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산교회
 
작성일 : 16-09-25 08:42
설교제목 : 참씨
 설교일자 : 1994.03.13
 KEY WORD : @ 가라지 비유 씨 인자 마귀
 성경구절 : 마13:36~43
 관련구절 :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439  


36 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37 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38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39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40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41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42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43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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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지는 원어로 지자니온(ζιζάνιον)이다.
예수님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의 가라지는 보통 보리나 밀 등과 같은 자리에서 자라는 일종의 잡초이다.
그런데 이 가라지 역시 열매를 맺는다.
맺기는 맺되 그 열매는 유독성이 있고, 그 씨는 마귀가 뿌렸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사람을 일종의 흙으로 볼 때, 그 사람의 자질을 어떤 사람은 옥토 어떤 사람은 돌짝밭 어떤 사람은 가시덤불에 비유하신 적이 있다.
마귀가 그러하듯 예수께서도 우리 각인(各人)의 심령에 씨를 뿌리시는데, 그 중 오직 옥토의 자질을 가진 사람만이 그 씨를 받아 100% 혹은 60% 최저 30%까지 성장 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그 심령에 자란 씨가 있는 까닭에 천국으로 회수될 자격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씨라는 말의 의미를 기독교는 지금까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고작 씨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 혹은 예수님의 말씀이다 하는 정도의 파악에 그친다 그것이다. 
오늘 본문에서도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씨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 못했기에 다시 질문한 것이다.
그런 질문에 대하여 예수께서 해명(解明)해 주는 것이 씨는 나라의 자손이란 것이다.
이 말씀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 말씀은 다른 복음서에도 없고, 마태복음서 가운데서도 오직 여기에만 있다.
씨는 바로 하늘나라 즉, 천국의 자손 혹은 일원(一員)이다 그것이다.



이때 이 나라라는 말의 원어는 바실레이아(βασιλείᾳ)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사용하신 이 ‘나라’라는 말은 대단히 오해하기 쉬운 것이다.
가령 주 기도문에서 “나라가 임하옵시며” 라고 할 때, 그 나라는 여호와의 완전한 통치가 실현되는 이스라엘로 받아들이기 쉬운 것이다. 그러나 그런 뜻이 아니다.   
예수님이 말한 이 ‘바실레이아’ 즉 나라라는 말은 소위 정치 조직을 갖춘 그런 국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정점으로 하는 본질적으로 하나인 생명체 조직을 말하는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오늘 본문의 씨도 말하자면 그 나라의 자손들이다. 천국의 자손들이다 하는 말이다.
그런데 그 씨가 옥토에 떨어져 최상으로는 100% 성장하고 그 다음 조금 떨어진 것은 60%성장하고 최저 30% 이상 성장해야만 저 나라에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뿌린 씨가 비록 모든 흙에 떨어졌다 해도 모든 심령이 그 씨가 자라서 천국가는 것이 아닌 것이다.
반드시 최저 30% 이상 성장한 사람만이 예수께서 만든 그 나라 즉, 천국에 이전되어 지는 것이다.
우리의 몸은 이 씨를 받아들이는 일종의 흙덩이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날에 무덤 속에 있던 인간 즉, 죽은 자의 몸이 부활해서 천국 간다는 바울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소리인 것이다. 



인간의 몸이라는 것은 이 세상에 나서 어느 정도까지 자라다가 그 후는 점차 늙고 죽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다시 살아서 천당에 가겠는가?
종교화된 기독교의 그런 허탄한 소리를 믿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있는 우리는 일종의 흙이며 천국에 가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예수께서 뿌린 그 씨가 최저 30% 이상 자라는 옥토의 자질을 가진 자라야 한다.
가시덤불, 길가, 돌짝밭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시간은 대단히 짧다.
이 시간을 함부로 낭비하여 우리에게 뿌려진 그 씨를 제대로 자라지 못하게 하면, 그 사람은 영원히 희망이 없는 것이다.
예수님이 아무리 지금 기독교가 주장하는 대로 사랑이고 자비라 한들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은 하나님과 예수께서 세운 진리와 그 진리에서 나오는 법대로 수행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온 목적은 이 세상 사람들이 그저 잘 먹고 잘 살며 또한 분쟁이 없는 평화로운 흔히 말하는 유토피아적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예수님 이후의 세상은 오히려 그 반대로 흘러갔음이 그것을 증명한다.  
만약 예수께서 이 세상을 그런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왔다면 그는 이 세상에 가능한 한 오래 함께 있어 주어야 했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는 고작 이삼년 정도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가 자기 본향으로 돌아갔다.
또한 만약 예수님이 정말로 이 세상을 유토피아적 세상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그의 제자들 역시 통념상 뛰어난 사람들로 구성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가령 그들 중 수제자라는 베드로는 사도행전의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죽임을 당한 사건에서 보듯 터무니없이 사람을 죽여 놓고 그 능력이 예수님으로부터 나왔다 라고 주장한 그런 터무니없는 사람이었던 것을 볼 때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그것이 아님이 확실한 것이다.



또 한편으로 보면 이 세상은 어느 시기가 오면 없어진다.
이것을 좋게 할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 땅 덩어리가 잘되고 못되고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단 한 가지 이 땅위에 옥토의 성질을 가진 사람이 많기를 바랬던 것이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와서 십자가에 달려서 돌아가신 다음 자기 본향으로 돌아갔다.
기독교는 그가 돌아간 이후 생겨난 것이다.



그런데 그 후 이 세상은 어떻게 되었는가?
예수님이 오기 전까지는 여호와는 어디까지나 이스라엘의 민족 神이었다.
여호와는 다른 민족의 神은 아니었다.
이전에도 말했듯이 요나는 여호와가 다른 민족의 神이 되는 것을 아주 불쾌하게 여겼다.
그래서 요나는 여호와의 명을 거슬러가면서 까지 이방 민족에게 자신들의 민족 신인 여호와를 알리는 것을 것을 거부했고 심지어 도피까지 하려 했던 것이다.
또 현재 유대인들 가운데 일부 사람들은 저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神을 우리 하나님이라 부른다고 비웃고 있는 것이다.
요나 시대도 그렇지만, 예수 당시에도 여호와는 이스라엘 민족들에게는 대단히 영광스러운 자신들 만의 신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앞서 말한 대로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약 이삼년 지내다가 자기 본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가 돌아간 이후 온 세상은 다시 여호와의 나라가 되어 버린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기독교에서 예수님의 존재는 없다.
다시 말하면 여호와가 하나님으로 건재하는 이 기독교 하에서는 예수님의 정신이 실종된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말살되었다 그것이다.
예수님의 정신 다시 말하면 그 본질은 진리이며 빛이며 생명이다.
그 정신에서 벗어난 기도를 제 멋대로 늘어놓고 그것을 예수님의 이름에 틀림없이 부합된다고 말하는 것은 분명 예수님 즉, 진리에 대한 모독임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기독교는 예수교가 아닌 것이다.   
또한 예수님의 말씀도 제대로 연구해온 학자가 없어 보인다.
이천년 기독교 역사 속에서 예수님의 말씀 혹은 그 정신을 밝혀 낸 것 역시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 예수님을 몰랐던 까닭에 생기는 교회의 분열과 교파의 형성 등 정치적인 색채로 가득차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확실히 알았다면 그럴 수는 없는 일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돌아간 다음에 이스라엘 민족神이 세계의 神으로, 세계의 아버지로 등장한 것이다.
현 기독교는 실제는 여호와 종교이다.
유대교와 단지 이름만 다르고 제도가 조금 다를 뿐이지 본질적으로 보면
일종의 이스라엘 종교의 부산물에 볼과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금의 기독교라는 것은 단지 이스라엘 종교의 가지 정도에 불과하다 그것이다.
따라서 온 세계 기독교는 여호와를 섬기는 종교로 전락했고 예수님이란 존재는 없어져 버린 것이다.
예수님이란 이름만 남아있지 예수님의 말씀을 연구하거나 예수님의 정신을 공부하거나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또 한 가지 지적해야 할 것은 예수님의 말씀 자체는 보통 사람의 인성에는 잘 들어맞지 않는다.
오직 옥토의 본질을 소유한 자라야 만 뿌려진 그 씨가 자랄 수 있는 특성을 가졌다 그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몇 가지 요인들로 해서 예수님의 존재는 이 세상에서 드러날 수가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것이다.     



그러면 예수님은 자기가 세상을 떠나면서 이렇게 될 것을 몰랐을까?
몰랐을 리가 없는 것이다.
예수님은 알고 있었다.
예수님은 약 이삼년 동안 이 세상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가면 이 세상은 나의 정신을 생각하고 연구하고 그리고 나를 알아 볼 것이다 라는 그런 기대도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런고로 지금의 세계는 여호와의 세계, 여호와의 나라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 성경의 전체 기록 가운데서 예수님의 말이 차지하는 부분은 극히 적다.
그나마 그것들도 서로 중복되고 약간씩 혹은 많이 다르게 기록되어 있어 확실히 예수님의 말을 분별하고 파악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 일을 수행하는 것이 오늘 우리 예수님 믿는 자의 본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기대한 것은 인간의 본질 문제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 옥토를 가려 천국의 씨를 뿌리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그것이 주요한 목적 중 하나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 자신이 일종의 진리와 생명과 빛이 담긴 거대한 씨로서, 또한 그 씨의 표본(sample)이 되어서 왔고, 또 직접 이 세상 사람들에게 그 씨를 뿌렸던 것이다.



이 사실을 나는 지금까지 어떤 신학자도 제대로 깨달은 사람이 없었다고 본다.
내가 늘 하는 말이지만 예수님은 이 땅의 사람이 아니다.
저 세계의 사람으로서 여자의 몸을 빌어 인간으로 났다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자기가 장차 뿌릴 씨의 하나의 표본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내가 저 세계에서 인간으로 태어났다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저 천국의 씨를 뿌리기 위해서 세상에 왔다 그것이다.
다시 말해두지만,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우리 인간이 보통으로는 깨달을 수 없는 거대한 씨였으며 그 씨가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그 말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신 것은 마치 씨가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난 것과 같은 것이며 그것은 전에 없던 오직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새로 생겨난 이치임을 우리는 철저히 인식하고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고로 우리는 항시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는 부류가 분명히 있다.
바로 길가, 돌짝밭, 가시덤불과 같은 자질을 가진 사람들이 그들이다.
그들은 세상일에 지나치게 열중하거나 혹은 생각하는 힘이 부족한 고로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고로 문제는 내가 옥토의 자질을 가진 사람이어야 하고 또 그런 자질을 가진 사람은 더욱 예수님이 주신 씨를 자라게 하기 위하여 모든 정력을 쏟아 부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옥토의 자질을 가진 사람들을 멸망할 이 세상에서 구출해내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예수님이 뿌린 씨 한 알이 이 세상 사람들의 모든 심령에 뿌려져 그 중 옥토의 자질을 가진 사람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생긴 저 천국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마치 예수께서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난 것과 꼭 같은 모습이다. 방법도 같은 것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심으로 그 이치를 오늘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이다.



백천(白泉) 김준식

(P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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