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산교회
 
작성일 : 16-08-22 08:57
설교제목 : 하나님을 아는길
 설교일자 : 1981.07.12
 KEY WORD : @ 칠십인 귀신 항복 하늘 기록
 성경구절 : 눅10:17~24
 관련구절 : 마11:25~27, 13:16~17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993  


17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2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2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23 제자들을 돌아 보시며 조용히 이르시되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가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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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70인을 전도대로 파견했다는 내용은 다른 복음서에는 없다. 누가복음에만 있다.

예수께서 12제자를 파견한 일이 있고 그 후에 70인을 파견한 일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제자들을 다 보낸 다음에 예수님의 그때의 생활은 우리가 알 도리가 없는 것이다.

아마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옆에 있어서는 안될 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보내고 어떤 장소에서 누군가를 만나기로 약속을 한것 같아 보인다.

그리고는 자기 혼자 있는데 그때 하나님과 예수님 두 분 사이에 주요한 일들이 논의되었거나 결정되었거나 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기록이 없음으로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고 혼자 있을 당시의 일을 제자들이 알 만한 일은 아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오늘 본문에 무슨 말이 있는가 하면 아들을 아는 자는 아버지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완전히 아는 자는 하나님 아버지밖에 없고 또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아들과 그 아들이 특별히 계시한 자 외에는 아는 자가 없다는 것이다.

간단히 읽어 넘겨 버릴 일이 아니다.

누가라 하는 사람이 대단히 유대적 사상이 강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이 말씀을 빼놓지 않고 기록한 것이다.

오늘 여기서 보면 예수님을 알아보는 사람은 아버지 뿐이다.

이 세상은 모른다 그런 이야기인 것이다.

몰랐다가 아니고 모른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24절에 보면 옛날에 많은 선지자들과 임금들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임금은 원어로 “바실류스”로 임금,왕의 뜻이 있으나 상징적으로 ‘권력의 소유자’의 뜻이 있다 따라서 다시 번역하면 '권위 있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다시 말하면 옛날에 많은 선지자들과 권위 있는 자들이 너희들이 보는바, 듣는 바를 보고자 했고 듣고자 하였으되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뒤집어 말하면 옛날에 많은 선지자나 권위 있는 자들이 하나님을 알고자 하고 보고자 하였지만 보지도 못했고 듣지도 못했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대단히 중대한 문제이다.

우리가 알기에는 또 성경에 있기를 많은 선지자나 권위 있는 자들이 하나님과 접촉했고 하나님과 같이 이야기했다고 되어있지 않은가.

또 오늘날 교회들이 그렇게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그렇지는 않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교회는 예수님을 다 아는 것처럼 이야기 하고 있는데 예수님을 완전히 아는 분은 그야말로 하나님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의 옷자락 끝부분 정도의 조그만 부분을 알면 다행인 것이다.

 


요사이 보면 외국 귀빈들이 오면 대대적인 환영행사를 하고 야단 법석을 떠는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이 땅에 왔을 때 어떠했는가?

우리들의 태도가 문제이다.

그가 이 세상에 와서 도적질을 하였는가?

아니면 나쁜 말을 가르쳤거나 악한 일을 하였는가 정권을 빼았으려고 하였는가?

그는 세상에 와(서) 병자도 고쳐주었고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거나 하였을 뿐인 것이다.

어렵고 병든 사람을 도와준 것 뿐 밖에 없는데 그의 얼굴에 침을 뱉고 눈을 가리고 때리고 그러다 못해 가시관을 머리에 씌우기 까지 한 것이다.

배고플 때 얻어 먹는 자, 병 고침을 받는 자, 모두 어디에 숨었는지 한 사람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밤낮으로 데리고 다니던 제자들 조차 달아 났고 혹은 그 장소에서 피해있거나 자기 신변을 감추거나 모른다 이런 정도로 되어 있었다.



예수님을 그와 같이 모욕하다 못해 그를 마지막에 십자가에 달려 죽여 놓고는 죽인 죄를 회개하거나 잘 못했다던가 그런 일도 없고 인간들은 그가 죽은 것은 스스로 결정해서 죽은 것인데 다만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을 우리가 도와준 것이라는 궤변을 펼치고 있다. 

자기 혼자서는 제 몸을 십자가에 올릴 수 없음으로 우리가 옆에서 부축했고 우리가 도와 주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옛날부터 내려오는 예언에 의해 죽었는데 스스로 결정해서 죽었다는 것은 왜 인가?

예수님이 이 세상 사람들의 죄를 대신해 그들의 대속물로 죽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전 세계 교회가 이렇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세상이 예수님을 모른다 하는 증거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이와 같이 사람들이 아는 것 같지만 여전히 모르고 있는 상태에 있다.

 


오늘날 우리들이 예수님을 아는데 알려고 하는 것이 기록인데 그 기록이 4복음서에만 있는 것이다.

이 기록도 예수님에 대해 완전히 기록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대개는 4복음서의 공통을 묶어 보면 두 책정도로 끝나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을 아는 유일한 자료이다.

성경이 66권이나 있다 하지만 예수님을 아는데 있어서는 도움이 안 된다.

도움이 안 되는 것 뿐만 아니라 오리려 예수님을 아는데 방해가 되고 있는 부분도 있는 것이다.

그런고로 오늘날도 여전히 온 세계 신자들이 예수님을 바로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이 자기를 모르도록 길을 마련해 놓았는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예수님을 보낸 이후로 예수님을 아는 길은 열려있는 것이다.

이 책에 있는 네 복음서뿐만 아니라 다른데 예수님을 아는데 지장이 되는 기록이 있다 하더라도 예수님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길은 열려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예수님은 이천년 전 한 일년 반정도 사신 후 돌아가신 다음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다시 사셨다. 장소를 옮겼을 뿐이다.

그는 죽은 분이 아니고 살아계신 분이다.



예수께서 이 세상을 떠나면서 우리에게 확실히 언약해 둔 것은 너희를 혼자 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내가 떠난 이후에도 내가 항시 너희와 같이 있으리라 말씀 하신 것은 엄연한 약속이다.

그러면 우리는 옛날 낡아빠진 기록에 의해서만이 예수님을 알려고 하지 말고 지금 현재도 살아계신 예수님과 서로 상통함으로써 그를 보다 가깝게 보고 듣고 알아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 앞에 와있지만 알려고 하지도 않고 알려고 하는 마음을 갖지 않은 때문이지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 신도를 향해서 자기를 알리려고 우리와 교신 하려고 노력하지만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지 않고 주위를 돌리지 않고 있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왔는데도 그의 얼굴에 침을 뱉고 가시관을 머리에 씌우고 그가 죽은 것을 자진해 죽은 것이지 우리가 죽이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심적 태도라 하는 것은 예수님을 본질적으로 알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다.

 


옛날부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려고 했고 진리를 알려고 노력했지만 그것이 어느 시기까지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그 길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 길을 열어 준 것이 비로서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온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물질을 쓰고 있는 존재이기에 구체적인 방법으로 가르쳐 주기 전에는 소위 말하면 영적 방법, 정신적 방법으로만은 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낸 것이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이 세상에 인간으로 보낸 것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한 방법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이 인간을 아는 한 방법이기도 한 것이다.

예수님이 인간 사회에 오심으로서 그것도 가장 밑에 위치한 대중 가운데서 인간성을 실제로 맛본 것이다.

인간의 약점, 부족한점, 잘못된 점 모든 것을 잘 통찰해서 거기서 비로서 구원이라는 경계선을 마련한 것이다.

만약에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지 않았더라면 이세상사람 한 사람도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다.

왜냐면 한 사람도 완전한 인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예수께서 이 세상에 왔다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길이요 유일한 길이다.

하나님이 또한 세상을 알아보는 유일한 길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고로 사람들이 자기생각 자기 뜻대로 무엇을 해 보았자 도리가 없는 것이다.

 


오늘날 온 세계교회는 예수님을 모르는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늦지는 않다.

예수님을 알 수 있도록 복음에 있는 가장 기초적인 것에서부터 알아야 하고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님과 상통하는 생활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을 만나보는 생활, 예수의 음성을 듣는 생활, 내 가정에 예수님을 모시는, 내 심령에 예수님을 모시는 방법이 우리가 사는 유일한 길임을 깨달아야 한다.

여기 본문에서 예수께서 분명하게 말씀 하시기를 아버지를 아는 것은 나와 내가 특별히 알리는 사람 외에는 모른다는 것이다.

옛날 선지자나 권위 있는 사람들이 너희들이 보는 것을 보고자 했고 너희들이 듣고자 하는 것을 들으려 했으나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한 지금도 못한다.

내가 보여준 사람 외에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정체를 우리들에게 보여주기 전에는 아무도 하나님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천지 창조의 원칙이요 또한 그렇게 되어야 할 것이다.



백천(白泉) 김준식

(P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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