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신(神)의 산 호렙에 이르매
0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03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0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신(神)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05 신(神)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0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신(神)이니 아브라함의 신(神), 이삭의 신(神), 야곱의 신(神)이니라 모세가 신(神)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0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08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09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11 모세가 신(神)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12 신(神)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신(神)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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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에 대해서 철저히 알려면 예수님의 말씀과 구약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 서신을 가지고는 예수님과 여호와를 구별할 수 없습니다.
구약 성경은 물론 철학도 없고 사상도 없고 학문적인 가치도 없는 책이지만, 여호와에 대한 사항은 자세히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그의 성격이나 본질을 파악하려면 구약을 잘 읽어 보아야합니다.
오늘 제목은 이전 주일 설교의 계속입니다.
본문의 내용은 시내산에서 여호와가 모세에게 처음 나타날 때의 기록입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자기 본질과 본체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보면 여호와는 호렙산, 즉 시내산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호와의 본래 본거지는 산입니다.
대개 신들은 산에 근거를 두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까닭은 그저 자기가 훌륭한 신이라고만 해서는 누가 믿지 않지만 사람들이 높은 산을 보면 그 산에 대한 위엄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개의 신들이 그 거처를 산으로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가 모세에게 나타난 곳은 호렙산이고 여호와는 이 호렙산을 근거지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나와 오랫동안 배회하도록 만든 곳도 호렙산 부근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민족이 근 40년 가까이 호렙산 부근을 배회하면서 그 호렙산에 있는 여호와 신을 섬기고 동경하면서 지냈던 것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출애굽기와 창세기 즉, 모세 오경은 호렙산 산물이라고도 볼 수 있을 정도로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는 본래 산신인 것입니다.
호렙산 신이다 하는 것을 오늘 여기 모세와의 대화중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다음 출애굽기 3장 2절에 ‘여호와의 사자’라고 번역되어 있는 데 이것은 잘못된 번역입니다.
이것은 교회가 교리를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번역한 것인데 원어로 보면 ‘사자 여호와’로 번역되어야 합니다.
억지로 ‘여호와의 사자’로 번역하면 잘못된 번역일 뿐만 아니라 문맥도 맞지 않습니다.
본래 사자는 주인이 나타나지 않을 때 주인 대신 심부름꾼으로 보내는 것인데 조그만 나무 덤불속에, 한 나무에 무슨 사자가 있고 또 여호와라 하는 본 주인이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말 원어대로 보면, ‘사자 여호와’로 되어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여호와란 ‘사자’라는 얘기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명을 가진 신이라는 뜻입니다.
자세한 기록은 우리가 알 수 없지만 본래 이 여호와는 하나님께로부터 중대한 사명을 가졌던 신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신이 자기 사명을 수행하지 않고 배반했기 때문에 그는 하늘나라에 있을 수가 없어서 이 지상의 신으로 전락하여 호렙산을 그의 근거지로 택했던 것입니다.
전에도 말했지만 이 신이 “나는 질투하는 신이다.” 말한 것은 그가 예수님에 대해서 질투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마침내 두 가지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에 대한 회유의 정책입니다.
구약성경에 있는 예언서가 전부 그 내용입니다.
다음에는 그 첫째 계획대로 안 되면 그를 죽이는 계획입니다.
마침내 첫 번째 계획은 실패를 했고 그 다음에 그를 살해하는 계획은 성공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자 여호와가 사명을 가졌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하고 일치하는 것입니다.
그 자세한 것을 오늘 다 밝힐 수는 없지만 마태복음 21장 34절부터 46절까지의, 누가복음 2장 9절에서 14절, 마가복음 12장 1절에서 12절의 말씀과도 일치되는 이야기입니다.
여호와를 사자라고 보면 예수님의 말씀과도 일치됩니다.
또 이 여호와란 이름과도 일치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자 여호와’가 맞는 번역입니다.
그렇지 않고 '여호와의 사자'라고 번역하면 어느 것 하고도 맞지 않습니다.
그 다음 6절에 “나는 너희 조상신이다.”했는데 이 말도 틀린 것입니다.
원어대로 번역하면 “나는 너희 아버지 신이다.”라는 말입니다.
즉, 아버지라는 단수로 씌어있습니다.
히브리말에는 조상이라는 말이 따로 없고 하나로 쓰고 있습니다.
‘나는 신, 너희 아버지이다’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너희 조상의 신이란 말은 16절에 있는 말이 그것이며 6절과는 원어가 다르게 씌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전 주일의 설교처럼 여호와는 이스라엘 백성의 아버지요 또한 신인 것입니다.
이점에서 신명기에 있는 말이나 이사야에 있는 말하고도 같은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기 6절의 말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모세에게 처음 나타나서 하는 말이 나는 너희 아버지다, 다시 말하면 너희 아버지 신이라는 말입니다.
아버지와 신이 일치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예수께서 “너희들의 신은 거짓말쟁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있습니다.
여기 3장 18절에 보면 ‘내 백성이, 이스라엘 백성이 고통을 받는 것을 보았는데, 내(여호와)가 이제 애굽에서 끌어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것이다.
너희가 애굽에서 지금 받고 있는 고통을 내가 아는 까닭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내가 인도한다.’했는데 이것이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그 때에 세계에서 가장 땅이 옥토인 나라는 애굽입니다.
그때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 나일 강 유역, 나일 강 서쪽 고센 땅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살았던 그 고센 지방이 농사가 가장 잘 되는 곳이었습니다.
그때는 지금부터 한 3500여 년 전 얘긴데, 당시 세계에서 가장 문화도 발달했고 살기 좋은 땅이 애굽이었습니다.
여기에 비해 가나안 땅은 세상에서 가장 살기 어려운 척박한 땅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애굽 땅을 천국으로 보면 가나안 땅은 지옥에 해당되는 땅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이 한마디를 보더라도 여호와가 거짓말쟁이 신이라는 것이 입증됩니다.
그 다음에 18절에 보면 모세를 시켜 애굽 왕 바로 왕 앞에 가서 이야기 할 때 이스라엘 모든 장로들을 모아 바로 왕 앞에 서서 ‘우리들이 사흘 길을 가서 우리가 모시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도록 허락해 달라.’ 청하면 바로 왕이 듣지 않을 것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것도 소위 여호와가 큰 신이라면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사흘 동안 걸어가 무엇을 섬긴다는 것도 되지 않는 일이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이 40년을 넘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갔는데 사흘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걸어가 우리 신을 섬기도록 게 해달라고 말하는 자체가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만일에 대 우주를 창설하신 창조주 하나님이라면 조그마한 저 애굽나라의 임금에게 졸렬한 거짓말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보통 사람들도 졸렬한 거짓말은 자기의 인격을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하지 않을 텐데 하물며 대 우주를 창조했다는 신이라면서 조그만 나라의 임금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은 소리입니다.
그러나 오늘 첫 절에서부터 그는 모세에게 거짓말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너희 신은 처음부터 거짓말쟁이라고 하셨습니다.
살인자라는 것은 예수님을 죽였으니까 살인자입니다.
다른 사람도 많이 죽였습니다.
또한 모세도 그렇습니다.
모세의 기록을 보면 바로 왕의 딸의 양아들로서 바로의 궁전에서 자라난 애굽 나라의 귀족입니다.
그런데 불구하고 그 사람을 불러서 바로 왕에 대적하는 적장의 행위를 했다 하는 것은 모세의 인격으로 보나 또한 여호와 신의 인격으로 보나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모세라 하는 인간으로 보면, 올바른 인간이라면 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바로 왕의 딸의 아들로 자라서, 그 궁전의 귀족으로 자라난 사람이 그 나라에 대적한다면 배은망덕한 사람입니다.
이것은 출애굽기 첫 장부터의 이야기이지만 구약 어디를 보아도 이렇게 엉터리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글이 어떻게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예수님의 아버지 하나님의 말이라고 여기고 있느냐 그런 얘기입니다.
나는 이 세상에 기적이 있다면 이것이 하나의 기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기독교에 관한 책이 일 년에 수천 권씩 쏟아져 나오고, 많은 기독교 학자들이 나타났지만 오늘날까지 이런 구약에 대한 맹점에 대해 언급한 학자가 없는 것이 기적입니다.
이 구약성경의 잘못된 번역은 수천 군데이고 원어가 잘못된 것도 내가 조사한 바로는 330건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기독교의 근거라 하는 것이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온 세계를 기독교가 덮고 있는 것은 분명 틀림없이 중요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의 조작인 것입니다.
오늘날 온 세계 인간들은 이 신의 조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신의 마술에 걸려있는 까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기 이성을 잃어버리고 미로의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엉터리 같은 터무니없는 소리가 ‘이것이 진리요, 틀림없는 사실로 영감에 의해 기록되어있다.’고 믿는 것은 정상적인 인간의 이성으로서는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가 말을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이것은 신의 조작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아 죽인 신은 예수님이 부활하리라고는 예상도 못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부활이라는 원칙이 우주 간에는 없었기 때문에 또 예수님이 사람으로 왔기때문에 그를 죽여 버리면 모든 것이 끝나는 줄 알았던 것입니다.
여호와는 부활의 진리를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였습니다.
부활은 새로이 수립된 창초의 법입니다.
그래서 여호와는 예수님을 죽였지만 실패했습니다.
이제 다음에 남은 수단으로서는 예수님을 모르게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인간이 한 사람도 예수님을 깨달을 수 없게, 예수님을 모르게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온 목적이나 그의 공로를 완전히 말살하고 조작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온 세계가 지금 이 마수에 걸려서 자기 이성을 찾지 못하는 상태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제 2차 대전까지 예루살렘은 이슬람의 지배하에 있었는데 2차 대전 이후에 회교 치하에서 벗어났습니다.
이 때 예루살렘을 빼앗은 사람은 영국의 알렌비 장군인데, 알렌비는 예루살렘을 포위하고도 총을 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예루살렘은 거룩한 성인데 성전을 어떻게 총을 쏠 수 있느냐하여 총을 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3일 동안 모든 병사들로 하여금 금식기도를 하게 했습니다.
금식 기도기 끝난 후 마지막에는 군사들이 크게 함성을 질렀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이 저절로 함락되었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을 들어갈 때 알렌비 장군은 모자를 벗었으며, 모든 졸병들도 모자를 벗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루살렘을 신성시하는 것은 대영제국의 장군 뿐만 아니라 기독교 역사의 기록 여러 곳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온 세계가 여호와의 마수에 걸려서 예수님을 잡아 죽였고, 그 이후에 여호와는 기독교라 하는 종교단체를 만들어가지고는 자기가 하나님으로 등장했고, 창조주로 등장했고, 예수님을 인간들의 죗값으로 죽여 버린 희생양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은 예수께서 이 땅에 온다는 것이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온 우주를 통치한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온다는 것이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오신다는 것과 내가 이 땅 위에서 저 천국에 간다는 것은 동일한 원칙아래에서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하늘나라에서 이 땅위로 올 때의 결심과 심정은 우리들이 이 땅 위에서 천국으로 갈 때의 그 심정도 동일하게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기로 온 것이나 우리가 거기로 가는 것이나 같은 코스의 같은 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가졌던 생각이나, 우리들이 가져야만 될 생각은 대소의 차이는 있지만 본질은 똑같은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백천(白泉) 김준식
MS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