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0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0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0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0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0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0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0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0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10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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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하나님이란 말은 神이라는 말이다.
이 성경에는 하나님이란 말이 없다.
우리나라 성경이 번역될 때 중국말로 된 성경을 통해 번역되었는데 중국말로 상제(上帝)라 된 것을 보고 하나님이라 한 것이다.
요한 복음에는 사람과 神을 구분하기 위해 하나님이란 표현을 썼는데 예수님은 줄곧 하나님을 표시할 때 아버지라 했다.
요한복음에 보면 아버지라는 말이 143번 나온다.
그런고로 사람과 神 두 사이의 관계를 상대적으로 대비해서 쓸 때에는 언제든지 하나님도 神이라 표현했다. 그것을 잘 알아야 한다.
또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예수께서 하신 말씀 중 사랑이란 말이 있는데 불쌍한 사람을 도와준다거나 없는 사람을 불쌍히 여긴다던지 그런 말이 아니다.
사랑이란 말의 원어에는 네 가지가 있는데 그 중 "아가페"란 말은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사람과 사람에 대해 느끼는 사랑”,”신의 사랑”즉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뜻이 있으며 참고 견딜 때 아가페의 사랑을 이룰 수 있는 상징적인 뜻이 있다.
따라서 남자와 여자의 사랑 같은 것과 혼돈해서는 안 된다.
분명히 말 하지만 예수님은 이 세상을 귀하게 보지 않았다.
단지 참는 것이다. 시간이 오면 이것을 없애 버린다.
성경에 이 세상을 불로 태운다라는 말이 있는데 귀하고, 사랑스러우면 어떻게 불로 태울 수 있겠는가?
또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세상에 평화를 주로 온 것이 아니라 불을 내리려 왔다고 말씀 하신 적이 있다.
이 말씀을 보더라도 세상이 그렇게 사랑스럽다면 어떻게 불을 내리겠는가? 있는 불덩어리도 제거해야 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 세상에 일반적인 개념의 사랑을 주로 온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을 없애기 위해 온 것이다.
그런데 그 중에는 없애버리기에 아까운 존재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 존재들을 미리 저 세계로 옮긴다.
옮긴 다음에 나머지 존재들은 불을 내려 일제히 없애 버리는 것이다.
그런 준비가 되어가고 있다.
그런고로 예수님은 지금 우리들이 생각하는 사랑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나는 불을 던지러 왔다는 것이 사랑해서인가?
여기서 사랑이란 참고 견딜 때 이룰 수 있는 아가페 사랑을 뜻한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보고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했는데 이 구절의 상징적인 뜻은 너희들은 서로 인내하라, 참으라. 참고 견딜 때 아가폐의 사랑을 이룰 수 있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아무리 어려워도 참고 견디라는 말이다.
성경원어에 사랑이란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희랍말 가운데 사랑이란 말이 네가지 있다.
그중 "아가페"란 말의 뜻은 “사람과 사람에 대해서 느끼는 사랑” ,”신의 사랑”과 같은 큰 의미의 사랑”을 뜻한다.
"필로"란 말도 친구 사이에 정과 사랑을 뜻하며
"스토겔"이라는 말은 부모를 생각한다든지 부부간에 의리를 지킨다든지 그런 뜻인데 이 말은 성경에 거의 쓰여있지 않다.
"에로"라는 말이 바로 남녀간에 사랑을 말한다. 오늘 예수께서 사랑이란 말을 쓴 것은 참으란 말이다. 십자가를 져도, 괴로워도 참고 견디란 말이다.
오늘 성경에 보면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다.
니고데모는 당시 이스라엘의 대학자 였다. 그래서 조용히 밤에 찾아온 것이다.
왜 밤에 찾아 왔는가. 그때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지도층인 바리새교인이나 서기관들, 제사장들에게는 이단자 취급을 받은 것이다.
예수님은 공부한 일도 없고 그렇다고 명문가의 아들로 태어난 것도 아니다. 집안도 형편없었던 것이다.
실지로 예수님의 제자들마저도 예수님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기 얼마전 나사로를 살리러 간 적이 있다.
그때에도 제자들이 예수께서 나사로를 살리러 간다 하니까 당신이 어떻게 살릴 수 있겠는가 생각하며 하는 말이 그래 우리도 죽으러 가자 하면서 비웃은 것이다. 코웃음쳤던 것이다.
죽은 사람을 어떻게 살릴 수 있겠는가?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예수님을 몰랐던 것이다.
오늘 니고데모도 마찬가지이다.
당신이 병도 고치고 하는데 그런 기적은 神이 도와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라고 본 것이다.
여기서 니고데모가 말한 神이란 여호와를 가리킨다.
그때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사람이 다시 나지 않으면 저 세계에 갈 수 없다고 말씀하신것이다.
여기서 다시 난다는 말도 잘못된 것이다.
두 번 나지 않으면 神의 나라를 볼 수 없다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이 神은 하나님을 지칭한 말이다.
이 세상에서 한번 태어나면 그것은 생물이다.
이 세상 생물학적으로 난 인간은 신의 세계를 못 본다는 것이다.
니고데모도 신이란 말을 썼는데 너는 진짜 신을 모른다. 못 본다. 하나님을 못 본다. 그런 말이다.
神을 보려면, 하나님을 보려면 두 번 나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이 첫 번나고 또 한번 다시 나야 되느니라 그런데 이 두번 나는데는 무엇으로 두번 나는가 하면 물과 공기로 난다는 것이다.
물과 공기란 말을 왜 썼는가 하면 이 세상의 생물의 씨가 그런 원칙으로 나는 것이다.
이 세상의 씨를 땅에 심으면 우선 수분이 있어야 하고 다음에 공기가 있어야 움트는 것이다. 그것을 비유해서 말한 것이다.
그런데 이 성경을 번역할 때 물은 물이라 번역했는데 공기는 영으로 번역했다.
여기서 물과 공기 모두 영적물, 영적공기를 뜻한 것이다.
이 세상에서 난 것이 아니고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다.
물도 하늘에서 내려온 물이고 공기도 하늘에서 내려온 공기이다. 그것을 가지고 다시 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엉터리 인간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비꼬는 소리를 한 것이다.
그래서 한 말이 사람이 나이 들어 어떻게 어머니 뱃속으로 다시 들어 갈 수 있는가? 했는데 이 말은 무슨 말인가?
니고데모가 깨달을 수 없으니까 다시 질문한 것은 몰라도 여기서 니고데모의 말은 예수님 당신의 말이 엉터리다. 비꼬아 웃은 것이다.
그때 예수께서 화를 내면서 하신 말씀이 당신이 이스라엘 학자로써 그런 무지한 소리를 하는가 한 것이다.
여러분 이것은 이스라엘의 학자를 예수님이 높이 보아 한말은 아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인가 하면 이 사람이 이스라엘의 대학자이다.
이스라엘 학자란 구약 성경학자, 즉 성경을 잘아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면 네가 구약 성경을 잘 알면 이 구약성경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될 것이 아닌가?라는 말이다.
구약을 잘 알면 이 구약이 인류를 위해, 하늘을 위해 아무 소용이 없는 무용지물이다. 그것을 왜 모르는가? 그런 말이다.
구약 성경 가운데 생명이 들어있다거나 우주의 원리가 들어 있거나 그런 것이 아니란 것을 네가 이스라엘 학자로 알아야 될 것이 아닌가?
이 구약이 무용지물인 것을 알아야 될 것이 아닌가 하고 책망하신 것이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위에서 온 사람이 다시 올라가기 전에는 이 세상 땅에 있는 사람이 위로 올라간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구약에 보면 에녹이 하늘로 승천했고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 갔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이 사건을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이해하면 있을 수 없는 사건인 것이다.
예수님은 분명 우리에게 위에서 난자가 위로 올라가기 전에는 그 누구도 하늘로 올라간 일이 없다한 것이다.
이 말은 무슨 말인가 하면 인간은 동물이다. 그런 말이다.
어머니 뱃속에서 나서 살다 죽으면 다시 땅속 흙으로 돌아가는 동물이다. 그것을 한 마디로 말해준 것이다.
위에서 내려온 존재 외에는 신을 본 사람도 없고, 볼 수도 없고 또 올라간 사람도 없고, 올라갈 수도 없다는 그런 말이다.
인간이 다시 나려면 그것은 예수님으로부터인 것이다.
예수님이 보내준 공기와 물로 움이 터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움이 튼 새 생명체가 비로서 저 세계로 옮겨지는 것이 영생의 이치이고 부활의 이치인 것이다.
그런데 물과 공기는 바로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온 뒤로부터 내려온 것이다.
예수님이 오기 전에는 이 세상에 이런 물과 공기가 내려오지 않은 것이다.
그런고로 우리는 물과 공기를 흡수해서 움이 터야 한다.
움이 안트고 그대로 있다면 그것은 이 세상의 개나 돼지와 하등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새롭게 난 사람이 영생의 세계에 들어간다.
그것을 니고데모가 예수님으로부터 들은 것이다.
그러면 니고데모는 다시 예수께 질문을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 질 수 있는가? 무슨 방법으로 물과 공기를 흡수 할 수 있습니까?
이렇게 질문을 해야 할 텐데 코웃음을 치면서 사람이 나이 먹으면 어떻게 어머니 뱃속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는가? 미련한 소리를 한 것이다.
니고데모만 이렇게 미련한 것이 아니고 이 세상 인간이 대부분 이렇게 미련하다.
이런 엉터리 질문을 하는 것은 니고데모 뿐아니라 오늘날 종교인들 모두 꼭 같다.
오늘날 기독교가 사랑의 종교라 해서 그것이 예수님의 정신인양 하지만 그것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바로 예수님이다. 예수님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을 알려면 구약도 잘 알아야 한다.
구약을 잘 알면 예수님을 아는데 도움이 된다.
구약은 세가지로 분류되는데 율법, 예언, 문학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그중 문학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고 가장 중요한 부분은 율법이다.
이 율법은 철저히 공부해 보아야 한다.
창세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누구인가 그것을 알려 주고 있다.
이 이스라엘을 알아야 여호와를 알 수 있다.
여호와는 이스라엘 神이므로 이스라엘을 철저히 알아야 여호와가 어떤 神인가 분간 할 수 있는 것이다.
출애굽기와 민수기는 애굽에서 나올때 이스라엘백성의 일지 즉 여행기 이다.
가나안 땅으로 나온 동안의 여행기인 것이다.
그리고 레위기는 여호와 신을 섬기는 제사 법이 기록되어 있다.
신명기는 여호와를 섬기며 사는 거기에 적용된 윤리와 법도가 담겨있다.
그런고로 이 율법서를 알면 여호와를 아는데 이 구약을 모르면 결국 우리가 여호와를 모르고 따라서 예수님의 아버지 神도 모르고 분간을 못하게 되어 버린다.
그 다음에는 예언서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이 예언서에 여호와의 목적, 여호와의 계획이 담겨있다.
여호와가 어떤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을 이용해 왔는가 알 수 있는 것이다.
그가 예수님을 어떻게 처치할 것인가 그것이 명백하게 나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구약에는 진리도 없고 정의도 없다는 것이 또한 뚜렷히 보인다. 그것도 알아야 한다.
그런고로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이 되어 가지고 이 안에 진리도 없고 정의도 없고 한 것을 모르는가 알아야 될 것이 아닌가? 책망한 것이다.
이 책망은 옛날 니고데모에게만 내려진 것이 아니다.
오늘날 이 기독교 안에 있는 학자들에게도 꼭 같이 책망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물과 공기로 다시 나지 못한 인생은 대단히 슬픈 존재이다.
이세상 다른 동물들 보다 훨씬 불쌍한 존재들인 것이다.
여러분 인생을 보라 살기는 백년 미만인데 그 동안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인생을 알고 싶어 한데 그 기간이, 시간이 너무 짧은 것이다.
학자라 하지만 어느 하나를 조금 아는 정도이고 그것도 알려고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모르게 된다.
자기가 아는 분야 외에 그 옆은 한치도 모르는 것이 학자인 것이다.
얼마나 불쌍한 존재들인가?
그래서 예수께서 우리에게 영생의 세계를 말해준 것이다.
우리는 이 땅에서 예수님을 다 알 수 없다. 철저히 알 수 없다.
단지 예수의 옷자락을 붙들고 뒤따라가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뒤따라가면 우리는 저 세계로 이전 된다.
내가 이 땅에서 두번 나면 이 땅에서 난 몸 덩어리는 던져 버리고 새로 난 나로 저 세계로 옮겨져 비로서 예수님을, 예수님의 아버지를 완전히 알 수 있는 시간이,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사랑해서 온 것이 아니다.
단지 우리들에게 부탁한 말은 너희는 서로 참으라, 조금 견뎌라 다시 말하면 우리는 이 세상에 단 한 시간도 더 있기 싫은데 빨리 저 세계로 가고 싶은데 이런 사람들을 보고 너희는 참고 견디면 아가페의 사랑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을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로 표현 하신 것이다.
백천(白泉) 김준식
(P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