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산교회
 
작성일 : 16-08-01 08:47
설교제목 : 희망 없는 인생
 설교일자 : 1989.02.05
 KEY WORD : @ 가다라 귀신 무덤 돼지 레기온
 성경구절 : 마08:28~34
 관련구절 : 막05:01~20, 눅08:26~39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739  

28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그들은 몹시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지경이더라 
29 이에 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30 마침 멀리서 많은 돼지 떼가 먹고 있는지라 
31 귀신들이 예수께 간구하여 이르되 만일 우리를 쫓아 내시려면 돼지 떼에 들여 보내 주소서 하니 
32 그들에게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 
33 치던 자들이 달아나 시내에 들어가 이 모든 일과 귀신 들린 자의 일을 고하니 
34 온 시내가 예수를 만나려고 나가서 보고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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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볼 때는 그 의미가 확실히 이해 될 때까지 바른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 



오늘 읽은 마태복음에 보면 “귀신 들린 자들”이라고 복수로 써 있으나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는 이 말이 단수로 표시되어 있다.
즉 한 사람이 귀신들린 것으로 되어 있다.
또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 보면 귀신들의 이름이 ‘레기온’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이것은 로마군대의 이름이다.
로마 군대 중 가장 큰 조직단위인 것이다.
최저 3천명에서 6천명까지 되어 있는 군대조직의 이름이다.
그러므로 이 귀신의 이름이 레기온이라 하는 것은 군대의 조직단위 같이 규모가 크다는 것을 나타낸다. 



계속해서 마가복음에 보면 돼지무리가 2천마리가 있는데 예수께서 귀신들이 그 돼지 떼에 들어가도록 허락하였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나라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데 돼지를 기른 것은 아마 이방 사람에게 팔기 위한 것 같다.
그런데 성경에는 돼지 수를 2천마리로 기록하고 있으나 과연 그 지방에서 돼지2천마리를 키울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
이천 마리라는 숫자는 귀신의 이름이 레기온 즉 군대 조직 단위 중 가장 큰 조직이므로 그 군대의 숫자에 맞추어 돼지 수를 생각 한 것이라 추정된다.
이와 같이 이 많은 귀신이 한 사람에게 들어가 있었다.
(마태복음에 기록된 “귀신 들린 자 둘(두명)”은 잘못 기록 된 것이다.)



이 귀신들린 사람이 예수님을 보더니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고 물은 것이다.
때가 온다 하는 것은 멸망의 시기를 말하는 것이다.
이 귀신들은 장차 시간이 되면 세상이 멸망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직 자신들의 멸망의 시기가 오지 않았는데 왜 벌써 자신들을 괴롭게 하려고 왔는지 질문 한 것이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마태복음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되어 있는데 하나님의 아들은 여호와의 아들이라는 이야기이다.
성경에 있는 하나님이란 표현은 “신(神)”이라고 읽는 것이 성경을 바르게 해석 할 수 있는 키 포인트다.
하나님이란 번역은 교리에 따른 주관적인 표현으로 성경의 내용을 왜곡 시킬 수 있는 위험한 번역이다.  



그런데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는 가장 높은 神의 아들이라고 되어 있다.
가장 높은 神이라는 말은 성경의 다른 곳에는 없다.
이 곳밖에 기록이 없다.
귀신들은 예수님이 누구의 아들이었는지 알았던 것 같다.
가장 놓은 神 이라 하면 참  하나님을 말하는것이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러므로 마태복음에는 사귀들이 예수님을 잘 모르고 한 말처럼 기록이 되어 있고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는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으로 쓰여 있는 것이다.
최고의 높은 神은 하나님을 말한다.



이상하게도 그 당시 인간들은 예수님을 잘 몰라보는 것 같다.
온 이스라엘 사람이나 오늘날 온 세계의 인간들도 예수님이 누구의 아들인가를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 귀신들은 예수님이 누구의 아들인가를 안 것이다.
군대조직을 갖는 거대한 귀신들이 한 사람에게 접해있는 까닭에 그 지방사람들은 그 사람이 있는 곳을 지나다닐 수 조차 없었다.
쇠사슬도 끊는 힘이 강한 귀신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레기온 귀신이 오히려 예수님 앞에서는 예수님을 무서워했고
간청하기를 돼지 떼에 들어가게 해 달라는 것 이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허락했던 것이다.
돼지 떼들은 산비탈을 내리달아 호수에 빠져 죽었던 것이다.
여러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와같은 귀신이나 악신, 즉 하나님 이외의 어떤 神이든지 사람에게 접하면 그 사람은 죽는 것이다.
돼지 떼에 들어가니까 돼지들이 죽고 사람에게 접하면 사람이 죽는 것이다.
인간들이 무슨 신을 섬긴다든지 神을 섬기면 그 마지막은 사망이고 멸망인 것이다.
희망 없는 인생이란 바로 레기온과 같은 神들이 접해있는 인간들을 말하는 것이다.
오늘날 온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더러운 神에게 접해있으면서 그 神을 하나님이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시간이 오면 그 운명은 저 산꼭대기에서 내려오는 돼지의 운명과 차이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神을 섬길 바에는 그 神의 본체를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그런 신들은 내게 떡 조각이나 준다든지, 좋은 말로 복을 준다거나 하면서 유혹하며 이미 이 세상의 많은 사람에게 이미 접해있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들이 좋지 않은 소질을 가지고 있어서 여러 神들의 말을 분별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결과이고 그 끝은 사망뿐 다른 것은 없다.



이제 문제는 무엇인가?
레기온이라는 군대귀신들이 많은 돼지 떼 에게 들어가 돼지가 몰살되는 광경을 지켜본 그 지방사람들이 예수께 떠나가기를 간청했다고 성경에는 부드러운 말로 표현되어 있으나 사실은 예수님을 쫓아낸 것이다.
예수님이 보통사람 이였다면 발로차고 때리고 하여 반 죽음으로 만들어 쫓아냈을 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예수님 앞에서 귀신들린 자가 벌벌 떠는 것을 보았고 예수님의 그 능력을 실감했기 때문에 좋은 말로 이 지방을 떠나가 주옵소서 간청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예수님을 쫓아낸 것이나 다름 아니다.
왜 쫓아내었겠는가?
까닭이 있는 것이다.
돼지가 물에 빠져 죽었으니 많은 재산피해를 보았다는 것이다.
레기온이라는 귀신을 쫓아낸 것은 문제가 아니지만 돼지를 팔아서 돈을 벌 수 있었는데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많은 손해를 보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가라, 물러가라 보기 싫다고 떠나가라 한 것이다.
인간들이 제대로 되었더라면 귀신들린 사람이 예수님 앞에서 대하는 태도를 보고 예수님을 붙잡고 당신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묻고 따르고 예수님을 알려고 노력했어야 한다.
그런데 그와 같은 생각은 전혀 없고 손해를 보았다고 해서 예수님을 배척한 것이다.
그러면 이 인간들은 희망이 없는 인간들인 것이다.
예수님이 자기들 앞에서 생명의 길, 능력의 길을 보여 주었는데도 돈에 손해난 것에만 매여서 예수님을 나가라, 물러가라 하며 그 지방에서 쫓아낸 것이다.
여러분 이와같이 예수님을 대접했기 때문에 진리를 볼 수 없고 예수님을 바라 볼 수 없고  생명의 독생자를 깨달을 수 없는 저 민족적 사태가 벌어졌고 영원히 희망 없는 인생들인 것이다.
그런고로 오늘날까지 유대인의 자손들 가운데는 예수님을 아는 사람이 내가 보기에는 단 한 사람도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대인들만 그렇게 예수님을 몰라보았는가?
오늘날 우리들도 예수님을 알 수 있는, 예수님을 만나 볼 수 있는, 예수님을 눈 앞에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고도 놓쳐버리거나 쫓아내 버리지 않았는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무엇 때문인가? 이해관계로, 돈 관계로, 명예관계로 예수님을 쫓아내지 않았는가?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예수님이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는데 돈을 가지고 오는 것도 아니고 권세를 통해서 명예를 가지고 오는 것도 또한 아닌 것이다.
말로는 예수예수 하면서도 내 앞에 조그만 이익 때문에 예수님을 포기하지 않았는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희망이 없는 것이다.
갈릴리 사람들이 희망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기 앉아 있는 우리들도 자칫 잘못하다간 희망 없는 인간들로 되어 버릴 것이다.
예수님이 눈앞에서 저 레기온이라는 몇 천명의 귀신을 쫓아냈고 그 사람이 당장 눈앞에서 올바른 사람으로 변한 것을 관찰하였다.
얼마나 좋은 기회였는가? 그러나 그들은 그 기회를 잡지 못했던 것이다.
무엇 때문이겠는가? 경제적 손실 때문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다 한번씩 기회를 주신다. 따라서 그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
그 기회는 내게 떡을 가져다 준다던지, 돈을 벌게 해주거나, 명예나 권세를 가져다 주면서 오는 것은 아닌 것이다.
오히려 반대로 경제적 손해를 갖다 주면서 올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경제적 문제이던지 시간적인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내게 찾아온 예수님을 쫓아낼 수 있는 것이다.
기회는 늘 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기회가 올 때 잘 포착해서 붙잡아야 희망이 있는 것이다.
레기온 이라는 몇 천명되는 군대귀신을 쫓아내었고 귀신 붙은 그 사람이 있는 곳을 어느 누구도 다니지 못할 정도의 무서운 사람이 올바른 사람으로 된 것을 보았다.
그러면 예수님을 붙잡고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내 속에 내 가정 속에 예수님이 한 번 들어오면 절대로 예수님을 붙잡고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게는 이 세상에서 경제적 문제 또 이 세상에 내려오는 습관, 윤리문제, 학문문제 이와 같은 것 때문에 예수님을 오히려 놓아버리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내 생명이 아닌가?
내 생명과 내 존재와 내 빛이 중요한 것이다.
이것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다른 것이 조금 손해가 나더라도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오늘 이 갈릴리 지방 사람들은 돼지 이천 마리인지 이백 마리인지 그 값 때문에 예수님을 쫓아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희망 없는 인생인 것이다.
예수님을 쫓아내면 그 인생은 희망이 없다.
그와 같은 예수님이 내게 올 적에는 저 이천 마리 돼지의 값보다 더 큰 손실을 가져다 줄지도 모르는 것이다.
꼭 그와 같은 경우는 아니겠지만 대부분은 이렇게 경제적 손실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영생의 길을 갈려고 질문했을 때 네게 있는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라 대답했다.
그 때, 그는 이 돈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지 못했다.
나는 저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포착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돼지의 재산적 가치에 눈이 어두워 예수님을 쫓아내었듯이 오늘날 이 민족도 우리에게 얼마든지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점점 더 그늘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민족의 운명을 보는 것 같아 답답할 뿐이다.
오늘 이 시간 내가 예수님을 쫓아내는, 배척하는 행동을 하였는가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래야 희망이 있는 것이다.



백천(白泉) 김준식
(P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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