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0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0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0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0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0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0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0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0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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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 말씀은 예수님의 근본 원리인데 현 기독교는 이 말씀의 진위를 모르고 있습니다.
여기서 나는 포도나무라 했지만 보통의 열매 맺는 나무로 보면 됩니다.
나는 한 나무의 원줄기이고 너희는 가지인 하나의 살아있는 나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어딘가 병들어 잘못된 가지이므로 그것은 잘라 불에 태워 버린다는 것입니다.
불에 태운다는 말은 완전히 없어진다는 말입니다.
이 말을 현재 기독교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을 잘 믿으면 천당에 가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지옥에 간다고 말하는데, 오늘 여기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아예 없애버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방법을 보면 그저 하나의 동물입니다.
수컷과 암컷이 결합하여 새끼를 갖는 것, 이것이 동물이 태어나는 방법입니다.
수컷과 암컷이 결합하여 새끼를 낳는다는 것은 그 자체의 모체는 없어짐을 의미합니다. 같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예수께서 분명히 여기서 말씀하셨거니와 우리의 자연현상도 그러합니다.
그렇지만 기독교에서는 무식한 소리를 예사로 하고 있습니다.
오늘 여기에서 예수님은 ‘한 나무에는 여러 가지가 있고 그 가지들은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잘라내어 불에 태워 없애버린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원리 가운데 주요한 줄거리는 둘입니다.
하나는 있다는 것, 다시 말하면 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없다는 것입니다.
있다와 없다, 이 둘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열매 맺는 가지는 있을 수 있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없애버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오래 두었다가 지옥에 보낸다거나, 벌을 준다거나 그런 어리석은 짓은 하나님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
나쁘면 없애버리고 그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오늘 여기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나는 하나의 나무로서 너희는 내 나무의 가지이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근본 줄기로 하고 많은 가지들이 거기에 부착되어 하나의 생명체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이 생명체는 우주에 하나 뿐 입니다.
우주의 근본적인 생명체는 예수님을 줄기로 하고 다른 것들을 가지로 하는 그런 생명체입니다.
몇 주일 전 설교 내용에 너희 외에 다른 무리도 있고 그 둘이 합쳐져서 하나가 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천국에 가는 생명체는 지구인만 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 넓은 우주의 다른 세계에도 우리의 형제 같은 가지가 될 수 있는 생물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가서 본 일도 없고 또 오늘날 우리의 과학으로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예수께서 분명히 너희 외에 다른 무리도 있고 이들이 합쳐져서 한 무리로 형성된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이 넓은 우주 어디엔가 아직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지만 다른 생명체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만 천국에 간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너희 외에 다른 형제가 있다는 것을 예수께서 말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여기에서 ‘나는 한 나무이고 너희는 가지다’하였을 때에 우리들만 그 가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그의 가지이지만 우주의 다른 세계에도 그의 가지가 될 수 있는 것이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 여기서 예수님은 단지 이 지구덩이에 있는 우리에 관하여만 말했을 뿐 다른 세계의 가지를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가지 중에서 만일 나쁜 가지,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가 있다면 그것을 잘라 태워버린다는 것은 예수님은 우주를 건설해 가는 과정에서 나쁜 것은 없애버린다는 것입니다.
인간뿐만 아니라 神도 나쁜 신이라면 없애버린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우주에는 많은 신이 존재하며 이들은 시간이 좀 결리겠지만 마지막 결과에서는 깨끗이 청소될 것입니다.
가지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면 영원한 존재가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잘라내어 없어질 운명을 맞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우주에서 영원히 존속할 수 있는 길은 예수님이라는 나무의 한 가지로서 있는 것입니다.
가지의 역할은 열매 맺는 것입니다.
가지도 한 생명체의 일부로 존속하는데 생명체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생명체가 일을 하지 못한다면 무생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에게 붙어있는 가지가 되려면 열매를 맺어야 하고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던지 간에 존재하려면 그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다른 곳을 보면 열매를 낸다 하더라도 그것이 30% 미만일 때는 없애버린다고 하였습니다.
최저 30% 이상의 열매를 맺어야만 가지로서 존속할 수 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우주의 근본은 살아있는 하나의 나무라는 것입니다.
우주 전체가 결과적으로 살아있는 나무로서, 생명체로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 우주에서 근본적인 하나의 생명체를 형성하므로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이 생명체의 조직 가운데에 가지로서 붙어 있어야만합니다.
가지로서 붙어 있을 수 있는 조건은 열매를 맺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생명체는 우주에 오직 하나 뿐입니다.
이 우주에서 예수님이라는 생명체 외에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자기 입장을 밝혔습니다.
“나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했습니다.
진리는 이 우주에 꼭 하나 뿐이므로 A도 진리이고, B도 진리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근본적인 예수님은 이 우주에서 하나의 존재이고 절대 존재입니다.
예수님 외에는 이 우주 간에 근본적인 존재가 있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무능한 인간을 속이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 神이 많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것들은 깨끗이 청소되어 다 없어지게 됩니다.
이 우주에 예수님이라는 큰 하나의 생명체가 있으면 그 다음에는 우주에서 모여든 많은 가지들이 거기에 달려 열매를 맺게 됩니다.
우리가 여기서 근본적으로 깨달아야 할 것은 우주에서 근본적인 몸체와 뿌리는 예수님 하나 뿐이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온 까닭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기 전에는 인간은 하나의 동물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만든 것은 목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을 만들어 하나의 수확을 얻으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 계획은 오래 전에 있었지만 그 결과를 보기 위해 예수께서 이 지구를 잠깐 살피러 온 것입니다.
이 세상이 자기의 목적을 이루는데 적당한지 사찰하러 온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 세상에서 2년 정도 있다가 다시 자기 본향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 세상 사람이었다면, 그리고 이 세상을 고쳐 유토피아로 만들려고 했다면, 또 이 세상에 기대를 하였다면, 적어도 수십 년 아니 수백 년을 살아서 자기의 손으로 글을 남기거나 다른 무엇을 했어야 할 터인데, 그는 극히 짧은 시간만 지구상에 머물렀던 것입니다.
그는 제자들을 12명 정도 모아서 몇 마디 남기고는 자기 본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러한 일을 우리는 간단히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이 지구가 씨를 뿌리는데 적당한 곳인지 아닌지를 잠깐 살피기 위해서 왔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은 다른 神들도 모르는 사항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떠난 다음에야 비로소 이 세상 인간들에게 씨가 뿌려졌던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온 이후에 인간에게 영생할 수 있는 길이 생긴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이를 위해 세상에 왔다 가심으로써 이 우주 창조의 근본 목적이 달성될 뿐만 아니라 인간들에게는 커다란 소망과 희망이 생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가님이 오셨다가 가심으로 말미암아 인간에게는 영생의 세계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영생의 존재라면 그 가지인 우리도 영생의 존재가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그 나무의 가지가 되지 못한 사람은 자연히 없어지게 됩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분명히 잘라내어 태워 없애버린다 하였는데도 오늘날 기독교는 꺼지지 않는 불속에서 고통 받는다고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못 쓰는 것은 없애야지 남겨둔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비록 오늘 예수께서 너희는 열매 맺을 수 있는 가지가 되라고 하셨지만, 우리가 덮어놓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예수님이라는 나무의 가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 세상 물질계는 기체, 액체, 고체가 있습니다.
따라서 영계도 세 가지 계단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기체라면 성령입니다.
영적으로 다시 나야합니다.
영적으로 다시나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 나무의 가지가 될 수 없습니다.
액체로는 중생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했듯이 거듭나야 합니다.
또 고체로서의 의미는 씨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영적으로 나야하고, 중생해야 하고, 또 씨로 나야합니다.
내 속의 씨가 30%이상 자라야 비로소 예수님이란 나무의 가지가 될 수 있습니다.
백천(白泉) 김준식
MS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