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산교회
 
작성일 : 16-02-06 13:24
설교제목 : 예수님이 멜수 있는 멍에
 설교일자 : 1985.03.03
 KEY WORD : @ 수고 짐 멍에
 성경구절 : 마11:28~30
 관련구절 : 눅10:21~22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319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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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 예수께서 "내 멍에를 메고 배우라.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이 자기 멍에를 우리들에게 메게 하려는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 메는 멍에를 우리들에게 메게 해 보아야 멜 수도 없을 것이고 또 우리는 그 멍에가 무엇인지도 잘 알 수가 없다.
이 말씀의 뜻은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멍에를 예수님 앞에 가지고 와서 주님과 같이 그 멍에를 멜 수 있도록 하면 너희가 메는 그 짐은 가벼워진다는 말씀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메고 갈 수 없는 멍에를 예수님과 같이 멜 때 예수님이 우리의 짐을 가볍게 해준다.
따라서 우리가 능히 그 멍에를 멜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나면서부터 무거운 짐을 지니고 태어났다.
그 짐을 인식 못한채 그 짐에 속박이 되어 그 짐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것을 능히 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미련함이다.
그러나 그 짐은 우리가 움직일 수조차 없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 짐을 나와 같이 분담할때 그 짐은 가벼워져서 질 수 있다고 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멍에를 내가 알고 이 멍에를 지닌 채 예수님 앞에 가서 이 멍에를 같이 메어 주옵소서 한다고 해서 예수님이메어주느냐,? 문제는 그것이다.
다시 말하면 아무 짐이나 가지고 가서 예수님 이 멍에를 같이 메어 주옵소서 그런 어리석은 소리를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 땅위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매주 혹은 매일 간구하면서 기도해 보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런 기도가 이루어졌다고 보지 않는다.
예수님 앞에 무슨 짐이든 가지고 가서 주님 이것을 내가 무거워 들 수 없으니 같이 들어 주옵소서 하면서 기도로서 간구한다고 그 기도가 이루어 질 수가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어떤 교인이 국회의원에 출마했다.
그는 교회에 나가서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할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교회의 목사를 비롯해서 모든 성도들이 기도를 해 줄 것이다.
그런데 국회의원에 낙선되었다.
그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이 세상에서 권력을 잡고 싶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가서 기도하고 새벽기도도 나가고해서 혹은 그 사람이 그런 권력을 잡았다고 해서 예수께서 그런 기도를 이루게 해 주는가?
우리가 여기서 알아야 하는 것은 ‘우리가 무거운 짐을 지니고 있음을 알고 예수께 이 짐을 같이 분담하여 질 수 있도록 하소서’라고  예수께 간청 할 때 예수께서 기꺼이 그 짐을 가볍게 하여 질 수 있게 도와주실 수 있는 것이다.



멍에가운데 제일 큰 멍에는 무슨 멍에인가 하면 자연(nature)이다.
자연이라 하는 이 멍에는 누구든지 다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절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사람들이 그것을 인식 못 한다.
알아듣기 쉽게 말하면 내가 이 땅에 태어 난 것이 내 의지로 된 것인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왔다.
또 내가 죽고 싶어서 죽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하면 내 의지대로 태어 난 것이 아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 땅에 왔으며 또 어느 시간이 되면 싫건 좋건 간에 이 땅속으로 들어가야 된다 이것이 자연이다.
또 부정 할수 없는 자연의 구속인것이다.
이와 같은 자연의 능력속에서 인간은 절대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속에서 움직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 자연의 짐을 들어서 나로 하여금 이것으로부터 자유스럽게 할 수 있는 것은 이 우주 안에 아무것도 없다.
이 짐을 들어서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님밖에 할 수 없다
예수님만이 이 짐을 들어 내가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예수님 외에 누가 이 자연을 통솔하거나 움직일 수 있는가?



루소라 하는 철학자가 “인간들이여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말하였는데, 훌륭한 말처럼 들립니다만 인간은 자연의 섭리 안에서 인간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세상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도 태초에 천지를 만드실때 그 창조의 법칙하에 자연도 움직이게 창조하였기 때문에 자연의 섭리를 임의적으로 변경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세상에 수 많은 종교들이 있지만 ,우리는 이 자연 속에서 나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이 무거운 짐과  그 외에도 적은짐 큰짐 이 있지만 자연의 섭리에 구속되어 있어서 임의적으로 움직일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자녀를 낳으면 자녀를 낳은 짐 때문에 머리를 못 드는 경우가 있다.
또 부모가 있으면 부모 때문에 내 멍에를 못드는 경우가 생기며
형제가 많으면 형제 때문이라도 우리는 부담을 갖게 되고 또 결혼하면 남자는 여자를 짊어져야 되고 여자는 남자의 짐을 지는 일이 생긴다.
이 모든 것이 원인을 따지면 자연이란 속박 밑에서 부과적으로 생긴 짐들인 것이다.



이제 그러면 예수께서 우리의 짐을 같이 져 줄 수 있는 것이 어떤 것인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예수님이 기꺼이 우리의 간청을 받아서 내 무거운 짐을 가볍게 해줄 수 있는 것에는종류가 있다.



그런 기도를 들어준 경험이 있는가?
나는 일평생 두 가지 기도밖에 한 일이 없다.
하나는 지금도 끝나지 않았고 하나는 끝났다.
내 몸에 병이 있다던가 그와 같은 것을 가지고 나는 기도해 본 적이 없다.
해보아야 되지도 않을 것이고 혹 된 일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것을 가지고 기도할 마음이 없었다.
하나는 내가 죽음을 각오하고 지금 오랫동안 기도하는 제목이 있다.
그것은 왜 그런가 하면 내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며 이것이 꼭 이루어져야 되겠다고 숙고한 끝에 결심한 것이다.
우리는 간단한 예로서 예수님이 져 줄 수 있는 멍에, 다시 말하면 내 오른손을 예수님의 어깨위에 올려놓고 예수님의 오른손이 내 어깨에 놓여진다고 하면 이는 같이 멍에를 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멜 수 없는 멍에와 예수님의 어깨에 올려놓을 수 없는 더러운 손을 올려놓으려는 그런 짓을 해서는 이루어 질 수도 없거니와 더 큰 화가 미칠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예수님의 어깨에 내 오른손을 올려놓으려면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
예수님이 누구인가 어떤 분인가를 먼저 알아야 한다.
그 다음에 믿음이 생긴다.
분명히 알아야 한다.
지금 기독교는 덮어놓고 믿음만 강조하고 있는데 믿음이라는 것은 잘못하면 미신이 되고 내 자신이 속게 되는 것이다.



아무 神이나 붙들고 예수님으로 알면 되겠는가?
그런고로 성경에서 예수께서 말씀한대로 주여, 주여 해도 예수님은 나는 도무지 너를 모른다 할 것이다.
지금 기독교는 예수님을 잡아 죽인 신을 보고 주여, 주여 하고 있다.
또 이런 신들은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서 어느 정도 기도하면 들어준다.
들어주는 척 하는 것이다.
들어주는 척하기 때문에 은혜를 받았다 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나는 도무지 너희를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내가 이 말씀을 늘 전하는 것은 나의 사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하던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가르쳐 주려고 하는 것이다.
오늘도 역시 그것이다.
예수께서 하신 그 말씀의 뜻을 밝혀주기 위해서다.
예수님은 자기의 이름을 한번도 예수라 부른 적 없다. 분명히 알아야 한다.
성경 어디에서도 예수님이 자기 이름을 예수라 한 적이 없다.
요한복음 17장 3절에 예수께서 기도할 때 예수그리스도라 하는 말이 처음 복음서에 나오는데 그것은 예수가 자기 이름을 부른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예수라 한 적이 없다.
하나님의 독생자가 이스라엘의 말로 자기 이름을 지었을 리가 없다.
다른 사람이 그 어머니나 친척들이 자기를 예수라 해 보았자 예수님 자신이 자기를 예수라 한 적이 한번도 없다.
예수님은 언제나 자기를 가리켜서 인자라 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늘 쓰는 통성명의 일종이다.
그렇지만 이 세상 사람들은 예수, 예수 하면 그것으로 예수와 통해지는 줄 알고 있다.
예수님이라 하는 이름은 우리나라의 김씨와 같은 것이다.



한국에서 김씨라는 성을 가진 사람이 많은 것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에서는 예수님이라는 이름이 많다.
예수님이라 하는 사람가운데 하나는 로마군인과 마리아가 간통을 해서 태어난 예수도 있었는데 우리가 아는 예수님이나 마리아가 아니다.



그저 예수, 예수하면 어느 예수인지 알 수 있는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기 때문에 구분할 수가 없다.
그런고로 먼저 우리가 믿는 예수님을 정확하게 인식을 해야 한다.
어떤 분이 우리의 예수님인지 그것을 알아야만 그의 어깨 위에 내 손을 얹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이야기이다.
그런데 지금 기독교는 예수님을 모르고 있다.



첫째로 우리가 예수님과 같이 멜 수 있는 멍에, 짐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하면 생명의 짐이다.
내가 살아가려고 하면 내 생명의 짐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나 자신이 혼자 들 수 없는 짐이다.
예수께서 분담해서 같이 질 수 있는 짐이다.



또 무슨 짐이 있는가하면 진리의 짐이다.
내 힘으로는 이 진리를 파악할 수가 없다.
내 힘으로(만) 이 진리를 깨달을 수가 없다.
이 세상학문도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도 젊은 사람들이 공부하려면 무거운 짐이다.
하물며 이 하나님의 이치인 진리를 파악하려면 이것은 더더욱 무거운 짐이 되는 것이다.
이 짐을 예수님과 우리와 같이 분담하여 지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다음에 무슨 짐이 있는가 하면 자연이라고 하는 이 쇠사슬에 발목이 묶여 끊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들이 이 세상에 발목이 묶여 도저히 움직이지 못하는 그때 이 쇠사슬을 끊을 수 있는 힘을 예수님만이 줄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만이 속박에서 자유스럽게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이 자연을 벗어나 저 본향을 가고자 할 때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우리의 그 힘든 짐을 들어주어 자연의 구속으로부터 해방되어 저 천국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나를 인도할 수 있는분은 예수님 외에는 없다.
자연이라는 법칙가운데 나도 모르게 태어 났고 또 나도 모르게 자연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지만 저 쇠사슬을 끊고 해방을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자연의 쇠사슬을 벗어날 수 있는가?
다시 말하면 우리가 이 자연속에서 그냥 잘 살려고 하면 십자가가 필요 없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하는 것은 이 자연의 구속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이다.



여러분 오늘 예수께서 하신 말씀, 무거운 멍에를 맨 사람은 내게로 오라 내가 가볍게 해준다 하니까 세상을 걸어가는데 평안히 걸어가기 위해서 말해준 줄 알고 있다.
기독교가 지금 그렇게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하면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하는 말은 무슨 소리인가?
십자가를 지라 하는 말은 짐을 하나 더 메라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들이 이 자연으로 말미암아 생긴 속박가운데 살다가 죽으면, 이 세상에서 행복했건 불행했건 상관없이 살다 흙으로 돌아간다 하면 십자가가 필요 없는 고 예수님도 필요 없게 된다.
그까짓 세상에서 세상으로 돌아갈 바에야 무슨 예수가 필요한가?
우리는 이 자연이라고 하는 대 속박가운데서 이탈해서 저 다른 세계로 가기 위해서 십자가도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저 다른 세계로 우리가 가기 위해서 무슨 짐이 필요한가 하면 양식이다.
이 세상 쌀과 빵을 가지고는 저 다른 세계로 옮겨지지 않는다. 옮길 수 없다.
우리는 이 땅에서 난 곡식과 물을 먹으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밖에 안된다.
우리가 이 세계에서 저 다른 세계로 옮기려고 하면 우리에게 또 다른 양식이 있어야 된다.
그 양식을 지고가야 되는 것이다.
이 양식을 공급해주는 사람은 예수님 외에는 없다.



또한 지금 우리는 이 세상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한치 앞도 가늠할 수가 없다.
동쪽으로 가야 될 지 서쪽으로 가야할 지 모르고 있으니까 이 세상권력을 가진 자들에 의해 조정되어 가고 있고 속여지고 있고 농락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것은 우리가 빛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볼 수 없으니까 어두움 속에서 헤메 일 수밖에 없고 그들의 말에 현혹 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예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말씀이 내가 떠나면 너희에게 보혜사를 보내준다 하신 것이다.
그 분이 너희에게 모든 빛과 모든 것을 가르쳐줄 것이다 하였다.



그런데 내 보기에는 기독교의 이 천년 역사가운데 보혜사를 받은 사람이 별로 많은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한가지 이상한 것은 있다. 무엇인가?
이스라엘 사람가운데 아인슈타인이란 과학자가 있다.
우주의 근본 원칙을 밝혀준 사람은 이사람 한 사람뿐이다.
인류의 역사가 몇 백만 년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우주의 근본적인 원리의 하나를 우리에게 밝히 명시해 주었다.
그는 이 세상 사람들이 보통으로 다니는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그는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인류가 난 이래 그만한 원리를 가르쳐 준 사람이 없었다.
두가지 원리가 있는데 특수상대성 원리와 일반상대성 원리이다.
특수상대성 원리는 어느 정도 이해되지만 일반 상대성 원리는 지금도 제대로 철저하게 인식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는 실험실에서 실험을 하고 그런 사람이 아니다.
일평생 종이와 연필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그것만 가지고도 그 위대한 원리를 우리에게 밝혀주었다.
그 사람이 죽은 다음 뇌를 분석해 보았지만 다른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그 사람이 어떻게 인류창조이래 저와 같은 원리를 알아낼 수 있었는가?
나는 그 사람의 개인의 힘으로 되었다고 보지 않는다.
분명히 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보혜사의 능력을 주었다고 보는 것이다.
사람의 힘만이 아니다. 그는 소위 우리와 같은 기독교인인가? 아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여호와 신 같은 神은 없다고 했고 있어도 神의 가치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무신론 학회에서 상까지 받은 사람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말한 말 가운데 유명한 말이 있다.
이 우주 간에 영지가 있다 말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는 이스라엘의 저 얼빠진 신은 있어도 神의 가치가 없다.
그렇지만 우주의 영지라 하는 것이 있다 했다.



칸트는 인간의 영지(intelligence)를 말했는데 아인슈타인은 이 우주에 대 영지가 있다 말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께서 나는 진리이다 라고 말한 것과 서로 상통하는 말인 것이다.
보혜사는 예수께서 약속했지만 교회 안에는 내가 아는 범위 내에는 없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예수께서 우리에게 약속해 준 성령을 받을 수 있도록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고로 우리는 예수님을 똑바로 인식하고 알아야한다.
예수 예수 이름만 부르는 것으로 통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예수님의 오른손이 내 어깨 위에 내 오른손이 예님수의 어깨 위에 올려 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그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된다.



백천(白泉) 김준식

(P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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