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산교회
 
작성일 : 16-10-02 08:57
설교제목 : 용서 못받을 죄
 설교일자 : 1994.05.08
 KEY WORD : @ 벙어리 소경 귀신 바알세블 사탄
 성경구절 : 마12:22~37
 관련구절 : 막03:20~30, 눅06:43~45, 11:14~23, 12:10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049  


22 그 때에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며 보게 된지라 
23 무리가 다 놀라 이르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니 
24 바리새인들은 듣고 이르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25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26 만일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어떻게 그의 나라가 서겠느냐 
27 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되리라 
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29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30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3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33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35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37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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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 예수께서 나를 비방하는 것은 용서 받을 수 있으나 성령을 비방하면 절대로 용서 받을 수 없다 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자(人子)인 내게 대해서는 시비를 따져도 경우에 따라서는 혹 용서 받을 수도 있겠지만, 성령(聖靈)을 비방한다든지 모욕한다면 절대로 용서 못 받는다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회개만 하면 무슨 죄든지 용서 받을 수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오늘 예수께서 말해 준 것은 절대로 용서 받을 수 없는 죄가 있다는 것이다.
성령을 비방하면 용서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즉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중요한 교리 중 하나로 삼위일체(三位一體)가 있는데,
하나님이신 성부, 그의 아들 되신 성자 곧 예수, 성부와 그리고 성자로부터(filioque) 이중으로 나오는 성령 그렇게 해서 한 분 하나님 안에 그 삼위가 일체로 있다는 것이다.
현재 기독교 신학은 태양을 예로 들어 그것을 설명하고 있는데, 태양 전체를 하나님, 그 빛은 성자, 그 나오는 열은 성령으로 빗대어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태양이 우리에게 빛도 주고 열도 준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있다 라고 말한 것을 가지고 성부와 성자가 일체라고 한다면, 인자에 대하여 시비를 따져 거역해도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예수님의 저 말은 하나님에게 대해 그렇게 해도 용서받을 수 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훼방하면 용서를 못 받는다 하는 그런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기독교의 삼위일체론이 옳다고 한다면, 오늘 예수님의 이 말 즉, 인자로서의 나를 거역하면 용서를 받아도 성령을 거역하면 절대로 용서 받을 수 없다는 이 말 역시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가 되는 것이다.



기독교 이천년 역사를 엄밀히 따져보면 예수님을 제대로 연구한 흔적이 잘 보이지 않는다.
교회사의 대부분이 교회의 조직, 정치, 혹은 타종교와의 대립의 역사 등으로 얼룩져 있다.
인간 정치사와 비교해 볼 때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이다.
한때 교황이 전 유럽의 왕들 중의 왕으로 군림한 적도 있었다.
그런 역사 가운데 겨우 생겨난 것이 예수님의 말씀과 심각한 충돌을 일으키는 저 삼위일체 정도인 것이다.
그리고 삼위일체라는 말은 성경에는 없는 말이다.
기독교가 교리로 그 말을 만든 것이다.
그래서 교회가 성부, 성자, 성령이 하나다 일체이다 하는 그런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기독교에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중심이 된 초대교회가 형성될 때부터 시작해서 지금가지 예수님의 정신이나 말씀에 관한 제대로 정립(定立)이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기독교의 토대를 다진 바울 그리고 초대교회의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던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지만 그들에게는 예수님의 말과 정신에 관한 참된 이해가 대단히 부족했던 점이 것이 그 주요한 이유인 것이다.
바울은 그의 서신 첫머리 글에서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든지 혹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 자처했지만, 또 그가 보내는 서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에 관한 글이라 썼지만, 사도 바울이 쓴 서신 어디에도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인용하지 않았다.
이는 중대한 모순적 함의(含意)를 가진다.   
또한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는 어떻게 되었는가?
그는 사도행전에서 드러난 베드로의 행동은 예수님의 정신과는 전혀 결이 달랐던 것을 볼 수 있다.
이 사실은 그가 예수님의 정신을 제대로 이해 못한 결과로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나는 그들이 그렇게 된 것은 결국 신의 인식에 관한 문제에서 기인했다고 본다.
그들이 가진 신에 대한 개념은 이스라엘 민족神을 하나 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의 아들 예수님의 말씀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예수님의 말씀에 관한 이해가 부족했다든가 혹은 그의 말씀에 관한 연구가 그다지 필요 없었다 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여호와 신의 독생자이다’라는 명제에 관한 그들의 신념이 확고부동한 이상 예수님의 말씀이나 그의 능력에 관해서는 더 이상 특별하게 살필 가치가 없었다 그것이다.
비록 기독교에 의해 많은 학교가 세워 졌고 사회적 공헌을 많이 한 것은 사실이지만, 단 한 가지 예수님을 바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세계의 물질과 정신세계를 지배한 기독교가 본의 아니게 대부분의 세상 인간들을 피 흘림과 어둠으로 점철된 문맹의 세계로 인도하였고 지금까지도 지대하게 그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울과 여러 사도들이 인식하고 정립한 것 즉, 예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죄값을 감당하는 희생 제물이었다는 교리 때문이었다.
그렇게 해서 기독교는 결국 진리요 길이요 빛이며 길이신 예수님을 그들 교리의 흙덩이 속으로 파묻어버린 것이다.
이 세상의 암흑시대는 그렇게 열린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 암흑시대를 연 배후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바로 그 신 여호와인 것이다.
분명히 인식해야 하는 사실인 것이다.
 



또 한 가지 살펴볼 것은,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는 어떤 형편에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중국도 오랫동안 암흑시대에 있었는데 그렇게 된 근본문제는 나는 주역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
이 주역도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중국 사람들은 이 책이 대단히 주요한 대원리를 갖고 있다고 믿었고 그들의 생활에 적용시켰다.
그래서 공자도 이 주역을 열심히 공부 했는데 위편삼절(韋編三絶) 즉, 가죽으로 된 책 겉표지를 세 번이나 헐어서 바꾸어야 할 정도였다 한다.
그 정도로 공자가 주역공부를 한 것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서양의 선교사가 기독교를 전파할 때 중국의 서태후가 선교를 거부하면서 한 말이 자신들에게는 주역이 있기 때문에 서양의 문화나 종교가 필요치 않다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다시 말하지만 이 주역이 누구의 철학인가?
그 누구도 모른다.
나는 이 주역을 가르쳐준 존재도 역시 여호와가 아닌가 생각해보는 것이다.
주역이라는 것을 중국 사람들에게 가르쳐 준 것은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보는 것이다.
사람이 그 같이 심대하고 복잡한 논리를 깨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면 이 주역의 명제는 무엇인가?
근본이 어디에 있는가?
장래를 아는 것이다.
가령 예를 들어 사주를 본다거나 점을 친다는 것은 다 미래를 보는 것이다.
이런 미래를 점치는 것이 주역인 것이다.
그런고로 이것을 가만히 보면 이스라엘 구약정신과 유사하다.
이스라엘의 구약 성경 역시 예언이 중요하다.
예언이라는 것은 앞날을 미리 알리는 것이다. 앞을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과 주역은 목표가 같은 것이다.
또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이 주역이 60간지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어디에서 오는가 하면 10간과 12지로부터이다.
즉, 최소공배수가 60인 것이다.
이것을 가지고 모든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을 시도해보는 것이다.
이 60간지로 천지조화라든가 인생의 운명이라든가 혹은 죽은 다음에 어떻게 된다든지 사주가 어떻고 팔자가 어떻고 등의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구약성경은 어떠한가?
여기에도 12지파가 있고 10계명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12지파를 보면 근본적으로 십이지파가 되지 않는다.
야곱의 아들이 11명밖에 안되는데 고의적으로 12명으로 만든 것이다.
십계명도 따지고 보면 꼭 10계명으로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어쨌든 이스라엘의 12지파와 10계명의 최소공배수 역시 60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역세(歷歲)도 이것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음력이고 단지 정월초하루 날이 다를 뿐이다.
이스라엘 역세에서도 한 달은 30일이고 일 년은 360일 이다.
주역의 그것과 같다.
그래서 공통적으로 윤달을 두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여호와 神이 기독교의 신으로 있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시아에서는 이 주역을 내었다 그렇게 보는 것이다
따라서 유럽은 구약 때문에 그리고 중국은 주역 때문에 눈을 뜨지 못하고 소경과 마찬가지로 지내온 것이다.
참으로 어리석은 시대를 살아온 것이다.
오늘날 까지 세상 사람들이 예수를 모르는 무지한 세월을 살아오게 한 주요한 두 가지 원인으로 하나는 기독교의 구약과 또 다른 하나는 저 주역으로 보며, 이 둘 모두 여호와 신으로 부터 나왔다 그렇게 보는 것이다.    
 



오늘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다시 한 번 음미해 보자.
예수님은 나를 몰라보아도 죄를 사면 받을 수 있지만 성령을 모르면 절대로 사면 받을 수 없다 말했다.
마치 기독교에서는 회개를 하면 다 용서되는 것처럼 말하고 있으나 예수께서는 분명히 성령을 몰라보면, 성령을 인식 못하면 용서를 받지 못한다고 하신 것이다.
이 말은 무엇인가?
이것은 본질을 말하는 것이다.
성령을 모르게 되면, 성령을 깨닫지 못하게 되면 절대로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 신학과도 비추어 보면 하나님도 성령인 것이다.
예수님도 근본 존재는 성령이시다.
그런고로 성령을 모른다는 것은 근본을 모르는 즉, 예수님의 본질을 모르는 사람을 일겉는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인자는 몰라보아도 그것은 괜찮지만 성령을 훼방하면 안 된다.' 하는 그 말은 무슨 뜻인가?
인자는 사람이다.
예수님의 본체는 성령이지만 이 세상에 와 있는 동안에는 사람인 것이다.
사람으로 왔을 때는 복잡하다.
하나님이 보낸 근본 종으로 되어있다 하더라도 이 세상에 인간으로 올 때 여러 가지 복잡한 인간이라는 요소가 가미된 것이다.
이것이 인간인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본체를 알아보기 힘들다.
그러니까 인간으로서 예수께 대해서는 설혹 몰라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나의 본체 즉 성령을 모른다면 안 된다 그것이다.
즉 나를 성령으로 깨닫지 못하면 희망이 없다.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백천(白泉) 김준식

(P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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