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그들은 몹시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지경이더라
29 이에 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30 마침 멀리서 많은 돼지 떼가 먹고 있는지라
31 귀신들이 예수께 간구하여 이르되 만일 우리를 쫓아 내시려면 돼지 떼에 들여 보내 주소서 하니
32 그들에게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
33 치던 자들이 달아나 시내에 들어가 이 모든 일과 귀신 들린 자의 일을 고하니
34 온 시내가 예수를 만나려고 나가서 보고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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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바다 서쪽에 거라사라는 곳이 있다.
이 거라사라는 동네에 귀신들린 사람이 있는데 그 귀신이 얼마나 힘있고 강한지 그 주변으로는 도무지 사람들이 다닐 수 없는 상태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악귀 중에서 가장 힘있는 악귀였던 모양이다.
이 말씀은 마가복음 5:1~20절까지도 있고 누가복음 8:26~39절 사이에도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다른 성경 말씀들은 복음서마다 다소 차이가 있게 기록되어 있는데 이 이야기만은 세 복음서 모두 꼭 같이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그 귀신들린 사람이 있는 곳은 아무도 함부로 지나다닐 수 없게 된 것이다.
억지로 쇠사슬로 묶어 두어도 쇠사슬을 끊고 행패를 부리는 것이다.
마가복음에 보면 네 이름이 무엇인가? 물으니 ‘레기온’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레기온은 로마나라의 군대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군대귀신이란 것이다.
그래서 마가복음에 보면 돼지 2천마리라고 되어 있으나 한 사람이 그렇게 기를 수 없고 내 보기에는 40~50마리 조금 넘는다고 생각된다.
이 돼지에 귀신들이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이 천하에 무서울 것이 없는 힘센 귀신이 예수님을 보더니 그만 그 앞에서 벌벌 떠는 것이다.
이스라엘 나라에서는 무서울 것이 없었다.
왕도 있고 神도 있고 그래도 오늘 이 神들린 사람은 아무도 무서울 것이 없었다.
만약 이 이스라엘 神이 무섭다면 감히 이런 짓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을 보더니 예수님 앞에서 벌벌 떨면서 저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서 지금 여기에 오셨느냐고 말한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 앞에는 그냥 설 수 없었던 모양이다.
아직도 말세가 아닌데 우리를 완전히 소멸해 버리려 왔습니까 말한 것이다.
여러분 지금도 이 세상에는 많은 귀신들이 있다.
요사이 이 세상은 과학시대라 해서 귀신 없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귀신들의 작동이 전과 수단이 조금 다르다. 그래서 숨어서 하는 것이다.
종종 보면 지금도 귀신이 사람의 머리를 좌지우지 하거나 생각을 어지럽게 하는 것이다.
여러분 자신도 가끔 주의를 해야 하고 또 반성을 해야 한다.
오늘 여기서 이 귀신들(레기온)이 예수께 말하기를 ‘말세도 되지 않았는데 와서 우리를 괴롭힙니까?’ 그런 식으로 예수께 말한 것이다.
이 레기온은 천하에 무서울 것이 없었다.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온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였다.
이스라엘에는 그 당시 이스라엘의 왕이요 아버지라고 하는 힘있는 神이 있고 그 신전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귀신이 멋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건너 다니지도 못하게 하고 그 근방에서 큰 세를 떨치고 있었다.
그리고는 의복도 입지 않고 자기 멋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보더니 겁이 나서 떨며 당신하고 우리하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면서 아직 말세도 아닌데 우리를 완전히 섬멸하러 왔는가고 말한 것이다.
여러분 이 한 사건을 보고 이 사건이 우리에게 심각한 문제를 가르쳐 줌을 깨달아야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 神들의 요구를 하나 들어준 것이다.
그러면 우리를 저 건너편 언덕 위에 있는 돼지들에게 들어가는 것을 허락해 달라 부탁한 것이다.
이 돼지 무리에 神들이 들어갔더니 돼지들이 언덕을 내리 달려와 바다에 빠져서 모두 죽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이 갈릴리 지방에 퍼지니까 많은 사람들이 나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을 간단히 볼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돼지를 치는 사람은 돼지가 바다에 빠져 죽었음으로 자기 재산이 다 없어진 것이다.
그래도 예수님에게 항의를 못할 정도였다.
또 예수님 자신을 보면 어떻게 해서 귀신들이 돼지무리에 들어가게 해서 저 사람들이 큰 재산 피해를 보게 하였는가 하는 문제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한다.
예수께서는 사람의 생명 하나를 제대로 살리는 것이 이 세상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중요하다 그것이다.
인간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제대로 되지 않으면 이것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 개나 돼지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러나 사람 하나 제대로 된다면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 있는 존재로 되는 것이다.
왜 예수께서 이 사람 하나를 살리기 위해서 모든 이 세상가치를 희생할 수 있었는가 하면 그 까닭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오직 하나님의 씨앗이 사람에게만 뿌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는 씨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이 우주의 전 생물 중 사람뿐이다.
이제 사람이 하나님이 주는 씨를 제대로 움트게 하면 인간으로서 가장 가치 있는 우주간에 가장 고귀한 존재물이 되지만 이 씨앗이 움트지 못하면 이것은 차라리 개, 돼지만도 못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씨가 내게 뿌려졌을 때 이 씨가 어떻게 하든 움트도록 되어야 한다.
이 씨가 움튼 사람은 장차 이 세상이 끝나면 저 세계로 옮겨진다.
그래서 예수께서 분명히 말씀하시길 물과 새로운 공기로써 씨앗이 움트지 않으면 저 세계로 가지 못한다고 확실하게 설명해 준 것이다.
그런고로 인간이 어떻게 보면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돼지가 몇 천 마리 죽는 것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 사람 한 사람을 건지는 것이 무엇보다도 귀중하고 존중되는 일이다.
그래서 레기온을 돼지에게 들어가게 하고 이 사람을 구하게 되는 것이 문제가 안된 것이다.
또한 이 지방에서 왕래를 못하게 하는 무서운 존재이기 때문에 다소간 돼지 치는 사람의 재산 피해가 있었지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즉 예수님에게 항의를 할 그런 근거를 갖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에 대해서 많은 사람이 공포를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제발 이 지방에서 떠나 주옵소서 했던 것이다.
이제 이 세상에서 전혀 무서울 것이 없었던 레기온이란 神이 예수님을 무서워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 인간들은 예수를 인식 못했고 알아보지 못했는데도 이 무서운 神, 거라사 지방의 사람에게 들려있던 이 귀신만 예수님을 알아본 것이다.
우리는 종종 어떤 때는 저 귀신만 못한 때가 있다.
여기서 저 거라사의 돼지 떼에 들어갔던 신은 예수님을 알아 본 것이다. 예수님을 인식한 것이다.
그런데 갈릴리 사람,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을 정확히 인식을 못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기독교를 중심으로 보아도 아직도 예수님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의 학자요 목사라는 사람들도 예수님을 올바로 깨닫지 못하고 있으며 저 거라사의 귀신만 못하다.
그 귀신은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그에게 용서를 간구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나 오늘날 우리나 예수님을 정확히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고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을 보고 가만히 있었거나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까지 만든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神이, 이스라엘 神도 무서워하지 않던 레기온이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간곡하게 부탁한 말이 돼지의 무리에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옵소서 빈 것이다.
그런데 마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이 사탄에게 시험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여러분 사탄이 히브리말로는 예수님을 반대한다는 의미인데 이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했다고 했다.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이라 온 세계가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이다.
여기 거라사에 있던 귀신 레기온이 예수님을 보고 무서워 벌벌 떨면서 무릎을 꿇고 간곡한 말이 저 돼지의 무리에 들어가게 해 달라 하였는데 레기온 보다 더 무서운 악귀는 이 천하에 없다.
그렇다면 어떤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앞뒤가 맞지 않은 소리이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나라에 창조주도 있고, 아버지도 있고 그 神이 자리잡고 있는 이스라엘 나라에서도 무서울 것이 없이 행동하던 레기온이 예수님을 보고 벌벌 떨었는데 그 보다 못한 사탄이 예수님을 광야에 끌고 가 시험했다는 엉터리 논리가 어디 있으며, 이렇게 앞뒤가 맞지 않은 기록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이제 예수님을 시험했다는 마태복음 4장 이야기를 보면 광야에서 예수님을 보고 시험하기를 이 돌들을 가지고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시험을 했고 또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 가서 한번 뛰어내려 보라 또한 높은 산꼭대기에 올라가 내게 절을 하면 온 천하를 다 너에게 주마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이다.
여러분 이 천지에 예수님을 시험할 신은 없다.
예수님은 완벽(perfect)하다.
누가 예수님을 시험하겠는가?
예수님을 시험할 자가 있다고 하면 그는 예수님보다 능력도 높고 지혜도 높고 그래야만 예수님을 시험할 것 아닌가?
완벽한 존재를 누가 시험하는가?
여러분 학교에서도 시험 보는 것은 그 학생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시험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완벽한 분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시험할 神도 없고 또 예수님은 시험 당할만한 이유도 없는 것이다.
거라사의 귀신도 예수님을 보고 벌벌 떨었는데 그 보다 못한 神이 예수님을 시험할 수 있단 말인가?
마태복음 4장에서 예수님을 시험한 神은 여호와이다.
여호와신은 예수님을 시험한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회유(conciliation)한 것이다.
왜 회유한 것인가?
여호와신은 예수님이 하늘로부터 내려온 것을 알았다.
이 예수님을 잘 회유해서 자기 부하로 삼으려 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자기가 예언한대로 메시아가 되기를 희망한 것이다.
첫째로 예수께 말한 것이 오랫동안 굶었는데 돌이 떡이 될 수 있게 하지 못할까? 질문한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대답이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神의 입에서 나온 말씀으로 살라 하지 않았는가 말씀한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이야기라면 그 神이 왜 가만히 있었겠는가?
돌을 가지고 떡을 만들 수 없으니까 핑계를 댄다고 오히려 무시할 수 있었을 것이고 비웃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시험하는 神이 아무런 대답을 못한 것이다 왜 그러한가?
바로 여호와신 자신이 한 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네(여호와신) 말이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고 네 입에서 나온 말로 살라 하지 않았느냐 그렇게 반문한 것이다.
네가 그렇게 말해놓고는 무슨 떡을 만들라 하는가 이렇게 반박하니까 자기가 한 말이므로 아무런 반박도 못한 것이다.
그런고로 네 말의 내용은 틀려먹었다 하는 이야기이다.
어떻게 네 입에서 나온 말로 사람이 영원히 살 수 있는가? 틀려먹었다는 소리이다.
또한 이상한 것은 세상의 보통 神은 예수를 성전꼭대기에 올려놓을 수 없다.
성전은 여호와신이 거처하는 집이다.
그런고로 감히 여호와신 외에는 어느 누구도 그 집의 꼭대기에 올라갈 수 없는 것이다.
성전꼭대기에 올려놓았다 이것은 여호와신만 가능하다.
예수님을 성전꼭대기에 올려놓고는 뛰어내리라 그러면 천사가 다치지 않게 너를 붙들 것이 아닌가 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또 여호와신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네 말이 시험하지 말라 해 놓고는 왜 시험하라 그러는가 말한 것이다.
네가 네 입으로 시험하지 말라 했지 않느냐 그래서 여호와신은 그것이 자기 말이므로 아무 답변을 못한 것이다.
다음에는 높은 산꼭대기에서 예수께 천하를 다 보여 주면서 내게 절을 하면, 내게 복종하면, 내 부하로 되면 내가 이모든 것을 네게 주마 한 것이다.
이 말은 너로 하여금 메시아로 삼겠다는 말이다.
그때 예수께서 대답한 말씀이 무엇인가?
“사탄아 물러가라” 말씀해놓고는 다음에 이어서 모든 것에 있어서 “여호와께 복종하라” 하는 이 말로 대답한 것이다.
이 말의 성경희랍원어를 보면 ‘기록되어있으되’ 너희神 오직 여호와만 섬기라 되어있다.
그런데 여기서 ‘기록되어있으되’ 이 말이 우리나라 번역에서는 접속사 ‘가르’를 번역하지 않았다. ‘게그랍타아이 가르’이란 말로 써있는데 이 말이 무슨 말인가 하면 뒤에 “가르”란 접속사는 ‘원인’,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로서 어떤 때는 의문사의 뜻과 비웃는 뜻이 포함될 경우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래서 기록되었으되 오직 말과 뜻과 정성을 다해서 여호와신만 섬기라 했는가?
다시 말하면 예수께서 의문 혹은 회유, 비웃는 의미로 말한 것으로 추정 할 수 있다.)
그래서 기록되어 있으되 “네가 여호와만 섬기라 했지?” 그런고로 여호와신은 아무 대답을 못하고 물러간 것이다.
이제 예수님 앞에 시험하는 神이 온 천하를 보여준다.
온 천하를 보여주면서 시험한다 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면 온 천하를 가지고 있는 神도 여호와신 밖에 없다.
다른 신은, 오늘 여기 레기온이란 神도 소유는 없다.
군대 神이기 때문에 무엇인가 조금은 있겠지만 마지막 할 수 없이 돼지 저것이라도 내 소유로 만들어 달라 예수께 부탁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시험하는 神은 온 천하를 가지고 있다. 이스라엘의 주인인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 네게 주마 하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공중의 나는 새도 깃들 곳이 있지만 나는 베게 둘 곳이 없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런 예수께 온 천하를 보여주며 유혹한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을 유혹했으나 그 결과는 실패였다.
그러므로 그 다음단계의 조치는 예수님을 죽이는 것 이였다.
오늘 여기의 레기온神의 사건을 보고 예수님의 중대성을 이해해야 한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을 떨게 만들었던 레기온도 예수님 앞에서는 오히려 벌벌 떨었다.
따라서 이 세상 神들은 예수님을 시험할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을 시험하는 神은 오직 이스라엘의 주인이며, 이스라엘의 아버지이며, 왕인 그 神이 예수님을 한번 유혹해 본 것이다.
만약 예수가 그 유혹에 넘어갔다면 그는 이스라엘의 메시아로 훌륭하게 이 세상 장군 노릇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세상에 머리 둘 곳을 만든 사람이 아니다.
여러분 세상사람은 유혹에 잘 빠진다.
그러나 예수님은 완벽한 존재다.
이 세상 어떤 神에게도 시험 받을 만한 분도 아니고 또한 예수님 앞에 그런 시험은 의미가 없다.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했던 것이 아니라 유혹한 것이고 우리는 그 神의 존재도 똑바로 알아야 한다.
백천(白泉) 김준식
(P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