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02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03 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04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가고
05 제육시와 제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06 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07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08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09 제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10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11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12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13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14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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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말씀과 구약의 말을 확실히 구분해야 하고 또 사도바울이나 기타 다른 사람들의 편지도 예수님의 말씀과 확실히 분간을 해야 한다.
또 예수님의 말씀도 앞뒤가 맞지 않은 전혀 다른 말들이 있다.
그것을 다 예수님의 말씀이라고 해서 한가지로 취급해서도 안된다.
예수님의 말씀은 전에도 말했지만 우리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 사는 동안 사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있다.
그것은 세상사람과 신자가 세상에 있는 동안 생활상의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일편 천국에 관한 이야기, 천국에 대한 말씀, 이것은 다르다.
그것을 분간 못하면 안된다.
우리가 진리를 파악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분석이다. 분간을 잘해야 한다.
오늘 여기서 보면 제3시에 나간 사람이 제 6시에 포도원에 나간 사람 제9시에 포도원에 가서 일한 사람 심지어 제 11시에 포도원에 나가 일한 사람이 모두 같은 삯을 받았다.
이것은 세상이치의 기준에 의하면 이치에 맞지 않은 소리이다.
세상 살아가는 이치에 맞추어 보면 대단히 불공평한 일이다.
그런데 이 말은 오늘 읽은 성격구절에서 보듯이 천국에 관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구원의 세계에서는 그것이 성립된다는 것이고 성립될 뿐만 아니라 근본적인 원칙이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 형제가 죄를 짓거든 일곱 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를 하라 그것은 490번이 되는데 쉬운 말로 말하면 형제가 무슨 죄를 짓더라도 용서를 하라 그런 소리이다.
남의 죄를 그만큼 용서를 하라는 말은 자기 죄도 그만큼 용서를 하라는 말이 아닌가?
남의 죄가 아무리 많아도 괜찮다.
그것은 뒤집어 말하면 자기 죄도 용서를 한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사람이란 남의 죄를 용서를 안해도 자기 죄는 용서를 잘하는데 남의 죄를 그 만큼 용서를 하라 할 때에는 자기 죄는 더 용서를 받는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는 예수께서 어떤 말씀을 하셨는가?
네 오른 눈이 죄를 범하거든 빼어버리라.
네 오른손이 죄를 짖거든 찍어내어 버리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완벽한 것처럼 너희도 완전하라 얼마나 심각한 말씀인가?
우리에게도 털끝만치도 죄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경고인 것이다.
그러면 형제의 죄를 오백번 용서하란 말씀 즉 형제의 죄를 무한정 용서하란 말씀은 자기 죄도 그 만큼 많이 용서하란 말씀이다.
이 말씀과 예수님의 또 다른 말씀, 티끌만큼의 죄가 있어서도 안 된다는 말과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전혀 다른 말씀인 것이다.
그러나 이 말씀들은 하나는 천국에 갈 수 있는 여건을 말해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세상사람들에 대한 우리들의 자세를 이야기한 것이다.
이것이 이 세상과 천국이 다르다 하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천국에 가고자 하는 사람은 세상사람들에 섞여서는 안된다.
물론 세상에 있는 동안 어느 정도 세상에 물들 수도 있고 잠길 수도 있는 것이다.
여러분 한 부자가 예수께서 와서 어떻게 하면 잘 살수 있습니까?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질문한 것이다.
그때 예수께서 계명을 잘 지키라 말한 것이다.
네 부모를 잘 섬기고 도적질 하지 말고 거짓말하지 말라 그러면 그 말은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 세상에 있는 세상사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어느 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도덕적, 윤리적 이야기이다.
세상에서 실제로 부모를 잘 섬기고 거짓말하지 않고 도적질 하지 않은 사회라면 얼마나 살기 좋은 세상이 되겠는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그 사람이 저는 그런 일을 잘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다 완전하게 된 것이고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다시 질문했을 때 그때에 비로서 예수께서 다른 말씀을 하신 것이다.
네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너는 이 세상 생활을 떠나서 나를 따르라 말한 것이다.
얼마나 차이가 난 말인가?
그러므로 예수님의 첫 번 말씀을 이 세상에서 보통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표준 생활에 대해 말해 준 것이다.
그러나 천국 가는 길은 두 번째의 말이다.
그것은 이 세상 표준생활 정도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거짓말 않고 도적질하지 않고 그것만으로 천국 가는 것은 아니다.
천국 가는 길은 아무것도 없는, 이 세상에서는 거지나 마찬가지인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천국을 가기 위해 준비하는 생활은 이 세상 잘 살아가는 방법과는 판이하게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되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 시간에 대한 말이 나오는데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서는 유대나라 시간 시스템으로 이야기한 것이고 요한 복음에서는 로마의 시간 제도로 말했다.
유대나라의 시간 제도는 다르다.
해가 뜨기 시작할 때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제 3시라 하면 지금 우리의 시간 개념으로는 오전 9시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3시간이 지난 후는 12시에 해당하고 유대나라의 제 11시는 해가 넘어갈 무렵인 것이다.
즉 해가 넘어가기 한시간 전에 해당되는 시간인 것이다.
그러므로 제 11시에 포도원에 일하러 들어갔다면 한시간 일한 사람인 것이다.
그런데 몇 시에 들어가 일을 했던 간에 다 한 데나리온씩 주기로 약속을 해서 들여 보낸 것이다.
일한 양에 관계없이 같은 돈을 받는다.
이 세상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고로 이 이야기는 천국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세상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예수님이 세상이나 어디에서든지 공평하지 않은 이치에 안 맞는 이야기를 했을 리가 없는 것이다.
천국에 관한 이야기는 세상 이야기와 맞지 않는다.
예를 들면 여기서 한 데나리온의 약속 같은 것은 돈이 아니라 영생과 같은 것이다.
물론 영생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예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일찍이 믿는 사람도 영생이라는 부활의 새로운 생명은 하나이다.
조금 늦게 진리를 깨달은 사람, 아니 죽기 전에 예수님을 깨달은 사람도 영생을 얻는 것이다.
영생이 두 번 세번 있을 수 없고 영생은 하나이다.
일찍 예수님을 깨달았건 조금 늦게 깨달았건 그 결과 얻는 영생은 같은 것이다.
그런고로 이 영생이란 약속,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와서 인류에게 약속한 것이 있다.
무엇인가? 나를 따르면, 내가 걷는 길을 걸으면, 내 안에 있으면 그 결과가 영생이란 것이다.
예수님의 하나의 약속이시다. 한 데나리온의 약속과 마찬가지이다.
이외에도 천국에 관한 이치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사는 것과는 다르다.
이세상에서 아무리 완벽하게 점잖게 얌전하게 자랐다 하더라도 그 결과를 가지고는 영생을 못 얻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인간으로서 완벽한 생활을 한 것이고 인간으로서 충분한 의무를 다한 것이다.
그런데 세상 종교에서 하는 말은 세상생활만 제대로 하면 천국에 갈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세상 사는데 필요한 것만 강조를 하는 것이다.
세상사는 동안 세상의 의무는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고 영생까지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
영생은 세상의 생활하고는 다른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아주 쉬운 길이가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무한히 힘들다.
여러분! 영생의 길이 힘든 줄만 생각하면 잘못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어렵고 십자가도 메야 한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쉬운 것이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마련해 준 길은 제대로 들어서고 이치의 길이기 때문에 그 이치대로 걸으면 그것은 쉽게 갈수도 있다.
단지 이치를 떠나 낭떠러지에 떨어진 사람이 다시 올바른 길을 가려면 높은 고개도 넘어야 하고 넓은 강도 건너야 하는 힘든 길 일수도 있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천국 가는 길 그 길의 원리를 잡았다고 하면 그 길의 걸음이 그렇게 힘들게 되어 있지 않다.
혹 힘들 때가 있다 하더라도 주께서 우리를 인도해 주고 붙잡아 주고 끌어 잡아 주신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천국 가는 길의 도중에 설혹 어려운 일이 생기더라도 주께 알리면 그 모든 문제가 풀리고 해결 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기도를 해서 그 기도가 전혀 응답이 없었다면 희망 없는 인간이다. 안 그러한가?
아니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에 응답이 없다면 언제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죽은 다음에 기도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고로 우리들이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허망한 기도를 하면 안된다.
심사숙고를 해서 이 기도를 주님께 해도 되겠는지 잘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 그리고 나서 기도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고로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를 들면 영생과 같은 이야기이다.
이것은 주께서 우리에게 마련해준 약속이다.
여기서 영생이란 아침에서부터 일찍 일했다고 해서 그 일이 크고 많은 가치는 아니다. 그것도 알아야 한다.
여기서 분명히 말씀한 대로 너와 나의 약속이란 것이다.
여러분 인간이 이 세상에서 주를 위해 하나님을 위해 일을 하였다고 합시다.
그것이 얼마의 가치가 있겠는가?
그것으로 영생을 살 수 있을까?
영생이란 것을 이 세상의 어떤 가격으로 무슨 일로 살 수 있겠는가? 절대로 살수가 없는 것이다.
가격으로는 무한대의 값이다. 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단지 예수께서 우리에게 약속으로 주신 것이다.
일한 성과의 가치로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우리와 약속의 값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동안 주의 말씀의 대변인이다.
신자는 세상사는 동안 주의 대변자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제6시, 제 9시, 제11시에 나가서 길거리에 서있는 배회하는 자들은 무엇을 말하는가?
여기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누가 와서 나를 저 포도원으로 불러들여 일을 시켜주기를 기대하면서 서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무엇인가? 게으른 사람이 아니다.
단지 진리를 탐구하는 자로서 방황상태에 있는 것을 뜻한다.
세상에서 덮어놓고 여기저기 다니며 설교나 듣고 기도나 하고 그것으로 때로는 위안을 삼고 아멘도 하고 지껄이지만 그러나 참된 의미에서 진리를 포착하지 못해 방황하고 있는 어느 집에 들어가 일을 할까 고민 중에 번민 중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런고로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여러 사람들의 학설이나 주장을 들여다보고 하면서 누가 나를 데려가지 않은가 기다리는 심정이 어떠하겠는가?
오늘 포도원에 들어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언제 들어가든 영생의 약속을 받아내었다.
똑같이 한 데나리온씩 받은 것이 바로 영생의 약속에 비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영생이란 무엇인가? 오래 산다는 것인가?
이것은 바로 존재이다. 내가 있다는 소리이다.
영생이란 내가 있다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 생활을 하는데 문제가 무엇인가?
그것은 내가 한 50-60년 살면 없어진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문제이다.
내가 아무리 잘 살고 잘 입고 즐거웠다 해도 다음에 나란 존재가 없어진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예수께서도 온 천하를 얻고도 네가 없다면 무슨 소용인가 하면서 존재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셨다.
내가 없다면 하나님도 소용없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오늘 영생을 약속하신 것이다. 얼마나 값진 것인가?
그런고로 오늘 내가 포도원에 들어가 있지 않으면 들어가려고, 들어갈 수 있도록 헤메고 다녀야 한다.
그것은 탐구 해야 하고 노력해야 함을 말한다.
포도원의 주인을 어떻게든 만날 수 있도록 찾아야 함을 말한다.
가만히 있으면 포도원 주인이 나를 찾을 수 있겠는가?
시장거리로 나가서 헤메고 다녀야 하는 것이다.
내가 제 3시에 들어갔건 아니 제 11시에 들어가도 내가 포도원에 들어가기만 하면 내가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내게 영생의 특권이 천국 가는 길이 열려지는 것이다.
따라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으로 서둘러야 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분리하고 알 수 있도록 노력하는 길이다.
그래야만 시장거리에서 주님이 나를 찾고 그리고 포도원에 넣어주는 포도원에 들어가라는 응답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백천(白泉) 김준식
(P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