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02 내 아버지의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고 너희에게 말했겠느냐? 나는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
03 내가 가서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나에게로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게 하겠다.
04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05 도마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우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겠습니까?"
06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사람이 없다.
07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 이제 너희는 내 아버지를 알고 있으며, 그분을 이미 보았다."
---------------------------------------------------------------------------------------------------------
오늘 본문 중에 모르는 말이 있다.
첫째로 14:2절을 보기 바란다.
본문에서 한글 성경에 “그렇지 않다면(εἰ δὲ μή)”에서 한글 성경은 “만일(if)”의 단어 번역을 생략했고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고 ”와 “그렇지 않다면 너희에게 말했겠느냐”를 “호티”의 접속사를 무시하고 번역을 하여 두개의 절의 앞뒤 문구가 잘 연결이 되지 않도록 되어있다.
따라서 2장의 정확한 번역은 “나의 아버지의 집에 있을 곳들이 많이 있노라. 만일 그렇지 않다면 장소를 준비하러 간다고 그대들에게 말하였을 것이다.” 이렇게 번역된다.
이와 같이 종종 중요한 곳에서 잘못된 번역으로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주기도문에서 보면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했는데” ‘일용한’은 원어에 “에피우시오스(ἐπιούσιος)”로서 ‘매일의’, ‘일용한’, ’삶에 필요한 양식’의 뜻이 있고 마태6:11절의 ‘일용한’으로 해석된 부분은 ‘절대적으로 삶에 필요한’ 본질(essence)의 그 떡으로 해석됨이 적절한 번역이다.
따라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본질의 그 떡(알토스)이 된다.
그러므로 절대적인 본질의 그 떡 한 덩어리 이것은 틀림없이 예수님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유일한 그 떡이다. 그런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 전 세계 기독교가 그것을 모르고 있다.
이렇게 성경의 주요한 곳이 원문의 뜻과 일치하지 않게 번역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여기서 예수께서 자신이 간다는 말씀이 대단히 중요하게 강조되어 있다.
왜 가는가? 가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우리들이 있을 곳을 예비하기 위해 간다는 말씀이다.
있을 곳이 아버지의 집에는 많다.
있을 곳이 많은데 그 가운데서 너희들이 있을 곳을 예비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배급을 받아야 된다. 그 말씀인 것이다.
천국에 장소가 넓지마는 너희들이 갈 곳을 예비하지 않으며 갈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고로 이 나라는 예수님 전에는 없었고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생길 수 있는 나라를 의미하는 것이다.
내가 가서 너희들이 있을 곳을 마련해 준다 예비를 해두어야 되겠다는 말씀이고 예비를 한 다음에는 다시 와서 너희들을 데려 갈 것이라는 것이다.
줄거리는 그런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말씀은 무엇인가 하면 본문에서 마지막 말씀이다.
마지막 말씀은 “나는 길이요 나는 진리요 다음에는 나는 생명이다.” 이 세 가지를 말씀하셨다.
다시 말하면 너희들이 갈 곳을 준비해 놓고 너희들을 데려갈 텐데 그 갈수 있는 길의 인도자는 누구냐 하면 나 예수라는 것이다.
또 예수께서 자기를 설명하는데 몇 가지가 있다.
오늘 여기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셨고 또 다른 구절에서는 나는 빛이다. 나는 떡이라고 하셨다.
그러면 여기서 보면 조건이 있다.
다시 말하면 내가 가서 예비한 곳으로 갈려면 첫째로 새로운 생명을 지니고 살아야 되며 죽은 사람은 못 간다.
천국에는 죽어서 시체가 가는 곳은 아니고 살아야 가는 곳이다.
내가 늘 하는 말이지만 창조주가 인간을 창조한 다음에는 이 세상에서 사는 시간에 제한을 둔 것이다.
인간이 아무리 오래 살아야 120년 정도이다.
일반적으로는 80~90세를 전후해서 죽는다.
그 후에는 존재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사람으로서는 절대로 천국에 못 간다.
그런고로 여기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나는 생명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가진 생명은 자연계의 생물로서 사는 생명이 아니다.
그곳은 다른 생명이 가는 곳으로 하나님께서 다시 준비해준 새 생명을 가진 사람 외에는 갈수가 없다.
그러면 우리는 그 새 생명을 가져야 되고 다음에는 그 생명이 먹고 사는 양식이 필요하다.
그 양식이란 것이 주기도문에서 나온 것과 같이 ‘에피수시안 호알톤’으로서 본질의 그떡’이란 말이다.
그 떡을 먹기 전에는 생명이 유지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고로 오늘 여기 예수께서 저 새로운 세계로 가는 데는 새로운 생명이 유지되는 데는 그 떡을 먹어야 되는데 그 떡은 예수님이시다.
또 이 떡은 무엇인가 하면 진리인 것이다.
우리가 천국에 가거나 영생을 하는 것 또는 반대의 경우 모두 다 진리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의 종교생활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 부처님에 대한 믿음 이렇게 믿는 것을 가지고 우리의 인생문제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보는 이 우주의 현상을 살펴보면 모든 것이 다 이치가운데서 원칙가운데서 되어가는 것이다.
그 진리를 우리가 습득하고 그 진리를 바라보고 그 진리를 느끼는 것이 오늘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인 것이다.
우리의 생활 중에서 그 진리를 파악해야 되는 것이다.
그것이 예수님을 떡으로 먹는 우리의 자세인 것이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 말은 대단히 힘든 말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께 갈수 없다고 말씀한 것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데 그런고로 나를 통하지 않고는 내 아버지께 갈수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내 아버지와 나는 하나라고 하셨다.
여러분, 분명히 말해둔다. 하나님은 인격이 아니다.
온 세계 기독교가 지금 하나님을 인격의 신(神)으로 믿고 있다.
하나님은 인격이 아니시다.
다시 말하면 예수께서 이 세상에 와서 가르친 말을 통합해 보면 이 세상에 오실 때는 육체로 왔지마는 자신의 본질은 인격이 아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는 것은 인격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내 아버지도 인격적인 그런 신(神)은 아니다.
인격으로 우상화해서 믿는 그런 신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진리요 생명이요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원칙을 비쳐주는 빛이요 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나를 통하지 않고는 절대로 아버지께 갈 수가 없다고 하셨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말씀이다.
예수님을 모르면 아버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통해서만 예수님의 아버지 하나님을 알 수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심각한 문제에 부딪히는 것이다.
과거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섬기는 신(神)은 예수님이 아니더라도 잘 알 수가 있다.
이 구약성경은 책 권수만 하더라도 39권이나 된다.
신약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기록한 책은 복음서인 4권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페이지 수를 보더라도 구약이 몇 백배나 더 되는 것이다.
또한 옛날 이스라엘 민족이 섬기는 그 신(神)에 대한 성격, 존재성 그 능력등 이런 것들이 아주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 신(神)은 예수님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예수님의 아버지 되는 그 신(神)은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신(神)이라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이다.
시내산에서 그 신(神)이 직접 말했고 BC8C부터 전하던 예언자들의 말도 그 신(神)이 직접 한 말이다.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섬기는 이스라엘의 왕이요 이스라엘의 아버지요 지도자요 이스라엘의 조상인 그 신(神)은 예수님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너무 잘 알고 너무나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늘 아침 나를 모르면 내 아버지를 모른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바로 내 아버지와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들의 신(神)이라는 여호와와는 다르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혀주었다.
이스라엘의 아버지와 예수님의 아버지는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탄생하기 전에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본인들의 민족 신(神)에 대해 잘 알았다.
옛날 모세가 예수님이 없었더라도 여호와를 잘 알았다.
이사야는 어떠한가?
호세아, 예례미아 등 많은 선지자들이 예수님이 탄생하기 전에 자기들의 신(神)을 받들고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았던가?
그 신과 오늘 아침 예수님이 분명하게 밝혀준 나를 통하지 않고는, 나를 알지 못하면 내 아버지도 모른다 한 그 예수님의 아버지와는 분명히 다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온 세계 기독교가 지금 어떻게 되어 있는가?
예수님이 아니더라도 잘 아는 여호와 신(神)을 예수님의 아버지로 덮어 씌우고 있지 않은가?
나는 이 세상에서 존경하는 사람이 없다.
오직 예수님만 존경하고 예수님만 알고 싶은 심정이다.
그가 애굽에서 태어나 갈릴리에서 시작되는 그의 온 행적을 일일이 살펴보면서 늘 마음속에 생각한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게 되면 그의 아버지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하나님을 아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님을 아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다른 어떤 사람의 말이나 기록이 우리에게 조금도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오늘날 어리석게도 다른 신을 가지고 예수의 아버지라 하고 있다.
예수님을 알아야 예수님의 아버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남겨둔 말이 얼마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것 만이라도 확실히 파악해서 우리의 마음속에 가지고 있어야 한다.
백천(白泉) 김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