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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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온 세계는 착각속에 살고 있다.
착각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올바른 것을 인식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인류가 난 이후로 지금까지 나온 종교나 철학 또는 많은 학문들이 착각 속에 만들어졌다.
그런고로 그것을 그대로 진리라고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람들이 착각속에 있는 까닭에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판단이 안된다.
이 착각 속에서 벗어나 올바로 볼 수 있어야 그때에 문제가 해결되는 것인데 착각 속에 있기 때문에 스스로 바른 생각을 못하고 있고 남을 평가 할 때도 바르게 볼 수가 없는 것이다.
문제는 세계가 종말에 가까이 가고 있다.
간단한 예로 인간의 과학이 발달했다 하여도 결국은 창조주가 만들어 놓은 에너지의 일부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 에너지의 대표적인 것이 석유이다.
그 에너지의 대표적인 것이 석유인데 머지않아 고갈될 전망이다.
혹 다른데서 발견되면 몰라도 지금 상태로선 희망이 없다.
저 석유가 다 없어지면 경우에 따라서는 지구가 반대로 회전할지도 모른다.
또는 남극과 북극이 바뀔지도 모른다.
이것을 세상 과학자들이 모르고 있다.
지구가 반대로 회전하던지 회전축이 더 기울면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또한 인간들은 자신이 우수한 생물이라고 자부하지만 하나님이 창조한 물건 가운데 가장 비열한 생물일지도 모른다.
착각에서 벗어난 사람의 눈으로 볼 때에는 모여서 다투며 사는 일들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것들이 많다.
내일 자기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을 모르고 살고 있다.
이것이 모두 착각 속에 있는 까닭에 그렇다.
특별히 세계적 대종교라는 기독교도 착각 속에 움직이고 있다.
예를 들면 기독교의 구약성경을 보면 창세기 첫 장에 여호와가 땅위에 궁창을 만들어 놓고 해와 달이 거기에서 돌아가도록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첫째로 착각 속에 나온 거짓말이다.
다시 말하면 이 땅위 천장과 같은곳에 해와 달이 아침저녁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이 창조설의 제일 중요한 부분의 하나이다.
터무니없는 말이지만 이것을 오늘날 기독교가 그대로 신봉하고 있다.
또 다른 예를 보면
열왕기하서 20:8~11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낫게 하시고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게 하실 무슨 징표가 있나이까 하니 이사야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실 일에 대하여 여호와께로부터 왕에게 한 징표가 임하리이다 해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갈 것이니이까 혹 십도를 물러갈 것이니이까 하니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가기는 쉬우니 그리할 것이 아니라 십도가 뒤로 물러갈 것이니이다 하니라 선지자 이사야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아하스의 해시계 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십도 뒤로 물러가게 하셨더라)
유다왕 히스기야가 병이 들었다.
여호와가 말하기들 너는 이제 틀림없이 죽는다 그랬더니 히스기야 왕이 슬퍼서 벽에다가 얼굴을 대고 크게 통곡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호와가 그 기도를 듣고 그를 15년 더 살게 해준다는 말을 이사야를 통해서 전달해준 것이다.
그때 히스기야 왕이 그 증거가 어디 있는가 했을 때 여호와가 이사야를 통해서 말하기를 그때 당시 유대나라는 해시계를 통해 시간을 측정했는데 해가 비추는 그 그림자가 뒤로 10도 물러난 것을 보여주겠다 했는데 이것이 15년 동안 네가 더 살게 된다는 증거로 보여준 것이다.
여러분 이런 이야기도 착각 속에 살고 있음으로 그대로 믿고 있다.
이것이 기독교의 행태이다. 오늘날까지 기독교가 속아온 것이다.
해가 비칠 때 그 그림자가 어떻게 뒤로 물러날 수 있는가?
그림자를 뒤로 물러나게 하려면 지구가 반대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태양을 중심으로 9개의 행성이 돌아가고 있는데 그것이 다 역학적으로 조정되어 있다.
지구가 제 멋대로 돌아가게 되면 태양계는 파괴된다.
또한 지구와 태양사이에 인력이 있는데도 태양과 지구가 서로 붙지 않는 이유는 지구가 빠른 속도로 돌아가면서 원심력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구가 돌지 않거나 뒤로 돌기 위해 멈춘다면 지구와 태양은 붙어버린다.
다음에 여호수아 10장 12~15절까지 보면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넘겨 주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아뢰어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이르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 하매 태양이 머물고 달이 멈추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기까지 하였느니라 야살의 책에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고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길갈 진영으로 돌아왔더라)
여호수아가 유대남쪽 기드온 땅을 점령하려고 할 때 그곳에 이방인을 쫓아내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점령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여호와가 말하기를 해와 달이 공중에 떠서 넘어가지 않게 한다한 것이다.
해와 달이 공중에 떠서 넘어가지 않고 정지하고 있었다. 그런 이야기이다.
해와 달이 어떻게 정지할 수 있는가?
이런 엉터리가 성경책에 예사로 써 있다.
또 이 소리를 믿고 있는 어리석은 인간들 착각 속에 있는 것이다.
여러분 일찍이 문화가 발달한 희랍에서는 BC300년경에지구는 태양을 돈다는 기록이 있었다.
그때 일부 희랍학자들은 벌써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이런 사실을 성경에 비추어 잘못된 것으로 착각해서 말살해 버리고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말을 하지 못하게 했다.
그 후 2000년이지나 17세기 초에 갈릴레오가 지구가 태양을 돈다고 말하니까 그를 잡아 죽이려고까지 한 것이다.
갈릴레오는 종교재판장에 서서 살기위해 어쩔 수 없이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사실을 부정했지만 그래도 자기의 과학적 근거는 확신하기에 그 종교재판장을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도는데” 라는 말을 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이와 같이 기독교의 대성경인 구약은 착각 속에 만들어진 기록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착각의 기록이다.
우리는 이런 착각 속에 기록된 글을 정확하게 볼 줄 아는 눈을 가져야 한다.
이런 착각은 기독교뿐 아니라 다른 종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유교에서는 천지간 만물 중에서 인간이 최고라 하고 있다.
세상에서 사람이 가장 귀하다는 것이다. 이것도 착각 속에서 된 소리이다.
사람이 귀하긴 뭐가 귀한가?
내 보기에는 가장 미운 동물이 인간이다.
인간 외에는 저렇게 나쁘고 악한 일을 하지는 못한다.
공중에 날고 있는 잠자리는 창조주가 만들어 논 그대로 살고 있다.
개나 소도 하늘이 준 그 천성대로 살고 있다.
뜰에 핀 백합화도 하나님이 만들어준 그대로 영광중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만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있다.
이것이 착각 속에 있기 때문이다.
천도교에서는 인내천(人乃天)이라 하고 있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것이다. 이것도 착각 속에서 나온 소리이다.
그런고로 이세상모든 종교나 학문이 거의 다 착각 속에서 나와 인간을 어지럽히고 있다.
우리는 누구를 무론하고 착각 속에 있는데 인간들 중에는 그래도 특별한 사람이 있다.
이 세상 사물을 관찰하는데 우리는 착각 속에 있는데 그것을 깨우친 것이 소위 상대성원리이다.
오늘날 우리들의 학문 가운데 상대성 원리와 양자역학 이 둘은 인간들의 인식으로 말미암아 온 착각을 제대로 돌려놓은 학설의 하나이다.
요사이 핵무기이니 뭐니 떠들어도 이것이 역시 근거는 상대성원리에 의해 발전해온 것이다.
인간이 이렇게 착각 속에서 벗어나면 대우주의 진리와 원칙을 볼 수 있고 인식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런 착각 속에서 나지 않았다.
그는 이 땅에서 난분이 아니고 저위에서 온 분이다.
그런고로 그의 말씀은 우리가 착각 속에서 인식하는 것과 전혀 달랐다.
그러므로 이런 착각 속에 있는 인간들이 예수님의 말, 착각이 아니고 올바른 정통의 인식의 말을 할 때 그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 것이다.
예수께서 떡 다섯 덩이로 오천 명을 먹일 때 그것을 먹은 사람들은 배불렀고 그래서 그를 붙잡아 왕을 삼으려고 했지만 예수님은 곧이어 내 살과 내 피를 먹지 않으면 생명이 없느니라 할 때 그 말을 착각 속에 있는 인간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떠나갔던 것이다.
내 살과 내피를 먹어야 한다는 말이 정통한 인식 이었는데 착각 속에 있는 인간은 그것을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그런 이야기이다.
오늘날까지도 기독교가 예수님을 믿는다 하지만 예수님을 인식한 사람은 별로 없다.
나는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다를 인식한 기독교의 학자가 없다.
다시 말하면 이 말을 인식하는 정도까지 와 있지 않다.
우리들이 나면서부터 착각 속에 있기 때문에 이런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예수님 앞에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예수께서 사람이 물과 영으로 다시나지 않으면 딴 세계를 알 수가 없느니라는 말을 했다.
그런데 니고데모는 “사람이 어떻게 다시 어머니 뱃속으로 들어갑니까?”라는 질문을 했고, 그때 예수님이 책망하기를 “너는 이스라엘 선생으로 그것을 모르느냐!” 했는데 이 말을 지금도 모르고 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왜 이 말을 했는가?
니고데모는 구약에 정통한 학자이다.
그러므로 구약을 가지고는 인간이 희망이 없다하는 것을 다시 말하면 착각 속에 있기 때문에 구약을 가지고는 안된다하는 것을 네가 모르느냐 책망한 것이다.
구약을 가지고 안 되면 새로이 착각이 아닌 다른 세계를 찾아야 될 것이 아니냐 이와 같은 설명을 예수께서 분명히 지금 요한복음의 그 아래에 설명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설명했을만한 그런 말은 뚝 잘라버리고 되지 않은 소리를 넣었다.
즉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었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이런 얼빠진 소리를 넣은 것이다.
이것 역시 착각 속에서 나온 소리이다.
구약성경에는 독생자라는 말이 없다.
이것이 초대교회에서 조작된 말이다.
이와 같이 기독교가 착각 속에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이해 못하고 있고 옛날뿐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제대로 이해를 못하고 있다.
예수님은 이 땅위에서 자기 사명을 다하고 돌아가는 길에 많은 말을 했을 것입니다마는 착각 속에 있는 인간들인지라 그 말을 대부분 이해를 못했다.
그런고로 기억도 못하고 성경에 지금 남아있는 예수님의 말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진리에 속한 말은 더 적다.
요한복음에만 일부 남아 있을 뿐이다.
대단히 비통한 일이다.
예수님은 적어도 세상에 일년반 이상 공중생활을 하시면서 우리에게 한 주요한 말이 더 있을 것이지마는 듣는 사람들이 착각 속에 있어서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다행이도 적으나마 예수의 말이 남아 있는 것이다.
특별히 오늘 이 본문의 말씀도 중요한 말이다.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를 알았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너희가 나를 알면 아버지를 안다. 하나님을 안다. 그런 이야기이다.
뒤바꿔 말하면 나를 모르면 하나님을 모른다는 소리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몇가지 있지만 그 중에서 두가지 정도는 내가 알고 있다.
그중하나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해서이다.
인간에게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이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인간이 하나님을 몰랐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여러 가지 神을 잘 섬겨왔지만 지금도 그 神들을 하나님이라고 믿고 있는 어리석은 상태에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심으로 비로서 인간에게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는 말이다.
우리는 이 세상 학문도 일부를 아는데 지나지 않는데 당연히 하나님을 다 알 수는 절대로 없다.
그러나 예수님을 아는 만큼 하나님을 알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을 다 몰라도 예수님을 아는 만큼만 하나님을 알수 있게 될 것이고 예수님을 모르는만큼 하나님을 모르게 될 것이다. 그런 이야기이다.
그런고로 오늘 여기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나를 알면 아버지를 알 것이고, 하나님을 아는 것이지마는 반대로 뒤집어 말하면 나를 모르면 하나님을 모른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사람들이 무슨 神을 섬겼더라도 그 神은 하나님이 아니다 하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명해 주는 소리인 것이다.
백천(白泉) 김준식
(P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