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산교회
 
작성일 : 16-08-11 08:53
설교제목 : 예수님에 대한 신뢰사항
 설교일자 : 1994.07.31
 KEY WORD : @ 아버지 선한일 신성모독 신 성경
 성경구절 : 요10:31~39
 관련구절 : 요14:08~11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253  


31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32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로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33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로 말미암아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신성모독으로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율법에 기록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35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36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 

37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38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시니 

39 그들이 다시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 그 손에서 벗어나 나가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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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오늘 말씀하신 초점은 내가 한 일을 보고, 내가 한 역할을 보고 이것을 인식하라 하셨는데 다시 말하면 나를 인식하라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돌로 쳐서 죽이려고 한 것은 그가 너무 건방지게 말하기 때문이었다. 

그때 예수께서 유대인들에게 내가 너희들에게 유익한 일을 하였는데 무엇 때문에 나를 죽이려 하는가 반문했을 때 유대인들의 말은 네가 좋은 일 하는 것은 알지만 네 스스로가 사람이면서 하나님과 가깝다 또는 神과 같다 왜 그런 참람한 말을 하는가 또는 왜 건방진 소리를 하는가 하고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다음에 14장에서는 빌립이 예수님을 보고 하는 말이 하나님을 보여 달라 부탁한 것이다.

빌립도 예수님을 인간적으로 존경하지만 또 높이 보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부족한지 하나님을 보여 주십시오 한 것이다.

그때 예수께서 대답한 말씀은 앞의 경우에서나 뒤의 빌립의 질문에서나 똑같이 대답한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은 내 아버지께서 나와 같이 있어서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으며 또 내가 아버지안에 있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와 일치적 행동을 하고 있다고 하신 것이다.

14장에서는 내가 한 일을 보고 아버지를 알아야 된다고 하였고 10장에서는 내가 일한 것은 아버지가 내 안에 있어서 내가 그의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한 일을 좋게 보지만 그것은 내가 아버지와 같이 있기 때문이다고 말해준 것이다.

그러므로 단적으로 내가 한 일을 보고 나를 알라 그것이다.

이것은 극히 과학적인 말이다.

세상에 어떤 성자와 훌륭한 사람이나 그 어느 누구도 이와 같은 말씀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오직 예수님만이 할 수 있는 말씀이었다.


 


여기에서 내가 한 일을 보고 나를 믿으라 성경에는 그렇게 표현했지마는 원어의 “피스튜오”, πιστεύω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믿는다’는 말이 아닌 것이다.

물론 어떤 때는 확신한다는 의미로도 쓰이지만 이것은 확인한다 그런 의미이다.

다시 말하면 내가 하는 일을 보고 확인하라는 뜻이다.

이제 빌립이 하나님을 보여달라 하거나 이스라엘 군중이 예수님께 대해 너 자신이 너를 너무 높이 평가하지 않았는가 하며 다시 말하면 하나님에 가깝다는 말을 왜 하는가? 죽여버리겠다고 한것이다.

이런 것들이 어디에서 유발된 것이냐 하면  다 예수님에 대한 인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는 말은 하나님을 안다거나 나를 아는 것은 그저 알아지는 것이 아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확고히 말하기를 내 일을 보고 깨달아야 한다고 밝힌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요즈음 말로 말하면 극히 과학적이다.

실제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지식이라 보는 것은 오늘날에 보면 과학밖에 없다.

지식이라 하면 곧 과학이 지식인 것이다.

왜 그러한가. 그것은 실증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과학의 기본은 학문적으로 논리를 실험해 보아야 하는 실험학문이다.

말로만 아무리 떠들어 보아야 그것이 실험적으로 입증이 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 예수님은 내 하는 일을 보고 내가 하는 역할을 보고 나를 알아야 된다 하신 것이다. 

지금까지 이 세상에 잘났다 하는 성인군자들이 많지만 한 사람도 예수님처럼 오늘 여기에서 하신 말씀같은 말을 한 이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보통으로 보고 넘기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말씀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스라엘 군중이 예수님을 모르고 죽이려하니까 나를 알라 하면서 내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다윗의 자손이다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한 일을 보고 나를 알라고 하셨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내가 한 일은 이 세상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말(씀)인 것이다.

 

 

사람으로서 할 수 없는 일, 인간이 세상에 나타난지 오래지만 그 누구도 예수님과 같은 일을 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세상神도 예수님과 같은 일을 한 神이 없는 것이다.

이스라엘 神이 있었지만 그 神은 사람을 죽인적은 있지마는 살린 적은 한번도 없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여기에서 한 말은 내가 한 일을 보고 나를 알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일반 사람들처럼 자기의 배경을 내세우지도 않았고 혈통을 내세우지도 않았다.

내가 한 일을 보고 나를 깨달으라 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실험이다. 실증인 것이다. 과학의 근본이다. 

인간이 알아야 할 지식의 근본인 것이다.

실적을 보고, 일을 보고 나를 알라 그것이다.

나를 알고 그리고 내 일을 보고 확신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아주 바른 길을 가르쳐준 한 예인 것이다.

따라서 인류가 이 땅 위에 있는 이상 이 일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일을 보고, 실증을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하라 그런 이야기이다.



38절에 “그 일은 믿으라” 말씀하신 것은  확실한 실험결과인 것이다.

내 일을 보고 나를 확신하라 내가 잘났다던지, 내가 유대인이라던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던지 그것이 아니고 내가 한 일을 보고 나를 알라하신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업적을 실제로 눈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오늘날보다 훨씬 예수님을 연구하기 좋은 기회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예수님을 인식한 사람이 적었다.

오늘 여기서도 빌립이 그런 사건을 모두 경험했음에도 여전히 예수님을 믿지 못하겠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빌립은 예수님을 철저히 인식 못한 것이다.

유대인들도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한 일은 크게 생각하지 않고 네가 왜 그런 참람한 소리를 하는가 하고 돌로 쳐 죽이려고 했고 예수님의 한 일을 직접 보는 것을 경험했어도 장님이 되어 오늘날까지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지난 주일의 설교에서 이런 구절이 있다.

천국에 갈 양떼가 지금 이 무리 외에 다른 무리가 있다.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나중에 이 두 무리가 합쳐져 한 무리로 된다 하는 말씀이 있다.

이것도 현기독교에서는 첫 번째 무리는 이스라엘 택함을 받은 백성이고 나중에 다른 무리는 이방인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정신은 이스라엘에 있지 않다.

이스라엘이 이 세상에서 한 일이 무엇 있는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아 죽인 죄밖에 없는 것이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아 죽인 민족에게 예수께서 말씀가운데 의미를 둔 것이 무엇이 있었겠는가?

그러면 다른 한무리의 양떼는 무엇인가?

그것은 즉 다른 양떼는 예수님 말씀 당시에는 예수님을 인식을 못했으나 예수님을 깨달을 수 있는 소질을 지닌 자들과 이 지구 밖인 것이다. 

이것도 대단히 심각한 말이다.

내가 늘 하는 말이지만 이 우주가 얼마나 넓은가?

이 넓은 우주에 지구밖에 생명이 살지 않는다고 볼 수 없다.

다른 곳에도 분명히 생명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 양떼란 이 지구 밖의 다른 세계에서도 천국의 자녀들이 있음을 말해준 것이다.

 

 

이제 이 지구에 사는 우리들의 주요한 역할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예수가 오늘 여기에서 말한 내 일을 보고, 내 역할을 보고 나를 깨달으라 한 것이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직접 예수님을 보고 그가 한 일을 보고도 제대로 알지를 못했는데 지금의 우리의 상황은 어떠한가?

우리는 두단계로 예수님을 아는데 어려움이 있다.

옛날에는 한단계였는데 지금 우리가 예수님을 아는데는 두단계로 작업을 하여야 예수님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일한 행적이 조금 남아 있는데 바로 이것을 확인하는 작업인 것이다.

가령 떡 다섯덩이로 5천명을 먹였다는 그 말을 보면 그때 사람들은 예수님 당시에는 직접 보았기에 이런 설명이 필요 없다.

그러나 지금은 이 말이 사실인가 거짓말은 아닌가?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그대로 기록되어 있는가? 증명해야 되는 것이다.

성경책에 써 있다고 그대로 믿는다 하면 그것은 어리석은 인간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거짓말을 믿는 다는 것은 아무리 보아도 불쌍하고 어리석은 존재일 수 밖에 없음을 우리 모두가 공감하고 있지 않은가?

따라서 성경책을 그냥 읽기만 해서는 안된다.

철저히 분석하고 확인하고 연구하고 발췌하여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이다.

 

 

내가 학생때 동경에 있을 때에 어떤 일본사람이 나를 불쌍하게 보아 그 사람집에 머무른 적이 있다.

나는 그때 그 사람이 고맙기도 하고 해서 예수님의 이야기를 꺼냈던 것이다.

예수님은 바로 떡 다섯덩어리로 5천명을 먹인 사람이라고 하자 그 사람은 나에게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고 한 것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질문했을 때 나는 한마디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것이 거짓말이 아닌지 따져야 하고 그냥 믿어서만은 안되는 것이다. 확인하고 확증해야 한다. 증명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하여 ‘우찌무라 간조’라는 일본 성경학자는 이 사건을 보면 그곳에 잔디풀이 있었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을 보고 예수님께서 떡 다섯덩이로 오천명 먹인 것은 사실이라고 본다는 것이다.

거짓말이라면 잔디풀이라는 말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글을 써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보다 더 강한 증거를 내놓을 수 있다.

제자들이 부스러기를 가지고 논란이 많았을 때 예수께서 왜 썩어질 떡을 가지고 그렇게 말이 많은가 말씀 한 적이 있다.

나는 이 말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 말은 예수께서 떡 다섯덩이로 많은 사람을 배불리 먹게 하지 않았다면 할 수 없는 소리인 것이다.

실제로 한 일이 아니면 그런 말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 말의 이면에는 그보다 중요한 것은  생명의 떡이라는 것이다.

주요한 것이 생명의 떡이지 내가 떡 다섯덩이로 그렇게 많은 사람을 먹게 한 것이 주요하지 않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왜 썩어질 떡을 가지고 말이 많은가?

이런 말은 예수님께서 한 일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말인 것이다.

우리는 마찬가지로 나사로를 살린 사건도 증명해 보아야 한다.

 


오늘 본문의 촛점은 내가 한 일을 보고 나를 깨달으라, 나를 알라 하신 것이다.

이천년이 지난 오늘에 우리는 예수께서 한 일의 기록을 통해서 확인하고 증명해서 예수님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백천(白泉) 김준식

(P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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