신 바쳐졌다는 것이다.
그러면 누구를 위한 제물인가 했을때 이 세상 믿는 사람을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어처구니없는 가정인데 사람들은 그 말을 믿고 있다.
이 세상 기독교인 수가 수억인데 이 사람들이 그 가정을 믿고 있는 것이다.
그 말을 그대로 믿고 있다는 것도 사실 사람들의 정신 상태가 비정상이기 때문이다.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악신에게 붙들려 있다는 그 말인 것이다.
모두 다 악신(神) 에게 물들어서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정신을 그대로 갖고 있다면 아주 힘든 것은 모르지만 보통은 옳고 그른 것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판단을 못하는가?
오른쪽이 오른쪽인지 모르고 왼쪽이 왼쪽인지 모르면 그것은 귀신들려 있는 것이다.
오늘 여기서 예수님의 제자들도 제대로 예수님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다.
어리석게도 천국에서 누가 큰사람인지 질문한 것이다.
그러므로 제자들 중에서 장차 누가 제일 클 것인가를 질문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본 것이다.
메시아로 본다는 것은 제자들은 예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될 줄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당신이 왕이 되면 제자들 중 누구를 가장 크게 쓰실 것인가 물어본 것이다.
그떄 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앞에 세우시고 이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못 들어간다 하신 것이다.
여러분, 이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천국에 못 들어간다고 말씀하신 것에 대해 교회는 지금까지 이 어린아이처럼 겸손해야 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 신학자들이 이 말의 뜻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자기를 낮추는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 하라는 뜻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 어른이 어떻게 어린아이처럼 되는가?
어른이 어린아이처럼 된다 하면 이것은 가식이고 조작인 것이다. 이것은 허위이다.
예수께서 사람들을 향해서 허위를 행하라고 가르친 것은 아니다.
여러분, 어린아이와 다른 어른이 어린이처럼 하면 그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의 연극에 지나지 않는다. 어른이 어린아이 행세를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어른이 어린아이의 동작을 하고 있으라 하면 그것은 위선이며 가면인 것이다.
여기서 어린아이를 눈으로만 보는 인간들에게 보여준 것이다.
이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예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준 것인가 하면 이 어린아이와 같이 너희도 어린아이가 되어야 된다는 그런 말씀이다.
그런데 어떻게 어른이 어린아이가 되는가?
이 세상인간으로서는 어린아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 어린아이가 되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이 어린 아이는 어떤 어린아이인가?
예수님께서 주는 젖을 먹고 자라는 사람인데, 젖을 먹고 자란 사람은 어린아이가 아닌가?
예수님께서 주는 젖을 먹고 사는 사람으로서의 어린아이인 것이다.
예수님은 그 젖을 무엇이라 표현했는가 하면 내 살과 내피를 먹지 않으면 너희에게 생명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대신하셨다.
예수님의 살과 피 이것이 젖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주시는 젖을 먹는 인간만이 생명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말은 결국 너희는 이 어린아이와 같이 예수의 살과 피를 젖으로 먹는 새로운 어린아이가 되어야 한다 그 말씀이다.
우리가 지금 이 세상에서 육체로 난 인간은 어린아이로 될 수 없다.
어린아이가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인위적이며 불안전하고 불완전한 조작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우리가 예수님이 바라는 참다운 인생이 되려고 한다면 어린아이가 되어야 한다.
그 어린아이는 내속에 있는 것이다.
이 존재는 세상에 있는 떡을 먹고 사는 사람이 아니다.
이 어린아이는 예수님이 주는 젖을 먹고 사는 존재인 것이다.
내가 늘 해오는 이야기이지만 인간은 M․G가 되어야 하는데 바로 그 G가 신격을 갖는 어린아이인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이 주시는 젖을 먹고 사는 하나의 신격의 인간인 것이다.
진짜 그리스도인은 이중의 격을 가진 인간이다. 즉 이중인간인 것이다.
표면상으로는 사람이지만 그 속에는 오직 예수님의 젖만 먹고 자란 신격의 인간이 있는 것이다.
이 신격의 존재는 세상에 있는 동안에 즉 인간의 몸 안에 있는 동안은 어린아이 인 것이다.
이렇게 젖을 먹는 존재인 이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려면 천국에서 가능한 것이다.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언제나 어린아이인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이 어린아이처럼 되지 않고는 결단코 천국에 갈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 세상에서 태어난 인간은 아무리 훌륭해도 이 땅 위에 살면서 한 60~70년 활동하면 끝난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조금 착한 일을 한다고 해서 또 그리고 예수님을 믿어서, 부처를 믿어서 천당이고 극락에 간다.
그런 막연한 말을 받아들이면 안 된다.
이 세상 운명으로 난 육체적 인간은 이 세상의 법칙대로 살아가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다.
이제 예수께서 이 땅 위에 오셨다가 돌아가신 이후로 비로서 인간에게 예수님의 젖을 먹고 자란 어린아이가 될 수 있는 새로운 창조가 시작된 것이다.
이 어린아이는 인류가 먹고 자란 어머니의 젖과는 다른 예수님이 공급해주는 피와 살로 된 젖을 먹어야 자라는 것이다.
이 세상의 떡을 먹고 자란 어린아이가 아닌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주는 살과 피를 먹고 사는 인간은 이 세상에서 본연의 세계로 옮겨지는데 그곳을 가리켜서 소위 천국이라 말하고 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젖을 먹고 자란 존재인 이 어린아이가 우리에게 조성되어 있지 않으면 인간으로서 아무리 훌륭해도 시간이 오면 땅속으로 들어갈 뿐이다.
그런고로 오늘 여기서 예수께서 해 주신 말씀은 대단히 주요한 말인데 제자들이 제대로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께서 어린아이를 제자들 앞에 세우고 이 어린아이처럼 되라고 말씀했던 것이다.
너희 속에 새로운 인간이 조성되어 어린아이 생활을 해야 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 속에 저 예수님의 젖을 먹고 사는 인간이 조성되면 우리 생활의 본분과 우리의 생활의 길은 이 세상 인간들이 쫓는 그 길과 같은 길이 될 수가 없다.
오직 예수님의 젖을 먹고 사는 인간이므로 예수님의 길만 쫓아서 그 길만 따라갈 것이 아닌가?
젖 먹는 어린아이는 누구를 따라다니는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어머니를 따라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께서 공급하는 젖을 먹고 사는 우리들은 예수님의 길을 자연히 따라가고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들고 예수의 발자취를 그대로 밟으려고 하는 것이 자연적인 원칙이 아니겠는가? 그런 뜻이다.
우리 인간에게는 이 세상에 사는 인간성 외에 저 하늘에서 보내주는 신격이 들어와 변화를 받지 않으면 이 세상의 악신이 들어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수께서 다른 곳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가 하면 귀신들린 사람의 이야기이다.
어떤 귀신들린 사람이 귀신을 내 쫓고 깨끗이 청소를 해 두었는데 그곳에서 나간 귀신이 여기저기 다니다가 갈 곳이 없으니까 옛날 있던 집으로 다시 와보니 깨끗이 청소가 되어 있어 이제는 자기뿐 아니라 다른 귀신 일곱을 데려와 살게 되어 전보다 훨씬 더 나빠졌다는 비유를 든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 안에 예수님의 양식을 먹고 사는 인격이 조성되지 않으면 우리들의 빈 마음 속에는 이 세상의 잡신들이 들어와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날 이스라엘인들은 이스라엘 신(神)이 들어와 있어서 그 생각이 정상적이지 못했기에 예수님을 죽인 것이다.
예수님을 죄인으로 알고 십자가의 형틀에 매달리게 한 것이다.
하나님이 지어준 본연의 인간의 정신으로는 절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들의 마음속에 그 신(神)이 들어와 있어서 그 신(神)의 작용을 받는 까닭에 예수님을 죄인 취급했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아 죽이면서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은 것이다.
이제 지금 이 세상은 옛날 이스라엘인들에게 들어있던 그 신(神)이 그 모양을 변경해서 사람들에게 가면을 씌우고 거기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예수님의 젖을 먹고 사는 어린이의 인격이 조성되지 않고 우리의 심령이 비어 있게 되면 다른 귀신이 나를 점령해 버리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알아서 예수님의 젖을 먹고 사는 인간으로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노력이 늘 있어야 한다.
백천(白泉) 김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