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산교회
 
작성일 : 17-12-28 19:53
설교제목 : 요한복음강해(12:01~11)
 설교일자 : 1980.02.10
 KEY WORD : @ 마르다 마리아 향유 삼백데나리온
 성경구절 : 요12:01~11
 관련구절 : 마26:06~13, 막14:03~09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977  

0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02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0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04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0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0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07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08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09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 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보기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 함이러라

10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11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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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12:1에는 “예수님이 유월절 6일 전에 나사로가 살던 베다니로 가셨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베다니는 예수님이 나사로를 죽음에서 다시 살리신 곳이며, 예수님은 베다니에서 나사로를 살리신 후 에브라임 지역으로 이동해서 제자들과 함께 계셨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나사로의 여동생이며 예수님은 그 가족들을 사랑하셨다.

특히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을 나드 향유로 씻어 드리는 사건이 있었는데 그 일로 예수의 각별한 관심을 받았다.



Pure Nard는 향기로운 액체로 인도에서 수입하는 고가의 제품으로 건조하고 더운 기후에 피부가 마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기름부음”을 위한 재료로도 사용된다.

“순전한 한근의 나드”는 영어로 “A Pint of Pure Nard”로 기록 되어 있지만 원어에는 “Litra”로 기록되어 있다.

“Litra”는 약327gram정도의 무게이다. 



예수님의 제자인 가롯유다(Judas Iscariot)가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라고 말하였다.

여기서 1 데나리온은 그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므로 300데나리온은 노동자 1년치 임금에 해당되는 금액이다.

가롯유다가 이렇게 말한 뜻이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 이러라“라고 기록 되어 있지만 도둑보다는 사기꾼이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

가롯유다는 전대를 관리하는 사람이었는데 유대종교에 매우 충실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제사장뿐만 아니라 당시 권력의 고위층과도 인간관계가 있던 사람이다.

그는 예수님을 이스라엘에 올 메시아로 생각하며 따라 다녔던 사람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언행을 보며 메시아와 다르다는 의심을 갖게 되면서 제사장들과 함께 정보를 공유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측 된다.

그런데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Pure Nard를 붓고 머리카락으로 닦는 사건이 있었는데 예수님이 이를 묵인 하는 것을 보고 가롯유다는 큰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 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라고 말했다.

당시 유대나 이집트에서는 장례준비를 10일이상 길게는 3개월 동안 준비를 했다.

이로 인해 가롯유다는 자기 기준에 따른 정의감의 발현으로 인간적인 상실감에 예수님을 유대종교 지도자에게 넘겨주기로 결심을 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될 것은 가롯유다만 예수님을 몰라본 것이 아니고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조차도 예수님이 머지않아 십자가에 못 박힐 것을 예상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원리를 세상에 발표 했을 때 그 당시 물리 학자들이 그를 매장하려 했던 사건이 그것이다.

그는 프랑스로 피난을 갔는데 소위 과학자라는 사람들도 상대성원리에 대한 실험이나 확인도 없이 그를 매장하려 했던 사실인데 정치나 종교는 말할 것도 없다.



여기서 가롯유다와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잘 알지 못했던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일 일수도 있다.

여러분도 예수님을 바로 인식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각자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예수님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많은 유대인이 베다니에 온 주 목적은 죽은 자를 살려낸 예수님을 보기 위함 이기도 했지만 다시 살아난 나사로를 보기 위함이었다.

이 사건으로 많은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더욱더 신뢰하게 되었다.

우리는 바른 믿음을 바탕에 둔 바른 신앙을 갖는 것이 최종 목적인데, 이 바른 신앙을 갖기 위해서는 두가지 조건을 충족 시켜야 한다.

첫째는 확고한 성경지식이며, 둘째는 성령의 교통이다.

여기서 성령의 교통은 이차적인데 이것은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평생 몇번 정도만 경함 할 수도 있는 조건이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성경에 대한 확고한 인식을 정립 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전 세계에 많은 종교 단체가 있지만 진심으로 예수님을 이해하고 성경에 대한 확고한 인식을 가르쳐주는 단체는 드물고 그저 사회생활의 방편으로 많은 단체가 운영되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일주일에 한번씩 교회에 출석해서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고 예배를 보지만 교회 밖으로 나가면 세상일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개인 생활은 자신의 신앙을 성장시키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고 개선해야 한다.



오늘 예수님이 베다니에 있는 나사로가 살고 있는 집에 왔을 때 마리아만이 예수님을 만나서 저녁을 대접하고 300데나리온이라는 고가의 Nard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발랐는데 마리아가 이 고가의 Nard가 비싼 물건임을 모를수 없고

여자로서의 체면도 모를수 없고 주변사람들을 의식하지 않을수도 없었을 것이다.

마리아가 Nard의 가격이나 인간의 체면이나 주변의 눈치를 초월해서 예수님의 발에 Nard를 붓고 닦은 사실을 우리로서는 감히 그 이유를 추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 많은 예수님의 추종자 가운데 오직 마리아만이 예수님의 죽음을 예견하고 그 죽음의 가치를 느낀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간이 사회적으로 학문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다 하더라도 마리아와 같은 영적인 교감이 없다면 사실 동물과 차이가 많다고 말하기가 곤란할 것이다.

예수님의 선택을 받은 제자들이 모두 훌륭한 사람들이었겠지만 오늘 예수님의 발에 Nard를 부은 마리아에 비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예수님을 만난 마리아의 감동적인 사건은 말로 설명하기 곤란한 것이지만 마리아는 진리를 받아 들일 수 있는 소양이 높은 사람이었다고 말 할 수 있다.)



우리는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예수님을 확고하게 인식해야 하는데 오늘 마리아를 통해서 그 신앙의 정점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일에 대한 미래를 우리의 지식으로 판단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이것은 위로부터 오는 성령의 교통으로만 알 수 있게 되는데 이것이 신자들의 신앙생활의 정점이다.

예수님은 얼마 후 이 세상을 떠나서 아버지의 세계로 돌아 가실 것인데 떡도 주고 병도 고쳐주고 귀신도 물리친 많은 사람들 가운데 오직 마리아만이 예수님을 교통하고 마지막까지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를 생각하시면서 답답했던 그 

마음을 우리는 상상하기 어렵다.  



우리의 신앙 생활 중 마리아와 같은 신앙의 교통을 단 1분1초라도 가질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세상 전체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오늘 예수는 마리아를 보면서 큰 보람을 느꼈을 것이라 생각 된다.



백천(白泉)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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