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산교회
 
작성일 : 16-09-27 09:49
설교제목 : 참 안식일(2)
 설교일자 : 1987.09.20
 KEY WORD : @ 안식일 밀밭 주인 성전 큰이
 성경구절 : 마12:01~08
 관련구절 : 막02:23~28, 눅06:01~05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840  


01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02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03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04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 한 자들이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05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0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07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08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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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는 안식일 규례에 관한 구약의 여러 가지 이야기가 들어있다.
그런고로 출애굽기 25:30, 레위기 24:5~9, 호세아 6:6, 사무엘상 21:6 이런 구절을 참고해 보기 바란다.



출애굽기25:30
(상 위에 진설병을 두어 항상 내 앞에 있게 할지니라)


레위기 24:5~9
(너는 고운 가루를 가져다가 떡 열두 개를 굽되 각 덩이를 십분의 이 에바로 하여 여호와 앞 순결한 상 위에 두 줄로 한 줄에 여섯씩 진설하고 너는 또 정결한 유향을 그 각 줄 위에 두어 기념물로 여호와께 화제를 삼을 것이며 안식일마다 이 떡을 여호와 앞에 항상 진설할지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것이요 영원한 언약이니라 이 떡은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돌리고 그들은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먹을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 그에게 돌리는 것으로서 지극히 거룩함이니라 이는 영원한 규례니라) 


호세아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사무엘상 21:6
(제사장이 그 거룩한 떡을 주었으니 거기는 진설병 곧 여호와 앞에서 물려 낸 떡밖에 없었음이라 이 떡은 더운 떡을 드리는 날에 물려 낸 것이더라)



사무엘상21:6절은 다윗이 왕이 되기 전, 사울에게 쫒겨 다니다가 성전으로 피했고, 거기서 다윗이 제사장과 그의 자손 외에는 먹을 수 없는 거룩한떡을 요구해서 먹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다음에는 제사장은 안식일에 성전 안에서 일 해도 죄가 안 된다는 것이다.
안식일인데도 성전 안에서 일한 것은 죄가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호세아 6장6절에 보면 ‘사랑은 제사보다 귀하다’ 라고 되어있다.



또 예수께서는 “밀밭이 성전보다 더 크다.” 라고 말씀하셨다   
성전보다 더 큰 곳이 여기 밀밭인데 내가 서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다' 라고 하신 것이다.                                       
안식일의 개념을 변경해 버린 것이다.
성전보다 더 큰 곳이라는 말은 누가복음이나 마가복음에는 빠져있다.
마태복음에만 이 말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씀의 뜻을 이천년 전에도 그렇고 오늘날도 기독교가 모르고 있다.
이 말 한마디만 잘 검토를 해도 기독교는 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면 성전이란 무엇인가?
성전은 여호와가 이 땅위에 내려 왔을 때 앉을 수 있는 그의 보좌가 있는 곳이다.
다시 말하면 이 땅위에서는 다른 데는 아니고 오직 성전의 법괴 위에 보좌를 마련해서 여호와가 거기에 앉는다는 것이다.
그런고로 성전은 그의 보좌가 있는 여호와의 지상 거처인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안식일에 밀밭을 지날 때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비벼 먹었는데 그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그 일을 바리새인들이 목도하고 '왜 안식일날 일을 하는가?' 힐책을 하는 것이다.
그때 예수님은 그 밀밭을 가리켜서 '성전보다 더 큰이가 여기있다.' 한 것이다.
나는 이 말을 읽으면서 납득이 잘 안된다
바리새교인이 그렇게 성경에 열중하면서도 이 말을 듣고도 가만히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당장 죽였어야 했는데 왜 가만히 있었을까?



이 밀밭이 성전보다 더 크다('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다'One greater than the temple) 라는 이 구절을 나는 몇 번이고 읽어본다.
 '더 큰 이'는 원어로 ‘메이존, μεῖζόν'으로 ‘μέγα’ 의 중성 비교급 형용사이다.
성전이 가장 귀한 곳인데 그런데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있다는 것이다.
크다 라는 의미는 넓이나 높이 건물의 웅장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더 위대하다라는 뜻이다.
성전보다 더 큰 이는 누구인가?
그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내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율법에 보면 성전에서 일한 것은 죄가 안 된다.
안식일에도 성전 안에서 일한 것은 죄가 안 된다.
여러분 안식일이란 개념은 옛날 이스라엘 사람도 잘못알고 있었다.
오늘날도 기독교가 잘못 알고 있다.
안식일이란 무엇인가 하면 엿새 동안은 자기의 일을 하고 안식일에는 자기의 생활전체를 여호와 앞에 바쳐야 된다는 것이다.
그런고로 여호와의 집 안에서 일한 것은 죄가 안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모든 시간 가운데서 6일 동안 네 몸 혹은 네 자신을 위해서 일하지만 안식일이 되는 그날에는 네 일을 해서는 안된다.
너희 생활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오직 나를 위해 일하라라는 의미이다.
그저 쉬라는 의미가 아닌 것이다.



이것을 이스라엘 사람들도 잘못 알고 쉬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6일 동안 자기 일을 하고 다음에 다음 하루는 모든 것을 여호와께 바치라는 것이다.
여호와 성전에서 일을 하든지 여호와를 위해 일한 것은 죄가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예수께서 내가 안식일의 주인이다 하는 말도 무엇인가하면 너희들의 모든 생활이 나를 위하는 생활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고로 내가 안식일의 주인이다 하신 것이다.
그리고 또 이 안식일에 관한 과거의 개념을 고쳐주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제부터는 너희들의 생활이 나를 위해서 바치는 다시 말하면 안식일이 아니더라도 어느 날이든지 간에 모든 일하는 것이 나를 위해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안식일의 특수한 성격을 가리켜서 안식일의 주인은 나다. 그렇게 말하신 것이다.
그런고로 이제부터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생활은 적으나 크거나 간에 이 세상에서 임하는 근본목적은, 최종목적은 예수님을 위하는 일을 하는 생활이 되어야 한다 그 말인 것이다.



여기서 예수께서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있다'는 그것은 바로 내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내가 이곳에 서 있기 때문에 성전보다 크다 하신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예수님은 누구인가?
우리는 예수님을 근본적으로 모르고서는 이 말씀의 본뜻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예수님을 깨달아야 알 수 있는 것이다.
옛날사람들이 구약을 통달하고서도 예수님을 몰랐다.
이것은 구약성경이 유치해서 그렇다라고 간단히 말할 수 있는지 모르지만 그러면 오늘날 과학이 발달하고 모든 학문이 발달된 세계에서는 어떠한가?
오늘날 예수님을 알고 있는가?
이전에도 말했지만 오늘날의 과학, 철학, 문학, 예술을 가지고는 예수님을 깨달을 수 없다.
따라서 여전히 예수님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내가 있기 때문에 성전 안에서 일하는 것이 죄가 안 되며 ‘성전 보다 더 큰 이가 나다’ 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 라고 지칭한 그 예수님은 누구인가?
예수님에 대해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지만 그는 천국의 건설자 이시다.
천국이라 하는 것은 예수님 전에도 없었고 또한 예수님을 떠나서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의 목적은 바로 이 세상에서 잘사는 것이 아니고 천국인 것이다.
천국에 가는 일인 것이다.



또한 예수님은 누구인가?
새 창조의 주인이시다.
새로운 창조 신세계, 영생의 길을 열어준 창조주이신 것이다.
영생이란 예수님 오시기 전에는 생각 할 수 없었다.
옛날 사람들, 동양이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혹 영혼이 있어서 죽은 다음에 어떤 세계에 갈수 있을지 모른다 하는 기대를 했다.
그러나 유대인 가운데서도 사두개 교인들은 그런 소리를 부인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오신 다음에 영생의 세계가 비로소 우리에게 열렸고 또 그러한 세계를 예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것이다.
그리고 영생의 세계에 들어가는 그 길을 예수님이 마련한 것이다.
하늘나라에서 이 세상에 오는 길은 본래는 없었으나 예수님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길이 생겼고 또한 예수께서 가실 때 그 길이 열린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간 그 길을 따라서 우리는 천국에 갈수 있는 것이다.



영생이란 구원의 하나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따지면 보통의 구원과 영생은 다른 것이다.
구원이란 구제를 한다는 말이다.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 준다든가, 희망이 없는 사람에게 희망을 준다든가 죄 많은 사람을 구출해 준다든가 하는 그런 것이 구원인 것이다.
영생이란 그런 기대와는 다른 것이다.
영생이란 우리의 특권이다.
다시 말하면 영생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의 특권이다. 권리이다.
왜 우리에게 영생의 특권이 갖추어 질 수 있었는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신자라 하면 예수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전에도 말했듯이 예수님과 같은 멍에를 메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과 같은 멍에를 메어야 한다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 해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과 영적으로 유기적 결합을 이루어야 하는 까닭에 예수님을 떠나서는 신자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런고로 예수님과 같은 멍에를 메고 예수님이 맡긴 내 사명을 다했다하면 나는 영생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영생할 특권이 있는 것이다.



단 내가 이 사명을 완수했느냐 못했느냐 거기에 달려있지 사명을 다 했다하면 나는 영생할 권리가 있다 그 말인 것이다.
그러면 신자로서 영생을 못한다 하면 자기의 사명을 다하지 못한 사람이다.
사명을 포기한 사람인 것이다.
나와 예수님이 한 멍에를 메고 있는데 예수님은 천당에 있고 나는 지옥에 있을수 있는가?
예수님의 사명을 다하지 못한 것은 내가 예수님과의 멍에를 벗어버리고 거기서 떨어져 나오기 때문에 사명의 완수도 못하고 영생의 세계에도 물론 갈수 없게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 멍에가 가볍다했는데 자기와 같이 멘 멍에가 가볍다한 말은 무슨 뜻인가 하면 예수께서 언제나 그 사람의 자격과 능력에 따라 사명으로 받은 중량을 적당히 조절해 주기 때문인 것이다.
그 까닭에 누구든지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짐을 지워 그 무게를 조절해준다는 것이다.
그렇다고해서 무게를 없애는 것은 아니다 거저는 아닌것이다.                                                                                                  
믿기만 하면 구원 얻는다 그런 얼빠진 소리를 곧이 듣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믿는다 하면, 예수님을 전적으로 신뢰한다하면 그런 나는 사명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억지로라도 예수께 기도할 때 내게 사명을 주옵소서해야한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멍에를 메어야한다.
이 세상이 어떻게 되어야 똑바로 될 수 있는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기 전에는 절대로 이 세상은 바르게 될 수 없다.
그러나 이 세상은 점점 예수님과 멀어져가고 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내가 있는 곳에서는 모든 것이 죄가 될 수 없고 성전보다 더 큰 내가 있다.'라고 하셨다.
다시 말하면 나, 예수가 바로 참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일을 할 때 예수님을 위해 일을 해야 한다.
옛 안식일이라 하는 것이 여호와를 위하고, 여호와를 위해 사는 날이 안식일이었다면, 지금 너희는 내가 안식일의 주인이니까 모든 것을 나 중심, 나를 위해, 나 예수님을 위해 살라함을 말하신 것이다.



백천(白泉) 김준식

(P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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