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에 대하여 수군거려
42 이르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자기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에서 내려왔다 하느냐
4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
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
예수님이 유대인들 앞에서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이다."라고 말했을 때 "저 사람은 우리가 다 아는 갈릴리 지방에 살고 또 그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그 형제들도 다 아는데 무슨 하늘에서 왔다는 소리인가?" 수군거렸던 것이다.
그것은 이 사람들이 예수님의 근본이든지 그 말씀이라던가, 실질적인 그의 증거와 그의 말한 원리는 전혀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못 깨달은 것은 그들이 알고 있는 지식이 구약이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자기들의 이웃에 사는 예수님의 아버지, 어머니, 그 형제들을 다 알고 있고 보고 있는데 무슨 하늘에서 왔다는 말인가? 하고 무시한 것이다.
이것이 보통인간들에게 있는 현상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사람들은 절대로 진리라고 알고 틀림이 없다고 보는 지식이 하나 있다.
그것이 구약인 것이다.
이스라엘 종교의식인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들의 지식이다.
다음에는 이 세상 지식이 하나 더 있다.
그 아버지, 어머니, 그 형제들을 다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늘에서 왔다는 말이 있을 수 있는가?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런 말도 간단히 보고 넘기면 여러분도 진리를 깨닫기 힘들다.
이 사람들이 왜 예수님을 몰랐는가?
예수님이 하신 표적이라던가 그의 말씀이라던가 이것이 전혀 이해가 안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몇 천년 전부터 내려오는 조상神이 있고 조상 중 훌륭한 사람들이 많고 또 그들의 지식도 알고 있는데 거기에 위배되는 말과 행동을 보이므로 엉터리 같은 소리 하지 말아라 하며 예수를 배척한 것이다.
예수님의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다 그렇게 훌륭한 사람도 못되고 우리가 보기에는 평범한 사람으로 보이는데 그 사람들의 뱃속에서 나온 예수님이 아닌가 하늘에서 왔다는 말이 웬 말인가?
오늘날 우리들도 이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것이다.
오늘날 이 세상에 내 보기에는 예수님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다.
나는 기독교 학자들이 기록한 서적을 다는 아니지만 주요한 것은 모두 보았다.
학생 때에는 동경에서 유명한 사람의 설교를 듣기 위해 이 교회 저 교회 안 가본 데가 없을 정도였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알기 위해서 그리고 기독교 종교를 알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지금 와 보면 허구에 찬 말 뿐이었다.
그 사람들이 고의로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지만 또 자기 나름대로 옳다고 주장하는 말이었겠지만 지금 보면 다 허무한 엉터리 같은 말들이었다.
그것이 우리 인간 사회의 일인 것이다.
인간이라 하는 것은 자기가 알고 있는 이 세상에서 보는 것 그것을 기준하게 마련이다.
여기에 유대인들도 그렇거니와 오늘날 이 세계 인간들도 다 그렇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이 세상 지식이라고 하는 것이 참 지식이라고 볼 수 없다.
이 세상 학문가운데 가장 귀중한 것이 옛날에는 신학이요 그 다음에 철학이며 의학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학문 중에 최고봉은 물리학이다.
또 물리학 중에서도 전기학 인 것이다.
저는 일평생 전기의 법칙을 지배하는 수학공부를 계속해서 해왔다.
지금도 하루에 한번정도라도 수학문제를 다루지 않으면 오늘을 산 것 같지가 않다.
그러나 얼마전에 느꼈지만 이 전기학 학문자체도 엉터리인 것이다.
왜냐 하면 전기자체가 무엇인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전기가 무엇인가 그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전기를 공부하는데 전기로부터 일어나는 현상(phenomenon)을 공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 현상을 수학적으로 표현하는 것 뿐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전기의 가장 생명체라 할 수 잇는 전자란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다.
전자 자체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전자가 움직이면 전파현상이 생긴다.
자기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그 현상이 얼어나는 법칙만 알고 있을 뿐이지 왜 그런 일이 생기는가 그것은 전혀 모르고 있다.
그런고로 학문자체가 다 엉터리는 아닐지라도 하나의 구름 잡는 것과 비슷하다.
본체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무식하다고 하는 인간이나 안다고 하는 인간이나 비슷한 것이다.
그러므로 참다운 진리의 소재이며 진리의 본체인 예수님을 바로 보고도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아는 지식이라고 하는 것이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이고 그 어머니 마리아도 알고 그 형제들을 아는 것이다.
또 자기조상 아브라함과 그들의 민족神인 여호와를 섬겨왔고 그 성경이라는 경전을 가지고 있는 것을 자랑으로 알고 있는데 그것에 막혀서 예수가 행하신 일이나 그 말을 전혀 이해를 못한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그때 유대인만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이상하게도 이 세상에 신학자, 철학자 그렇게 많았지만 여전히 예수님을 아는 인간을 나는 보지를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무수한 예수님에 관련된 책을 만들었지만 그들 가운데 예수님을 바로 설명한 저자는 보지 못했다.
이 성경조차도 번역이 제대로 안 되어있는 곳이 있다.
오늘 본문 6장 44절의 그 뜻은 이렇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가 저를 내게로 인도해야만 나에게 올 수 있고 나는 저를 마지막 날에 하늘로 일으킬 것이다.
그와 같은 이치가 아니라면, 그와 같은 원칙이 아니라면 저들은 내게로 오지 못할 것이다. 그런 뜻이다.
즉 다시 말하면 이 원칙이 무엇인가 하면 나를 보내신 아버지가 저들을 내게로 인도할 때 나는 저들을 마지막날에 일으키는 것이다.
이런 원칙이 아니라면 저들은 내게로 올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상의 설명이 아니라고 원리를 말하는 것이다. 오늘 성경의 말과 비슷한 것 같지만 그 근본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깊은 뜻이 있다.
다시 말하면 아버지께서 저들을 내게로 이끌어 주는 원리하에서 저들이 나에게 올 수 있고 나는 마지막 날에 저들을 일으킬 것이라는 뜻이다.
신약을 쓴 언어는 ‘코이네’ (Koine Greek)라는 희랍어인데 이 말은 알렉산더 대왕이 근동의 패권을 장악하면서 전파된 대중언어다. 문학적인 말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그 말을 몰라서 그런지 아니면 고의적으로 잘못된 것인지 모르지만 성경을 보면 중요한 곳이 제대로 번역이 되어있지 않은 곳이 있다.
그러므로 이세상 무식한 대중이 진리를 제대로 알 도리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사람들이 만들어낸 이 세상지식을 가지고는 절대로 예수님을 알 수 없는 것이다.
이 세상 지식이란 자연계에 나타나는 현상(phenomenon)을 표현하는 지식이지 근본문제, 원칙을 알아낼 수 있는 지식은 없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 또 중요한 것은 마지막 날이란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을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심판 날 마지막 말세의 날로 지정된 어느 날자로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희랍어로 ‘에스카테 헤메라’ (“ἐσχάτῃ ἡμέρᾳ”)로 말세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 앞에 온 사람의 최종 날을 가리킨다.
다시 말하면 그 사람의 이 지구상에서 끝나는 날을 말하는 것이다.
이 세상 종교가 말하는 세상이 다 없어지는 그런 날이 아닌 것이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가 그 사람을 내게로 보내면 나는 그 사람을 그의 마지막 날에 그 사람이 이 세상의 육신으로 생이 끝나는 날 저 곳으로 옮긴다 그런 말인 것이다.
이 세상의 말세가 아닌 것이다.
말세라 하는 것은 하나의 세대(generation)를 말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기간을 말하는 것이고 하루 이틀 날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온 그 때부터 말세인 것이다.
마지막 날이라 하므로 마치 어느 하루 날짜로 보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지 않다.
예수님이 온 이후로 말세라 했는데 벌써 2천년이 지났다.
그런데 앞으로도 얼마나 더 갈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멀지 않다고 보고 있지만 그래도 그 멀지 않다는 것이 하늘의 측정시간이기 때문에 우리들의 시간하고는 같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말세라 하는 것을 어느 한 날로 규정하는 것은 터무니 없는 잘못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마지막 날은 예수님 앞에 온 그 사람의 이 세상에서의 삶의 마지막날을 가리킨다.
아버지가 내게 데려다 주면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저위로 올린다.
이런 원칙이 아니라면 저들이 내게로 올 수 없다. 그와 같은 이야기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우리들에게 원칙을 설명해 준 것이다. 대단히 중요한 이야기인 것이다.
이 말은 무슨 말인가?
그것은 우리가 종교적 수양을 한다, 믿는다, 기도를 한다 이런 것을 가지고는 구원의 사업이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이야기인 것이다.
천연적으로 하나님이 마련한 원리원칙에 맞게 다시 말하면 자연법칙과 같이 원리원칙에 합당하게 되어 있지 않으면 그는 희망이 없다 그런 말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영생의 길이라 하는 것은 천명이다 운명이다 그런 의미인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일을 한다 역사를 한다, 기도를 한다, 무엇을 한다 하는 것도 우리가 가지는 의무로써 필요하고 또 의미 있는 일이지만 근본문제는 아버지가 내게로 보내면 내가 저를 마지막날, 즉 그가 이 땅에서 생명이 끊어지는 날 저 위로 올린다 하는 원칙이 아니라면 즉 그 원칙안에 있지 않다고 하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을 다시 말하면 천연적인 현상 혹은 쉽게 말하면 자연법칙적인 현상에 의지하지 않으면 내게 올 수 없다는 의미인 것이다.
이것은 근본문제이다.
내가 늘 하는 말이지만 씨의 문제이다.
내 속에 있는 씨가 움터서 자란다 하는 것을 내 자신도 인식을 해야 하는 것이다.
내속에 씨가 움텄는가 아닌가 스스로 자문해 보고 반성해 보아야 한다.
그런고로 하나님을 인식하고 예수님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자신을 인식하는 것도 또한 중요하다.
자기자신을 인식해야만 내가 저 세계로 올라갈지 혹은 그렇지 않으면 저 밑으로 내려갈지 스스로 짐작할 수 있을 것 아닌가?
내가 저위로 올라갈 수 있는 존재라는 확신을 가지고 또 자신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고로 우리들도 이 세상에서 예수그리스도의 형제와 제자로 있는 바에는 그에 마땅한 일 그런 원칙이 내게 이루어질 수 있는 존재로 남아야 하는 것이다.
이 세상일에 몰두하여 시간이 지나 아무 소용 없는 존재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백천(白泉) 김준식
(P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