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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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 ‘때가 되었다’ 하였는데 아주 간단한 말이다.
이 말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만 있다.
오늘 본문의 골자는 세가지다.
때가 되었다는 것이고 그리고 새로운 때다. 마지막으로 神의 통치가 준비되었다는 것이다.
본문에서 하나님(神)의 나라는 마태복음에서는 일관되게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의 원어를 천국이라 번역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神의통치가 준비되었다 하는 것은 유대나라의 통치를 가르키는 것이 아니다.
본문에서 원어로 “바실레이아 투 데우”에서 “바실레이아”, “βασιλεία”,는 ‘나라’를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행위”,”통치”,”질서”를 뜻한다
이미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기전 천오백년 이상부터 유지해온 이스라엘 나라의 통치는 아닌 것이다.
또한 이 세상 나라의 통치도 아닌 것이다.
지난주에도 말했지만 히브리 원어로 ‘꼬이’라는 말인데 요즈음 말로 상징적으로 보면 사회라는 말로도 번역이 가능하다.
예수께서 있을 당시 사회라는 말이 없었음으로 할 수 없이 천국나라(Kingdom)이라고 번역하였지만 우리가 생각한 그런 국가와는 다른 의미인 것이다.
여기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이제는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神의 나라가 새로운 나라 요즈음 말로 말하면 하나님의 통치의 사회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이루어졌다는 것이 아니다.
이루어질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통치의 사회가 언제부터 시작되는가?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온 그 이튿날부터 될지 그렇지 않으면 몇 백년 후부터 아니 몇 천년 후부터 될지 그것은 모른다.
지금 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이런 시기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고로 이것은 새로운 시대의 문이 열려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회개하라’하였다.
우리가 보통 회개라면 자기 지은 죄를 회개한다고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여기에서 이 '회개하다라'는 말의 원어는 “메타노에오(μετανοέω)”로서 그대로 우리말로 고치면 '생각을 고치다', '생각을바꾸다' 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을 고치라는 것이다.
새로운 생각을 가지라는 이야기이다.
오늘 이 말은 대단히 중대한 이야기이다.
때가 이르렀다는 것은 때가 준비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런고로 새로운 세계가 창설될 만한 때는 이르렀다.
그리고 神의 나라가 이루어졌다가 아니고 준비되었다는 것이다.
언제부터 될지는 모르지만 지금 그 준비는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하면 생각을 고치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생각해온 자기의 생각을 고치라는 것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인간이 이 세상에 나온지 몇천년이 아니고 어떤 학자들은 인간의 기원이 6천 5백만년전으로 이야기하기도하고 인간과 비슷한 생활은 2백만년 전 정도 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 만큼 오랜 세월을 걸어오면서도 인간의 생각이나 사고방식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대로인 것이다.
지금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더욱 변화가 없다.
그러면 금후로는 이런 상태가 달라지겠는가?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이것이 큰 문제인 것이다.
인간이 그렇게 시간만 보내면서 달라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가?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생각을 달리해야만 천국이 준비되어 있다고 말이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나라가 준비되었고 시간이 다 되었다 하더라도 지금 이 땅 위의 인간들로는 안된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이다.
그 나라에 들어 갈려면 생각을 고치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인간들이 갖고 있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천국에 새로운 세계에 가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이 세상 사는데 있어서도 지금까지 살고 있는 사고방식을 고쳐야 한다. 고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오늘 아침에 우리에게 해주는 말씀은 이제는 때가 되었고 이 때는 놓치지 말아야 하고 다음에는 준비가 다 되었다는데 문제는 너희 인간들의 생각을 고치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려온 동물만도 못하는 생각을 내내 가지고 있어서는 희망이 없다.
결국은 시간이오면 소멸되고 없어지는 것이다.
나는 천국이 준비되었다고 하지만 저 우주 다른 곳에서 저 천국의 인원(member)이 되고 지구에서는 한사람도 천국의 인원이 나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려온 역사를 보면 지구에 사는 사람으로 저 세계에 갈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걱정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이전에도 말했지만 예수께서 이 세상을 왔다 떠난 지도 이천년이 흘렀다.
이천년이 되는 동안에 예수님의 생각이나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라든가 예수님이 지금 살아계신 상태라든지 이와 같은 것을 연구하거나 공부하는 사람을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지금 기독교는 예수님의 정신은 온데간데없고 교파, 분파, 정치에 빠져있는 것이다.
그런고로 이대로 둔다면 저 세계에 갈 사람도 한두사람 있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은 희망이 없는 것이다 라는 생각까지 드는 것이다.
예수님은 분명히 이 세상에 오셨다가 가셨다.
그러면 간 이후에도 여전히 우리와 교류(communication)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저 세계에 간 다음에 이 세상 누구와 진지하게 교통하고 있었다는 것을 찾아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람들이 제멋대로 교리를 만든다 교파를 만든다만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전주에도 이야기 했지만 베드로는 교회의 기둥 같은 사람이며 예수께서 능력도 주었고 성령의 감화도 주었다.
그런데 그는 그것을 이용해서 자기의 권위를 내세웠고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자신들의 소유물을 팔이 얼마를 감추고 나머지를 교회에 헌금했을 때 그들을 책망하고 그 자리에서 죽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후에도 기독교는 어떠한 발전도 없이 내려온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 인간들은 근본적으로 반성을 해 보아야 하고 다음에는 예수님을 알아야 한다.
여러분 예수께서 이 세상에 와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
그것을 보고 우리는 간단히 우리의 죄 값으로 죽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무슨 죄값으로 십자가에 달리는가?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의 죄값으로 십자가에 달린다든지 그런 어리석은 것을 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예수님 나름대로 자기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갔지만 그러나 인간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지 않았더라면 예수님은 딴 방법으로 이 세상을 떠나갔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가 예수님을 인식했더라면 예수께서 이 세상을 떠나갈 때 영광스런 방법으로 저 세계에 갔을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에게 좋은 모양으로 행복한 모양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인간사회가 더럽게 되어 있고 또 더러운 神의 지배하에 있었기에 가장 비참한 모습으로 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가지고 죄값으로 떠나갔다 조작을 해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 세상을 떠난 사건을 잘 알아야 한다.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달려 죽었는가?
첫째는 神과 관계가 있다.
구약에 보면 나 여호와는 질투하는 神이라고 말했다.
여기에서 질투는 누구에게 하는가? 이 말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예수님에 대한 질투인 것이다.
그런고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한 것은 여호와 神의 질투의 결과이다.
그러나 神의 질투의 결과로만 간단히 생각해서도 안된다.
설혹 神의 질투성으로 인해 그 수단으로 사람을 이용했다 하더라고 인간이 올바로 되어있었다면 그와 같은 神의 질투의 수단에 넘어가 행동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 神이 이용 못했을 것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면 예수께서 이 세상에 태어날 때 형편없는 요셉의 아들로 되어있는데 그가 만약 서기관이나 바리새교인, 장로나 제사장들의 아들로 태어났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십자가에 달리진 않았을 것이다.
여러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 세상에서는 간판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예수께서 바리새교인, 서기관, 제사장 집에서 태어났다고 하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지 않는다.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죽이라고 소리친 것은 그가 간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천년을 내려오면서도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은 근본적인 힘은 神의 작용이지만 인간적으로 볼 때는 예수님은 이 세상의 간판이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십자가에 달려 죽이라 하는 모욕을 당했던 것이다.
우리는 예수께서 이 땅에 와 서 당한 사건을 철저히 인식하고 여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예수께서 우리들에게 너희들이 생각을 고치라 하는 말은 첫째로 너 자신을 알라 하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의 생각을 고쳐야 하고 다음에는 예수님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지금 기독교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예수님이 우리의 죄값으로 죽었다 하는 그와 같은 생각으로 예수님을 모욕하는 말을 믿고 있어서는 안된다.
예수님을 바로 알아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알아야 하는데 먼저 그는 이세상 사람이 아님을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그는 이 세상 생물학적으로 난 사람이 아닌 것이다.
그는 분명히 저 세계에서 온 사람임을 깊숙히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길을 가다가 무화과 나무가 무성한 것을 보고 거기에 가서 열매 없는 것을 보고 이 나무에서 열매를 먹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했을 때 그 나무는 즉시로 말라 죽었던 것이다.
또한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을 보고 무엇이라고 말했는가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기지 않고 파괴되리라 했다.
어떻게 되었는가? 40년 이상 지어진 훌륭한 성전인데 AD70년경 그러므로 예수께서 돌아가신 후 30여년이 지난 후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기지 않고 파괴되었던 것이다.
예수님이 하신 일을 보면 그의 능력은 절대로 사람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이 세상 생물학적 존재는 아니었던 것이다.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지금도 살아계시다 하는 것도 알아야 한다. 따라서 그와 교통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교회를 형식적으로 갔다 왔다 하는 것은 의미 없는 것이다.
그와 상통되는 생활을 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저 세계는 절대로 갈 수가 없는 것이다.
백천(白泉) 김준식
(P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