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산교회
 
작성일 : 17-07-31 14:37
설교제목 : 죄, 무죄
 설교일자 : 1983.04.17
 KEY WORD : @ 아버지 지혜 슬기 계시
 성경구절 : 마11:25~30
 관련구절 : 눅10:21~22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193  


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26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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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은 누가복음 10장 21절부터 22절에도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에는 갈릴리 사람들이 도무지 회개하지 않는다 해서 책망한 다음에 이 말씀을 한 것처럼 기록되어 있고, 누가복음에는 70인이 전도를 갔다가 와서 그 전도보고를 할 때 이 말씀을 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어쨌든지 간에 이 말씀은 예수께서 아주 감격해가지고 기도하는 구절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첫째로 모든 것을 내게 맡겼다는 이 말씀은 기독교역사가 2000여년 되었지마는 이것이 무슨 소린지 아무도 몰라왔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내게 맡겼다는 오늘의 이 말씀은 굉장히 힘들고 중대한 일이며, 또한 설명할 시간이 없어서 다음 기회에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에는 나 외에는 아버지를 모르고, 아버지 외에는 나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아는 분은 하나님뿐이고, 하나님을 아는 분은 예수님뿐인 것으로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을 쉽게 말하면, 하나님을 A라 하고 예수님을 B라 하면,  A외에는 B를 모르고, 또 A는 B만 안다는 얘기가 되는 것입니다.
이거 이상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외에는 인자를 아는 분이 없고, 인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분이 없다고 한다면 우리는 뭐냐 그런 얘기입니다.
하나님만 예수님을 알고, 또 예수만이 하나님을 안다고 한하면 하나님하고 예수님은 우리와는 아무 관계없는 것입니다.
또 무슨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봐야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천만번 읽어 보아도 글자 그대로 보면 그런 것입니다.
또 따지고 보면, 우리가 예수님 믿는다 하는 것은 헛일입니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생명을 내놓고 예수님을 믿는 그런 나는 모든 것을 심각하게 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기독교는 하나의 진리이지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를 종교라고 떠들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마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진리요, 하나의 이치이지 그것이 종교는 아닙니다.
세상에는 많은 종교들이 있습니다마는, 미신을 안 끼고 있는 종교는 없습니다. 
지금 이 세상에 있는 기독교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종교단체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원문을 보면, 이것은 희랍어를 보통으로 아는 사람은 잘 모릅니다.
언어의 결함이라 하는 문제를 여기서 발견할 수가 있는데 이것이 마태나 누가가 쓸 때에 물론 주의를 덜 한 측면이 있습니다마는, 그러나 누가복음에 있는 희랍어 원문이라든지 마태복음에 있는 것이라든지 꼭 같습니다.
단지 안다는 말을 마태복음에는 ‘에피기노스코’라는 말을 썼고, 누가복음에는 ‘기노스코’라는 말을 썼는데, 이것은 누가복음에는 그저 안다는 말이고, 마태복음에는 피부에서부터 속까지 안다는 그런 좀 심각한 말로 돼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다는 이 말을 ‘외에는 없다’라고 해석한다면 그럼 둘이 서로 너는 나를 알고 나는 너를 알고 이렇게 돼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둘이 서로만 알고 있다면 우리는 아무리 믿어봐야, 아무리 뭘 해봐야 예수님 외에는 하나을 아는 자가 없고, 하나님 외에는 예수님을아는 자가 없다고 한다면 우리는 무엇이냐 그런 얘기입니다.
이 말을, 성경을 번역하는 사람들이 한 글자로 이렇게 쭉 번역하는 자체가 잘못되었던 것입니다.
말을 번역할 때에는 제대로 하기 어려우면 제가 요한복음을 번역한 방식과 같이 거기에 해당되는 의미 있는 여러 가지 말을 같이 써넣어야지 저희끼리 모여가지고 한마디로 제멋대로 표기해 놓으면, 후에 읽는 사람은 큰 고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 말이 무슨 말이냐면 첫 번 말은 만일에 하는 소리입니다.
영어로 쓰면 if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말은 not이란 말인데, 만일에 아버지 아니면 인데 그것을 영어로는 except라고 해석하고 둘을 합해서 제 멋대로 번역을 해왔습니다.
원어의 바른 해석은 만일에 아버지 아니라면 아들을 모르고, 아들이 아니라면 아버지를 모른다고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희랍어의 ‘외에’ ‘아니’란 이 말은  아람 말인데, ‘아니’란 이것은 사실이 아니란 말, 실질적 문제가 아니라고 말할 때 이 말을 쓰게 되어있습니다.
그것이 희랍 아티카 고전에 확실히 나타나있고, 이 앞의 말은 이것은 뜻이란 말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will not이 아니라 not will입니다.
이와 같이 아버지의 뜻이, 아버지의 생각이 아니라면 아들을 알 수 없고, 그러니까 그 말은 무엇이냐면 아버지께서 알도록 하지 않으면, 아무도  아들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뜻하지 않으면 아들을 알 사람이 없고, 또 아들이 뜻하지 않으면, 아버지를 알리려고 애쓰지 않으면,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도 아버지를 알 수가 없다 그 말입니다. 
아버지 생각이 아니면, 아버지께서 노력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 이렇게 목적하지 않으면  인자를 알 사람이 없고 또 반대로 인자가 아버지를 알리려고 애쓰지 않으면, 아버지를 알 사람이 없다 이런 의미입니다.
이것은 과거가 아니고 전부 현재로 쓰여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이제 읽은 이 성경에는 이렇게 멋대로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이 기독교 성경이라고 하는 것을 하나의 문학서적으로 취급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문학이 아닙니다.


 


나는 희랍 고전 철학자들이 하는 말을 틈나는 데로 읽어봅니다마는, 여기에는 얼마든지 훌륭한 말이 많이 있습니다. 
굉장히 가슴을 칠만한 그런 훌륭한 말들이 많은데, 이 성경이라고 하는 것은  문학적 가치로 볼 때에는 별 가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진리이기 때문에, 이 가운데 진리가 들어있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성경을 하나의 종교서적이라든가 혹은 문학적인 관점에서 성경을 만들기도 하고 번역도 하고 그런 까닭에 이런 오류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면, 아버지께서 예수께로 인도하는 그런 뜻이 아니라면 아무도 예수님을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혼자서는 우리 인간들이 혼자서는 예수님을 알 수가 없고, 또한 인자의 힘이 아니라면, 능력이 아니라면 아버지를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알 수 없다 하는 것은 제 3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나, 하나님 아버지, 다시 말하면 1인격이나 2인격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제 3격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 뜻이 아니라면 제 3격을 가진 우리 일반 사람들이 인자를 알 수가 없고,  인자의 뜻이 아니라면 제 3자인 우리인생들이 아버지를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을 뒷받침 하는 성경구절을 몇 군데 든다면, 마태복음 12장 50절, 마태복음 16장 17절, 마태복음 18장 14절, 마태복음 20장 23절, 다음에는 누가복음이나 마가복음은 너무 많으니까 제외를 해버리고, 요한복음 4장 23절, 요한복음 6장 27절, 32절, 45절, 또 요한복음 6장 65절. 이 65절은 아주 적절하게  뒷받침하는 말씀입니다. 그 다음 요한복음 8장 27절, 요한복음 10장 29절, 14장 7절, 15장 16절, 15장 27절 등에 내가 말하는 것을 뒷받침 해주는 구절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알도록 우리에게 뜻해주지 않으면 아무도 예수님을 알 수 없다 그런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아무나 믿으려고 해서 믿어지는 게 아니다 하는 얘깁니다.
하나님께서 믿도록, 그렇게 목적해주고 뜻해준 사람 외에는 예수님을 믿을 수 없다 그런 얘깁니다.
또, 예수께서 그렇게 하기 전에는 누구든지 하나님을 알 수가 없다 그것입니다.



지혜 있고 지식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감추시고 어린아이에게는 이것을 알게 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이 어린아이라는 말은 원어가 ‘네피오스’란 말인데, 이 말은 어린아이란 말도 있고 순진한 사람이란 말도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공부나 했다 해서 거들먹거리는 그런 사람들에게는 감추시고 어린아이와 같이 순진한 사람들에게는 이것을 알게 해준 것을 감사합니다하는 그런 얘기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이 어린아이에 대한 문제는 성경의 다른 곳 에서도 볼 수 있는데,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어린아이라 하는 특징을 보면 첫째, 어린아이는 병이 잘 고쳐집니다.
어린이의 병에 대해서 정확하게 진단만 하고 있으면 비교적 잘 낫는 것입니다.
제가 한양대학교병원에 제집 손자 놈을 데리고 갔다가 소아과 과장보고  다른 의사를 하지 말도 할 줄 모르고 어디 아프단 말도 제대로 못하는 어린애 의사는 왜하냐고 그랬더니, “허허 그거 모르는 말씀입니다. 어린아이는 잘 낫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그 재미에  소아과 의사를 한다는  얘깁니다.
어린아이의 특징은 병이 잘 낫습니다.
그러면 병이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병이 잘 낫는다, 병이 잘 고쳐진다, 쉽게 고쳐진다 하는 것은 다시 말하면 죄가 잘 고쳐질 수 있는 상태에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죄를 죄인 줄을 모르고, 자기 허물을 허물인줄을 모르고 죄가 고쳐지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예수님 앞으로 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어린이는  먹는 것이 다릅니다.
여러분이 다 알지마는, 어린아이는 나면서 젖을 먹고 사는 것입니다.
갓난 어린이에게 떡이나 불고기를 먹이는 그런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어린아이에게는 젖을 먹입니다.
어린아이에게는 이 젖이라고 하는 특수한 양식을 공급해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너희에게는 생명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아이 셋을 가진 어머니는  목구멍에 뼈가 걸리지 않는다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린아이의 어미는 어린애에게 젖을 공급하기 위해서 자기 양식과 또한 어린아이 양식까지 두 사람의 양식을 먹어야 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린아이는 이 세상 음식을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젖을 먹고 사는 것입니다.
이 젖은 예수님의 피와 살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고 마시는 사람 외에는 예수님 앞으로 가게 할 수가 없다는 바로 그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소질의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입니다.

 


다음에 어린아이의 특징의 하나는 중성입니다.
어린아이가 무슨 남성이 있고 여성이 있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어린아이는 중성인데, 오늘 여기에 대한 설명은 또한 시간이 걸리고 힘들고 그래서 이다음에 기회가 될 때 얘기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께서 이 어린아이에게 알리게 한 것을 감사하다고하는 것은 우리가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믿으면 구원 얻는다고 하는 것도 요한복음 3장에 있습니다마는, 물론 믿으면 결과는 구원 얻습니다마는, 믿을 수가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믿음이라 하는 것은 인식의 소산입니다. 
인식이 된 다음에 비로소 이것은 자동적으로 믿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식이 없이 그저 믿는다 하는 것은 이것은 미신입니다.
성경을 덮어놓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것도 일종의 미신입니다.
미신 중에서도 무서운 미신입니다.
마귀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다 하면 그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공정하고, 공평하신 것이 그 특징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께서는 비와 햇빛과 공기를 악한 자에게도 주고 선한 자에게도 공통으로 준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무슨 소릴 했느냐하면 로마인서에 보면, 같은 흙을 가지고 어떤 것은 좋은 그릇을 만들고 어떤 것은 나쁜 그릇을 만들고, 그러면 그릇을 만든 자를 보고 그걸 항의를 할 수가 있느냐, 그러므로 신이 그렇게 했으면 그건 할 수 없다고 했는데 이것은 바울의 말이 아니고 이사야에 있는 말입니다.
이사야에 있는 말을 바울이 가져다가 그렇게 이용했는데, 그것은 말이 안 되는 소리입니다.
왜냐하면, 공정한 하나님이 같은 흙을 가지고 이것은 귀한 흙, 좋은 그릇을 만들고 또 나쁜 그릇을 만들었다하면 그것은 이다음에 하나님으로서는 심판을 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엉터리 짓을 해가지고는 자기 좋은 사람에게는 이렇게 하고 또, 나쁜 사람, 자기 싫은 사람에게는 저렇게 했다고 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귀한 그릇을 만들 만한 소재가 되어 있으므로 귀한 그릇을 만드는 것이지, 덮어놓고 그저 같은 것 하나를 가지고 귀한 걸 만들고 나쁜 걸 만든다 하는 것은 이 세상 돌아다니는 신들이 하는 소리지,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것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인도하는 사람만이 예수님을 믿을 수 있다고 한다면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태양 빛을, 공기를, 비를 공평하게 같이 나눠주는 하나님께로 부터는 어떻게 돼서 이렇게 되느냐 그런 얘기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말하기 힘듭니다마는, 적절히 말을 표현하기 조금 곤란하지마는 그러나 까닭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말함과 마찬가지로 누구에게나 어느 인생에게나 공통적으로 그렇게 기회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누구든지 예수님 앞으로 갈 수 있도록 해놓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받아들일 소질이 있느냐 없느냐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요즈음 인간들을 보면 무중력 상태에 있는 사람들처럼 이랬다저랬다, 동쪽에 갔다가 서쪽에 갔다가 뭔가 사람들의 행동이  예측하기 곤란한 그런 점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나라 사이에서도 믿을 수가 없고 개인과 개인도 믿을 수가 없는 그런 세상으로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개인이나 민족이나 국가나 모든 것이 그런 상태에 점점 들어가고 있더라는 얘기입니다.

 


예수께서 지금 여기 있다고 하면 하나님께서는 예수님한테로 갈 수 있는 방향을 누구에게든지 다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왜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느냐 하면 사람들에게 질량이라고 하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영적 질량이 없는 사람들, 즉 무중력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들의 정신 상태라 하는 것이 전부 공중에 떠다니는 먼지와 같은 이런 상태에 있더라는 얘기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영적질량, 심령의 질량이라 하는 것이 사람들 가운데는 있는 사람이 있고 없는 사람이 있다 그것입니다.



가속도 얘기를 과학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알 것입니다.
영적 질량을 자기 본질이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 앞으로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아무리 그 중력장이라고 하는 요소를 주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전혀 느껴지질 않는 인간은 무중력상태에 있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영적 질량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야만 예수님 앞으로 갈 수 있고 예수님에게 가면 우리는 영적 세력을, 에너지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 에너지를 얻게 되면 아무리 천국이 높다 하더라도 천국을 예상해 갈 수 있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구원의 도리를 말로 설명하기 어려워서 이제 수학적 형태로 쓰면 그와 같이 설명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원리에서 질량에 빛의 속도를 곱해도 에너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핵발전소니 원자탄이니 수소탄이니 하는 것도 저 식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빛이고, 예수께서도 빛이라 했으니 저 빛으로 말미암아서 영적질량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한해서 저 빛이 우리에게 흡수돼서 천국을 올라갈 수 있는 그와 같은 능력의 힘을, 에너지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도하지 않으면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고 예수님이 아니면 천국을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우니까 간단히 수식으로 말하면 우리는 설명을 비교적 알아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늘 하는 말입니다마는 이 진리라 하는 것은 글자만 가지고는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과학책들을 보면 그 책에는 글자도 들어있고, 그림도 들어있고 수식이 들어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진리를 파악하는데 있어서는 이 수학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우리에게 대단히 도움이 된다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기서 예수께서 우리에게 해주신 말씀의 배후에는, 이것은 기도할 때 예수께서 하신 말입니다마는, 대단히 심각한 원리가 이 가운데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인간들에게 공통적인 기회를 주었지마는 인간이 이 땅위에 나서 걸어오는 동안에 영적질량을 가지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 영적질량을 가진 사람들이라야만 예수께로 가는,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이 비중의 힘을 받아서 예수 앞으로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  앞으로 가게 되면, 시간이 가면 가는대로 그는 천국에 갈 수 있는 에너지를 축적하게 됩니다.
세력의 힘을 축적 받아서 천국을 안 갈래야 안 갈 수 없도록 자연적으로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도해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게 되고 또한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서 아버지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아침에 여기 예수께서 이 기도 중에 하신 간단한 말씀은 우리에게 가르치려고 하신 말이 아니고, 예수께서 아버지와 두 분 사이에서 기도하는 원어 중에서 나타난 얘깁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예수께서 이렇게 간단히 말한 것이지마는 이것을 심각하게 생각하면 대단히 깊은 중대한 원리가 있다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회를 안 준 건 아닙니다. 기회는 온 사람에게 같이 주었지마는, 영적 질량을 가지지 않는 사람, 다시 말하면 본질을 가지지 않는 사람, 무중력 상태에 들어간 인간과 같은 사람들에게는 예수도 필요 없고 하나님도 필요 없다는 그런 얘깁니다.
그러면 그들은 장차 어떻게 될 것이냐 하면 하나님께서 작정한 법에 따라서 자멸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백천(白泉) 김준식

M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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