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산교회
 
작성일 : 16-10-07 08:50
설교제목 : 지식의 한계
 설교일자 : 1989.08.06
 KEY WORD : @ 그날 그때 천사 아버지 인자
 성경구절 : 마24:36~44
 관련구절 : 막13:28~32, 눅21:29~33, 17:26~30, 12:35~48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361  


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39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40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41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43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4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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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과 같은 기사(記事)가 마가13:28-37, 누가 21:29-33에도 있다.
그 내용은 말세에 여러 가지 재난이 있을 것이고 그 후에 예수께서 천사들과 같이 이 세상을 심판하러 오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재난을 보고 말세를 짐작하고 깨달아 알아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모르고 나도 모른다.
즉 예수님 자신도 모른다고 한 것이다.
그것은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
하나님만이 아신다는것은 다시말하면 심판의 결정적인 날은 아버지밖에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항시 깨어 준비를 하라하신 것이다.



본문의 내용 중 마태복음에는 예수께서 노아의 홍수 이야기를 비유로 들어 말씀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와같은 노아의 홍수 이야기를 했을 리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마가복음이나 누가복음에서는 그 말이 빠져있는 것이다.
이 말은 마태가 기록한 것이 아니고 수십년후에 마태복음 저자가 여러 사본으로 옮기는 중에 첨가된 것으로 추정된다.
노아의 홍수이야기는 설화다.                                      
신화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고 민족에게 구전되어 내려오는 이야기로 설화이다.
그런 설화를 예수께서 자기의 진리를 설명할 때 인용하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은 진리를 설명할 때 구약의 말을 사용한 적이 없다.                                         
혹 누가 물어보면 그 말에 대한 대답을 한 적은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 진리를 말하는데 중대한 원리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그와같은 사실이 아닌 설화를 이용하였을 리가 없는 것이다.      



본문에서 예수께서 이 세상에 심판이 내리는 데 그 전에 너희 자신이 스스로 심판이 이 세상에 임할 것을 짐작하고 알아야 된다고 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 시기를 모른다 하였다.
마가13장 32-33에 보면 마태복음과 같은 내용이나 노아의 이야기만 빠져있다.                      
물론 예수께서 하지 않은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 돌아가는 형태를 보고 잘 관찰해야하는 것이다.
이 세상은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
내가 늘 하는 이야기 이지만 예수님의 말씀이라고 해서 덮어놓고 믿어서는 안된다.
교회에서는 오랫동안 전통적인 믿음이나 신앙을 강조하면서 사용해 왔기에 나도 가끔 쓰지마는 원칙적으로 믿음이란 말은 예수님의 말씀에서 없애버려야 한다.
덮어놓고 믿는다 하는 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위험상태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이 세상에 어려운 시험이 닥칠터인데 너희는 분간을 하고 또 분별하라 하신 것이다.
봄날에 나뭇잎이 움트거든 장차 여름이 올 것을 알라하는 것처럼 이 세상이 지금 되어가는 상태를 우리는 면밀히 관찰해야 된다.        
특별히 내 눈앞에 보이는 우리 민족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든지 세상일 같은 이런것들이 잘 분간되어야 한다.                             
이것을 분간함으로서 말미암아 예수님의 말이 맞느냐 안맞느냐 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인간이라 하는 것이 이 세상에 왜 필요한가? 하는것이다.                         
인간이 이 지구위에 태어나서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하는 동물인가? 하는것이다.                                     
당장에 눈앞에 보이는 먹는 일, 잠자는 일, 아이 낳는 일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자세히 관찰해보면 인간들이 하는 일은 동물사회에서 동물들이 하는 일보다 나은 일이 없다.
예를들면 사회생활을 보더라도 이 세상 곤충들 가운데는 인간사회생활보다 더 나은 사회생활하고 있는것이 있는 것이다.                 
인간이 자기 아이를 귀중히 여기는 것은 다른 생물과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본능인 것이다.
인간이 나은 새끼를 사랑하고 교육하고 하는 것은 본능인 것이다.
창조주가 인간을 만들어 줄때의 본능인 것이다.
부부관계도 마찬가지로 본능인 것이다.
따라서 부부관계도 보면 인간보다 더 나은 부부관계의 동물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부모를 섬기는 것은 본능이 아니다.
사람이 부모를 섬기는 것은 하나님이 만들어 논 법칙중에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이것은 윤리인 것이다.
부모가 자녀를 오랫동안 귀엽게 여기고 기르고 자녀를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은 것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인간들이 만들어 논 윤리인 것이다.
동물들은 부모의 개념이 없다.
부모를 공경하는것은 인간에게 있는 유일한 것인데 요사이 온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부모의 개념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인간사회에서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 부모를 존중해야 한다 이것이 도덕적으로 대단히 중요하게 되어 있지만 본능은 아닌 것이다.      
창조주가 만들어 논 본능은 아닌 것이다.
이제 온 세계가 부모공경을 모른다는 풍조가 넘쳐나고 있는 데 이것은 인간이 동물세계로 전락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동물사회로 떨어진 것이다.                           
따라서 나는 동물하고 다르다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다시말하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그대로 맞아들어가는가? 심각하게 관찰해야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종교라고 하는 것을 살펴보면 너무나 많은 이런이름 저런이름의 종교들이 사람들을 어려운 지경에 몰아넣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기독교만 살펴보아도 기독교가 저지른 잘못이 한두가지가 아닌 것이다.
예를들면 교황 우르바노2세때 십자군을 일으켜 예루살렘성지 탈환을 목적으로 8차례에 걸쳐 근 200년간의 십자군전쟁(AD1096~1272)을 일으킨 것이다.                                  
이 전란으로 많은 사람이 죽은 것은 물론이고 온 세계에 문둥병이  급속하게 퍼진 계기가 되었다.                                        
또한 유럽여자들의 정조관념이 무너진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도 유물로 남아 있는 것이 정조대라 하는 것이 있다.
쇠로만든 주형물로 여자의 하체를 묶어버린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200년간의 십자군전쟁 때문에 인류사회에 중요한 정조관념이 문란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지금도 유럽 사람들의 정조관념이 희박한 것은 기독교의 옳지못한 교리때문인 것이다.                              



그러면 구교만 그러했는가?
신교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장노교창시자인 ‘장 칼뱅’은 구교를 타파하고 새 교파를 만들어 나온 것이다.              
그러나 그는 ‘세르베투스’라는 신학자가 삼위일체를 인정하지 않았다해서 그의 죽음에 일조를 한것이다
이와같이 다시말하면 삼위일체라는 엉터리 교리를 만들어 이것을 부정한다고 해서 상대방의 신학자를 여지없이 처단한 것이다.        
또 기독교 때문에 과학문명이 몇백년 뒤진 것도 사실이다.
이 모든 죄를 반성하고 고쳐야 하는 것이 바로 기독교인 것이다.
다시말하면 분명히 잘못된 것을 알리고 반성해야 하고 이제부터 새 길을, 올바른 길을, 예수님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이제 이 세상이 되어가는 것을 보고 또 인간들이 되어가는 상태를 면밀히 비교를 해서 예수께서 시간이 오면 이 세상에 심판하러 올것임을 확증해야한다.                            
믿는다는 생각을 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이 틀림이 없다 하는 것을 확신할수 있도록 되어야 한다.                                        

이제 인간들은 각종 악神들의 유혹이나 놀림속에 정상적인 자기 정신을 가질 수 없게 되어버린 것 같다.
내가 이 전에도 이야기 했지만 하늘을 보면 별을 볼 수가 없는 세상이 되었다.
누가 저렇게 만들었는가?
별빛을 볼 수 없다 하는 것은 인간에게 오는 태양빛 뿐만 아니라 영적인 참빛을 보지 못하게 하는 그런 이야기도 되는 것이다.       

이 세상의 많은 神들, 어리석은 종교, 학문 등 이런 것들이 모여 저 하늘의 별빛도 못보게 막듯이 하늘에서 예수그리스도가 보내주는 광명의 빛은 못보도록 막아버린 인간들이 그 존재들인 것이다.



예수님자신이 천사들과 함께 심판하러 오는 것인데 내가 오는 때를 나도 모른다고 하신 것이다.
여러분 이 말을 생각해 보았는가?
예님수 자신이 심판하러 올 것인데 내가 그 시간을 모른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의 삼위일체라는 교리가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 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인 것이다.
삼위일체는 예수와 하나님 그리고 성신이 하나이라는 소리인데 여기서 예수님이 나도 그 시간을 모른다 했다.
이것은 예수님과 예수님의 아버지가 일체(一体 )가 아니라는 소리인 것이다.
일체라면 모를리 있겠는가?
하나님이 예수님이고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면 왜 모르겠는가?



요사이 예수님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이 성경에서 분명히 말하기를 "나도 모른다. 아버지만 알고 나도 모르는 것이 있다."라고 하셨다.
다시말하면 인간들의 지식이 제한되어 있는데 심지어는 예수님까지도 제한되어 있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심판의 날자는 창조의 원리에 의해 수행될 것이라는 말이다.                                 
창조의 원리의 집행인 것이다.
창조원리의 집행이라면 예수께서도 당연히 알아야 될 것이 아닌가?
이치이기 때문에 이치로서 온 예수님도 알아야 되는 것이다.
심판이 이치로 집행된다면 시간이 저절로 나오게 되고,  어떤 이유로 심판이 수행되며, 심판은 어떤 상태하에서 이루어진다 하는 것, 즉 다시말하면 이 심판 자체가 원리의 수행이라고 한다면 예수님이 의당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도 모른다, 나도 모를뿐만 아니라 천사들도 모른다,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고 하신 것이다.
그러면 왜 모르는가? 이것은 계획이기 때문이다.
이 심판이 수행되어 가는 것은 하나의 원리속에서 되어가는 것이지만 그러나 종말의 심판의 집행은 계획인 것이다.
이 계획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만이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도 모르고 천사들도 모르며 나(예수)도 모른다 하신 것이다.



우리의 모든 정신의 근본적인 핵심 방향은 예수님을 아는 것이다.
예수님을 깨달아야 한다.
예수님을 안다고 하는 것은 내 자신이 직접 예수님으로부터 뜻을 들을 수 있고, 내 뜻 또한  예수님에게 도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예수님과 내가 상론(相論)하고 내 생활을 지도도 받을 수 있는 상태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의 것들로 진리의 탐구를 위해 주어진 귀중한 시간을 헛되이 소진하는 일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



이 세상 지식도 가치는 없으나 알아야된다.
왜냐하면 속지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 지식도 모르면 속는다.
속지않기 위해 어느 정도 이 세상 지식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다.
따라서 어리석은 神에게 속지말고 예수님의 길을 바로 걸어가는 내가 되어야 하겠다.
오직 우리가 알아야 될 길은 예수님을 아는 길인 것이다.
또 원리와 진리는 예수님의 말씀 외에는 없는 것이다.



백천(白泉) 김준식

(P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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