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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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예수께서 여러 사람이 모인 가운데서 "목마르거든 내게와서 마시라"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천국의 이치를 말할 때는 이 세상 말로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비유를 들어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보고 글자 그것만 보고 매여 있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제대로 천국의 이치를 깨달을 수 없다.
세상 말로, 세상 철학으로, 세상 학문으로는 예수님의 말을 완전하게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목마르거든’이란 말은 영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목마름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 세상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목마름을 느끼지 못한다.
이 세상 사람들 중에는 그 사는 모습이 짐승과 다를 것이 없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가정생활, 사회 생활하는 것 외에 목마름이 없어 보인다.
이 세상 돌아가는 것 가지고 기뻐하고 슬퍼하는 정도이고,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목마름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이 세상 사람들의 상태인 것이다.
또 38절의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난다” 이 말은, 본 절과 동일한 성경 구절이 성경에서 발견 되지 않는다.
여기서 성경이라 함은 구약을 말하고 있다. 원어는 ‘그라페, γραφή로 ‘성경,책,글’의 뜻이고 히브리어로는 ‘세펠’이다.
그 당시 유대 나라에 책이라 함은 성경책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이 ‘책’은 구약이 아니라 그냥 책이라 보아야한다.
즉, 희랍 격언에는 유사한 말이 있어서 인용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구약을 인용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우리는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회당에 가야 구약의 말을 들을 수 있었을 텐데 예수님은 그런 곳에 간 일이 별로 없는 상태 즉, 공부한 일이 없었는데도
대화중에 구약을 그렇게 자주 인용할 수 있었을까 하고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렇다면 예수님은 언제 희랍이나 로마에 가서 그런 책을 읽고 공부한 적이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희랍이나 로마에 간 적이 없다.
이 말을 예수님이 아무렇게나 조작해서 거짓말을 했다고는 볼 수 없다.
희랍 사람들 가운데는 자기 심장에서 샘물이 흐르는 것을 느끼는 사람이 많았다.
그 일례로 아르키메데스( BC287-BC211)의 일화를 보자.
당시 왕이 자기가 쓰고 있는 왕관이 순금인가 아니면 불순물이 섞인 금인가 판정하라 했을 때 그는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는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가, 목욕탕에서 자기 몸이 뜨는 것을 발견하고 순간적으로 이것을 이용하면
순금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 있으리라는 영감 때문에 너무 기쁜 나머지 자기 몸이 벗은 상태인 것도 모르고 많은 사람들 앞에 나와 춤을 추었다.
그것은 비중의 원리를 발견하고 가슴에 샘물이 솟는 것을 느낀 사람의 행동인 것이다.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들은 진리가 이해되면 기뻐서 심령에 생수가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이다.
요사이 이 세상 사람들은 무엇을 가지고 그렇게 만족해하는가?
돈이 생긴다던지, 지위가 올라가거나 이 세상학문으로 아는 척 한다든지 등에서 만족하는가?
그러나 그럴 수 없다. 이런 것을 가지고 만족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살인자가 하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나를 죽이는 살인자인 것이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살인자 그것이 무엇인가? 바로 시간이다.
시간은 내 생명을 하루하루 단축시키는 것이다. 시간 앞에는 용사가 없고 그것을 비켜나갈 방법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부터 깨달아야 한다.
그런고로 이 세상에서 무의미 하게 귀중한 시간을 보낸다면 어떻게 내 자신을 살릴 수 있겠는가?
우리는 심령에 우리 정신에 갈증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목마름을 느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심령에 갈증을 느끼는 사람은 어디를 찾아야 하겠는가? 바로 샘물을 찾아야 될 것이 아닌가?
갈증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요소가 우리 주위에는 너무도 많다.
돈이 갈증을 풀어 주는 것 같고, 체육이나 오락이 갈증을 해소시켜주는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미술이나 음악이 우리의 갈증을 녹여 주는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갈증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이 바로 종교이다. 종교에서 주장하는 것은 믿음이다.
믿으면 어떻게 되는가 마음이 평안하다고 한다.
믿음니 갈증을 해소시켜 주는 것으로 아는데 그것은 오히려 갈증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나를 병자로 만드는 것이 바로 믿음의 작용이다.
믿게 되면 내일 혹은 모레 죽는 것을 모르고, 멸망의 세계로 들어갈 것을 모르면서
태평스럽게 자기 믿는 믿음에 의존하고 평안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믿음이라는 것이 나를 죽이는 강도를 막을 수 있겠는가?
따라서 나는 매일매일 속으면서 사는 꼴이 되는 것이다.
믿으면 마음에 평안을 누리고 따라서 갈증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음에 갈증을 느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갈증을 느끼는 사람은 다른 데로 갈 수가 없다.
예수께서는 갈증을 느끼는 사람 내게로 오라고 했다. 누구든지 내게로 오라가 아니다.
갈증을 느끼는 사람에 한해서 내게로 오라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 앞에 가기위해서 먼저 필요한 것은 심령에 갈증을 느껴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갈증은 세상 학문으로 해결할 수 없고, 이 세상의 재물로도 풀 수 없으며 또 지위와 명예로도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무슨 방법으로든지 해결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심령의 갈증인 것이다.
예수님 앞에 나가는 길 밖에 방법이 없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서 하신 말씀은 몇 마디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말 가운데서 예수께서 이 세상에 전해주는 저 원리(principle), 저 진리(truth)를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백천(白泉) 김준식
(P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