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19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20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이르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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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무화과나무 열매를 기대하고 그 밑에 가 봤더니 열매가 없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무화과나무를 보고 일러 다시는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했고, 그 무화과나무는 즉시 말랐다 라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
마가복음 11장 12절 이하에 보면 예수가 무화과나무를 보고 위와 같은 말을 하고 떠난 후
이튿날 다시 그곳을 지나면서 보니 이미 나무가 말랐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무화과나무가 예수님이 말씀한 그 즉시부터 마르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이 세상에는 필요 없는 존재와 또 필요 없을 뿐만 아니라 다른 존재에 대해 방해되는, 해가되는 존재들이 너무 많다.
오늘 읽은 마태복음 본문에서는, 무화과나무가 예수께서 기대했던 열매가 없었음으로 당장 그 자리에서 저주를 했고 나무가 말라죽게 되었다 그렇게 간단히 기록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열매가 필요한데 열매가 없으면 필요 없는 나무인 것이다.
또 잎사귀만 무성해서 사람을 속이는데 적당한 나무가 되는 것이다.
필요 없는 것 뿐만 아니라 해가 되는 것은 즉시 없어져야 한다.
이것은 예수님의 원칙인 것이다.
필요 없는 존재는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 속에서 없어져야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뿐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이 세계 뿐만 아니라 저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필요 없는 존재는 하나님의 창조 세계 속에 있는 원리, 원칙으로 인해 없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 세계 뿐 만 아니라 저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은 네 오른 팔이 범죄 하거든 찍어 내어버려라 한 것이다.
오른 팔이라 하면 얼마나 귀한 것인가?
그러나 그것이 자기에게 해가 될 때에는, 죄를 범하게 할 때에는 당장에 찍어내어 없애버려라 한 것이다.
또한 네 오른편 눈이 너로 범죄케 하거든 빼어내 버려라 라고도 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원리, 원칙에서 필요 없는 존재 해가 되는 존재는 없애버려야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만들어서 공존하게 할 때에는 다 제각기 나름대로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남의 눈을 속이게 하거나 또 쓸데없이 모양만 내는 그런 존재는 즉시 없애 버려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시장해서 무화과나무 곁에 갔을 때 그 나무는 예수님에게 필요했던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열매가 없었음으로 그 무화과나무는 결국 남을 속이게 하는, 쓸데없이 모양만 내는 그런 존재로 예수님 앞에서 확인되어 버린 것이다.
우리는 이 사회에서 이 민족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필요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특별히 예수님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나무가 갑자기 말라죽는 것을 보고 제자들이 참으로 이상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까 했을 때, 예수께서 대답하기를
내게만 이런 일이 있을 것이 아니라 너희도 나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되어야 한다, 너희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 무화과나무와 같은 존재에 대해 저주를 하면 그 존재가 말라죽어야 하고, 또 필요 없는 존재에게 네가 없어져야 된다고 하면 없어져야 된다고 말한 것이다.
그 말은 무슨 뜻인가?
예수님이 떠난 이후 예수님이 지금 이 땅위에 계시지 않은 이후에는 너희가 필요하다. 너희가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너희가 무엇 때문에 필요한가?
이 세상에서 필요 없는 존재를 없앨 수 있는 그런 능력의 존재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너희가 믿음이 있다고 하면 이 무화과나무에 된 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저 산을 움직이게 명령해도 움직여질 것이란 것이다. 이 말은 무슨 말인가?
이 사회에 참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예수님의 제자가 있다고 하면
저 필요 없는 인간들,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세상의 선생들과 학자들, 정치가들을 다 즉석에서 없애버려야 되는 것이고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러분 이 세상에 참 그리스도인이 많다고 하면 세상이 더 악해지고 더 더러운 상태로 갈 수 있겠는가?
이것은 예수님을 대표하는, 예수님을 대신해 줄 수 있는 존재가 극히 적다 하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인 것이다.
예수께서는 지금도 너희가 나와 같이 내가 저 무화과나무에 대해서 한 일과 같이 너희에게도 같은 능력이 있어야 된다고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창조세계의 큰 원리, 원칙가운데 필요 없는 존재는 없어져야 하고 또 없애버려야 하는 것이다.
여러분, 세상이 왜 점점 혼탁하고 타락해간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예수님처럼 저 무화과나무와 같은 존재에 대하여 지엄한 판정을 하고 곧바로 엄중한 결과를 낳게 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다.
필요없는 존재를 보고 가만히 쳐다보고 있거나 나하고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하거나 하는 그런 태도는 그리스도인이 취할 태도는 아닌 것이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논 창조세계의 원리, 원칙에 입각해서 필요치 않은 존재, 해가되는 존재는 없애버리는 것이 이 땅위에 남아있는 그리스인의 사명인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를 이 세상에 남겨둔 까닭은 옳지 못한 것 불필요한 것 이것을 정리하고 정돈하고 없애버리기 위해서 우리들의 존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원칙, 원리인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되는 것이 있다.
이것은 나쁘다, 옳지 못하다, 그르다 하는 것을 어떻게 정확하게 아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인간의 인식이라 하는 것은 극히 불완전하다.
더군다나 예수님의 정신, 예수님의 원리를 확실히 파악하고 그것이 내 소유가 되어있지 않으면 우리의 판단력이라 하는 것은 종종 실수를 하고 옳지 않은 것을 옳다고 하며 반대로 옳은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할 수가 많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원칙이 내 피와 살이 되기 전에는 우리가 올바른 인식을 갖기 힘든 것이다.
예수님이 관용을 베풀라고 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점 때문인 것이다.
형제가 잘못을 했을 때 얼마나 용서를 해야 하느냐고 질문했을 때 일흔 번을 일곱 번을 하라 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무한히 하라는 말이다.
또 오른편 뺨을 때리거든 왼편 뺨을 돌려대며, 남에게 원수를 갚지 말고 관용을 베풀라 한 것도 나쁜 것을 즉시에 척결하고 없애버려야 되지만, 그것을 인식하는 우리들의 능력에 혹 결함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우리들에게 관용을 요구한 것이다. 좀 기다려 보아라 하신 것이다.
우리는 이 사람이 나쁘다, 악하다 할지라도 다시 말하면 오래 기다려보고 시험해보고, 오래검토해 보고 확실히 그것이 옳지 않다 잘못되었다 인식될 때는 모르지만
경솔하게 함부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판단력은 예수그리스도의 정신과 일치되어야 하고 또 그래야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내 인식이 정확하지 못한 상태에서 저 사람은 희망이 없다고 말했다면 잘못하면 옳지 못한 판정을 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그것은 오히려 내가 죄를 범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이라 하는 것은 어제와 오늘이 다를 수 있다.
오늘 악하던 사람이라도 내일 고쳐질 수가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땅위에 와서 많은 병을 고쳐주었다.
그렇다고 유대나라 모든 사람의 병을 고쳐준 것은 아니다. 당지 몇몇 사람을 고쳐주었을 뿐이다.
예수님은 육신의 병 고침을 통하여 그들의 진짜 병을 고쳐 주었다. 다시 말하면, 참된 새로운 인식을 준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 역시 예수님을 바로 알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고쳐주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이다.
영혼이 병든 자는 고쳐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예수님의 제자 된 도리이다.
혹, 어떤 사람이 세상 사람이 보기에 악하다 할지라도 그가 만일 예수님을 몰라서 그렇게 된 것이라면 우리는 그 병 즉, 그 죄를 없애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 병 즉, 그 죄는 예수님을 몰랐기에 생긴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알게 되면 저절로 치유될 병이기 때문이다.
나면서부터 소경인 사람도,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 된 병자도 예수님을 만났기에 그 병이 나음을 입은 것이다.
오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 같은 존재는 즉시 없어져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움직일 수 없는 대원칙이지만
우리들의 인식력이나 판단력이라 하는 것이 예수와 꼭 같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그것들을 예수님을 통해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에 뒤 따라야 하는 것이 만나는 사람들의 병을 고쳐줄 수 있는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모르는 죄를 없애 줄 수 있는 능력인 것이다.
백천(白泉) 김준식
(P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