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산교회
 
작성일 : 17-07-31 14:37
설교제목 : 죄, 무죄
 설교일자 : 1983.04.17
 KEY WORD : @@ 아버지 지혜 슬기 계시
 성경구절 : 마11:25~30
 관련구절 : 눅10:21~22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466  


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26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



오늘의 말씀은 누가복음 10:21~22절에도 있다.

그런데 마태복음에는 갈릴리 사람들이 도무지 회개하지 않는다 해서 책망한 다음에 이 말씀을 한 것처럼 기록되어 있고, 누가복음에는 72인이 전도를 갔다가 와서 그 전도보고를 할 때 이 말씀을 했다고 되어 있다.

오늘 이 말씀은 예수께서 아주 감격해서 아버지께 기도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여기서 ‘모든 것을 내게 맡겼다.’는 이 말씀은 기독교역사가 2000여년 되었지만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아무도 몰랐다.

모든 것을 내게 맡겼다는 오늘의 이 말씀은 굉장히 힘들고 중대한 일이며, 또한 설명할 시간이 부족해서 다음 기회에 설명하도록 하겠다.



또 “나 외에는 아버지를 모르고, 아버지 외에는 나를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아는 분은 하나님뿐이고, 하나님을 아는 분은 예수님뿐인 것으로 되는 것이다.

이 말을 쉽게 말하면, 하나님을 A라 하고 예수님을 B라 하면, A외에는 B를 모르고, 또 A는 B만 안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이 말씀은 깊이 생각할수록 미궁으로 빠져들게 된다.

하나님 외에는 인자를 아는 분이 없고, 인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분이 없다고 한다면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던 하나님은 무엇이고 두 분과 우리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가이다.

하나님만 예수님을 알고, 또 예수만이 하나님을 안다고 한하면 하나님하고 예수님은 우리와는 아무 관계가 없게 되는 것이다.

또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봐야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생명을 걸고 예수님을 믿는 나는 모든 것을 심각하게 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기독교는 진리이지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를 종교라고 떠들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은 진리이며 이치이지 그것이 종교는 아니다.

지금 세상에는 많은 종교들이 있지만 미신을 배제한 종교는 없다. 

이 세상에 있는 기독교라고 하는 것도 일종의 종교단체처럼 행동하고 있음을 우리는 보고 있다.



오늘의 말씀은 원문은 희랍어인데 일반적으로 희랍어는 공부하는 사람도 많지 않고 깊이 알기도 어려운 언어인데 이 원어가 번역된 글에 결함을 가끔씩 발견할 수 있다.

본문에서 “안다”는 말을 마태복음에는 “에피기노스코(ἐπιγινώσκω)라는 말을 썼고, 누가복음에는 “기노스코(γινώσκω)”라는 말을 썼는데, 누가복음에는 ‘그저 안다.’는 말이고, 마태복음에는 ‘겉에서부터 속까지 안다.’는 강조하는 역할을 하는 말로 되어있다.

그런데 여기서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다는 이 말을 ‘외에는 없다.’라고 해석한다면 그럼 둘이 서로 너는 나를 알고 나는 너를 알고 이렇게 해석되는 것이다. 이것은 문제다.

둘이 서로만 알고 있다면 우리는 아무리 믿어봐야, 아무리 뭘 해봐야 예수님 외에는 하나님을 아는 자가 없거나, 하나님 외에는 예수님을 아는 자가 없다고 한다면 우리는 무엇이냐 그런 뜻이다.

이 말에 대해서 성경을 번역하는 사람들이 “~외에는(except)” 만으로 번역할 경우에는 본문의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원문을 번역할 때에는 제대로 하기 어려우면 제가 요한복음을 번역한 방식과 같이 거기에 해당되는 의미 있는 여러 가지 해당되는 뜻을 같이 써넣어야 후에 읽는 사람에게 큰 혼란을 주지 않게 되는 것이다.



본문에 원어로 “εἰ” 란 단어는 ‘만일에’ 라는 뜻이다.

영어로 쓰면 if이다. 

그리고 그 다음 단어는 "μή“로 영어로 ”not”이란 뜻이고 따라서  “εἰ μή “는 영어로 “if not”이 된다 따라서 본문에서는 ‘만일에 아버지가 아니면’의 뜻이다. 이 

“εἰ μή"의 뜻은 “~외에는(except)” 과  “만일에 ~ 아니라면(if not)”의  뜻으로  모두 신약에서 사용됐는데 본문에서는 “if not”으로 해석함이 적절하다.

따라서 본문에 있는 원어의 바른 해석은 ‘만일에 아버지가 아니라면 아들을 모르고, 아들이 아니라면 아버지를 모른다.’ 라고 해석된다.

이와 같이 ‘아버지의 뜻이 또는 아버지의 생각이 아니라면 아들을 알 수 없고’, 그러므로 그 말은 ‘아버지께서 알도록 하지 않으면, 아무도 아들을 모른다.’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뜻하지 않으면 아들을 알 사람이 없고, 또 아들이 뜻하지 않거나 아버지를 알리려고 애쓰지 않거나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도 아버지를 알 수가 없다.’ 그 뜻이다. 

아버지 생각이 아니면, 아버지께서 노력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 이렇게 목적하지 않으면 인자를 알 사람이 없고 또 반대로 인자가 목적하지 않으면 아버지를 알 수가 없다”의 뜻이다. 

여기서 사용된 동사 “ἐπιγινώσκω”와 “γινώσκω” 시제는 과거가 아니고 전부 현재시제로 쓰여 있다.

그런데 이것을 이제 읽은 이 성경에는 다른 뜻으로 번역이 되어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지금까지 이 기독교 성경이라고 하는 것을 하나의 문학서적으로 취급하기 때문인데 이것은 문학이 아니다



나는 희랍 고전 철학자들이 쓴 글을 틈나는 데로 읽어보는데 여기에는 얼마든지 훌륭한 글이 많이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런 글 중에는 절로 감탄스러운 그런 훌륭한 말들이 많은데 그런 글에 비해 이 성경이라고 하는 것은  문학적 면에서 평가 할 때 훌륭한 가치가 없다.

그러나 이 책은 진리이기 때문에, 이 가운데 진리가 들어있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 성경을 하나의 종교서적이나 혹은 문학적인 관점에서 만들기도 하고 번역도 하고 그런 까닭에 다른 뜻으로 번역이 됐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자기 스스로는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어도 예수님을 알 수가 없고, 또한 인자의 힘이 아니라면, 능력이 아니라면 아버지를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아무도 알 수 없다”에서 “아무도”는 οὐδείς로 3인칭을 뜻하며 제3자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아버지 뜻이 아니라면 우리 일반 사람들은 인자를 알 수가 없고, 인자의 뜻이 아니라면 우리 인생들은 아버지를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말을 뒷받침하는 성경구절을 몇 군데 든다면, 마태복음12:50절, 마태복음16:17절, 마태복음18:14절, 마태복음20:23절, 다음에는 누가복음이나 마가복음은 너무 많으니까 제외를 해버리고, 요한복음4:23절, 요한복음6:27절, 32절, 45절, 또 요한복음6:65절. 이 65절은 아주 적절하게 뒷받침하는 말씀이다. 

그 다음 요한복음8:27절, 요한복음10:29절, 14:7절, 15:16절, 15:27절 들이 내가 말하는 것을 뒷받침해주는 구절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알도록 우리에게 뜻해주지 않으면 아무도 예수님을 알 수 없다 그런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아무나 믿으려고 해서 믿어지는 게 아니다 하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 믿도록, 그렇게 목적해주고 뜻해준 사람 외에는 예수님을 믿을 수 없다 그런 뜻이다.

또, 예수께서 그렇게 하기 전에는 누구든지 하나님을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마태12:50(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


마태16:17(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시몬 바요나야, 너는 복이 있다. 너에게 이것을 알려 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시다.")


마태18:14(이와 같이,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라도 망하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마태20:23(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정말로 너희는 나의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나의 오른쪽과 왼쪽에 앉히는 그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자리는 내 아버지께서 정해 놓으신 사람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요한4:23(참되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을 찾으신다.)


요한6:27(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지 말고, 영생에 이르도록 남아 있을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여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줄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자를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요한6:32(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다 주신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참 빵을 너희에게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요한6:45(예언서에 기록하기를 '그들이 모두 하나님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 하였다.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은 다 내게로 온다.)


요한6:65(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버지께서 허락하여 주신 사람이 아니고는 아무도 나에게로 올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25절에 “지혜 있고 슬기있는 사람들에게는 감추시고 어린아이에게는 이것을 드러냄을(Reveal) 감사합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이 어린아이라는 말은 원어로 “네피오스(νήπιος)”인데 이 말은 어린아이란 말도 있고 순수한 사람이란 뜻으로 비유적으로 교훈을 받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의 뜻도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하면 남보다 공부를 더했다고 자랑하는 그런 사람들에게는 감추시고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한 사람들에게는 이것을 알게 해준 것에 대해 감사한다는 그런 의미이다. 

그러면 여기서 이 어린아이에 대한 문제는 성경의 다른 곳 에서도 볼 수 있는데, 예수님 말씀의 요지는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이다.

어린아이의 특징을 보면 첫째, 어린아이는 병이 잘 고쳐진다.

소아과 의사에 의하면 어린이의 병은 정확하게 진단만 하고 있으면 비교적 잘 낫는 특징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 여기서 병이라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죄를 가리키는 것이다.

병이 잘 낫는다, 병이 잘 고쳐진다, 쉽게 고쳐진다 하는 것은 다시 말하면 죄가 잘 고쳐질 수 있는 상태에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기 죄를 죄인 줄을 모르고, 자기 허물을 허물인 줄을 모르고 죄가 고쳐지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즉 예수님 앞으로 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다음에, 어린이는 먹는 것이 다르다.

여러분이 다 알지마는, 어린아이는 나면서 젖을 먹기 시작한다.

갓난 어린이에게 떡이나 불고기를 먹이는 그런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어린아이에게는 이 젖이라고 하는 특수한 양식을 공급해주는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너희에게는 생명이 없다.”고 하셨다. 

아이 셋을 가진 어머니는 목구멍에 뼈가 걸리지 않는다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다.

어린아이의 어미는 어린애에게 젖을 공급하기 위해서 자기 양식과 또한 어린아이 양식까지 두 사람의 양식을 먹어야 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어린아이는 이 세상 음식을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젖을 먹고 사는 것이다.

이 젖은 예수님의 피와 살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고 마시는 사람 외에는 예수님 앞으로 갈 수가 없다는 말이 바로 그 말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소질의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이다.



다음에 어린아이의 특징의 하나는 중성적 정체성이다.

어린아이가 무슨 남성이 있고 여성이 있고 그런 것이 아니다.

어린아이는 중성인데, 오늘 여기에 대한 설명은 또한 시간이 걸리고 힘들기 때문에 다음에 기회가 될 때 언급할 생각이다.

이와 같이 예수께서 이 어린아이에게 알리게 한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는 것이다.



누구든지 믿으면 구원 얻는다고 하는 기록이 요한복음3장에 있다. 

물론 믿으면 그 결과 구원을 얻지만 믿을 수가 없는 것이 그 문제이다.

믿음이라 하는 것은 인식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인식이 된 다음에 비로소 자동적으로 믿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식이 없이 그저 믿는다 하는 것은 이것은 미신이다.

성경을 덮어놓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것도 일종의 미신이다.

미신 중에서도 무서운 미신이다.

악신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다 하면 그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창조주 하나님은 공정하고, 공평하신 것이 그 특징의 하나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께서는 비와 햇빛과 공기를 악한 자에게도 주고 선한 자에게도 공통으로 준다고 하셨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로마서9:21절에 보면 토기장이의 행사에 대해 누가 왈가왈부할 수 있겠냐고 말한다.

그러므로 신이 그렇게 했으면 그건 말할 수 없다고 했는데 이것은 바울의 말이 아니고 이사야서(45장)에 있는 말이다.

이사야에 있는 말을 바울이 인용해서 그렇게 말했는데 그것은 비록 성경에 그와 같은 기록이 있지만 말이 안 되는 말이다.

왜냐하면, 공정한 하나님이 같은 흙을 가지고 이것은 귀한 흙, 좋은 그릇을 만들고 또 나쁜 그릇을 만들었다 하면 그것은 다음에 하나님으로서는 심판을 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공정치 않은 기준으로 자기에게 좋은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과 차별을 둔다면 그것은 공정하고 공평한 하나님의 근원에서 벗어나는 일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귀한 그릇을 만들 만한 소재이므로 귀한 그릇을 만드는 것이다.

무조건 같은 소재 하나를 가지고 귀한 것과 천한 것을 만든다 하는 것은 이 세상 돌아다니는 신들이 하는 짓이라면 모를까 하나님께는 그와 같은 일이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인도하는 사람만이 예수님을 믿을 수 있다고 한다면 이것도 문제가 되는 것이다.

어떻게 태양 빛을, 공기를, 비를 공평하게 같이 나눠주는 하나님의 행사가 이러한지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것은 대단히 말하기 힘든 것으로 적절한 말로 표현하기 조금 어렵지만 그러나 이유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위에서 언급한 것과 마찬가지로 어느 인생에게나 공평하게 기회를 주고 있다.

다시 말하면 누구든지 예수님 앞으로 갈 수 있도록 준비해 놓은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당사자가 받아들일 소질이 있느냐 없느냐의 여부가 문제이다. 

요즈음 인간들의 정신 상태를 보면 무중력 상태에 있는 사람들처럼 전후좌우 위아래가 없다. 

또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하며 욕심은 많고 지조가 없는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그러므로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도 믿을 수가 없고 개인과 개인도 믿을 수가 없는 그런 세상으로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개인이나 민족이나 국가나 모든 것이 점점 나쁜 상태로 변하고 있다.


로마서9:21(토기장이에게, 흙 한 덩이를 둘로 나누어서, 하나는 귀한 데 쓸 그릇을 만들고, 하나는 천한 데 쓸 그릇을 만들 권리가 없겠습니까?)


이사야45:9(질그릇 가운데서도 작은 한 조각에 지나지 않으면서, 자기를 지은 이와 다투는 자에게는 화가 닥칠 것이다.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너는 도대체 무엇을 만들고 있는 거냐?' 하고 말할 수 있겠으며, 네가 만든 것이 너에게 '그에게는 손이 있으나마나다!' 하고 말할 수 있겠느냐?)



만일 예수께서 지금 이 자리에 계시다고 하면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로 갈 수 있는 방향과 길을 누구에게나 알려주고 갈 기회를 주었다.

그런데 왜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느냐 하면 사람들에게 질량이라고 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영적 질량이 없는 사람들, 즉 무중력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의 정신 상태라 하는 것이 전부 공중에 떠다니는 먼지와 같은 이런 상태에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영적질량, 심령의 질량이라 하는 것이 사람들 가운데는 있는 사람이 있고 없는 사람이 있다는 그것이다.



가속도 이론은 과학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영적 질량을 자기 본질이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 앞으로 갈 수 없는 것이다.

예수께서 아무리 그 중력장(重力場)이라고 하는 요소를 주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사람은 무중력상태에 있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영적 질량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어야 예수님 앞으로 갈 수 있고 예수님에게 가면 우리는 영적 세력을, 에너지를 얻게 더 다는 것이다. 

저 에너지를 얻게 되면 아무리 천국이 높다 하더라도 천국을 예상해 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구원의 도리를 말로 설명하기 어려워서 수학적 형태로 쓰면 이와 같이 설명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원리에서 질량에 빛의 속도를 곱하면 에너지가 된다고 말했다.

오늘날 우리가 핵발전소나 원자탄이나 수소탄을 말할 수 있는 것도 저 원리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빛이고, 예수께서도 빛이라 했으니 저 빛으로 말미암아서 영적질량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저 빛이 흡수돼서 천국을 올라갈 수 있는 그와 같은 능력의 힘을, 에너지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도하지 않으면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고 예수님이 아니면 천국을 갈 수 없다는 말씀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 세상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우니까 과학적 원리로 말하면 우리는 그 말씀을 비교적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나는 이 진리라 하는 것은 글자만 가지고는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다.

과학책들을 보면 그 책에는 글자도 들어있고, 그림도 들어있고 수식이 들어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진리를 파악하는데 있어서는 이 수학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우리에게 대단히 도움이 된다 하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여기서 예수께서 우리에게 해 주신 말씀의 배후에는, 이것은 기도할 때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지만, 대단히 심각한 원리가 이 가운데 들어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인간들에게 공통적인 기회를 주었지마는 인간이 이 땅 위에 태어나서 걸어오는 동안에 영적질량을 가지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저 영적질량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이 길과 진리의 힘을 받아서 예수 앞으로 가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  앞으로 가게 되면, 시간이 흘러가는 만큼 그는 천국에 갈 수 있는 에너지를 축적하게 된다.

영적인 힘을 축적 받아서 천국을 안 갈래야 안 갈 수 없도록 자연적으로 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도해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게 되고 또한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서 아버지를 알게 된다는 것의 의미이다.



오늘 예수께서 이 기도 중에 하신 간단한 말씀은 우리에게 가르치려고 하신 말이 아니고, 예수께서 아버지와 두 분 사이에서 기도하는 말씀 중에서 나타난 원리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예수께서 이렇게 간단히 말한 것이지마는 이것을 심각하게 생각하면 대단히 깊은 중대한 원리가 있다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된다.

하나님께서 기회는 온 사람에게 똑같이 주었지마는, 영적 질량을 가지지 않는 사람, 다시 말하면 본질을 가지지 않는 사람, 무중력 상태에 들어간 인간과 같은 사람들에게는 예수도 필요 없고 하나님도 필요 없다는 그런 뜻이다.

그들은 장차 어떻게 될 것이냐 하면 하나님께서 세워 놓으신 법에 따라서 자멸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는 의미이다.



백천(白泉) 김준식






 
 

Total 455
번호 설교제목 설교일자 성경구절 글쓴이 조회
410 죄, 무죄 1983.04.17 마11:25~30 관리자 1467
409 정확한 인식과 정확한 판단 1980.12.07 마07:01~06 관리자 1523
408 하나님의 법과 유대인들의 법 1980.11.23 마05:27~48 관리자 2195
407 천국의 시작 1981.01.04 마13:24~42 관리자 1380
406 예수님께서 하신 하나님말씀 1980.12.21 눅10:21~24 관리자 1802
405 이스라엘 민족이 기대한 메시아 1980.10.26 마04:12~17 관리자 1770
404 구원은 유대에서 1981.12.13 요04:20-22 관리자 2363
403 예루살렘 입성 1981.11.15 마21:01~11 관리자 1589
402 복음을 상고할때 명심할점 1981.09.06 눅20:01~08 관리자 1536
401 예수님을 살해한 이스라엘 1981.08.09 눅13:31~35 관리자 2196
400 신자의 노력(1) 1981.08.02 마15:21~28 관리자 1535
399 신 또는 인간의 권리 1981.07.19 마12:22~32 관리자 1497
398 우선 필요한것부터 1981.07.05 눅10:38~42 관리자 1392
397 영생(2) 1987.04.05 마19:16~30 관리자 1467
396 성전세(1) 1986.11.02 마17:24~27 관리자 2013
 1  2  3  4  5  6  7  8  9  10    

교회소개 l 찾아오시는길 l 예배안내 l 개인정보취급방침 l 이메일무단수집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