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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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께서 벳세다에서 오병이어 기적을 행하신 후 두로와 시돈 지방을 들려서 그곳의 가나안 여자가 그녀의 딸 아이의 귀신을 쫒아달라고 요청하는 여인에 대한 기록이다
이 말씀은 마가복음 7장 24-30절에도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마태복음에는 두로, 시돈 지방에 있는 가나안 여인이라 했는데 마가복음에서는 헬라 여인이요 수로보니게 (Syrian Phonicia)족속이라고 표현했다.
수로보니게는 시리아와 페니기아의 합성어로서 영어로 Syrian Phoenica이다.
시돈 지역으로 해석되며 그녀의 출생은 헬라인으로 추측된다.
헬라 여인인데 왜 이 지방여인을 마태복음에서 가나안 여자로 기록되어 있는가 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에 들어왔을 때 그 땅에 살던 사람들이 변방으로 밀려 나갔고 그래서 그 지역에도 가나안 사람들이 살았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던 것이다.
마가복음에서는 두로 부근 지역이라 했는데 그것은 옛날 이 땅이 수리아 영토의 일부였다.
그래서 그 이름을 쓴 것이고 지금도 그 지역은 시리아에 속해있다.
그런고로 마가복음의 이야기나 마태복음의 말이 꼭 같은 것인데 지명을 달리했기 때문에 혼돈하고 있다.
그러므로 같은 지방에서 일어난 일이고 이 여인은 마가복음의 이야기대로 헬라 여인이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께서 이 여자와 어떤 말을 나누었는가에 대한 것이 오늘 성경 구절의 핵심이다.
예수님은 히브리사람이고 헬라여인은 헬라어를 쓰는데 두 사람의 통화는 성경에는 언급은 없으나 예수께서도 그 당시에 헬라어를 했고 이 여인과 헬라어로 대화를 나누었을 것으로 추정 된다
신약성경이 왜 헬라어로 기록되어 있는가 하면 예수님 당시에 유대사람들이 대부분 히브리 말을 알 수 없었고 율법이 기록된 히브리어를 읽을 수도 없었다.
유대 사람이 히브리어로 기록된 토라(모세 오경)를 읽기위해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2세가 예루살렘에서 72명의 학자를 뽑아 알렉산드리아에서 토라를 히브리어에서 희랍어로 번역케 하여 '70인역 성경(SEPTUAGINTA)'이 유대인과 디아스포라를 위해 탄생 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구약 성경이 기록된 경위에 대해서도 의문을 안 가질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구약이 히브리어로 기록 되어있는데 그당시 애굽 말이 세계적인 문화어이고 히브리 사람들이 애굽에서 산 것은 약450여년( 야곱의 12형제의 이집트 이주부터 출애굽까지)인데 그 곳에서 그 사람들이 히브리 말을 썼다 하는 것은 믿을 수가 없다.
450년 동안 애굽에서 살았으면 애굽 말을 했을 것이다.
애굽 말이 야만어이면 몰라도 문화어이다.
그러므로 모세가 쓴 구약이 히브리말로 썼다 하는 것에 대해 의심을 갖을 수 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BC14세기경에는 가나안 지역도 전부 애굽 말이 통용 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또 모세는 애굽 왕실에서 자라났다.
따라서 그는 애굽 말을 썼을것이고 히브리말은 배우지 않았다고 추정 할 수 밖에 없다.
그런고로 이 구약성경이 히브리말로 기록되었다 하는 것에 대해 믿을 수 없고 의심을 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오고 그보다 훨씬 후인 BC4-5세기경에 모세 오경이 완성되고 22개의 자음으로 구성된 구약사본은 마소라 성경사본으로 AD7-10세기에 완성됐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이 처음에는 애굽 말로 된 것을 나중에 히브리어로 번역했을 것으로 추정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저는 오랫동안 구약을 연구해 왔는데 구약의 기록이 고고학적으로 거의 증명이 안 된다.
오늘 사건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높이 평가하는 관점에서 기록되어 있고 또한 이 세상 교회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그것이 아니다.
오늘 여기서 예수님이 보니게,(Phoenica) 지방으로 갔는데 그것은 이스라엘 북쪽 지역이고 예수님은 이스라엘 북쪽지역에 사렙다 지역을 거쳐서 시돈으로 간 것이다.
그곳에서 헬라여인을 만났는데 그 여인은 이미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알고 있었고 그래서 자기딸이 사귀 들린 것을 예수께 고쳐 달라 부탁하러 찾아온 것이다.
예수님은 여기서 24절에 의거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다’ 하는 문구가 성경에 있지만 예수님이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나는 이스라엘 외에 다니지 않는다. 는 말이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땅 외에는 다니지 않았다.
보니게 지방의 시돈 지역으로 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이스라엘 땅 안에 있었고 밖에는 나가지 않았다.
이것이 대단히 중대한 문제이다.
예수께서 이 땅위에서 천국의 복음을 전하려고 한다면 모든 지방에 그 빛을 비추어야 할텐데 나는 이스라엘 땅 외에는 다니지 않는다 한 것일까?
만일에 예수께서 이 땅위에서 전도한다든지 천국의 이야기를 전하려 했다면 개방적이 아닌 이스라엘에만 있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때 당시 가장 문화가 발달되고 우수한 민족이라면 애굽이나 헬라나 중국 그 다음이 로마였다.
로마는 헬라나 애굽의 영향으로 발달한 민족이었다.
만약 예수가 천국의 복음을 전하려고 왔다면 중국이나 그때 당시 로마나 애굽이나 희랍에서 전도를 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왜 안 했는가?
이 문제에 대하여 대부분 심각하게 파헤쳐서 의문을 갖는 사람이 거의 없다.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한다 하면 중국은 좀 멀기 때문에 힘들 다해도 애굽이나 로마나 희랍에 가지 않고 나는 이스라엘 외에는 보냄을 받지 않았다.
즉 다른 곳은 안 가신다 했는가? 이것이 문제이다.
왜 이스라엘 외에는 나가지 않았는가?
그런고로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온 근본목적은 전도하거나 복음을 전하거나 그것이 아니다.
이제 한 가지 분명히 알아야 될 것이 있다.
예수께서 중국이나 애굽이나 헬라에 가서 전도를 했다 하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가난한 자에게 먹을 것을 주었고 병든 자를 고쳐주었고 진리를 전파했기 때문이다.
인류의 문화가 그 나라들에서 발달했다 하는 것은 진리를 탐구하는 열정이 큰 민족들이다.
그들은 ‘주여 이 땅에서 얼마든지 오래 계시라고 ‘떠받들었을 것이다.
또한 그와 같은 나라에서는 예수님을 죽일 법을 갖지 못하고 있었다.
폐쇄적이었던 유대민족보다 깨어 있었고 개방적인 희랍사람들에게 천국의 이치를 선포했다면 훨씬 더 효과적이지 않았겠는가? 그런 이야기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늘 여기서 한 말은 나는 이스라엘 외에는 안간다고 말씀 하신 것은 무슨 까닭인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할 법은 이스라엘 밖에 없었다.
그 법이 바로 이 성경책인 것이다.
그런고로 예수께서 내가 십자가에 달리지 않으면 그 성경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말한 것이 바로 그 까닭이다.
다시 말하면 다른 나라에서는 예수님을 죄인 취급해서 죽일법이 없었고 또한 그런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지 않을 민족 이였던 것이다.
오직 이스라엘만이 예수님을 죽일 수 있는 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을 처음에 재판한 로마의 빌라도도 예수님을 심문해 보았지만 아무런 죄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예수님을 석방시키려고 애를 썻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떠들며 안된다고 하니까 할 수 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수님을 넘긴 것이다.
이스라엘 군중들이 우리에게 우리의 법이 있다 떠들며 우리의 법에 의해서 이 사람을 죽여야 된다고 소리친 것이다.
이제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복음이나 전하고 자기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기 위하였다면 헬라나 애굽으로 가는것이 훨씬 이상적이었을 것이다.
그는 이 땅위에서 유일한 천자(天者)로서 온 세계를 지배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세상에 전도나 할려고 온 사람이 아니였다.
그는 자기의 목적을 가지고 왔다.
우리가 그가 오신 목적을 전부는 알 수 없지만 일부는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 목적을 다하신 다음에 자기가 온 목적을 달성하면 곧 자기가 온 본향으로 돌아가야 했던 것이다.
돌아가는데 인간으로 왔기 때문에 죽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일단 죽어야 되는 것이다.
죽는 방법에 있어서 십자가에 달릴 수 있는 것이 이스라엘 법 밖에 없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할 법은 오직 이스라엘 뿐이었던 것이다.
또 예수님은 자기의 목적을 달성한 다음에 곧 자기의 본향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십자가의 길을 택한 것이다.
그가 다른 나라에 가서 복음을 전한다. 그런 여유를 가지지 않았던 것이다.
단지 이스라엘 가운데서도 가까운 사람들에게 자기의 말을 전할 수 있는 기회만 만들어 주면 그러면 자기가 있건 없건 간에 그 복음은 예수께서 이 땅 위에 왔던 그 사실을 전해줄 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곧 돌아가야 되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 단 일순간도 남아있을 분이 아니셨다.
예수님도 자기에 대해 말하기를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나는 새도 깃들 곳이 있으되 인자는 베개 둘 곳이 없다’ 하신 것이 그것을 입증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두로,시돈 지방까지 갔더라면 더 멀리도 얼마든지 갈 수 있었는데 나는 이스라엘 밖으로 안 나간다 하신 것이다.
다음에는 여기서 어린아이의 떡을 개에게 줄 수 없다 라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서 어린아이를 이스라엘 이라고 보는데 그렇지 않다.
여기서 어린아이는 구원 얻을 자, 영생의 자녀를 말하는 것이다.
구원 얻을 사람, 영생의 자녀는 이 땅 위에 있을 동안 언제나 어린아이 이다.
우리가 어른이 될 수 있는 것은 영생의 세계에 간 후이다.
이 땅 위에 있는 동안 누구가 구원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구원 얻은 자는 예수님이 주는 젖을 먹고 자란 어린아이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 어린아이에게 줄 떡은 생명의 떡이란 이야기이다.
이 떡을 개에게 줄 수 없다. 그런 이야기이다.
이 여자의 말이 비록 부스러기라도 얻어먹었으면 좋겠습니다 해서 이 여자는 자기의 딸의 병 고침을 얻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어린아이 즉 떡을 먹고 자랄 수 있는 어린아이 외에는 모두 개나 돼지와 다를 바 없다는 말이 된다.
꼭 가나안 사람만이 아니고 영생을 얻지 못할 사람은 동물의 운명으로 끝나기 때문에 동물과 무엇이 다른가?
예수께서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말라 하는 말과 이 말이 일치되는 것이다.
구원 얻을 사람 외에는 다 동물과 마찬가지이다. 그런 이야기이다.
여러분 대체적으로 말하면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니 뭐니 하지만 개와 다를 바 무엇이 있는가?
전 세계에서 각 나라마다 무엇 때문에 무기를 만드는가?
그것이 인간 생활에 무슨 도움이 되는가?
그 한 가지 예만 보아도 사람이 개보다 나을 것이 없다.
동물사회는 오히려 인류사회보다 격조 높은 데가 있을 수 있다
그런고로 영생을 얻을 자녀 외에는 다 동물이다. 그런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을 죽인 옛날 이스라엘 사람만 동물였는가? 오늘날도 꼭 마찬가지 이다.
지금 예수님을 알고 그 진리의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얼마나 되는가?
기독교가 예수님을 알려고 애쓰고 있는가?
얼빠진 神을 하나님이라 섬기고 있고 각종의 종교 생활로 어울려진 곳이 교회이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크게 보아 아버지와 자신 사이에 관계된 일을 완수하는 것이 그 하나이고, 나머지 하나는 자신이 가지고 온 생명의 그 떡을 받아먹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개에게 줄 수 없다는 그 말은 아무에게나 줄 수 없다는 말인 것이다.
이제 이 여인은 예수께서 하신 그 말씀의 이치를 깨달은 것이다.
비록 헬라 여인이지만 예수님의 말을 깨달은 것이 오늘날 전 세계에 있는 깨닫지 못한 기독교인이나 종교 학자들보다 낫다 하는 그런 이야기이다.
그런고로 그에게 떡을 준 것이다.
인간의 참 본성은 저 천국으로 옮겨갈 수 있는 어린아이로 있어야 하는 것이다.
백천(白泉) 김준식
(P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