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42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43 이르시되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44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45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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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란 말은 히브리어로 메시아(Messiah)인데 ‘사명을 받은자’란 의미이다.
다시 말하면 사명을 맡은 사람이다.
그런 사명을 줄때에는 옛날 이스라엘에서는 머리위에 기름을 부어 표시했던 것이다.
그래서 기름부음을 받은자, 사명을 받은자란 의미이다.
여기에서 주가 내 주께 말했다는 표현이 있는데 처음의 주라는 말은 여호와란 말이다.
두 번째 나온 주라는 말은 내 주인, 상사 윗사람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처음에 나오는 주는 히브리 말로 여호와란 의미이고 두 번째 주는 히브리 말로 ‘아도니’라는 내 주인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여호와가 내 주께 말하되 ‘네 원수를 네 발아래 둘 때까지’ 그런 의미이다.
그런데 이 아도니란 말은 유대인들이 나중에 여호와에 대해서도 썼던 것이다.
그런고로 주란 말이 두 번 연속해서 나오게 된 것이다.
여호와란 말은 BC4세기경부터 쓰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여호와가 선지자를 통해서 이름을 부르지 못하도록 만들었는데 교회에서 무엇이라고 변명하는가 하면 여호와란 이름이 너무 거룩하므로 함부로 부르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름이라는 것을 지었다면 부르는 것이 원칙이다.
여호와께서 내 주께 말하되 여기서 내 주란 내 상사, 나의 주인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리스도가 누구의 자손인가를 물었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의 자손이라 대답한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대답이 그러면 다윗이 어떻게 자기 자손을 향해서 주라고 말했겠는가?
말하자면 다윗이 자기의 자손을 가르켜서 주 (Master), 상사라고 말했다면 그것이 말이 되는가? 모순이 아닌가? 그런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바리새교인들이 한 말도 못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라면 다윗이 왜 그를 가지고 내 주인 내 상사 아도니라고 말했겠는가? 이상하지 않은가?
이 말은 시편 110편 1절부터 있는 말이다.
시편110: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선지자들이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다 말한 것을 지어내어 한 말인가? 그렇지 않다.
마태복음 2:1절부터 나온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이며 베들레헴에서 날것이다.
그리고 그가 왕이 될 것이다라는 예언의 이야기는 이사야 7:14절, 미가서 5:2절 이하에 분명히 나온다.
메시아는 다윗의 자손으로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나겠다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2:1~5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이사야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미가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으로서 베들레헴에서 난다는 말은 예언서 중 가장 중요한 이사야서에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말처럼 시편에서는 다윗이 메시아를 보고 내 주인이시다라는 말을 했으니까 자기 아들을 보고(유대나라에서는 자손이라는 말과 아들이라는 말이 같다) 무슨 상사, 윗사람이라고 말을 했음으로 그것이 무엇인가?
구약성경의 모순점을 예수께서 지적해 주신 것이다.
메시아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줌과 동시에 다윗자체가 메시아를 보고 내 상사, 내 주인이여 했는데 어떻게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 되는가?
이 말은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건 아니건 간에 구약이 모순투성이 임을 증명 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이 적절하게 지적해 주신 것이다.
구약사상에 투철한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메시아를 베들레헴에서 난 다윗의 자손이라고 어떤 데에서는 말하고 있는가 하면 또 오늘 여기서는 이런 글이 적혀있지 않느냐 똑똑히 보아라 하는 뜻인 것이다.
바리새교인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나쁜 사람으로 보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
옛날 그들은 이스라엘의 지도자급이었고 우수한 사람들의 집단이었던 것이다.
성경에는 바리새교인들의 자세한 기록이 나타나 있지 않지만 성서고고학자의 최고봉인 알브라이트라는 사람이 발견한 이스라엘 고서에 보면 오늘날 이스라엘 나라의 모든 물질적, 정신적, 종교적, 산업적 기초를 마련해 준 것이 바로 이들 바리새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바리새교인들이 이스라엘 생활에 주요한 이정표를 마련해 놓은 것이다.
그 사람들을 향해서 예수님이 성경의 어떤 곳에서는 메시아를 다윗의 자손으로 표현했지만 또 어떤 곳에서는 ‘아니다’라고 되어있지 않느냐 지적해준 것이다.
메시아는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여호와의 사자, 여호와의 사명을 받아 이스라엘에 군림하는 메시아이다.
그런데 이 메시아는 꼭 온 것이 아니다. 오지 않았다.
여호와의 메시아는 이스라엘나라에 나타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왜 메시아란 예언을 해두었는가 하면 여호와는 두 가지 측면에서 한 것이다.
만일에 예수님이라 하는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왔을 때 그를 설득해서 자기의 부하로 만들어 여호와의 권한을 전부주어서 메시아로 되게 하려 했던 것이다.
그래서 예언에 여러번 메시아에 대한 사항을 말했다.
그러나 메시아는 나타나지 않았다.
왜 나타나지 않았는가? 예수님이 여호와의 의도를 단호하게 배척하신 것이다.
그런고로 구약 예언서의 메시아는 오지 않았고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자기를 메시아라 했는데 이것은 자기 아버지의 사명을 받은 자임을 말해준 것이다.
그런고로 메시아를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여호와의 사명을 받은 자이고 하나는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사명을 받아 이 땅에 온 자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되었던 간에 다윗의 자손이란 것은 말이 안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여호와는 메시아를 왜 다윗의 자손으로 말해 주었는가 하면 다윗이 이스라엘 나라에서 가장 여호와에게 충성을 다하고 복종했음으로 그 사람계통에서 메시아가 날 것이라 말해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스라엘 혈통으로 나지 않았다.
또 예수님은 이스라엘 땅에서도 나지 않았다.
마태 복음 1장과 누가 복음 1장에 보면 처녀가 잉태하여 아이를 낳으면 이 자가 큰 자가 된다 한 것인데 기록된 히브리어의 ‘알마’(almah)는 처녀라는 말이 아니고 젊은 여자라는 말이다.
‘처녀가 잉태하여’라고 기록된 것이 아니라 70인역 번역 과정에서 조작된 것이다.
즉 젊은 여자가 아이를 베들레헴에서 낳으면 그 아이가 메시아가 될 수 있다고 써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유대나라에서 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마태복음에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낳았다 기록되어 있으나 그 말도 마태가 쓴 것이 아니다.
마태가 쓴 마태복음은 처음에 히브리어로 ‘로기아’(logia,말씀)로 예수님의 말씀만 기록한 책인 것이다.
예수님과의 대화만을 기록한 언행록인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희랍말로 번역될 때 예수님의 족보가 추가된 것이다.
예수님의 족보를 써 놓았는데 이것도 누가복음의 기록과는 다르다.
오늘날 기독교 신학자들은 누가복음의 족보는 모계중심의 마리아의 족보이고 마태복음의 기록은 부계중심의 요셉족보의 기록이다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마태복음에 계속해서 보면 마리아가 임신을 했는데 그때에 로마정부가 호적 하라 해서 마리아와 요셉이 베들레헴으로 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관이 없어서 결국 말 구유위에서 예수님을 낳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 역사적으로 호구 조사란 일이 없었다.
요세푸스의 ‘유대고대사’에 의하면 AD 6년에 팔레스타인에서 로마식 호구 조사가 이루어진 사례를 언급하고 있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당시에는 호적명령이 있었다 하더라도 요셉과 마리아가 산 곳은 갈릴리 지역이었다.
그 곳은 헤롯이 통치하는 지역이므로 로마정부에서 호적명령을 했다 하더라도 통치지구가 다른 지역으로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베들레헴은 로마에서 직접 파견한 총독치하에 있었고 갈릴리 지방은 헤롯의 통치하에 있었는데 호적이라는 것도 통치지역내의 인구조사가 이루어 져야만 되는 것이다.
북쪽 갈릴리 백성이 통치구역까지 벗어나 남쪽 유대지역 베들레헴으로 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것은 교회가 나중에 조작한 것이다.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만들기 위해 억지로 조작을 한 것이다.
그러나 아이를 가진 마리아와 요셉이 애굽으로 갔다가 나중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이야기는 사실이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마리아가 임신을 했다.
이스라엘 법에 처녀가 아이를 가지게 되면 모든 사람 앞에서 돌로 맞혀 죽게 되어 있었다.
마리아는 자기가 남자와 관계가 없었는데도 임신한 사실을 알았다.
그런데 마리아는 참한 여자였던 모양이다.
이것은 무엇을 보고 알 수 있는가 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을 때도 마리아를 요한한테 부탁한 것을 보면 마리아는 보통여인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요셉은 마리아를 의심 할 수 없었다.
마리아가 남자 관계를 한 일이 없다 한 말에 대해 요셉도 수긍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 보다 안전한 애굽으로 피해갔던 것이다.
그리고 애굽에서 5세 이상 되어 예수님은 갈릴리로 돌아온 것 같다.
애굽에 남아 있는 기록을 보면 예수님에 대한 전설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그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이스라엘 땅에서 나지도 않았고 또 이스라엘 혈통도 아닌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이요 베들레헴에서 낳았다 하는 것은 초대 교회가 의도적으로 조작해 놓은것 이며 거기에 중대한 역할을 한 사람이 사도바울로 추정된다.
예수님이 성경에서 바리새교인을 보고 왜 저렇게 심한 말로 책망을 한 것일까?
이제 말한 대로 바리새교인들은 이스라엘 나라의 당시 지도층이었다.
바리새교인들이 없었다면 이스라엘 나라가 유지도 될 수 없을 정도로 그런 중요한 지위에 있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그들을 칭찬하지 못 할지언정 저렇게 심한 말로 책망한 것인가 하는 것이 우리학자 들로 하여금 대단히 의문을 갖게 하다.
그러나 예수께서 책망한 것을 심각하게 생각해 보면 너희들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며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천국 에 들어 가는 것을 방해했다 그런 뜻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무엇일까?
우리는 진리에 대해서 방해하는 소위 종교인들이라든지 세상학자들이 종종 되지 못한 말을 가지고 많은 군중을 현혹시키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에 있어서도 이 기독교라는 단체가 있어서 이것이 예수를 모르게 하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현혹되게 하는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이 세계에서 예수님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교파가 없다.
카톨릭으로 시작해서 장로교, 감리교 및 기타 기독교 단체들은 예수님을 모르게 하는 집단 이 대다수이다.
첫째로 그들이 말한 예수는 여호와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마태복음의 족보가 근본적으로 잘 못 되어 있는데도 그 말을 그대로 믿고 있다.
따라서 교회에서는 예수님을 발견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여호와를 더 크게 생각하고 예수님은 그 아들 정도이니 예수님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길이 막혀버린 것이다.
오늘 예수께서 바리새교인들에게 지적해 주는 것은 무엇인가?
너희들이 메시아란 것도 모르고 있지 않느냐 그런 의미이다.
메시아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하는 말은 너희들이 소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여호와의 정체를 정확히 파악 못하는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고로 오늘날 우리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밝히는가?
오늘 우리에게 남겨준 유일한 사명이지만 이것이 내 보기에는 거의 불가능이다.
온 세계가 조직화된 기독교에 속해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사고(思考)의 벽에 둘러싸여 소경과 같은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의 이 소경과 같은 상태로 된 것은 바울 때문이다.
한가지 말해보면 바울이 기독교를 박해해서 다메섹까지 갔다.
그런데 가는 길에 갑자기 하늘로부터 빛이 비추며 예수님의 음성이 들렸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이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님이 부활한 것까지는 안다.
그런데 이상하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방해하느냐 이런 책망을 내릴 때 바울이 갑자기 소경이 된 것이다.
나는 대단히 이것을 오랫동안 이상하게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상하다고 못 느끼는 모양이다.
왜 소경이 되었을까? 예수님이 부활한 다음에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 앞에 나타나 보여주었다.
12제자에게도 나타나 주었고 갈릴리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아 나오는 제자들을 기다려 보여 주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울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무엇을 말하는가?
이것은 상징적 의미이지만 너는 진리에 대해 영원히 소경이 된다는 말을 상징적으로 하신 말씀으로 추정할 수 있다.
실제로 오늘날 기독교가 소경이 된 것이 다름아닌 바울서신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는 바울교회이지 예수교회는 아닌 것이다. 따라서 온 세계교회가 소경이다.
이런 소경교회들에 말을 해보아야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런 생각 때문에 전도할 마음도 없다.
영적으로 소경 된 이 세상 기독교를 향해서 무슨 소리를 하겠는가?
오늘 여기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은 너희 책에 한군데서는 메시아를 다윗의 자손이라 했다가 다른 데서는 아니라고 했다가 어느 것인가?
너희들이 이 모순을 아는가? 그런 이야기이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예수님의 이 말씀이 들려온다.
예수인 내가 다윗의 자손인가? 여호와의 아들인가?
백천(白泉) 김준식
(P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