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산교회
 
작성일 : 16-02-06 10:54
설교제목 : 엘리야
 설교일자 : 1994.02.06
 KEY WORD : @ 변화산 모세 엘리야 아들 그의말
 성경구절 : 막09:02~13
 관련구절 : 마17:01~13, 눅09:28~36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015  


02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03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04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

05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06 이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

07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08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

0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고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10 그들이 이 말씀을 마음에 두며 서로 문의하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11 이에 예수께 묻자와 이르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12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13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함부로 대우하였느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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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제자들을 데리고 산에 갔을 때 잠깐 제자들을 떠나서 약간 거리를 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때 제자들이 보니 예수께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곧 구름이 가리면서 하늘에서 소리가 있는데 너희들은 예수님의 말만 들으라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는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고 예수님 혼자만 있었으며 그러므로 제자들 사이에 의문이 생겼던 것이다.

그래서 엘리야가 온다는 이야기에 대하여 예수님에게 질문한 것이다.



이때 예수께서 말하기를 엘리야가 이미 왔으나 “사람들이 엘리야를 함부로 대우한다”에 대한 기록이다.

여기 “기록된 바와 같이” 말은 틀림 없이라는 말로서 엘리야가 왔으나 저들이 틀림없이 자기들이 좋을대로 대하고 있다는 말인 것이다.



이스라엘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선지자가 모세와 엘리야이다.

엘리야는 한때 이스라엘 나라에 3년동안 비가 오지 않아서 큰 고통을 당할 때 산 위에 올라가 기도를 하니까 큰비가 내리게 되었다는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큰 일을 행한 사람이다.

엘리야 당시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들이 바알(Baal)신을 섬겨 왔는데 여기서 바알이란 말은 “주인”이란 말이다.

그러므로 주인神을 의미한다.

이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호와를 섬기는 것보다 바알 신을 섬기는 사람이 더 많을 정도였다.

그때 엘리야가 바알神과 여호와神을 경쟁시키는 것이다.

먼저 돌로 제단을 쌓고 그 위에 제물을 올려놓고 어느 神이 받는가 내기를 한 것이다.

먼저 바알神의 제자들이 하루종일 제단을 돌며 제물을 불살라 달라고 호소를 했지만 아무 응답이 없었다.

그러나 엘리야는 한번 기도를 하니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물을 불살랐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이스라엘 나라의 위대한 선지자였던 것이다.



오늘 여기에서 예수님과 같이 있는 두 사람을 모세와 엘리야라 한 것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아니고 이것은 제자들의 환상이나 추측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사람은 모세와 엘리야이므로 제자들이 그렇게 본 것이다.

모세와 엘리야는 죽은 사람이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 나타날 수 있는가?

미련한 인간들이 예수님과 같이 말하는 사람을 보고 제멋대로 모세와 엘리야라 한 것이다.



여호와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땅에서 물이 없어 고생할 때에 여호와께 빌어서 물이 나오게 했는데 그때 바윗돌을 한번 친 것이 아니라 두 번 쳤다고 해서 그 죄값으로 모세를 죽여버린 것이다.

여호와가 모세를 죽인 것이다.

그것도 사건이 있은 후 40년이 지난 뒤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죽인 것이다.

죽은 사람이 오늘 여기에 나타났다 하는 것도 옛 사람이 하는 말이다.



엘리야는 자기 제자 엘리사와 요단 강을 건널 때 자기의 겉옷을 엘리사에게 벗어주고 강을 건너 없어졌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승천했다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도 엘리야는 죽지 않고 살아있다 그렇게 보는 것이다.

이것도 엘리야가 요단강 건너편으로 가서 어디에서 죽었는지 모를 뿐이지 공중으로 올라갔다는 기록은 실제 일어난 일이 아니다.

이와 같이 모세와 엘리야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위대한 선지자들이다.

그러나 죽은 사람이 살아와서 다시 나타났다 하는 것은 실제 일어난 것이 아니고 제자들의 환상 혹은 추측에 의한 기록이다.



내가 이전에도 말했지만 여기에서 보인 두 사람은 예수님이 임명한 존재 즉 예수님의 부름을 받고 온 천사 같은 존재임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몇 시간 후에는 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할 일이 있는 것이다.

거기에 대하여 예수님은 이 일을 지켜보는 증인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스라엘 법에는 한 사람의 증인으로는 증거로서 인정이 안된다.

적어도 두 사람 이상이 있어야 되는 것이다.

이 두 존재는 이미 선정되어 있는 분들이지만 이제 후세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거기에 모습을 드러내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까지도 기독교는 이것을 모르고 모세와 엘리야 라고 말하는 무식한 제자들의 말을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그때 사람들로서는 미개해서 그렇게 생각할 수가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제 세상을 떠나는 마당에 사람에 대하여 보여야 할 일도 많지마는 가장 중요한 사업은 神에 대한 문제인 것이다.

이 우주공간에 지금도 神들이 많지만 神들이 인간 사회뿐만 아니라 다른데 있어서도 좋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우주가 깨끗해져야 될 마당에 있어서는 인간사회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인간이 큰 무엇이나 되는 것처럼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온 우주적으로 볼 때에 인간이 사는 지구덩어리 다시 말하면 태양계라 하는 것은 그리 크게 문제도 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우주간에 있어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神들이 문제인 것이다.

이 신들 가운데는 올바른 신도 있지마는 그 가운데는 악神도 있는 것이다.

우주에 있어서도 우주를 곤란하게 하고 땅덩어리에서도 神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미혹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이 神들이 저마다 잘났다고 할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자기가 하나님이라 칭하는 것도 서슴치 않고 인간들을 농락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 우주가 근본적으로 깨끗해지는데도 이와 같은 악神들이 없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없어지지 않은 한 태양계는 물론 우주는 깨끗해 질 수가 없는 것이다.

 


예수님은 실질적으로 하나님과 함께 원리원칙에 대한 일을 집행하거나 지시하거나 영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두 존재를 임명한 것이다. 예수님은 이 두 존재를 임명해 오늘 이 산에서 보일 필요는 없었다.

미련한 제자들한테 특별히 그런 중대한 사항을 보여야 할만한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세상에 왔던 바에는 그래도 장차 지구상에 깨달을 사람이 있을 것이다.

아니 있어야 된다 하는 의미에서 보여주셨던 것이다.

인간들이 두 사람을 꼭 보아야 할 이유도 없거니와 알아야 될 이유도 없지마는 예수님은 일단 이런 사건이 우주를 청결하게 한다거나 깨끗하게 하는 사건에서 이런 실행 집행자를 임명하는 것을 이렇게 지정하는 것을 알 사람은 알아야 된다 하는 사건이다.

이것을 인간들이 다 알아야 된다는 의미는 아닌 것이다.



또 그때 그 광경이 너무 놀랄만하므로 베드로는 집을 셋을 지어 하나는 예수님이 살고 다른 집에는 엘리야가 있고 또 다른 집에 모세가 있고 영원히 이 산에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로 그 광경이 좋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 놀랄만한 광경은 없어져버리고 예수님만 있었고 이제 제자들과 함께 내려오는 도중에 예수께서 이제 본 것을 인자가 고난을 받은 후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는 일절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제자들 가운데는 의문이 생긴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엘리야가 온다 하는 이야기는 널리 퍼져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제자들이 본 사람 가운데 엘리야 같은 사람을 보았기 때문에 엘리야가 온다 하는 것이 어떻게 되었느냐고 예수님에게 질문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이 엘리야가 이미 왔다고 말씀 하신 것이다. 

엘리야가 왔으나 “사람들이 그를 자기들 멋대로 대하고 있다”는 원어로 “  καὶ ἐποίησαν αὐτῷ ὅσα ἤθελον“로 여기서 “저들이 원하는 대로는 “호사 에델론”이다 . 



이 말씀은 (마태 17:12절에 언급한 것과 같이 저들이 인자에 대해서도 자기들 멋대로 행하여서  인자도 그들로부터 고난을 받으리라 하신 말씀을 상징적으로 가르치신 말씀이다)  얼마나 중대한 말인가?

다시 말하면 인자에 대하여 무슨 대접을 한다. 영광스럽게 무엇을 한다 그런 의미가 아니고 자기들의 원하는 대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엘리야란 무슨 뜻일까? 살펴보자.

이스라엘의 사람들의 이름은 본래는 성이 없다.

우리나라도 옛날에는 마찬가지였다.

이름을 짓는데 그 사람의 성격이나 하는 역할 또는 그 사람이 바라는 희망 등으로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엘리야의 히브리 원어를 보면 “여호와는 엘” 즉 여호와는 신이시다” 이란 말이다.

여기에서 ‘엘’은 神이라는 말이고 ‘야’는 여호와란 말이다.

그런데 여호와란 말은 이스라엘 사람이 바벨론에 잡혀가서 돌아온 이후로 부르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성경책에 여호와란 이름이 나오면 전부 주(Lord)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런데 히브리 말은 자음만 있고 모음이 없기 때문에 어떤 글자의 발음은 모음을 붙이기에 따라 다른 것이다.

따라서 세월이 지나면서 자기 민족神의 발음은 무엇인지 모르게 되어 버렸다.

나는 이것도 여호와가 예수님 때문에 자기 백성에게 명령한 술책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엘리야는 무슨 말인가 하면 여호와神이 이미 왔다는 소리인 것이다.

인간인 엘리야가 왔다는 말이 아니다.

바로 여호와神이 왔다는 의미인 것이다.

실제로 예수님의 말씀대로 엘리야 神이 지금 이스라엘 나라에 와 있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하면 예수님 나기 전부터 여기에 벌써 와 있었다는 것이다.



여호와가 이 땅에 이미 와서 저희가 인자를 제멋대로, 자기의 계획대로 원하는 대로 하고 있다는 말씀인데 그러면 그 뜻은 무엇일까?

이제 몇 시간후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아 죽이는 일인 것이다.

그런고로 오늘이 성경 말씀은 아주 정확한 말이다.

명백하게 예수님이 이것을 천명해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말씀이 이 천년을 내려오면서 대중에게 제대로 설명되지도 않았고 또 설명할 수도 없고 또 한 설명하면 기독교는 성립이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엘리야란 죽었던 사람이 다시 나타난 것처럼 조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여기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아주 명확하고 분명하다.

엘리야가 이미 왔고 즉 여호와 神이 왔고, 와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무슨 계획을 세우고 있는가 하면 나를 십자가에 달아 죽일 계획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멋대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 계획대로 진행을 하고 있다.

누구에 대하여 그 일을 진행하는가 하면 바로 인자에 대하여라는 것이다.

일점일획도 틀림없는 아주 정확한 것이다.



예수님은 사람의 손에 죽지 않는다.

사도신경에 빌라도의 손에 죽은 것처럼 되어있으나 예수님은 사람 손에 죽지 않는다.

인간으로서는 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죽일 수 없다.

또 예수님이 어린아이와 같은 인간의 손에 죽을 수도 없는 것이다.

오늘 여기에서 분명히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를 죽이는 神이 이미 와 가지고 자기의 계획대로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었던 것이다.



백천(白泉) 김준식

(P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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