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산교회
 
작성일 : 16-02-09 09:22
설교제목 : 예수님께 속한자
 설교일자 : 1987.11.29
 KEY WORD : @ 수전절, 솔로몬행각, 양, 영생, 나와아버지
 성경구절 : 요10:22~30
 관련구절 :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071  


22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23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거니시니 

24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이르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하니

2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26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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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에) 유대인들이 예수께 와서 예수가 자신들이 기다리던 메시아인지 아닌지를 밝혀 달라고 요구하는 기록이 보인다.

어떤 때 보면 보통사람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떤 때 보면 대대로 내려오는 유대인의 神을 모독한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유대인들이 잘 판단이 안되니까 이제 말 한대로 당신이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를 분명하게 우리들에게 밝히라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라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본문의 내용을 보면 당신이 그리스도인가 질문했을 때 예수님의 대답이 “내가 여러번 이야기 했지만 너희들이 나를 믿지 않는다.”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 말 가운데는 자기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표시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요한 복음 17장에 보면 기도할 때 자기를 그리스도라 하는 문구도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너희들이 내 말을 듣고 누구인지 모르는 까닭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내게 속한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시기를 자신을 목자, 인간을 양이라 하셨는데 목자의 음성에 순응 하는 양을 ‘내 양’으로 설명하셨다.

세상에 많은 양이 있지만 내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양들만이 ‘내 양’이며 나도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고 하시고 그들에게만 영생을 주고 또 그 영생은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데 그것은 아버지께서 만물보다 크신 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내 양’이라 하는 것은 목자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양인데 이는 과학적으로 말하자면 목자의 음성을 알아 들을 수 있는 양을 말하며 궁극적으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 들이고 깨닫는다는 것은 사람들의 본질에 관련된 문제이다.

길과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말씀에 공명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나가는 바람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뜻대로 사는 사람도 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깨닫고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영생을 주어서 새로운 사회에서 영원히 진리를 탐구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지금 온 세상이 예수님의 말씀을 모른다. 무슨 뜻인지를 모른다. 

이 성경책 내에 있으니까 모든 성경에 있는 말을 하나님의 말이다 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동등하게 취급하는 것이 예수님의 말을 모른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말을 듣고도 예수님의 말을 읽고도 그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분간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왜 그런가 하면 옛날 유대인들이나 지금 사람들이나 너희들이 내게 속해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이다.

내양이 아니기 때문에 내 목소리를 구분 못한다는 것이다. 

목소리를 안다 하는 것은 예수님의 말을 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말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과 바울의 말, 구약의 말 이것들이 분간이 되어야 하는것이다.

그 내용을 제대로 분간해야 될 텐데 이 세상이 분간을 못하는 것은 너희들이 내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이야기이다. 

그러면서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여러번 너희들에게 설명하고 말해주어도 모르지 않는냐 모르기 때문에 내양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이상한 것은 예수가 그리스도라 하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면 이것이 문제가 된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히브리말로 ‘마샤흐’이며 아람어로 ’메시야’이다.                                                             

그러면 예수가 메시아인 것을 부인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당신이 그리스도인가 했을 때 ‘아니다.’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내가 여러번 말해도 너희들이 모르지 않았느냐. 또 다른데 보면 자기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면 유대인들은 예수님 자신이 그리스도라 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기대한 그리스도로 인식해 버릴 수 있는 것이고 실제로 오늘날 모든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은 유대나라에만 있는 말이 아니고 소위 근동지방에서는 어디서든지 볼 수 있는 말이다. 

이 ‘마샤흐’란 말은 “기름을 붓는다”의 뜻이고  하나님의 봉사를 위해 “선별한다” 의 상징적인 뜻이 있다.



神에 바친다든지 이렇게 선별할 때 기름을 부어 쓰는 것이다. 

이 말은 애굽 에서부터 시작되어 가나안 지방 및 근동지방의 각 나라로 퍼져서 쓰게 된 것이다. 

그래서 가령 창세기에 보면 야곱이 자기가 여호와 神과 씨름하고 나서 일어난 다음 그 돌에 기름을 부어서 이 자리가 내가 神과 함께 씨름 했다고 해서 그곳을 기념한 사실이 있다. 

그리고 이것은 그 부근에서는 전부가 그렇다. 

창세기 28장 18절이라든가 창세기 1장 이라던지 여러 곳을 보면 그때도 써왔고 또한 출애굽기 29장 7절에 보면 모세가 애굽에서 미디안 광야로 내려와 자기 형인 아론에게 제사장의 직분을 맡길 때도 아론과 그의 아들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 제사장의 직분을 하도록 한 적이 있다. 

이런 기름을 부어 선별 하는 의식은 애굽 에서부터인 것이다. 

기름을 가지고 돌에 바르면 이돌은 다른 돌과 다르다는 뜻이고 나무에다 바르면 다른 나무와 다름을 주기 위해서인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기름을 사람의 머리 위에 부어서 성직자나 권위 있는 직분을 맡길 때에 표시했던 것이다. 

그래서 예언자가 된다던가 제사장의 직분을 맡길 때라든가 혹은 왕이 된다던가 그런 의미에서 기름을 부어 예식을 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하신 말씀 ‘마샤흐’라한 것은 일종의 선별한다는 의미로 쓴 것이다. 

그때 근동지방에서 기름을 부었다는 것은 독특한 임무나 의무를 수행하는 사람한테 선별하는 뜻에서 그런 의식을 해왔던 것인데 그러므로 예수님도 나도 ‘마샤흐’라는 말은 내가 이스라엘의 왕이다 

그런 의미가 아니고 자기도 독특한 임무를 가진 사람이다라는 것을 말해준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인정한 그리스도는 하나님께로부터 특수한 사명을 받은 자라는 것을 의미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예수께서 자기가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특수한 사명을 가진 존재로서 이 세상에 빛을 가져온 자, 영생을 가져온 자, 천국을 가지고 온 자 그렇게 특수한 사명을 받아 왔지만 실제로 기름 부음을 받은 적이 있는가? 없었다. 

이스라엘에서 기름을 부을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자는 제사장이었는데 제사장한테 기름부음을 받은 적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나도 그리스도다 이렇게 말한 것은 하나의 추상적인 의미인가? 그것만이 아니다. 



이제 성경을 보면 마태 26장 6절~13절, 요한 복음 12장 1~18절 마가복음 14: 3~9절에 보면 어떤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쯤 베다니에 있는 마리아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것이다. 알겠는가? 

이상한 것은 여기서 마리아라는 처녀가 자기 집에 온 예수님의 머리에 기름을 부은 것이다. 

그것도 제일 값비싼 기름인 나드유를 조금만 부은 것이 아니고 항아리 통째로 예수님의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부어준 것이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 비싼 기름을 함부로 허비 했다 해서 책망하기까지 한 것이다. 

그것은 제자들은 마리아의 이런 행동을, 그 의미를 몰랐던 까닭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제자들을 향해서 오히려 책망하고 하시는 말씀이 이 여자가 내 죽음을 예비한 것이다 한 것이다. 

그런데 임종전의 사람에게 기름을 붇는 법은 이스라엘 나라에는 없는 법인데 예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이 진짜 예수께 ‘마샤흐’한 것이고 오늘날 기독교에서 예수께 대한 실질적인 ‘마샤흐’ 인줄 모르고 있다. 

제사장이 종교적 행사로 기름을 부어야 그리스도인줄 알고 있는데 이 마리아는 예수님의 몸에 기름을 부은 것이고 이것과 의미를, 이치를 전혀 모르고 있다.



그런데 이 사건을 보고 하나의 기적이라 생각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이 처녀가 무슨 생각으로 그 엄청난 가격의 기름을 예수님의 몸에 부었는가? 

이것은 자기 생각만으로 된 것이 아니다. 

이 처녀는 하나의 사명을 다한 것이다. 

틀림없이 마음속에 유리알 같이 깨끗하고 순수한 처녀를 하나님께서 불러서 자기 사명의 사자로서 사용했다 보는 것이다. 

예수님이 더러운 제사장의 손에서는 기름부음을 받지 않았지만 이 순수하고 깨끗한 마리아를 통해서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았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나도 기름부음을 받은 자란 것을 부정하지 않고 인정한 것이다. 

예수님이 나도 그리스도다 한 것은 물론 영적으로 특수한 사명을 받은 자란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그러나 실질적으로도 내게 하나님께서 순수하고 깨끗한 사람의 손을 통해 내게 기름을 부은 것을 너희들도 알아야 될 것이다 말씀 하신 것이다.

특별히 예수님은 마리아를 통해 기름부음을 받으면서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가 하면 내 죽음에 대한 예비라고 하신 것이다.

즉 십자가에 대한 예비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왔고 또한 자기의 사명을 다했으며 그리고 종말에는 십자가에 달렸다.



내가 늘 하는 말이지만 인생은 삼 단계로 나눈다. 

첫째는 출생 둘째는 생활 셋째는 사망이다. 

이 세가지가 완전해야만 참다운 인생을 걸었다고 보는 것이다. 

사람이 첫째는 정상적인 부모를 통해 태어나야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세상에서의 바른 길의 삶이고 마지막에 죽음이 깨끗해야 한다. 

예수님도 이 세상에서 탄생 하셨던 것 부터 보통으로는 볼 수 없는 일이다. 

神으로서 세상에 오는 것은 쉽지만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인 것이다. 

다음에는 예수님의 생활이다. 

우리가 예수님이 가신 길 그 생활을 따라 갈 수 있는지 생각해 보면 그의 생활이 얼마나 완벽했던가를 알 수 있다. 

예수님의 생활을 따라갈 사람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예수님의 마지막 종말이다. 

그의 종말은 십자가이다. 

이것은 이 세상의 인간이나 하늘에 있는 천사도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성공은 마지막 결산인 십자가인 것이다. 

그가 이 세상에 왔던 것도 중요하고 그의 생활도 완벽했다 하더라도 예수님은 죽어가는 마당에 십자가를 피했다면 또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더라면 예수님의 종말이 완전했다고 볼 수 없고 따라서 그의 전체가 완전했다 볼 수 없는 것이다. 

그 만큼 예수님의 총결산이 예수의 죽음인 것이다. 

이것을 이 세상 기독교가 모르고 있다.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마태복음 27장 에 보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는 말을 내신이여 내신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이런 식으로 번역하고 만들어 버린 것이다. 

엘리엘리 라마사박다니라는 말은 성경의 기록과 그 뜻이 다른 것이다. 

제자들도 예수님을 몰랐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괴로우니까 왜 나를 이렇게 두십니까 빨리 죽여주시옵소서 하는 원망하는 말을 했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서 아직까지 올바르게 이해를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 베다니에 사는 마리아가 예수님의 몸에 비싼 향유를 부으면서 실제로 예수에게 ‘마샤흐’했는데 예수께서 이 기름을 부은 자체가 내 죽음을 준비해 준 것이다 하면서 마리아의 하는 행위를 막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내가 이 세상에 왔던 모든 일들을 총 결산하며 그 일들의 의무를 결산하는, 종결하는 중대한 성공의 일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오늘 예수께서 나는 그리스도다, 메시아다 라고 말씀 하신 것은 나는 성공한 존재 이며 영광스런 존재라는 것이고 이것을 표시하는 특수한 의미를 보여주는 것이 이 마리아를 통해 발현 된 것이다.

이 여자는 세상 다른 여자들과 달리 깨끗하고 순수하였다. 

하나님은 그 손을 통해 예수를 ‘마샤흐’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것을 밝혀 주었던 것이다.



백천(白泉) 김준식

(P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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